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고블린 습격, 그리고 격파
플레이어들은 긴장 속에서 잡담을 주고받았다.
“음, 막상 서니까 담당할 구역이 꽤 넓네요?”
“그러게요.”
탁 트인 농경지는 매우 넓었다.
“아씨, 이번 미션 꼭 성공해야 하는데.”
“다 그렇죠, 뭐.”
“그게 아니라, 저한테는 이게 유니 길드 가입 시험이거든요. 실패하면 길드 가입 물 건너가는데.”
“어? 너두? 야! 나두!”
플레이어 중 몇몇은 길드 가입을 꿈꾸는 신규 플레이어들이었다.
중소 규모의 길드는 테스트 삼아 6층 공략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6층 미션에서 탈락하면 길드 면접도 보기 힘들 터였다.
“거기, 그쪽 두 분은?”
“원래부터 친구셨던가요?”
다른 플레이어들이 조용히 경계 중인 염훈과 은혁에게 말을 걸어왔다.
“쉿.”
은혁은 끝 경계면을 노려보았다.
“우리 기준에서 2시 방향. 나무가 흔들립니다.”
고블린들은 영악하게도 길리 슈트 비스무리한 것을 입고 있었다.
“어, 진짜다.”
“궁술사 있으면 활 좀 쏴 봐요.”
“저기까지 닿으려나…….”
궁술사 둘이 활을 쏘았다.
슈슉!
하지만.
터텅!
튕겨 나갔다.
“헐! 뭐임?”
“투명한 경계면에 튕겨 나갔네요.”
“용량 딸리는 옛날 오픈 월드 게임 같구만. 무한히 펼쳐진 땅 같아도 막힌 건가.”
스테이지의 경계면이었다.
플레이어들도 지역이 무한하지 않고 투명한 경계면이 있다는 점, 그리고 고블린들은 그 지역 바깥에서부터 안으로 습격해 온다는 점을 깨달았다.
“어? 이거 우리 엄청 불리한 거 아닌가요?”
“그러게요. 놈들은 경계면 바깥을 들락거릴 수 있고 우리는 못 하는 거면.”
그제야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약한 몬스터인 고블린이 어떻게 식량을 훔쳐 가는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캬캬캭! 바보 놈들!”
“우리, 식량 가져갈 거다! 방해 마라!”
“인간들! 우리 못 막는다!”
그랬다.
고블린과 플레이어 간 전면전이면, 스킬과 장비가 우월한 플레이어가 압승이다.
하지만 6층의 시나리오는 농작물 서리꾼과 그에 대한 방어전이다.
열 장정이 도둑 하나 못 지킨다는 속담이 있듯이, 예로부터 조직적인 도둑들은 때려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고블린들은 타고난 도적이며 습격자였다.
“가자!”
“캬아아아!!”
고블린들이 2시 방향을 통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막아!”
“가즈아!”
그러자 2시 방향으로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하지만.
“캬캬캬! 진짜는 이쪽이다!”
고블린 습격 대장이 10시 방향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라! 보리밭으로 돌격!”
“캬캬캬캭!”
그랬다.
2시 방향의 고블린들은 대부분이 나무로 만든 가짜였다.
길리 슈트처럼 보인 건 나무로 엮어서 만든 가짜 미끼였다.
소수의 고블린들이 양손에 미끼를 들고 2시 방향을 노린 순간, 실제 고블린들은 10시 방향에서 고블린 약탈 대장과 함께 달려들었다.
“아, 안 돼!”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그림자 도약].”
파앗!
은혁은 고블린 무리 한가운데로 도약했다.
“케켁?!”
“이놈 뭐냣!”
은혁은 히죽 웃었다.
“뭐긴 뭐야, 너희 다 죽이는 놈이지.”
화륵!
은혁의 양손에 화염이 피어올랐다.
“[화염 방사]. 양손 발동!”
화르르르륵!!
순식간에 고블린들이 타죽었다.
“캬악! 놈을 죽여라!!”
고블린 습격 대장이 외쳤다.
고블린들은 낫과 단검 따위를 들고 은혁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신성한 날개] 최고 속력으로! 거기다가 [2초 무적] 연계!”
-히든 이펙트 발동!
염훈의 고유 스킬과 갑옷에 담긴 아티팩트 스킬이 융합, 퓨전 스킬이 발동됐다.
“[무적 돌진]!!”
무적의 힘을 몸에 두른 성기사가, 자기 몸을 대포환 삼아 날아갔다.
“케켁?!”
콰드드득!!
염훈의 몸이 낫을 든 고블린들을 분쇄했다.
그리고.
콰쾅!!
인근의 밭고랑에 처박힌 뒤 [2초 무적] 시간이 끝났다.
하지만 염훈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휘유, 내가 한 짓이지만 대단한데?”
어차피 2초 동안은 다치지 않는 몸이니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한 것인데, 히든 이펙트 판정이 뜨면서 엄청난 위력의 퓨전 스킬을 써 버렸다.
대신에 밭고랑에 박혀서 몸을 빼내느라 낑낑거려야 했지만.
“제법!”
은혁은 칭찬한 뒤, 고블린 습격 대장의 뒤를 쫓았다.
고블린 습격 대장은 부하들이 염훈에게 죽는 걸 보자마자 바로 튀기 시작한 것이다.
“도망 속도는 내가 더 빠르다 인간!”
실제로 고블린 습격 대장은 빨랐다.
부하들이 죽건 말건, 농작물을 움켜쥔 채 뛰었다.
부하가 다 죽어도 자신만 살아남으면 플레이어들은 전부 미션 실패였다.
“이런! 막아!”
“못 도망간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엉거주춤 포위망을 구성했지만.
타탓!
퍼버벅!
고블린 습격 대장은 펄쩍 뛰더니 플레이어의 머리와 어깨를 밟고 더 빨리 뛰었다.
“아코!”
“에구구!”
가만히 있느니만 못했다.
밟히고 나동그라지면서 오히려 은혁이 달리는 걸 막아선 탓이다.
“쳇.”
멀리 돌아서 가다간 고블린 습격 대장을 놓치고 말 터였다.
“죄송!”
퍼버벅!
은혁은 쓰러진 플레이어를 가차 없이 밟고 지나갔다.
“악!”
“너무해요!”
사실 [도약]을 쓰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뛰어넘는 것도 가능하지만, 돕는답시고 나섰다가 도리어 방해가 되는 플레이어는 일단 밟고 지나가는 게 국룰…… 이라는 것이 은혁의 가치관이었다.
“캬캬캭! 거의 다 왔다.”
경계면까지 10미터도 남지 않았다.
“일단 오늘 도망치면, 내일부터는 더 집요하게 훔치러 올 거다! 전부 네 탓이다, 인간!”
고블린 습격 대장은 악랄한 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파이어볼]!”
화륵!
은혁의 손에서 나온 화염구가 고블린 무리 대장의 등으로 날아갔지만.
탓!
고블린 습격 대장은 아슬아슬하게 경계면 밖으로 도망쳤다.
콰쾅!
폭발이 경계면에 충돌해서 터졌다.
무형의 충격이 고블린 습격 대장의 등을 밀치긴 했지만, 멀쩡했다.
이대로 고블린 습격 대장이 시야 밖으로 도망치면, 은혁은 미션에 실패하게 된다.
“캬캬캬! 인간, 약 올라서 어쩌냐? 난 살아 버렸군!”
고블린 습격 대장이 경계면 바로 뒤에서 알짱거리며 춤을 췄다.
“그런가. 좋은 죽음이군.”
“뭐라고 했냐, 인간?”
“춤추고 비웃으며 죽는다면 그것도 좋은 죽음이겠지. 잘 가라.”
푸확!!
고블린 습격 대장의 등에, 은혁의 장검이 꽂혀 있었다.
“컥, 시발, 어떻게……?”
은혁은 자신의 그림자에 한쪽 무릎을 꿇고, 검을 꽂아 넣은 자세였다.
“[그림자 도약]으로 장검의 칼날만 전송.”
그랬다.
은혁은 자신의 그림자에 장검을 꽂고 칼날만 [그림자 도약]을 시켜서, 칼날이 고블린 습격 대장의 그림자를 통해 튀어나오게 했다.
그리고.
-지역을 이탈할 수 없습니다!
-지역을 이탈한 일반 아이템은 파괴됩니다!
파칵!
“큭!”
장검의 칼날이 파괴됐고, 쥐고 있던 은혁의 손도 얼얼해졌다.
‘장검으로 시험하길 잘했다.’
어차피 은혁에게는 헤비 체인 소드가 있으므로 장검은 잃어도 상관없었다.
털썩!
고블린 습격 대장은 쓰러져 죽었다.
“미션 클리어.”
-도적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도적 숙련도 : 24%.
-축하드립니다! 6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약간의 곡물 식량을 획득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세 번째로 고블린 습격 대장을 처치하는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고블린 사냥꾼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세 번째라.’
내심 처음이 아닐까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은혁은 부러진 장검을 내팽개치고 염훈 곁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그런 은혁을 보며 감탄했다.
“와 씨, 저게 되냐?”
“미션 경계면은 절대 못 넘어가는 거 아니었어?”
“칼날만 바깥으로 보낸 모양인데.”
“그거 버그 아니냐?”
“버그고 나발이고 가능하니까 미션 클리어 판정이 뜬 거지.”
“도대체 무슨 스킬을 써야 경계면 바깥으로 도망친 놈을 죽일 수 있는 거지……?”
어느새 사람들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은혁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염훈이 사람들을 해치고 다가왔다.
“야, 강은혁. 방금 건 어떻게 한 거야?”
염훈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물었다.
“일종의 꼼수지.”
사실, 회귀자인 은혁은 스테이지 경계면에 관한 지식이 몇 가지 더 있었다.
방금 것은 그중 하나를 실제로 실험해본 것뿐.
“그리고 놈의 스킬 저항력이 낮아서 통했어.”
플레이어에게 이런 식으로 시도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고블린 습격 대장은 의지력, 체력이 매우 낮은 적이었기에 이런 꼼수가 쉽게 통했다.
“그보다 너야말로 훌륭했다. [2초 무적]으로 자기 몸을 포환 삼아 돌진하다니.”
“뭐, 네가 하는 짓 보고 배운 거지.”
두 사람은 씨익 웃으며 서로 어깨를 툭툭 두들겨 줬다.
“좋아, 그럼 기세를 몰아 바로 7층으로 가자!!”
염훈이 우렁차게 외쳤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왠지 덩달아 기세가 살았다.
“오옷!”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헤헤, 방해하지 않을 테니 따라가는 건 괜찮죠?”
그러자 염훈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허락하려 했지만.
“아, 스톱!”
은혁이 염훈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 또 왜?”
“오늘은 이만 쉬자.”
“엥?”
“너무 무리해서 좋을 거 없어. 일단 빨리 들어가서 쉬자.”
“왜?!”
“경험치는 좀 쉬어야 오른다.”
정식으로 표시되는 수치는 아니지만, 경험치라는 게 있었다.
하루에 너무 많은 경험을 하는 것보다, 쉬엄쉬엄해야 경험치 효율이 높아진다.
‘……라는 건 표면적인 이유고.’
진짜 목적은 7층에 있었다.
7층 메인 미션을 최적의 효율로 클리어하려면, 지금 바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
“흠흠, 하여간 따라와. 아, 다른 분들도 좀 쉬엄쉬엄 하세요. 초반에 너무 무리하면 오래 못 갑니다. 안녕히!”
은혁은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고는, 염훈을 데리고 5층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5층의 게이트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은혁은 한마디 했다.
“자자.”
“엥?”
“각자 테번 객실에 들어가서 자자고.”
은혁이 손목시계를 가리켜 보였다.
“지금 자고, 오후 11시에 기상. 식사하고 몸 좀 푼 다음 자정 무렵 7층으로 올라간다.”
“아니, 왜 그렇게 애매한 시간에?”
“그런 게 있어. 과식하지 말고 일찍 자라. 그럼.”
은혁은 그렇게 말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한테는 빨리 자라면서 어딜 가는 거람?”
염훈은 갸우뚱하면서도, 은혁 말 들어서 손해 볼 건 없었기에 혼자 테번으로 돌아갔다.
* * *
행복 길드 본부 앞 유흥 거리.
7대 길드 중 하나인 행복 길드는 말 그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길드였다.
단,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일반적인 의미와는 조금 달랐다.
적을 죽일 때의 쾌락이나 남의 것을 훔쳤을 때의 스릴 같은 것을 포함하는 의미였다.
전투에 미친 광전사, 피에 미친 암살자, 악의에 찬 음유시인 등등의 삐뚤어진 욕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마저 행복하게 해주는 천국 같은 장소.
그게 행복 길드 본부였다.
단, 본부 앞에 넓게 펼쳐진 번화가는 의외로 안전한 환락가이기도 했다.
“오빠, 놀다 가!”
“형님, 한잔하고 가십쇼! 예쁜 아가씨 상시 대기 중입니다!”
“행복 포션 팝니다요. 크크크.”
“탈주한 노예 NPC에 대한 재교육 쇼가 곧 시작됩니다!”
다양한 가게에서 호객 행위가 열심이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광고판들이 즐비해서, 처음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놨다.
하나하나 위험한 유흥업소처럼 보였지만 행복 길드의 보호를 받는 곳이었기에 오히려 안전한 환락가였다.
‘휴, 정말 교육에 안 좋은 곳이야.’
그래서 일부러 염훈을 두고 초저녁에 혼자 왔다.
은혁은 내심 성기사인 염훈의 평판 및 인성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은혁이 혼자 여기 온 이유는…….
‘자본금 좀 불리러.’
도박이었다.
도박 일정을 대놓고 벽에 붙여 놓는 길드는 행복 길드뿐이었다.
정의 길드가 맡은 권한에 따라 단속을 하러 오면, 행복 길드는 귀찮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워한다.
정의 길드와의 난투극, 욕설 주고받기는 오히려 유흥거리이며, 그걸 구경하러 오는 플레이어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조용히 영업하는 도박장에는 오히려 단속이 잘 안 뜬다.
‘행복 길드는 도박장에서는 특히 정직하다지?’
도박장에서 사기를 치면, 더 이상 재미가 없다.
호구 속여 먹는 재미도 있다지만, 그쯤 되면 도박의 재미가 아니라 사기 치는 재미다.
조직적인 사기는 이미 재미가 아니라 직업 활동의 영역이다.
그래서 행복 길드 앞에서 영업 중인 작은 도박장, 큰 카지노 따위는 꽤 공정한 도박판이었다.
‘그 공정한 도박판에서 돈 좀 벌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