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 고블린 사냥 (2)
“아무리 모두에게 열려 있는 사냥터라지만 좀 지나치게 사냥했죠. 여러분 몫까지 과도하게 사냥한 점, 인정하고 사과드립니다.”
너무나 예의 바른 은혁의 태도에, 새벽반 플레이어들이 오히려 겸연쩍었다.
“흠흠. 우리가 뭐 팻말 박아 두고 간 것도 아니고.”
“뭐, 까놓고 말해 사냥터는 먼저 온 사람이 임자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겨우 둘이서 싹쓸이했으니 그게 오히려 대단한 거지.”
“자자, 오해는 풀렸으니 웃읍시다. 웃어요.”
분위기가 빠르게 풀렸다.
애초에 새벽반은 낮 시간대의 모 길드와 싸우기 싫어서 새벽에 몰린 이들로, 경우 있고 성실한 부류였다.
“통로를 너무 지저분하게 더럽혀서 어쩌죠? 사체들도 그냥 방치해뒀고.”
은혁이 뒤통수를 긁자, 새벽반 플레이어들이 손을 내저었다.
“사냥하면 다 그런 거죠. 어차피 리스폰 타임 되면 다 사라지고.”
“저어, 실례가 안 된다면, 고블린 사체는 여러분이 다 가지셔도 됩니다만.”
“어? 그래도 됩니까?”
고블린 사체는 딱히 부산물이랄 게 없지만, 그래도 놈들이 지닌 무기를 수거하면 그 돈은 무시 못 한다.
그것만 다 모아도 인벤토리 중량 한계를 채우고도 남을 분량이다.
그것들을 헐값에 덤핑해도 적잖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그걸 통째로 넘기겠다고 은혁은 말하고 있었다.
“정말 저희가 다 수거해가도 됩니까?”
“예. 어차피 여러분 구역에서 사냥하고 경험치를 얻었는데, 싹쓸이해가면 도리가 아니죠.”
사실, 은혁 입장에서는 사체 및 아이템 루팅이 더 귀찮았다.
솔직히 피곤했던 것이다.
하지만 새벽반 플레이어들은 크게 기뻐했다.
“하하! 그러시다면야.”
“오히려 이 사람들이 우리 대신 일해 준 것 같구만. 허허!”
새벽반 플레이어들과 은혁 사이의 분위기는 몹시 훈훈해졌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기왕이면 낮에.”
은혁이 말하자 훈훈한 분위기의 불길이 갑자기 식었다.
“음, 잘 모르시나 본데, 낮에는 이렇게까지 깊은 곳에 오면 안 됩니다.”
덩치 큰 플레이어가 슬픈 낯으로 말했다.
“음? 왜요?”
은혁은 이유를 알면서도 물었다.
“실은…….”
새벽반은, 이 던전을 폭력과 협박으로 장악하고 통행료 및 사냥 수수료를 뜯어가는 ‘드레이크 길드’에 대해 말했다.
은혁은 알고 있었지만 새벽반의 입으로 듣는 게 염훈에게도 좋을 것 같아서 얌전히 들었다.
“……그러니까 대충 구역 정해 놓고 삥 뜯는 것들이라는 거네?”
설명을 들은 염훈이 요약했다.
새벽반 플레이어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놈들이 양심은 있는지, 새벽에 와서 사냥하는 우리들은 터치하지 않더군요. 그리고 놈들은 주로 더 깊은 제2구역을 장악하고, 게이트 근처의 1구역은 크게 터치하지 않습니다.”
“그게 양심 때문은 아닐 겁니다.”
은혁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던전 독점은 7대 길드가 합의해서 하지 않기로 했죠. 그래서 층 하나를 완전 장악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편법적으로 2구역만 장악하는 겁니다.”
“음, 아마 그게 사실이겠죠.”
새벽반 플레이어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더 높은 층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한 이들이었기에, 이들은 새벽마다 7층에 오는 수밖에 없었다.
“은혁아. 그 드레이크 길드란 것들, 난 마음에 안 든다.”
염훈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먼저 와서 열심히 사냥하는 경우, 구역 비슷한 게 생길 수 있겠지. 근데 드레이크 길드는 그게 아니라며? 자기네들은 사냥도 안 하면서, 그 자릿세만 청구한다고? 그런 건 인정 못 해.”
“모처럼 마음이 통했네.”
은혁은 웃었다.
‘플랜 B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겠군.’
플랜 B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공적치 뺏기.’
공식 호칭 말고도, 비공식적으로 카운트되는 업적이나 공적치 개념이 있었다.
‘드레이크 길드가 쌓아 둔 사냥 공적치를 전부 뺏는다.’
염훈이 드레이크 길드에 불만을 품었으니, 플랜 B는 이미 시동이 걸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늘 중으로 추진한다.’
즉, 오늘 중으로 드레이크 길드는 박살 난다.
* * *
은혁과 염훈은 5층으로 일단 귀환했다.
플랜 B를 진행할 예정이므로, 일단 휴식을 취해야 했다.
두 사람의 직업 숙련도와 레벨은 상당히 올랐다.
<강은혁의 스탯창>
레벨 : 25.
근력 : B-. 체력 : B.
속력 : A-. 의지력 : A+.
마력 : C-. 매력 : B-.
본성 : [독식하는 자]. [은근히 싸움을 즐기는 자]. [회귀자].
계약 성좌 : 없음.
직업 : 못 하는 게 없음(모든 직업의 가능성).
E급 직업 ‘노력하는 전사’ (숙련도 : 36%).
A급 직업 ‘화염을 지배하는 마법사’ (숙련도 : 45%).
S급 직업 ‘그림자를 지배하는 도적’ (숙련도 : 32%).
무등급 직업 ‘무기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대장장이’ (숙련도 : 8%).
포션을 마실 때와 수리 스킬을 쓸 때만 아주 잠깐 쉬고 계속 사냥한 데다가, 왕토끼의 발 목걸이 덕분에 경험치 보너스가 있었다.
“자, 일단 자자.”
두 사람은 테번에서 4시간가량 꿀잠을 잤다.
* * *
7층 고블린 던전의 제2구역.
일종의 지하 2층인 그곳에 드레이크 길드의 은신처가 있었다.
그곳 사무실에서 한 사내가 보고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거. 몬스터 리젠률이 떨어졌다고?”
드레이크 길드의 길드장, 드레이크였다.
7층은 전체가 던전이었으며, 1구역과 2구역으로 나뉜다.
1구역이야 내버려 두고 있고, 2구역을 특히 관리하고 있는데, 고블린 리젠이 매우 느려졌다.
그러자 자릿세를 내고 사냥하는 파티들이 은근히 불만을 표출했다.
한두 명이 불만을 품으면 드레이크는 그들을 짓밟을 수 있지만, 드레이크에게 자릿세를 내는 이들 다수가 불만을 품으면 곤란했다.
드레이크는 사태를 해결해야 했다.
“저, 봉룡이 형님. 제가 들은 바로는…….”
“이 새끼야, 봉룡이 형님이 뭐야, 형님이!”
드레이크의 본명은 이봉룡이었다.
많은 이들이 100층탑에 들어온 뒤로 과거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쓰기도 했다.
“아차, 죄송합니다. 드레이크 길드장님. 제가 들은 바로는요…….”
“하놔, 새끼들. 또 한 번 기강을 잡아야겠네.”
드레이크가 노려보자, 그의 부하들이 쩔쩔맸다.
드레이크 길드는 6년 전 시작한 소규모 파티에서 시작한 길드로서, 일찌감치 탑 공략을 포기하고 7층에 터를 잡아 ‘자릿세’와 ‘사냥 수수료’를 받아왔다.
7층 전체를 장악하는 대신, 2구역만을 장악했고, 7대 길드에 매년 선물을 바치는 등의 처세술로 사업을 이어왔다.
드레이크는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맨주먹으로 7층의 대부분을 장악한 사람이 바로 나야!’
온라인 게임의 캠퍼와 현실의 조폭의 중간쯤 되는, 딱 그 수준이었지만 드레이크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러워했다.
문제는 그 업적에 찬물을 끼얹고 간 놈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2인조 때문이라고?”
“그렇습니다.”
2인조가 사냥을 잔뜩 했다.
주로 1구역에서 사냥했는데, 문제는 1구역이 완전히 싹쓸이되자, 2구역의 고블린까지도 리젠이 느려졌다는 점이다.
“어떤 2인조?”
“모릅니다. 며칠 전 들어온 신규 플레이어인 것만은 거의 확실합니다.”
드레이크 길드는 주로 7층 던전에만 상주하다시피 했기에 바깥소식은 잘 알지 못했다.
자리를 비우면 이권을 뺏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2인조, 혹시 7대 길드가 키워낸 녀석들인가?”
“그건 아닐 겁니다. 완전히 새로운 놈들이라고, 새벽반 아침반 놈들이 입을 모아 말하더군요.”
“어이가 없군. 고작 2인조가 고블린 던전을 거의 다 싹쓸이했다고? 새벽에 우리 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서? 둘이서 그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
드레이크는 몰래 2구역에서 사냥하는 놈들이 있을까 봐 부하들에게 불침번을 시켜두곤 했다.
물론 부하들 중에 정말로 열심히 불침번을 서는 이들은 없었다.
그래서 부하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안 되겠어. 그놈들 잡아서 얼굴 한번 봐야지.”
드레이크는 레벨 26의 무투가였다.
7층에 상주하는 플레이어 중에 레벨이 26이나 되는 존재는 드레이크뿐이었다.
그런 드레이크가 손을 봐줘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본 부하들은 오들오들 떨었다.
“또 피바람이 불겠구만.”
“그 녀석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참 불쌍해.”
* * *
드레이크 길드원들이 은혁과 염훈을 불쌍히 여기고 있는 오전 9시.
은혁과 염훈은 태평하게 7층 고블린 던전에 진입했다.
새벽과 달리, 사람들이 넘쳐났다.
“힐러 계열 직업 급구합니다!”
“함정 감지 스킬 있는 도적 구합니다!”
한편으로는 아이템을 파는 이들도 있었다.
“자, 떨이요, 떨이! 고블린 사냥용 볼트 싼값에 팔아요!”
“고블린 유인용 떡 팝니다! 이거 있으면 고블린 쉽게 유인 가능해요!”
새벽과 정반대로 북적이는 이들을 본 염훈이 어이없어했다.
“……이건 뭔 출근 시간 전철이냐? 사람들 왜 이리 많아?”
플레이어가 많았다.
너무 많았다.
“야야, 화살 어따 쏴! 여기 사냥하고 있잖아!”
“아씨, 좀 저쪽으로 가요, 좀! 왜 슬금슬금 우리 영역으로 오는데!”
“우리가 일부러 가냐?! 입구 근처니까 딴 사람들 때문에 자꾸 밀리는 거지!”
“거기, 신입 분들! 이쪽은 우리 페퍼민트 길드 사냥 구역입니다! 저쪽 가세요!”
“이쪽도 글래스 길드 구역입니다! 더 깊이 가거나 아래층 가셈!”
인구압이 너무 높았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우리가 왔던 곳까지 합치면 꽤 넓은데, 이 사람들은 왜 게이트 바로 앞에 다닥다닥 붙어서 사냥하지?”
“너도 이유를 알 텐데?”
“설마 그 드레이크 길드? 그것들 권세가 그렇게 높아?”
“그들의 권세가 높다기보다는, 여기 오는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다 고만고만한 거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은데? 난 새벽반 사람들이 특히 부지런해서 일부러 새벽에 오는가 했는데, 정말 미어터져서 어쩔 수 없이 새벽에 오는 사람들이었구만?”
“그렇지.”
은혁은 사람이 넘쳐나는 곳에 자리를 깐 돗자리 상인에게 다가갔다.
“고블린 유인 떡 몇 개만 주세요.”
“넵, 감사합니다!”
그리고 은혁과 염훈은 이동했다.
깊은 곳, 제2구역으로 가자 드레이크 길드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통행료는 미리미리 꺼내십쇼!”
“돈 없으면 꺼지시고요!”
드레이크 길드가 돈을 걷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다른 신규 플레이어들이 있었는데, 당황해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뭡니까? 몬스터 사냥하러 왔는데 왜 통행료를 받아요?”
한 신규 플레이어가 따지고 들었다.
반면 드레이크 길드원들은 빙긋 웃었다.
“어휴, 이 신규 당돌한 거 보소.”
“이런 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 하나?”
우르르…….
드레이크 길드원들이 어느새 대여섯 명 모이더니, 그 신규 플레이어 한 명을 포위했다.
이것만으로도 위압감이 상당해서 그 신규 플레이어는 굳어 버렸다.
“자, 들어봐요? 던전에서 몬스터를 잡으면 부산물이 나오죠? 그게 다 돈이죠?”
“그, 그런데요?”
“그런데 공짜로 던전을 돌겠다? 그딴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 그래도…….”
“그래도 뭐?”
“하, 한 길드가 한 층을 통째로 지배하는 건 금지라고 서, 설명회에서 들었는데요…….”
신규 플레이어가 말끝을 흐렸다.
주위에 있던 다른 플레이어도 동조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풉, 들었냐? 설명회에서 들었단다.”
“어이구, 귀여워라. 낄낄!”
드레이크 길드는 비웃었다.
실제로, 길드연합국은 특정 집단이 하나의 층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뒀다.
7대 길드에서는 그 사실을 게시판 등을 통해 널리 알려줬고, 설명회에서도 누군가 질문했을 때 답해줬다.
하지만.
“우리 드레이크 길드는 7층 전체를 장악한 거 아닌데?”
“일부 지역만 장악했을 뿐.”
“싫으면 다시 올라가서 북새통 시장 같은 곳에서 사냥하시든가. 낄낄!”
“그런…….”
신규 플레이어들은 당황해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탑을 오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정작 그 노력을 하려면 먼저 자리 잡고 있는 자들에게 자릿세를 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때, 한 당돌한 플레이어가 불쑥 끼어들었다.
“자릿세 안 내고 사냥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언놈이야?”
“접니다.”
은혁이 손을 들었다.
태도가 워낙 당당해서,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정치가에게 질문하는 기자 뺨칠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