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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2화 (22/434)

22화 : 도박장에서의 잭팟

은혁은 뒷골목 도박장으로는 가지 않았다.

그가 들어간 곳은 큰길가에 있는, 라스베가스 카지노를 연상시키는 도박장이었다.

초저녁이었음에도, 도박에 몰두하는 이들이 백 명도 넘었다.

은혁은 카드와 룰렛, 주사위가 난무하는 도박판을 가로지르더니…….

삐유웅! 삐유웅!

찰칵!

찰그락찰그락찰그락……!

중앙 열의 슬롯머신 앞에 가서 앉았다.

도박의 고수들은 그런 은혁을 보더니 히죽 웃었다.

“초짜가 한 명 들어왔군.”

“사내자식이 기껏 도박장에 와서 슬롯머신을 땡기남? 클클.”

“뭐, 초짜들은 다 저런 식으로 맛을 들이는 거지.”

슬롯머신을 즐기는 인간은 그리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도박판의 고수들은 슬롯머신 즐기는 이들을 애들 취급하며 은근히 비웃었다.

은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늘, 슬롯머신이 터진다.’

은혁은 회귀 전 기억을 더듬었다.

절대 잊을 수가 없는 게, 100층탑에 들어오고 바로 다음 날 밤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행복 길드 대로변에는 카지노 형태의 도박장, 행복 도박장이 있다. 그곳의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터진다. 잭팟을 터뜨린 사람은 연구 길드의 그레이스.’

그리고 행복한 표정으로 슬롯머신 기계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은 모습까지 다음날 신문에 나온다.

문제는 그레이스가 어디에 앉느냐, 그 자리를 어떻게 뺏느냐이다.

‘일단 중앙 열인 건 확실한데, 어느 자리인지는 애매해.’

중앙 열에 7개의 슬롯머신이 있다.

즉, 7분의 1.

‘내가 그 7대를 전부 할 수 있으면 좋은데.’

한국의 모 카지노에서는 혼자서 슬롯머신 여러 개를 굴리는 것도 가능하다지만, 이 카지노에서는 1인당 1 슬롯머신만 가능했다.

‘지금 내가 앉은 이 자리가 잭팟 자리면 가장 좋겠지만, 아니라면 그레이스의 슬롯머신 자리를 찾아서 뺏는다.’

물론 양심의 가책은 제로였는데, 그레이스는 연구 길드 산하의 생화학 무기 연구소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훗날 제2차 길드 전쟁에서 이 생화학 무기는 많은 적대 길드원들과 민간인 NPC까지 대량으로 죽인다.

그런 여자의 잭팟 기회를 뺏어서 연구 비용을 가로채는 것은 오히려 정의로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은혁이 슬롯머신 앞에 앉자, 웨이터 NPC가 눈치껏 1회용 물수건을 갖고 왔다.

“대박 나십쇼, 손님.”

“아, 고마워요.”

은혁은 주위를 곁눈질하며 슬롯머신을 당겼다.

찰칵!

찰그락찰그락…….

30분 정도 지났다.

따거니 잃거나 하면서 본전.

그때였다.

실험실 가운을 입고 온 여자가, 화공약품 냄새를 풍기며 막 들어섰다.

“오렌지 위스키.”

“넵.”

그녀는 단골인지, 조금 전 웨이터 NPC에게 술을 요구하고 바로 슬롯머신으로 향했다.

“좋아. 내 지정석은 비어 있네.”

그녀는 도박 전 세레모니인지, 앉기 전에 가볍게 몸을 풀었다.

‘정중앙의 슬롯머신인가.’

하필 은혁의 바로 오른쪽 자리였다.

‘하는 수 없지.’

은혁은 그녀가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그림자 지배]를 발동했다.

그녀의 그림자에 물리력을 부여했다.

‘그림자로 그녀의 발목을 낚아챈다.’

턱!

“어맛?!”

자기 그림자에 발이 걸린 그녀가 크게 넘어질 뻔했다.

“어쿠, 조심하시죠.”

은혁이 잡아줬다.

그레이스는 겨우 자세를 잡았다.

“아, 고마워요.”

하지만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괜찮으십니까?”

웨이터 NPC가 다가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레이스는 버럭 화를 냈다.

“바닥 청소를 어떻게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웨이터 NPC는 굽신거렸고, 도박꾼들이 모두 쳐다봤다.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그레이스의 얼굴에는 짜증이 넘쳤다.

“아, 기분 잡쳤어.”

그레이스는 그대로 도박장을 떠났다.

웨이터 NPC만 머쓱하게 위스키가 든 쟁반을 든 채 남았다.

툭툭.

은혁은 주눅 든 웨이터 NPC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이런 날도 있죠.”

은혁은 은화 하나를 웨이터의 앞주머니에 넣어줬다.

“감, 감사합니다.”

웨이터는 조금 빨갛게 변한 얼굴로 은혁의 친절에 감사를 표했다.

“그럼 수고해요. 아, 그 위스키는 나 주고 가시고.”

은혁은 원래 그레이스가 마시려던 오렌지 위스키를 받아 한 모금 했다.

“크으, 너무 달군.”

그리고 그레이스가 앉으려던 의자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즐겨볼까.”

은혁은 대략 1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슬롯을 당겼다.

1분 내내 실패했다.

하지만 딱 1분이 되는 시점.

‘왠지 이번에 터질 거 같은데?’

철컥!

슬롯이 돌았다.

빰……!

첫 번째 숫자 7이 왼쪽에 멈췄다.

빰……!!

두 번째 숫자 7이 중앙에 멈췄다.

빰……!!!

마지막 숫자 7이 우측에 멈췄다.

빠바바밤!!

싱겁게도, 1분 만에 잭팟이 터졌다.

“축하합니다! 잭팟! 잭팟 당첨!! 축하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1분 전 은혁에게 격려받았던 웨이터 NPC는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축하를 외쳐댔다.

“뭐, 뭐라고?”

“아니, 저 초짜가 잭팟?”

“배율이 어떻게 됨?”

도박꾼들이 죄다 은혁을 돌아봤다.

웨이터는 마치 자기 일처럼 펄쩍펄쩍 뛰면서 외쳤다.

“2,000배! 2,000배 당첨되셨습니다! 오오! 축하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웨이터가 분위기를 띄우자, 다른 이들도 박수를 쳤다.

휘익, 휘익!

근처 NPC들의 휘파람 소리가 휘몰아쳤다.

가게에 세팅된 팡파르도 울려 퍼졌다.

까만 전광판에는 붉은 글씨로, ‘JACK POT!!!’이라고 떴다.

가게 바깥의 호객용 간판도 휘황찬란하게 빛나며, 연신 잭팟 메시지가 떴다.

뭔 일인가 싶어서 들어오는 구경꾼들이 있을 정도였다.

“와아! 축하합니다!!”

“캬, 잭팟 터지는 게 얼마 만이냐!”

“축하해요!!”

많은 이들이 환호해 줬다.

예외는 있었다.

“저 사람 겁나 운 좋네.”

“초심자의 행운이란 건가……!”

“왜 나 때는 안 터지고.”

“햐, 이놈의 상대적 박탈감…….”

은혁을 처음에 비웃던 도박꾼들은 쭈그러들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은혁은 예의 바르게 꾸벅꾸벅 절했다.

* * *

환호성이 조금 가라앉은 뒤.

쇠창살이 박힌 환전소.

“2,000 골드입니다.”

콧수염이 멋진 지배인이 금화가 든 자루를 내밀었다.

2,000배 잭팟이라고 해봤자, 1골드짜리 슬롯머신이었으므로 2,000 골드에 불과했다.

‘원화로 계산하면 대략 1억인가.’

31분간 슬롯머신 당겨서 얻은 수익치고는 역대급이지만, 잭팟의 명성에 비하면 조금 빛이 바래는 액수였다.

“악수를 청해도 될까요?”

‘시리우스’라는 이름의 지배인이 공손히 창구 너머로 손을 내밀었다.

표정은 온화했지만 눈빛은 독사 같았다.

“아, 물론입니다.”

악수를 하는데, 종이쪽지가 만져졌다.

“이건?”

“비밀 도박장 초대장입니다.”

지배인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님께서 직접 관리하시는 VIP 도박장이죠. 현재, 가입한 길드 있으신가요?”

“아뇨.”

“그럼 더 잘됐군요. 관심 있으시면 언젠가…….”

“생각해보죠.”

‘절대 안 간다.’

비밀 도박장은 말 그대로 비밀 도박장이라서, 회귀자의 지식으로도 알기 어려운 장소였다.

게다가 가장 큰 이유는…….

‘이놈 때문이지.’

눈앞의 지배인.

부길드장님 어쩌고 떠들어 댔지만, 사실 이 지배인의 정체가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이다.

‘확률을 지배하는 마검사 시리우스.’

행복 길드의 길드장은 예측불허의 기분파라서 막살지만, 그래도 행복 길드는 자유시장 길드 못지않게 돈이 많다.

왜냐하면 시리우스가 부길드장으로서 돈 관련 사업을 모두 관리하니까.

지금 지배인 차림으로 근무하는 것도 반쯤은 취미다.

‘게다가 나보고 가입한 길드가 있냐고 물어본 걸 보면, 이런 초대장을 건넨 의도는 하나지.’

VIP 도박장으로 초대함과 동시에, 은근히 행복 길드로 영입하려는 스카우트 제의다.

“당분간 100층탑 공략에 열중해야 해서요.”

은혁은 완곡히 거절했다.

지배인은 빙긋 웃으며 묵례했다.

“살펴 가십시오, 강은혁 님. 행복 길드는 당신이 행운으로 일으킨 위업을 오래도록 기억할 겁니다.”

“음? 제가 제 이름을 말했던가요?”

은혁이 슬쩍 노려보자 시리우스는 자기 콧수염을 톡톡 두드려 보였다.

“후후. 선수끼리는 다 알아보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죠. 그럼 이만.”

은혁은 금화 자루를 인벤토리창에 넣고 얼른 나왔다.

‘관심받고 있군.’

자유시장 길드의 스카우트 제안은 거절했건만, 나머지 길드는 더욱 관심을 두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힘을 숨기고 살 순 없어. 내 목적은 100층 공략이니까.’

은혁에게 회귀 지식이 없었다면 힘을 숨겼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은혁은 각 길드의 강점과 취약점을 대략 기억하고 있었다.

‘당분간은 이대로만 가자.’

은혁은 근처 잡화점에 갔다.

행복 길드 부지에서 좀 떨어져 있는 잡화점이었는데, 행복 길드의 화려함에 짓눌려 무척 작아 보였다.

“목걸이 두 개 삽니다.”

은혁은 목걸이 두 개를 고르고, 금화 두 개를 내밀었다.

잡화점 주인이 깜짝 놀랐다.

“감사합니다, 손님. 저어, 이건 아무런 효과 없는 싸구려 목걸이인데요.”

“압니다. 얼른 받아요.”

“저, 금화를 주셨는데, 제가 그만한 거스름돈이 없어서…….”

잡화점 주인이 우물쭈물하자 은혁은 히죽 웃었다.

“걱정 마세요. 방금 카지노에서 잭팟 터뜨리고 오는 겁니다.”

“네?”

“잔돈은 가지시길. 그럼.”

은혁은 튼튼하기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목걸이 두 개를 챙긴 뒤, 쿨하게 떠났다.

‘요즘은 아무런 마법 효과 없이 튼튼하기만 한 목걸이 구하기가 더 힘들다니까.’

아무래도 플레이어들은 마법적 효과가 있는 목걸이를 원한다.

그러니 노점상이나 잡화점 같은 데서 파는 싸구려 목걸이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

‘후후. 아무 효과 없이 튼튼하기만 하니까 더 좋은 거야.’

은혁은 그 길로 터벅터벅 걸어서 도축 공장으로 갔다.

저녁이었음에도 여전히 공장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낸시 사장님 있습니까?”

은혁이 큰 소리로 묻자, 낸시가 나왔다.

“아, 네. 왕토끼 발 때문에 오셨죠?”

“맞습니다.”

“여기 포장해 뒀어요.”

낸시는 대형 냉장고에서 포장된 왕토끼 발 두 개를 가져왔다.

크기는 작아져 있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 크기였다.

“저, 변명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원래 이 크기입니다. 자르는 순간 급격히 크기가 줄어서…….”

“압니다.”

“우리 잘못 아님! 도축 실수 아님!”

“알았대도요.”

왕토끼 발은 해체하는 순간 즉시 크기가 작아진다.

목걸이로 만들기 딱 좋은 크기로.

‘후후.’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번창하시길.”

은혁은 호기심을 보이는 낸시를 뒤로 한 채, 행운 테번으로 걸어갔다.

은혁은 걸으면서, 방금 산 목걸이와 토끼 발을 서툰 솜씨로 꿰었다.

“[소도구 제작] 스킬 발동.”

연 속 두 번 발동했고, 모두 성공했다.

그 순간.

-히든 이펙트 발동!

-축하드립니다! 히든 아이템 제작에 성공하셨습니다!

-대장장이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대장장이 숙련도 : 5%.

“좋았어.”

은혁은 즉시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왕토끼의 발 목걸이 :

4성급 히든 아이템.

행운 +5%.

경험치 상승 속도 +15%.

몰락한 지고의 위상 왕토끼의 발 한쪽으로 만든 목걸이.

목에 걸면 소소한 행운과 경험치 보너스를 얻는다.

단, 욕심을 부려서 왕토끼의 발 목걸이를 두 개 만들어 모두 목에 걸면, 저주에 걸려 행운과 경험치가 모두 깎인다.

“하나는 염훈 주면 되겠군.”

은혁은 행운 테번으로 떠났다.

* * *

행운 테번 입구에 들어서니, 1층이 무척 시끄러웠다.

‘무슨 일일까?’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었고, 응원하고 있었다.

“힘내라! 힘!”

“성기사 양반! 힘 좀 써봐!”

“여봐, 테번 주인! 평소에 팔뚝 자랑하던 거 어디 갔어!”

그곳에서는 테번 주인과 염훈이 팔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쿠당!

“아이고!”

테번 주인의 손등이 테이블을 찍었다.

“핫하! 승리!”

염훈이 이겼다.

“와아아아!”

“또 이겼다!”

“팔씨름 킹!”

사람들이 환호하는 한편, 염훈이 은혁을 발견했다.

“어, 야! 너 어디 갔다 왔냐?”

“아, 잠깐 밖에. 그보다 너 왜 안 자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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