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16화 (16/434)

16화 : 왕초보 사냥터 (1)

제2차 길드 대전이 치러질 무렵.

테일러는 51층에서 사냥 중이던 은혁을 스카우트하려 한 적이 있었다.

은혁은 제안을 거절했고, 테일러는 은혁을 납치하려 했다.

‘나를 생포하겠다?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확실히 지금의 강은혁 자네는 전성기지. 그러니 아주 잠깐 늙게 만들어 주겠네.’

‘뭐?’

테일러는 은혁에게 돈을 뿌린 다음, 노화를 가속시켜서 약화시킨 뒤 생포하려 했다.

은혁은 필사적으로 [패링]으로 날아오는 돈을 모조리 튕겨내면서 끈질기게 버텼다.

돈을 이용한 가속 공격, 둔화 공격, 모으기 공격 등 온갖 공격이 이어졌다.

게다가 일반 마법사의 승급 직업인, 연금술사로서의 각종 포션 버프와 주문들까지.

은혁은 염훈이 와서 도와줄 것을 믿고 필사적으로 버텼다.

멀리서 염훈이 달려오는 순간.

‘수지가 맞지 않는군. 자네를 길들이는 건 돈 낭비에 시간 낭비겠구만.’

테일러는 쓴웃음을 짓고는 이탈했다.

그리고 은혁은…….

‘나 자신을 엄청 자랑스러워했었지.’

E급 직업으로 시작한 자신이 부길드장과 일대일로 붙어서 살아남았으므로.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거다.’

만일 다시 싸울 일이 생긴다면 테일러로 하여금, ‘강은혁과 싸우고도 살아남아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지금은 모든 직업의 가능성과 회귀 전의 지식까지 가졌으니, 빠른 시일 내에 그 정도로 성장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S급 직업인 염훈도 의욕이 생긴 상태.

“가자! 5층 메인 미션을 깨러!”

* * *

5층 중앙 광장.

그곳에는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 게이트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다.

총 95개의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으며, 누군가가 게이트 미션을 클리어한 층이 있다면 그 층으로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단, 거기 가려는 플레이어가 이전 단계의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지 않았다면 갈 수 없었다.

물론, 1층부터 5층까지의 튜토리얼 층으로 가는 것 또한 시스템적으로 막혀 있었다.

“자자, 신규 플레이어분들은 좌측 끝의 게이트를 이용해 주십시오!”

“기존 분들은 줄 맞춰서 나누어 이동해 주십시오!”

게이트 관리자들이 안내했다.

중앙 광장의 게이트는 NPC로 구성된 게이트 관리국이 관리했다.

100층탑 관리국의 하부 기관으로, 게이트 관리에만 집중하는 가장 중립적인 기관이었다.

은혁과 염훈은 좌측 끝의 게이트 관리자 한 명에게 가서 말했다.

“5층 메인 미션 신청합니다.”

“그러십시오.”

<5층 메인 미션 : 왕초보 사냥터>

-목표 : 5층에 조성된 왕초보 사냥터에서 능숙하게 사냥하여, 탑을 오를 자격을 입증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6층 이상에 진입할 권리.

-실패 시 페널티 : 향후 3개월간 도전 불가.

-제한 시간 : 1시간.

“왕초보 사냥터 입장료는 10골드입니다.”

게이트 관리자가 말하자 염훈은 펄쩍 뛰었다.

“아니, 이걸로 돈을 받는다고?”

“하하. 그것도 이번 미션의 일부입니다. 대신 몬스터 처치 시 나오는 부산물과 마정석은 여러분 소유입니다.”

“아, 그렇군. 진짜 말 그대로 사냥터구만.”

염훈은 납득하더니, 은혁 몫 입장료까지 자신이 냈다.

“숙박비는 네가 냈으니까 이건 내가 낸다.”

“나야 좋지.”

게이트 관리자는 5층 왕초보 사냥터로 가는 게이트를 조작해줬고, 두 사람은 들어갔다.

* * *

-왕초보 사냥터

드넓은 푸른 초원.

너무 울창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숲.

그리고 언덕과 토끼굴.

천 명 정도 되는 신규 플레이어와 저레벨 플레이어들.

그것이 왕초보 사냥터의 전부였다.

“잡아!”

“한꺼번에 몰아서 잡으라고 좀!”

플레이어들은 초보자 티를 팍팍 내며 파티 단위 사냥 중이었다.

튜토리얼을 거치면서 기본기는 잡혔다지만, 멋대로 돌아다니는 작은 토끼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콰쾅!

이따금 마법사가 [파이어볼] 주문 등을 터뜨려댔다.

“야! 근거리에서 그렇게 화염구를 터뜨리면 어쩌자는 거야!!”

“주문 쓸 거니까 앞에서 비키라고 했잖아!”

“언제 그랬는데?!”

이런 식으로 같은 파티원끼리 싸움이 나기도 했다.

“멀찍이 가서 사냥하자.”

5층 메인 미션의 핵심은 능숙하게 사냥하는 것.

탑의 시스템이 판정하므로 진지하게 임해야 했다.

“자, 그럼 20분 동안 누가 많이 잡나 해볼까?”

은혁이 운을 띄우자 염훈은 피식 웃었다.

“야, 같은 팀끼리 뭔 경쟁이냐. 목숨이 걸린 미션도 아니고, 파티 플레이를 연습하면 어떨까?”

염훈으로서는 은혁의 전투력을 알고 있었기에, 괜히 20분짜리 승부를 벌이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느긋하게 1시간 들여서, 협력하며 사냥하는 법을 훈련하고 싶었다.

하지만 은혁 쪽에서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염훈 이 녀석도 경쟁 심리가 좀 붙어야 성장이 빠른 녀석이지.’

그래서 슬쩍 도발했다.

“그래? 내 쪽에서 10분 페널티를 가질까 했는데.”

“뭐? 10분?”

“네가 10분 먼저 사냥해도 된다고. 그래도 내가 이길 테니까.”

“뭐, 뭣?!”

그러자 염훈의 마음에 불이 붙었다.

“웃기고 있네! 네가 아무리 직업이 여러 개라고 해도 몸은 하나! 10분씩이나 페널티를 먹으면 당연히 내가 더 많이 사냥하지!!”

“그래? 그럼 그 조건으로 내기할까? 누가 먼저 미션을 클리어하나 가지고.”

“좋아! 그럼 뭘 걸고 할까?”

염훈은 의욕이 충만해졌다.

은혁은 속으로 웃으며 진지하게 내기 조건을 골랐다.

“음. 진 쪽은 상대 소원 하나 들어주기. 동의?”

“동의! 너 10분 동안 꼼짝 말고 있어! 간다!!”

염훈은 은혁의 내기를 받아들여 빠르게 토끼를 처치했다.

퍽!

퍼벅!

염훈이 사냥하는 모습은 신속하면서도 박력이 넘쳤다.

“웃, 저 인간 뭐임?”

“토끼한테 원수졌나? 겁나 거칠게 사냥하는데?”

“갑옷도 무거워 보이는데 꽤 빠르다……!”

염훈이 입고 있는 갑옷은 무거운 갑옷처럼 보이지만, 수호의 천사 지크리엘의 갑옷이었다.

두꺼운 가죽 갑옷보다 가벼우면 가볍지, 더 무겁진 않았다.

누가 봐도 멋진 사냥 장면이었지만.

힐끔.

염훈은 사냥 도중 은혁을 의식했다.

은혁의 표정을 본 염훈은 발끈했다.

‘저, 저 녀석이!’

히죽.

은혁은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염훈은 알 것 같았다.

‘그 정도로는 느려.’

염훈은 은혁이 허수아비를 잡던 장면을 떠올렸다.

‘강은혁 저놈 성격이라면, 숲에 불을 막 질러서 토끼를 잡을지도.’

고민하던 염훈은 좋은 수를 알아냈다.

‘[신성한 날개]!’

[신성한 날개]를 살짝살짝 끊어서 쓰는 기법이었다.

파앗!

급가속 저공비행으로 날아가 토끼를 잡고, 멈추고, 다시 급가속 저공비행을 하고의 반복.

팍!

파바박!

염훈은 토끼들을 학살하며 성기사 숙련도를 높였다.

‘꽤 하네?’

은혁은 성장하는 염훈을 보며 웃었다.

‘일부러 토끼들을 흩어놓고 있군.’

그랬다.

염훈이 [신성한 날개]로 토끼를 하나씩 잡으며, 나머지 토끼들을 도망치거나 숨게 만들었다.

“우왓!”

“이봐요! 토끼를 한 곳에 몰아야지, 그렇게 퍼뜨리면 어쩝니까!”

“거, 매너 좀요!”

다른 플레이어들이 투덜거렸지만, 염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강은혁은 화염 스킬로 토끼를 한 번에 학살하겠지. 그걸 막으려면 토끼를 최대한 넓게, 사방으로 퍼뜨려야 한다!’

즉, 염훈은 [신성한 날개]를 이용해, 자기 사냥을 하면서 동시에 은혁에 대한 방해 공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히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듯한 행동력이라 은혁이 칭찬할 만했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염훈. 머리와 몸을 동시에 써야 직업 숙련도가 빨리 오르는 법.’

은혁은 허허롭게 웃으며 몸을 풀었다.

“자아, 10분 됐으니 시작해 볼까.”

은혁은 바로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에는 토끼굴이 있다.’

그곳에 보스 몬스터가 있었다.

물론, 토끼굴은 무척 깊었고, 보통 방법으로는 유인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트롤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지.’

은혁은 1층에서 얻은 트롤의 다리 한쪽을 꺼냈다.

“[화염 방사] 약하게.”

화륵!

트롤 지방이 자글거리는 트롤 다리를 토끼굴 앞에 내려놓았다.

치이익…….

그러자 인간이 맡아도 왠지 배가 고파지는 냄새가 토끼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드드드……!

이윽고 토끼굴이 흔들렸다.

사냥 중이던 이들도 진동을 느꼈다.

“우왓?!”

“뭐임?!”

콰콰쾅!!

토끼굴이 있던 언덕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옿옿옿옿!”

“고옿옿옿……!”

토끼들의 눈이 갑자기 붉게 변하더니, 폭발한 언덕 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부우우우…….”

언덕 안쪽에서,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 몸을 일으켰다.

‘좀 떨리네.’

지고의 위상들은 성좌 연합, 드래곤 컬트와 탑의 미래를 걸고 삼파전을 벌이는 신급 존재들이다.

그중에서 격이 특히 낮거나, 신성력을 잃고 잠들거나 봉인된 존재가 바로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 [달에 살던 왕토끼]가 깨어났습니다!

훗날 역사학자가 밝혀내는 사실이지만, 왕초보 사냥터는, ‘왕토끼의 초보자 학살 사냥터’의 축약어다.

“히익……?”

“가, 갑자기 뭔…….”

플레이어들이 놀라는 동안, 히든 보스를 깨운 은혁에게는 히든 미션창이 떴다.

<왕초보 사냥터 히든 미션 : 달에 살던 왕토끼 사냥.>

-목표 : 거대한 왕토끼를 사냥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레벨 1 상승.

-실패 시 페널티 : 5층 메인 미션 실패. 6개월간 사냥 금지.

-제한 시간 : 30분.

‘좋았어.’

-히든 미션이 시작됩니다!

-히든 미션 전용 아이템 ‘냉기의 투창’이 제공됩니다!

-히든 미션 전용 버프 [투척술 숙련]이 제공됩니다!

은혁은 히든 보너스를 빠르게 확인했다.

“부우우우!!”

왕토끼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고오오오옿!”

쉽게 사냥 당하던 토끼들도 한곳에 모여 울부짖었다.

“히익!”

“무, 무서운 건지 귀여운 건지……!”

왕토끼는 백곰의 1.5배쯤 되는 덩치에, 심술궂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왠지 귀엽게도 보였다.

그리고 앙증맞은 토끼들이 우르르 모여서 넙죽넙죽 절을 하는 모습도, 기괴하다면 기괴하고 귀엽다면 귀엽게 보였다.

쩌억…….

왕토끼는 은혁이 둔 트롤의 다리를 한입에 씹어 삼켰다.

콰직!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기름진 트롤 다리를 맛보자, 왕토끼의 표정이 행복한 듯 헤실거렸다.

하지만 하나로는 부족했다.

두리번두리번.

“부루루……!”

왕토끼는 신규 플레이어들을 노려봤다.

“히익.”

막상 빨간 눈과 마주치니 겁이 났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므로 정신 오염을 일으키진 않지만, 덩치와 붉은 눈은 위압적이었다.

휙!

은혁이 돌 하나를 던져서 주의를 끌었다.

툭!

돌은 왕토끼의 머리에 명중했다.

“여기다, 돼지 토끼.”

은혁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부오오오!”

왕토끼가 은혁에게 달려드는 순간.

‘[그림자 도약].’

파앗!

왕토끼의 후방 그림자로 이동한 은혁은 냅다 냉기의 투창을 던졌다.

쉬익!

푸욱!!

창은 왕토끼의 목덜미에 꽂혔다.

“부웃……!!”

히든 미션 버프의 힘이 실린 일격이었기에 왕토끼는 파르르 떨더니.

털썩!!

그렇게 일격에 죽었다.

‘[그림자 도약]이 사기네.’

냅다 등 뒤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다는 점도 그랬지만, 그 상태에서 뒤통수치기가 가능해서 높은 확률로 치명타가 뜬다는 점도 사기적이었다.

거기에 일시적으로 [투척술 숙련] 버프가 걸린 상태여서, 일격으로 끝낼 수 있었다.

-도적 숙련도가 6% 증가했습니다!

-현재 도적 숙련도 : 22%.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4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10.

-도적 스킬 [암습]을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한 번에 4만큼 오르네?’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라곤 해도 매우 강력한 몬스터였기에, 처치한 순간 레벨이 팍 올랐다.

도적 숙련도 또한 빠르게 오르며 추가 스킬을 얻었다.

‘맙소사. [암습]까지 얻어 버렸나.’

은혁은 부르르 떨었다.

회귀 전 은혁은, 도적을 볼 때마다 가장 부러워했다.

[자물쇠 따기]나 [소매치기]가 아니라 [암습] 스킬 때문이었다.

전사도 적의 뒤를 치거나 기습에 성공하면 치명타가 뜨지만, 아예 스킬 형태로 [암습]이 있는 직업은 도적 계열뿐이었다.

‘회귀하길 잘했다.’

만족한 은혁에게, 클리어 메시지와 보상 메시지가 주르륵 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