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드레이크 길드 격파 (2)
콰쾅!!
모였던 화염이 터지고.
화르르르륵!!
화염의 격류가 드레이크의 온몸에 끼얹어졌다.
“껙?!”
드레이크는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화염의 격류는 거세고, 길었다.
화르르르르륵……!!
치이익……!
갑옷의 철판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끄아아아……!”
멀리 피할 수도 없었다.
좁은 케이지 때문이다.
정작 자신이 만든 함정이 워낙 좁았기에 측면 기동이 어려워졌다.
“아, 더 하다간 죽겠네.”
은혁은 얼른 [염열파]를 해제했다.
히든 이펙트에 근간을 둔 퓨전 스킬인지라, 위력이 너무 강했다.
그에 비례해서 마나도 빨리 닳지만, 한 놈 확실히 조져 놓는 데는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돼지 통구이 같군. 항복할래?”
은혁이 물었다.
“닥쳐!!”
드레이크는 은혁에게 달려들었다.
‘스킬 쿨타임을 노린다!’
[염열파]처럼 큰 기술이 끝났으니, 쿨타임이 길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광풍돌진권]!!”
드레이크는 필살의 고유 무투가 스킬을 발동하며 돌진했다.
콰오오오……!
공기층을 꿰뚫으며 하는 돌진은 광풍을 일으켰다.
섣불리 옆으로 피해도 그 광풍에 휩쓸려 스턴 상태가 된다.
좁은 공간에서 쓰면 거의 100% 적중했다.
일반적으로 틀린 판단은 아니었지만, 상대는 단순한 전사나 마법사가 아니었다.
“도적 스킬 [도약].”
타앗!
은혁은 드레이크를 통째로 타 넘더니, 공중에서 적의 돌진력을 역이용했다.
마치 투우사처럼.
“전사 스킬 [패링], 도적 고유 스킬 [그림자 지배]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휘릭!
드레이크의 몸을 감싼 광풍에 패링이 걸리고, 발밑의 그림자가 방향을 거칠게 틀었다.
“퓨전 스킬 [섀도우 테이크 다운].”
콰쾅!!!
드레이크는 자기네 길드가 설치한 쇠창살에 머리부터 들이받았다.
“으, 으윽.”
화염 공격으로 체력이 깎인 상태에서 머리부터 쇠창살에 받았다.
드레이크는 철창을 끌어안은 채로 비틀거렸다.
“형님! 일어나십쇼!”
“저 새끼가 등 뒤로 옵니다!!”
부하들이 애처롭게 외쳤다.
은혁은 천천히 드레이크의 뒤로 다가갔다.
“[파이어볼].”
갑옷 연결부를 노려서 압축해서 쐈다.
콰쾅!
쩌적!
화염과 충격으로 약해져 있던 갑옷이 폭발력에 의해 쉽게 벗겨졌다.
“으윽.”
드레이크가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딱 대, 이 돼지 새끼야. 넌 뒈졌어.”
퍼버버벅!
은혁은 스킬이고 뭐고 마구잡이로 드레이크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으윽! 꿰엑!”
“부하들 데리고 자릿세 뜯을 때는 좋았지? 반항하는 놈 있으면 케이지에 가두고는, 일대일이니까 공평하다는 식으로 두들겨 팰 때도 재밌었지? 근데 지금은 아니지? 왜 아니겠냐? 맞으니까 아프니까겠지? 아프니까 청춘이다, 개새끼야.”
뻐억! 뻐억!
퍼버버벅!!
“억! 아악!”
은혁의 마구잡이 폭행은 이어졌다.
“그동안의 대가를 치르는 거다, 개자식아. 이건 네가 여태 갑질한 몫! 이건 네게 부당하게 협박당한 사람들의 몫! 이건 네가 여태 부하 관리 못 한 몫! 그리고 이건, 어, 음.”
더 이상 때릴 구실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여간 누군가의 몫!!”
퍼버버벅!
“아아악!! 항복할……!”
“닥쳐!!”
빠악!!
은혁은 드레이크의 턱을 걷어차서 항복도 못 하게 했다.
“히익!”
“너무해요!”
“좀 봐주셈!”
다른 구경꾼들이 대신 용서를 구할 정도였다.
드레이크의 부하라는 것들은 어느새 도망치고 없었다.
“여러분. 이거 괴롭히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꼭 필요하니까 두들겨 패는 겁니다.”
“거짓말!”
“그걸 누가 믿어!”
“네 동료인 나도 못 믿겠다!”
염훈이 화를 낼 정도였다.
“흠흠, 하여간 좀 더 명예롭게 패겠습니다.”
퍼버벅!
3분이 지났다.
-승자는 강은혁 님!
시스템 메시지는 공정하게 판정승을 내렸다.
-이 시간부로, 드레이크 길드의 길드장으로서의 지위와 명예는 강은혁 님께 귀속됩니다!
“휴, 안 죽이고 명예만 뺏으려니 참 힘드네.”
그때였다.
이전처럼 시간이 일시적으로 멈추더니.
-축하드립니다! ‘모든 직업의 가능성’이 새로운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새로운 직업 카드를 뽑아주십시오!
‘떴다!’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둥실둥실…….
12장의 직업 카드가 허공에 떠 있었다.
그때, 드레이크의 몸에서 직업 카드가 둥실 떠올랐다.
그러고는 맹렬한 속도로 날아왔다.
쐐애액!
차캉!
그것은 은혁이 본래 지니고 있던 무투가 카드와 충돌했다.
‘오오! 이번에도 서영후 때랑 비슷하군!’
-모든 직업의 가능성이 선택권을 제시합니다!
-본래 갖고 있던 무투가의 가능성과 지금 쓰러뜨린 플레이어가 지니고 있던 무투가의 가능성 중 원하는 것을 고르십시오!
‘좋아, 골라볼까!’
A. E-급 직업 ‘빠르게 도망치는 무투가’. (본래 지니고 있던 가능성)
B. C+급 직업 ‘돌진하는 무투가’. (드레이크를 쓰러뜨리고 복사한 가능성)
“…….”
‘아니, 이번 A 선택지도 왜 이래?!’
은혁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B를 고른다.’
-축하드립니다! C+급 직업 ‘돌진하는 무투가’를 선택하셨습니다!
-고유 무투가 스킬 [광풍돌진권]을 습득하셨습니다!
-무투가 스킬 [질주]를 습득하셨습니다!
-무투가 스킬 [쾌속보]를 습득하셨습니다!
-무투가 스킬 [금강지]를 습득하셨습니다!
-무투가 스킬 [섬영권]을 습득하셨습니다!
‘돌진하는 무투가’는 약한 건 아니지만 한계도 지닌 직업이었다.
빠르고 강한 돌진 능력은 쓸모가 많지만, 돌진력이 뛰어난 무투가라는 것만으로 탑을 정복하기에는 괴물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은혁은 다르다.
직업이 여러 개다.
‘돌진하는 무투가라는 직업 하나만 있으면 C+급 수준이지만 나는 이미 직업이 여러 개지. 시너지를 고려하면 돌진하는 무투가의 가치는 확 높아진다.’
노력, 화염 지배, 그림자 지배, 무기 업그레이드…… 거기다가 돌진 계열 무투가 스킬이 추가된 셈이다.
‘막 [쾌속보], [패링] 융합해서 [쾌속 연쇄 패링] 같은 것도 되려나?’
가능성이 넓어졌으니, 결코 나쁘지 않았다.
은혁이 직업을 고르자 시간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휴, 일단락됐군.”
은혁이 이마의 땀과 피를 닦자, 염훈이 다가와 물었다.
“야, 정말로 진지하게 질문 좀 하자.”
“뭔데?”
“왜 그렇게 심하게 때린 거야?”
드레이크는 누가 봐도 불쌍할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
“명예 회복을 위해서.”
“엥?”
“자, 구경하던 분들도 다 와서 들어보세요. 설명 드립니다.”
은혁은 포션을 마시며 설명을 시작했다.
“드레이크 길드장은 매우 불명예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참교육을 시켜서 불명예를 청산하고, 명예를 주입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조금 전 제가 한 참교육은 일종의 명예 세탁인 거죠.”
은혁은 피떡이 되어 꿈틀거리는 드레이크를 가리켰다.
더러워진 빨래를 빨랫방망이로 두들겨서 더러움을 빼듯, 은혁이 한 일도 그런 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드레이크 길드장 자리를 뺏은 겁니다. 즉, 현재 저의 명예는 깨끗합니다. 훗.”
“뭐야, 그게!”
다들 어이없어했다.
은혁의 논리는 조금 기이했다.
“자, 염훈? 네 차례다. 뭘 해야 할지 알겠지?”
“경건한 마음으로 치료해 주라는 거지? 나 원 참.”
염훈은 어이없어했지만, 드레이크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측은지심이 생겼다.
그 정도로 은혁은 무자비하게 드레이크를 짓밟은 것이다.
‘햐, 내가 협박으로 자릿세 뜯던 악당 놈을 보고 측은지심을 느끼는 날이 오다니.’
염훈의 바깥 성격대로라면 남들 눈치 안 보고 드레이크와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은혁이 드레이크를 두들겨 패고, 자신은 드레이크를 치료해 주는 역할이었다.
“[중급 치유].”
파앗!
신성한 빛이 드레이크를 감쌌다.
“오오.”
“참으로 신성한 빛…….”
“겨우 7층에서 이토록 높은 순도의 신성 기적을 보게 되다니.”
“섬기는 성좌도 없는 사람 같은데 저렇게 정순한 치유의 빛을…….”
“참으로 속마음이 경건한 성기사인가 봐.”
“때린 사람에 비하면 천사네, 천사.”
주변 사람들이 전부 염훈을 칭찬했다.
“으으.”
드레이크가 정신을 차렸고, 은혁은 드레이크 앞에 털썩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자, 그럼 청산을 마무리해야지?”
사실, 청산은 이미 끝났다.
은혁은 [계약 대결]의 승리 보상으로 드레이크 길드장 지위를 획득했다.
“새로운 드레이크 길드장으로서 명령한다. 그동안 드레이크 길드가 쌓은 고블린 사냥의 공적치를 전부 길드장 1인이 가진다.”
그랬다.
드레이크 길드는 자릿세만 뜯지 않고, 때때로 남들의 공적치도 적당히 뺏었다.
현재 7층에서 고블린 사냥을 가장 많이 한 집단은 공식적으로 드레이크 길드다.
그 공적치를, 길드장인 강은혁 1인에게 옮긴 것이다.
그 순간.
-고블린 10,040마리 연속 처치!
-역대 7층 사냥 랭킹 1위 달성!
“헉?! 뭐야, 저 사람!”
“지금 7층 메인 미션 중이었어?”
“말도 안 돼. 그럼 하루 동안 10,040마리를 처치한 걸로 인정된다고?!”
“저런 꼼수가 어딨어!”
‘어딨긴 여깄지.’
너무나 압도적인 성과라 그런지, 미션 종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클리어 판정이 떴다.
-축하합니다! 7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메인 미션 클리어 보상을 산정 중입니다!
-공적치를 확인 중입니다!
시스템 메시지는 은혁에게 줄 보상을 계산하느라 바빠 보였다.
과장 없이, 100층탑이 만들어진 이래로, 7층 역대 최대의 사냥 공적치를 쌓았기 때문이다.
-역대 최대의 공적치 확인!
-3,000 골드가 지급됩니다!
-사냥의 성좌 골콘다의 부츠를 획득하셨습니다!
-욕심쟁이 도박꾼의 반지를 획득하셨습니다!
-7층 히든 던전 입장권을 획득하셨습니다!
펑!
은혁의 눈앞에 티켓과 부츠와 반지가 생겨났다.
은혁은 우선 장착 가능한 부츠와 반지부터 확인했다.
-골콘다의 부츠 :
3성급 아이템.
‘사냥’을 목적으로 이동할 시, [은밀 기동] 스킬이 패시브 형태로 발동된다.
또한 몬스터 사냥 시 경험치 보너스 10%가 적용된다.
‘나쁘지 않군.’
-욕심쟁이 도박꾼의 반지 :
2성급 아이템.
딱 한 번, 조건과 상황과 규칙을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도박의 판돈을 두 배로 올릴 수 있다.
도박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도박의 성좌를 크게 기쁘게 할 수 있다.
1회용.
‘이건 꽤 위험하네.’
성능 자체는 나쁘지 않다.
발동하느냐 마느냐를 자기가 선택하는 거니까.
‘문제는 이런 위험한 반지가 있으면 써보고 싶어진다는 건데. 참자, 참아.’
은혁은 반지를 인벤토리창에 쑤셔 넣었다.
‘마지막으로 이 티켓은……?’
-7층 히든 던전 고블린의 성지 입장권.
‘음. 결국 얻어 버렸군.’
7층 히든 던전의 정체는 고블린의 성지라는 곳이다.
히든 던전이라고 적혀 있긴 한데,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그 차원에는 고블린들이 섬기는 신이 살고 있다.
성좌 계약을 할 수도 있는 준신급의 존재지만.
‘나는 물 건너갔지.’
은혁은 7층 고블린 던전 역대 최악의 고블린 학살자였으므로, 들어가면 전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후후. 생각해 보니 조금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하네.’
은혁은 그런 생각도 했다.
100층탑 관리국 시스템은, 은혁이 고블린을 많이 학살했다는 이유로 고블린의 성지 입장권을 보상으로 지급했다.
하지만 정작 고블린의 성지에 있는, 고블린이라는 종족의 창조신이자, 고블린의 성좌인 ‘고리블린’은 은혁을 증오하고 있을 터.
만약 은혁이 회귀자가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갔을 것이다.
희희낙락하며 고블린의 성지에 들어갔다가, 고리블린 손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거 역으로 써먹을 수 있겠는데?’
회귀자다운 발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이건 함정용 꼼수로 나중에 써먹을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인벤토리창에 넣었다.
“그럼 일을 마무리해 볼까요.”
은혁은 심호흡을 하고, 드레이크에게 말했다.
“드레이크 길드의 새로운 길드장 강은혁이다. [길드장의 명령] 스킬을 발동하고, 드레이크 길드에 마지막 명령을 내린다.”
드레이크 길드원 전원에게 적용되는 공식 명령이었다.
거리가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길드장의 명령]은 [텔레파시] 스킬과 비슷하게 들렸다.
“첫째. 폭력과 위압 등의 부적절한 방식으로는 사냥터를 독점하지 않는다. 둘째. 이것을 마지막 명령으로 하고, 길드를 영원히 해산한다. 이상.”
그렇게, 은혁은 드레이크 길드의 공적치만 쏙쏙 빼먹곤, 그 자리에서 길드를 해산시켜 버렸다.
“세상에……!”
“길드장 된 지 5분 만에 해산? 실화냐?”
“쿨한 건지 건성건성인 건지.”
“가만, 그럼 이제 고블린 던전 사냥터는 우리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건가요?”
“어! 그러네!”
플레이어들은 기뻐했다.
“와아아!!”
“자유다!!”
“이제 눈치 보지 않고 사냥할 수 있어!!”
플레이어들이 모두 환호했다.
모든 걸 잃은 드레이크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