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제인의 무기 상점 (1)
가게는 고물상에서 떼어 온 듯한 자재들로 만들어진 2층 가게였다.
각종 마나 증기를 뿜어내는 파이프가 여러 개 달려 있고, 부속품들이 덜그럭거렸다.
가게 앞에서는 두 사람이 싸우고 있었다.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플레이어 한 명과 가게 주인인 제인이었다.
플레이어는 환불 요청을, 짧은 댕기 머리를 한 제인은 거절을 하고 있었다.
“빨리 무기 환불해 줘요!”
“못 해줘!”
“왜요!”
“미완성품이라고 설명했잖아! 그래도 좋으니 사겠다고 했으면서!”
“이봐요! 미완성품에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드잡이하는 목소리는 꽤 커졌고, 인근 상인들은 피식피식 웃었다.
“흐흐. 제인네 가게에서 또 싸움 났군.”
“저 가게에서 무기 사는 건 복불복이지.”
“좋게 말해서 실험적인 무기지, 원.”
“무기의 기본은 실용성과 안정성인데 말이야. 좋았다 나빴다 하는 무기를 누가 쓰겠냐고. 큭큭.”
인근 상인들이 비웃자, 제인은 그 소리를 캐치해냈다.
“야, 니들! 니네는 나보다 얼마나 잘났다고 뒷담화야?! 엉?!”
“어휴, 귀는 밝아요.”
“자자, 물러납시다.”
인근 무기 상인들은 낄낄거리며 물러났다.
환불을 요청하러 온 플레이어는 더 씩씩거렸다.
“뭐야, 여기. 특이해 보여서 여기서 무기 샀더니만, 아예 인근 상인들도 무시하는 그런 데였어?”
“무시? 무시라고 했어?! 야! 남들이 내 수준을 못 쫓아오는 거야! 내가 시대를 너무 앞서나가서 그런 거라고!!”
그녀의 말이 맞다.
너무 시대를 앞서가서 탈이다.
무기에 마나 엔진을 장착해서 강화시킨다는 발상은 3, 4년이 지나야 크게 유행한다.
연구 길드조차도 현시점에서는 ‘마나 엔진 소형화에 성공하려면 앞으로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라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
그럼에도 마나 엔진 무기의 가능성을 미리 앞서 본 제인은 선구자적이긴 하다.
‘근데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
“아, 몰라! 당장 환불해줘요! 안 해주면 바로 정의 길드에 가서 신고해 버릴……!”
“크흠!”
은혁이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소리를 지르던 플레이어는 주춤했다.
“대충 사정은 들었는데요. 뭐가 그리 문제인가요?”
“이, 이 칼 좀 보세요!”
환불을 요청하는 플레이어는 자기편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망가진 칼을 들어 보였다.
초기형 마나 엔진과 증기 기관이 설치된 체인 소드였는데, 칼날이 박살 나 있었다.
“실전에서 겨우 몇 번 휘두르니까, 갑자기 엔진이 폭주해서 칼날이 터져 버렸다니까요? 이걸 누가 삽니까?”
플레이어가 말하자 제인은 조금 더 주춤거렸다.
“그, 그건, 그, 위력 조절이 안 돼서.”
“그러니까 불량품 아닙니까!”
“위력이 약하면 불량품이지만, 위력은 강했잖아! 불량품이 아니라 미완성품이고, 미완성품이라고는 팔기 전에 미리 설명했어!!”
“칼날이 자기 자신을 갈아 버리다가 터질 정도면 그게 불량이죠! 어휴, 답답!!”
“자자, 두 분 다 진정하시고.”
은혁이 금화를 몇 개 꺼냈다.
“저 제인이란 분은 자존심 때문에 인정을 못 하는 상황이고, 당신은 환불을 바라는 거죠? 제가 금화 조금 드릴 테니, 이걸로 참으시죠.”
“뭐, 정 그러시다면야.”
화를 내던 플레이어는 얼른 금화 몇 개를 챙겼다.
전액 환불을 받는 건 어차피 불가능한 상황이니, 금화 몇 개라도 받고 얼른 자리를 뜨기로 한 것이다.
“여기 이 젊은 사람 덕분에 참고 갑니다. 에잉, 성질나.”
플레이어는 마지막까지 한마디를 하고 떠났다.
제인은 입을 꾹 다물고 콧김만 몇 번 내뿜었다.
그리고 은혁을 돌아봤는데, 표정이 어째 좀 슬퍼 보였다.
“……왜 그랬어?”
“네?”
“왜 자기 일도 아닌데 돈을 썼냐고.”
“바쁘니까.”
은혁은 그들의 싸움을 빨리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보다 물건 좀 사러 왔는데요.”
“돌아가.”
“네?”
“나…… 연구해야 해서 바빠.”
제인은 시무룩하게 몸을 돌렸다.
‘실험에 미친 대장장이 NPC 제인.’
묘하게 운명론적인 직업 수식어였다.
사실, NPC가 플레이어처럼 직업에 수식어를 지닌 것은 드문 경우고, 그것만 해도 대단했다.
그녀는 한때 연구 길드에 NPC로서 임시 가입했었으나, 자유로운 연구와 무기 제작을 위해 임시 기간이 끝난 날 탈퇴했다.
그리고 직접 고물을 모아 실험 정신으로 무기 및 방어구 상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 무기를 연구할 돈은커녕, 먹고 살기도 힘들어.’
그래서 제인은 우울하고 화가 났다.
모처럼 자기 이름의 상점을 열었는데도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환불을 못 해준다고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는 자신의 모습이 서글펐다.
“돈이라면 있습니다.”
은혁은 골드를 한 움큼 꺼냈다.
제인의 눈이 반짝였다.
“연구비가 모자라서 실험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그, 그건 어떻게…….”
“어떻게고 자시고 가게 모습만 봐도 뭐…….”
“쳇. 일단 들어와.”
가게 안쪽은 겉보기보다 넓었다.
파는 물건 중에는 이런 게 많았다.
‘마나 엔진 장착형 체인 소드. 단, 위력이 너무 강해서 내구도는 유리처럼 약함.’
‘초고압 액체 발사형 철판 절단기. 단, 액체 분사구가 없어서 발사 불가.’
‘초강력 터보 해머. 단, 손잡이가 충격을 견디지 못해서 부러짐.’
‘초강력 저격용 십자궁. 단, 이 십자궁에 적합한 볼트가 없어서 발사 불가.’
‘마력 2배의 스태프. 단, 생명체는 이 아이템을 활용 불가.’
“뭐, 뭐야, 이게. 죄다 좀 맛이 간 무기들인데?”
염훈이 솔직하게 말했다.
“후우, 그 말이 맞아.”
제인은 어느새 가게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이 실험 저 실험으로 신형 무기만 만들었지, 실용성은 거의 없어.”
제인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연구비 빚도 갚아야 해서, 미완성품인 줄 알면서도 팔아 버리고…… 나도 이런 내가 싫어. 흑흑.”
“아니, 왜 갑자기 우는데!”
염훈이 당황해서 허우적거렸다.
제인은, 가게 밖에서는 꿇릴 거 없는 당찬 무기상인 척했지만, 사실은 가게 안에 혼자 틀어박혀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하는 연구자였던 것이다.
“흑흑. 난 쓰레기야…….”
“거, 그만 울어. 자아, 착하지?”
우는 제인과, 말리는 염훈.
그동안 은혁은 혼자 무기를 구경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회귀 초반 시점인데도 이렇게나 발전했었나.’
죄다 맛이 간 무기들이지만, 결함만 해결하면 전술의 판도를 바꿀 만한 첨단 병기들이었다.
‘다행히 이 시점의 연구 길드는 이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
만약 연구 길드의 조사관이 여기 안에 들어와서 이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연구 길드는 억만금을 내서라도 제인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리라.
“사겠습니다.”
은혁이 가게 중앙에 있는 무기 앞에서 말했다.
“어? 그건…….”
“이게 그나마 완성품에 가장 가까운 것 같군요.”
은혁이 가리킨 건 ‘미완성 헤비 체인 소드’였다.
전기톱과 양손검을 합친 듯한 디자인이었다.
마력을 주입하면, 톱날을 연상시키는 대형 칼날이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막강한 무기다.
칼날, 손잡이, 엔진 등 모든 부분이 크고 넉넉한 점도 은혁의 마음에 들었다.
제인은 눈물을 닦고 은혁 곁으로 왔다.
“우응……. 아까 가게 밖에서 싸운 걸 다 들었겠지만, 안정성이 많이 부족해.”
“이건 그것보다 튼튼해 보이는데요?”
“뭐, 그렇긴 하지.”
“이거, 재질이 어떻게 됩니까?”
“파이늄 주철 합금.”
“과연.”
은혁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감탄했다.
파이늄은 마법 금속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마나가 전혀 함유되지 않아서 실험용으로 적합한 금속이다.
‘그래서 더 좋지.’
은혁은 회귀 전, 자신의 후반부 주력 무기의 프레임이 되었던 무기를 쓰다듬으며 흐뭇해했다.
“그게 마음에 들어? 미안하지만 이건 대형화가 돼서 위력도 오히려 작은 것보다 약해. 크기가 커진 탓에 안정성과 출력이 낮아졌거든.”
“간단하군요. 까짓거 안정성과 출력을 높이면 되죠.”
“어떻게?”
“개조해서.”
“개조……?
“가령.”
은혁은 가게 곳곳에 있는 미완성품, 부품, 정비품을 멋대로 가져왔다.
‘내 기억대로라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어.’
미완성품, 결함품들을 조합하는 것으로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회귀 전, 제인에게서 직접 듣고, 자랑하듯이 재조립 과정을 본 적도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 후반부 주력 무기였으니까. 솔직히 지금의 제인보다 내가 이 무기는 더 잘 알 거다.’
덜그럭, 철컥.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마나 증기 파이프를 덕지덕지 바깥으로 뺀 게 문제입니다.”
끼릭, 끼릭, 딸그랑.
은혁은 마력 2배의 스태프에 멋대로 손을 뻗었다.
“기존의 미완성품인 마력 2배의 스태프를 코어 파이프로 삼겠습니다.”
철그럭.
“게다가 톱날형 칼날이 회전하는데, 연결부가 약해요. 이것도 교체합니다.”
은혁은 액체 발사형 철판 발사기의 동력축을 빼내더니, 체인 소드의 것과 교환했다.
그러자 안정성이 확 좋아졌다.
“게다가 출력을 높이는 건 간단합니다. 마정석을 좋은 걸 쓰면 됩니다.”
“순도 높은 마정석을 그때그때 교체하면 비용이 너무…….”
“그러니까 반영구적인 네임드 마정석을 써야죠.”
은혁은 방금 도축장에서 얻은 왕토끼의 마정석을 꺼냈다.
“얍.”
딸그랑.
철컥!
마나 엔진 속에 왕토끼의 마정석이 끼워진 순간.
키이이잉……!
마나 엔진이 최적 효율로 활성화됐다.
안정성, 출력 모두 비약적으로 상승해서, 누구도 미완성품이라 깔볼 수 없었다.
“세상에, 저렇게 간단히……!”
제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최초로 마나 엔진 무기를 완성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너스로 500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너스로 레벨이 상승합니다!
-현재 레벨 : 13.
-전사 패시브 스킬 [마나 엔진 무기 숙련]을 습득하셨습니다!
“좋았어!”
대부분은 제인이 만들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죄다 미완성이었다.
그래서 미래 지식을 지닌 은혁이 완성하자, 그 업적을 시스템이 인정해 준 것이다.
그 순간.
또다시 시간이 멈췄다.
‘어라? 또?’
새로운 직업을 얻을 때처럼, 12장의 직업 카드가 허공에 맴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우우웅……!
은혁이 방금 완성한 무기의 내부에서 새로운 카드 한 장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허공에 뜬 12장의 카드 한쪽 구석에 오도카니 섰다.
‘아니, 이게 뭐야.’
12장의 직업 카드만 해도 많은데, 갑자기 한 장이 추가됐다.
총 13장.
‘이거, 왠지 새로 추가된 카드를 꼭 뽑아야 할 거 같은데.’
그래서 은혁은 그 카드를 골랐다.
-축하드립니다! NPC 전용 무등급 직업 ‘무기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대장장이’를 습득하셨습니다!
-대장장이 전용 아이템 ‘수리 장비’를 획득하셨습니다!
-고유 스킬 [무기 업그레이드]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긴급 수리]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소도구 제작]을 습득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 [효율적 장비 관리]를 습득하셨습니다!
‘NPC 전용 무등급 직업? 그걸 얻었다고? 내가?!’
플레이어의 초기 직업 12개는 무조건 모험형 직업이어야 했다.
전사, 마법사, 도적 등등 100층탑 공략이 직접적으로 가능한 직업이어야 한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연금술사’조차도 마법사로 시작해서 승급해야 도달할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은혁이 시대를 초월한 무기를 완성해서일까?
대장장이 제인과의 인연이 성립되어서일까?
거기에 ‘모든 직업의 가능성’의 힘이 더해지니, NPC들에게나 주어지는 대장장이 직업이 대뜸 추가된 것이다.
‘NPC 계열만 얻는 직업까지 내게 생긴다고?’
은혁은 어이없어하면서도 만족스러웠다.
직업 선택을 마친 순간, 다시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렀다.
“굉장해……!”
제인이 비틀비틀 은혁 곁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