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17화 (17/434)

17화 : 왕초보 사냥터 (2)

-축하드립니다! 왕초보 사냥터 히든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11.

-축하드립니다! 왕초보 사냥터 역대 클리어 타임 1위를 달성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12.

“훗.”

히든 미션 클리어 보상으로 레벨이 1, 그리고 클리어 타임 1위 보상으로 추가로 레벨이 1 올랐다.

은혁은 히든 버프와 히든 아이템이 소멸하는 것을 느끼며 웃었다.

플레이어들은 기막혀했다.

“혼자, 그것도 한 방에 죽였다고?”

“뭐야, 저 동양인은……!”

“우리 구역 출신은 아닌데, 일본인?”

“말하는 걸 보면 한국인 같은데?”

튜토리얼 구역이 26개나 되다 보니, 은혁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야, 강은혁…….”

염훈이 다가왔다.

묘하게 화를 내고 싶은데 어떤 부분에 대고 화를 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음, 우연히 토끼굴을 발견하고 우연히 트롤 다리로 유인했더니, 글쎄, 왕토끼가 등장하는 히든 미션이 발생해서 운 좋게 클리어해 버렸군.”

은혁은 국어책 읽는 말투로 자기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다.

“아니, 그걸로는 설명이 안 돼.”

염훈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따지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네가 감이 좋은가 보다 했는데, 토끼굴 속에 왕토끼가 있다는 거, 그리고 그 왕토끼를 처치하면 미션 클리어라는 건 단순히 감이 좋아서 안다고 할 수 없어!”

“흠흠, 감이 엄청 좋으면 가능…….”

“웃기지 마! 유인할 때 쓴 트롤 다리는 1층에서 미리 주운 거잖아! 아무리 감이 좋아도 그게 말이 되냐!”

그동안 은혁은 100층탑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은 그러려니 했지만, 이번에는 너무 딱딱 맞아 떨어지게 행동했다.

염훈은 이번에야말로 추궁하기로 했고, 은혁은 태연했다.

“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소원 발동.”

“에?”

“내기에서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그거 쓰는 거다.”

“아, 아니, 내 말 아직 안 끝났…….”

“내 소원이 먼저야. 왜냐면 내기가 먼저 성립했으니까. 인정?”

“큭, 인정. 소원 뭐야? 빨리 말해.”

염훈은 팔짱을 끼고, ‘뭔 소원인지는 모르겠지만, 뒤이어 이어질 나의 추궁은 매서울 것이다’라는 티를 팍팍 냈다.

은혁은 ‘웃기네’ 하는 속마음을 숨기고 엄숙하게 소원을 읊었다.

“내 말과 행동에 대해 일일이 문제 삼지 말고, 단단한 우정과 흔들림 없는 신뢰를 줄 것.”

“엥?”

“그게 내 소원이다.”

“그, 그게 뭔…….”

“합리적인 소원 아니냐? 염훈. 나는 탑의 정상을 오를 거야.”

“음, 그랬지. 같이 오르기로…….”

“그러려면 내 감뿐만 아니라 믿음직한 동료가 필요해.”

“뭐, 네가 날 그 정도로 확실한 동료로 믿어주면 고맙긴 한데…….”

“문제는, 너도 날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거다.”

“……!”

“염훈. 내가 탑 공략을 하는 동안, 일반 상식을 무시하거나 고정 관념을 파괴하는 행동을 꽤 많이 할 거다. 그런데 그때마다 네가 일일이 의문을 품고 항의를 하거나 따지면, 나는 제대로 내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어.”

“음…….”

“내 절대적인 지지자가 되어야 할 동료가, 내 행동에 자꾸 의문을 던지고 딴죽 걸면 함께 탑을 오를 수가 없단 말이지. 이해가 가?”

“가.”

“그러니 그게 내 소원이야. 내게 절대적인 신뢰와 우정을 줘.”

“이, 이런 식으로 원천봉쇄를 하다니.”

그랬다.

‘의심스러워도 날 믿고 따라와 줘~ 같은 소리 따위는 안 한다. 의심조차 하지 말고 날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라, 염훈. 그게 내 소원이다.’

이게 강은혁 스타일이었다.

“어휴, 진짜 어쩌다 너 같은 놈이랑 처음 만나서……!”

염훈은 은혁이 새삼 기이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부하가 되어 충성을 맹세하라고 강압적으로 나왔다면 어떻게 말다툼이건 협상이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우정의 이름으로 절대적으로 믿어달라고, 그게 소원이라고 말하니 맞받아치기가 참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이놈한테는 화를 크게 낼 수가 없지?’

바깥에 있었을 때의 염훈도 너그러운 성격은 아니었다.

얼굴도 잘생기고, 근육질에, 대학교에서는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뽑힌 적도 있었다.

평균에 비하면 훨씬 잘났다는 것을 알았기에, 까칠한 이미지를 갖고 학교를 다녔다.

그래도 친구나 여사친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놈은 친숙하면서도 뭔가 달라.’

염훈은 이런 상상까지 해버렸다.

‘이 새끼랑 나랑 전생에 무슨 연인 사이였나?’

별별 상상을 다 하던 염훈은 결국 은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기는 내기니까. 네 소원 들어주마, 강은혁.”

염훈은 웃으면서 말했고, 은혁은 조금 복잡한 웃음을 지었다.

“전생이라니. 그런 걸 믿냐?”

은혁은 그 말을 남기고 왕토끼의 사체로 다가갔다.

그리고 통째로 인벤토리창에 넣고 휘청거렸다.

‘인벤토리창도 무한은 아니니까.’

엄밀히 말해 공간 자체는 무한에 가깝지만, 질량에 따라 몸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대형 몬스터 사냥에 나설 때는 짐꾼을 따로 두는 길드도 많았다.

“도축업자에게 가서 골드로 바꾸자.”

* * *

도축 공장 지구.

도시 외곽 지역에 있는 곳으로, 중소 규모의 도축 공장이 몰려 있다.

몬스터 사체 해체를 전문으로 하고, 몬스터 부산물 판매 및 마정석 적출 및 판매까지 맡아서 한다.

일반적으로 플레이어는 ‘통째로 팔기’를 한다.

몬스터 부산물이니 껍질이니 일일이 계산하기 귀찮으니, 그냥 몬스터 사체를 일정 값에 통째로 팔고 돈을 버는 식이다.

“계십니까?”

은혁은 염훈을 데리고 가장 큰 도축 공장으로 갔다.

‘빅 워크.’

간판도 큼직했다.

공장의 대형 도축 기계 가동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계십니까!!”

은혁이 한 번 더 소리치자, 작업복 차림의 여성 NPC가 나왔다.

“네, 무슨 일이시죠?”

무척 지쳐 보이는 이 여자의 명찰에는 ‘낸시’라고 적혀 있었다.

‘이 시점에는 공장 경영이 힘든가 보네.’

훗날 드래곤 레이드가 펼쳐질 때, 드래곤 도축으로 엄청 사람들이 몰리는 때가 있다.

그때, 낸시는 과감하게 공장을 증축, 일거리를 잔뜩 받아서 ‘빅 워크’를 제일의 도축 공장으로 키운다.

은혁은 낸시와 미리 친해지기로 했다.

“뭘 도와드릴까요?”

“토끼 팔러 왔습니다.”

“음? 여긴 거대 몬스터 전문인데요.”

“왕토끼입니다.”

은혁은 인벤토리창에서 왕토끼의 사체를 낑낑대며 꺼냈다.

무겁고 큰 몬스터의 사체를 인벤토리창에 넣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데, 다시 꺼내는 건 팔다리가 부들거릴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꺅!”

낸시가 놀라서 소리쳤다.

“뭐, 뭐죠, 이 흉악한 생물은?”

“귀엽다는 사람도 있는데.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부산물이 얼마나 나옵니까?”

“음, 잠시만요.”

낸시는 다른 직원을 부르고, 마법으로 통째로 들어서 검사 장비에 넣었다.

그리고 모니터로 분석 결과를 확인했다.

“굉장해……! ‘달에 살던 왕토끼’라니.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잖아요? 이걸 잡았다고요? 어디서 잡은 건가요?”

“5층이죠.”

“왕초보 사냥터? 거기 그냥 토끼랑 다람쥐 나오는 곳 아니었어요?”

“훗. 어쩌다 보니 히든 미션으로 떠서요. 의외로 쉽게 잡았습니다.”

“그, 그러셨군요.”

낸시는 간단한 스킬로 왕토끼에 대한 2차 성분 분석을 마치고 말했다.

“통째로 팔고 싶은데, 가격은?”

“통째로 판매라. 그럼…….”

낸시는 눈을 요리조리 굴렸다.

“2,100 골드에 통째로 매입하고 싶습니다!”

1 골드가 5만 원이니, 1억 원 좀 넘는 값으로 매입하고 싶다는 소리다.

“풉, 농담이겠죠? 우리가 초짜라고 너무 가격을 후려치시네.”

“으으, 2,500 골드!”

“자꾸 그러면 딴 데로 갑니다.”

“3,000 골드!”

“거, 진짜!”

은혁은 화를 냈다.

“왕초보 사냥터의 유일한 히든 보스인 데다가, 몰락한 지고의 위상급이면 네임드 마정석이 있을 게 빤한데 꼴랑 3,000 골드? 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은혁이 버럭 소리치자 낸시는 찔끔했다.

‘아씨, 잘못 걸렸다’ 하는 기색이 태도에 역력했다.

“그, 그래도 대형 몬스터 도축에 드는 전기값, 인건비, 저장 공간 같은 것까지 감안하면…….”

“그거야 도축 공장 책임이죠. 이건 무려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란 말입니다. 이름 없는 보스 몬스터가 아니고요. 연구 길드에 팔기만 해도 훨씬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태가 온전한 몰락한 지고의 위상 사체가 있을 리가 없죠.”

그러자 염훈이 끼어들었다.

“듣고 보니 그러네. 은혁아, 그냥 연구 길드인지 뭔지에 팔지 그러냐? 돈도 더 벌고, 그 길드 연구에 도움도 되면 더 좋은 거 아닌가?”

“그럴까? 여기 사장님이 자꾸 우릴 무시하시네. 그럼 이 거래는 없던 걸로 하고…….”

“3,325 골드! 그 이상은 저희 자금 사정으로는 안 돼요!”

그러자 곁에 있던 직원들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낸시 공장장님!”

“그건 저희 보유 자금보다 큰돈 아닙니까!”

그러자 낸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치. 자본금 플러스 너희들 다음 달 월급이랑 보너스까지 전부 합친 돈이니.”

“엥?!”

“그런 게 어딨어요!”

공장장과 직원들이 옥신각신했고, 은혁은 헛기침을 했다.

“2,000 골드.”

“에……?”

“좀 깎아드리죠. 2,000 골드만 주셔도 됩니다.”

“정말요?!”

낸시가 토끼처럼 깡총 뛰었다.

값을 좀 깎아주는 게 아니라 확 깎아주는 것이었으므로.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확 깎아드리는 대신, 왕토끼의 발과 네임드 마정석은 우리 몫입니다.”

“우음…….”

낸시가 눈을 요리조리 굴렸다.

네임드 마정석은 무척 귀한 것이지만, 그만큼 값을 낮췄으니 손해는 없다.

게다가 몰락한 지고의 위상은 그 사체와 내장 기관 등이 매우 귀했다.

분할 가공해서, 혹은 그대로 연구 길드나 그 하청 길드에 되팔기만 해도 원금 회수는 순식간이다.

‘문제는 왕토끼의 발을 달라는 건데.’

낸시는 왕토끼의 발을 손으로 만져봤다.

푹신푹신.

‘응? 딱히 단단하거나 하진 않네?’

보아하니 무기로 가공하려는 목적으로 발을 달라는 것 같진 않았다.

“거, 자꾸 만지작거리지 마시고.”

은혁이 틱틱거렸다.

낸시는 결심했다.

“좋아요.”

“거래 성립.”

낸시와 부하 직원들이 [도축] 스킬로 빠르고 깔끔하게 왕토끼의 마정석만 우선 적출해 냈다.

“토끼 발은 해체하는 데 조금 걸릴 것 같아요.”

“좋습니다. 내일까진 됩니까?”

“그 정도까진 아니고요. 오늘 오후? 아니면 저녁 늦게?”

“흠, 그렇군요. 오늘 늦게나 내일 오겠습니다.”

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염훈에게 1,000 골드 분량의 금화를 건넸다.

“자.”

“어? 절반이나 주는 거야?”

“아. 늘 절반씩 준다는 건 아니다. 오늘은 장비 수리비에, 날 믿어주기로 한 게 고마워서 특별히 넉넉히 준 거야.”

“그래도 많네. 고맙다.”

“그럼 근처에 장비 쇼핑하러 가자.”

은혁은 방금 얻은 왕토끼의 마정석을 쓸 예정이었다.

* * *

은혁은 정의 길드 뒤편의 상점가로 갔다.

터텅! 터텅!

위이잉……!

무기와 방어구 가공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정의 길드 뒤편 상점가는, 대장간을 겸하는 무기 및 방어구 상점이 모여 있는 상점가였다.

일부는 정의 길드와 전속 계약을 맺은 A급 상점이었지만, 아닌 곳도 많았다.

“좀 비싸더라도 큰 상점이 좋겠지?”

염훈이 말했지만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좀 저평가된 상점으로 가고 싶은데.”

“오호라. 잠재력이 크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런 상점?”

“그치.”

“그런 데가 실제로 있을까?”

“저기 어때?”

은혁이 한 허름한 가게를 가리켰다.

‘스팀펑크 제인.’

간판도 특이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