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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7화 (27/434)

27화 : 백사의 독으로 만든 포션 (1)

7층이 해방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햐, 널찍해서 좋구만!”

“이제 우리끼리 신경전 벌이거나 투덕거릴 필요 없겠어.”

플레이어들은 희희낙락했다.

드레이크 길드가 있을 때에 비해, 사냥 구역이 두 배는 늘어났으니 훨씬 할 만했다.

“근데 지금 생각난 건데 말이야, 드레이크 길드, 별거 아니네?”

“그러게. 만약 우리들 모두가 힘을 합쳐서 대항했다면 진작 그놈들을 쓰러뜨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자 7층의 고참 플레이어가 끼어들었다,

“그건 힘들었을걸. 드레이크의 부하들은 약해도, 드레이크의 레벨은 꽤 높았다고. 게다가…….”

“게다가? 뭔데요?”

“드레이크 길드가 무서운 게 아니라, 놈들 뒷배를 봐주는 놈들이 진짜 무서운 거지.”

“엥? 그런 게 있었어요?”

“나도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지만.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라고?”

플레이어들이 잠시 던전의 구석진 곳을 봤다.

그곳에는 여전히 드레이크가 쓰던 은신처가 남아 있었다.

드레이크는 반쯤 넋이 나간 채로 그곳에서 쉬고 있었다.

직업이 사라지거나 레벨이 깎이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완전한 패배를 겪은 순간 마음이 조금 부서진 듯했다.

그때였다.

성큼성큼.

금발 머리에, 피부를 까맣게 태닝한, 그리고 선글라스를 낀 청년이 걷고 있었다.

“웃!”

“저 사람은…….”

7대 길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람이었다.

‘상승 길드의 부길드장 브라이언.’

드레이크 길드의 뒷배를 봐주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

“히익…….”

은신처 속의 드레이크가 모포를 뒤집어썼다.

“여어, 드레이크! 안에 있냐?”

브라이언이 유쾌한 어조로 물었지만, 드레이크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하! 없는 척하기는.”

따악!

브라이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따다다다닥!

은신처 내부에 정전기 불꽃이 미친 듯이 튀었다.

“흐악?!”

드레이크는 뛰쳐나왔다.

“오호, 그래. 나왔구나?”

“브, 브라이언 님.”

“오냐.”

“사, 상납 시간은 아직…….”

“알아. 이야기나 좀 하러 온 거야.”

브라이언은 히죽 웃었다.

그가 웃을 때마다, 주위에 스파크가 번쩍였다.

“듣자 하니 완전히 개털렸다면서? 소문이 5층에 쫙 퍼졌더라?”

“죄송합니다…….”

“뭐가?”

“네?”

“뭐가 죄송하냐고.”

“그, 신규 2인조에게 패배한 것. 그리고 드레이크 길드가 와해된 것…….”

“웃기는 게 뭔지 알아? 사실, 너는 더 이상 나한테 죄송해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네……?”

“왜냐면 넌 더 이상 드레이크 길드의 길드장이 아니잖아. 드레이크 길드장 자리를 뺏긴 상태였고, 길드가 완전히 해체됐으니, 넌 더 이상 책임 있는 존재가 아니지.”

그랬다.

드레이크 길드는 상승 길드의 브라이언과 계약을 맺었다.

‘드레이크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맹세합니다. 매월 상납금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니 저희 길드가 7층의 꿀 사냥터를 장악하도록 뒷배를 좀 봐주십시오.’

브라이언은 흔쾌히 허락했다.

상승 길드는 보다 높은 곳을 추구하는 길드였고, 이미 클리어된 7층의 고블린 사냥으로 푼돈을 벌 계획이 없었으니까.

물론, 상승 길드를 뺀 나머지 6대 길드는 상승 길드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 어떤 길드도 하나의 층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는 공통 규칙을 편법적으로 어기는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상승 길드는 직접 7층을 지배한 게 아니고, 드레이크 길드를 시켜서 간접 지배한 것이며, 교묘하게 7층 전체가 아닌 일부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장악했다.

7대 길드 간에 큰 소리가 날 뻔했지만, 나머지 6대 길드는 대신 다른 안건으로 정치적 이득을 봤기에, 이 문제는 암묵적으로 덮어두었다.

상승 길드의 브라이언은 기뻤다.

드레이크 길드를 통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뽑아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대부분은 길드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브라이언 혼자 먹는 돈이었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너희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개박살 났다는 거지. 허참. 그동안 상납금 받는 게 쏠쏠했는데 말이야.”

“…….”

“게다가, 너희를 봐주느라, 나머지 6대 길드에게 양보를 한 게 많거든?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 이 손해를 어떻게 받아내야 할까?”

“그, 그게…….”

“걱정 마. 방법은 있으니까.”

브라이언은 드레이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히익.”

“걱정 마. 안 죽여. 겨우 이런 일로 죽일 수는 없지.”

브라이언이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최강의 뇌신 블릿츠 데바여. 당신께 제물을 바치나이다.”

“자, 잠시만요! 제발! 제발!!”

“[제물 공여].”

“흐아아악!”

번쩍!!

섬광이 번쩍였다.

드레이크는 그 섬광 속에서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드레이크는 길드장이 아니었지만, 브라이언에게 개인적인 충성을 맹세를 한 적이 있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섬기겠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 안 돼.’

이제, 드레이크는 막대한 전류로 이온 분해될 터였다.

치지직…….

약간의 오존 냄새와 잿가루만 남긴 채 영원히 소멸해 버릴…….

“눈 떠, 등신아. 너 안 죽었다.”

“에?”

드레이크는 뜨거움 대신 오히려 추위를 느끼며 눈을 떴다.

“아!”

드레이크가 착용 중이던 갑옷, 옷, 머리카락, 심지어는 잔수염까지 싹 다 타서 제물로 바쳐진 상태였지만 몸 자체는 멀쩡했다.

“멍청한 놈아. 아까 말했잖냐. 너는 책임을 질 자격도 없다고.”

브라이언은 손을 툭툭 털었다.

“내 앞에서 꺼져, 알몸 변태 놈.”

브라이언은 알몸이 된 드레이크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너! 너!”

브라이언은 주위에서 구경 중이던 플레이어들을 지목했다.

“정의 길드에 가서 신고해. 알몸 변태가 7층에 나타났다고.”

“네, 넵!”

“당장 감옥에 처넣으라고, 브라이언이 직접 부탁했다고 전해. 가라.”

그러자 구경꾼들도 우르르 정의 길드를 부르러 달려갔다.

“자, 그럼.”

혼자 남은 브라이언의 머릿속에 드레이크는 이미 사라졌다.

‘드레이크와 일대일로 붙어서 이겼다고 했겠다? 탑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신규 놈이?’

그의 직업은 ‘뇌신을 섬기는 성전무투가’였다.

“탑 공략으로 바쁘지만, 언제 한 번 붙어보는 것도 괜찮겠군.”

브라이언은 번개를 닮은 미소를 히죽 지어 보였다.

* * *

은혁과 염훈은 조금 늦은 점심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음, 진짜 맛있네.”

두 사람은 광장 근처 노점상의 볶음밥을 입에 쓸어 담다시피 했다.

“은혁아. 밥 먹고 바로 다음 층으로 올라갈 거냐?”

“아니. 그전에 잠깐 정비 시간을 갖자.”

“좋지!”

염훈은, 오늘은 좀 쉬겠구나 싶어서 기뻐했다.

하지만.

‘후후후.’

은혁은 속으로 웃으며, 염훈에게 식사를 더 권했다.

“남기지 말고 꼭꼭 씹어 먹어. 오후 일과도 바쁠 테니까.”

“음? 기껏해야 인벤토리 정리하고 하는 거 아냐?”

“여기저기 좀 더 돌아다녀야 하거든. 탄수화물을 든든히 먹어야지. 그리고…….”

“그, 그리고?”

“사람도 하나 살리고.”

“어? 누구? 어디 환자라도 있어?”

염훈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은혁은 후후 웃을 뿐이었다.

‘날 살려줘야 하거든.’

* * *

은혁과 염훈은 전에 갔던 연금술 상점으로 향했다.

“여긴 또 왜?”

“스탯 잠재력 올리려고.”

최종 목표는 ‘ALL SSS+’였다.

‘포션으로 잠재력 높이는 건 레벨이 낮을 때 해야 효율이 높으니 지금 해야 해.’

은혁이 콧노래를 부르자 염훈이 걱정스러워했다.

“재룟값이 저번처럼 엄청날 텐데.”

“걱정 마. 돈은 있으니까.”

7층을 클리어하고 3,000 골드 가까이 벌었다.

염훈과 반씩 나눴지만 그것만 해도 1,500 골드.

게다가 어젯밤, 은혁은 2,000 골드를 슬롯머신 한 판으로 땄다.

‘돈 되는 히든 루트는 머릿속에 더 있으니, 돈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된다.’

몬스터를 사냥해서 부산물이나 최하급 마정석을 일일이 안 챙기는 것도 그런 이유다.

부산물은 정말 강한 보스급을 잡았을 경우에만 골라 챙겨도 충분했다.

두 사람은 연금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저번과 달리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중에는 은혁과 염훈을 알아보는 이들까지 있었다.

“앗, 저 사람들 좀 봐.”

“저 사람들이 그 신규 2인조야?”

“한 명은 좀 평범해 보이는데?”

“그러게요. 갑옷 입은 근육남은 딱 봐도 강해 보이지만.”

“외모가 다가 아냐. 저 평범해 보이는 놈이, 튜토리얼 때 붉은 허수아비를 혼자서 쓰러뜨린 그놈이래.”

“붉은 허수아비를 혼자? 그거 여럿이 한 번에 덤비는 레이드 연습용 아니었어?”

“그래! 그걸 혼자 처치했다니깐.”

“에이, 그거 뻥 아냐?”

“내 말이 뻥이면, 드레이크 길드가 어떻게 저 두 놈한테 처발렸겠냐.”

연금술 상점 속 플레이어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받은 염훈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은혁은 조금 심드렁한 표정으로 저번에 본 상인 NPC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연금술 작업대 쓰러 왔습니다.”

“앗, 저번에 오셨던 그분!”

상인이 깜짝 놀랐다.

“혹시, 저번에 만드신 포션 제작 공식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상인 NPC의 눈이 반짝였다.

왜냐하면 은혁이 원샷한 뒤, 아주 조금 남은 포션을 몇 방울을 맛봤는데, 소량이었음에도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상인 NPC는 은혁이 남기고 간 재료 리스트를 떠올리고 스스로 만들어 보려 했지만, 재료를 알아도 배합식을 몰랐기에 연신 실패만 했다.

“후후. 그야 당연히 가르쳐 드릴 순 없죠. 귀한 지식이라.”

“히잉…….”

상인 NPC는 체념했다.

더 캐묻거나, 남의 레시피로 몰래 제작을 시도하는 건 연구 길드 윤리 강령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했다.

“자아, 재료나 갖다 주세요.”

“저번과 같은 재료인가요, 손님?”

“아뇨.”

은혁은 심호흡을 했다.

‘조금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해보자.’

“백사의 독이랑 마나 포션, 그리고 과산화 촉매와 소금. 이렇게 네 종류만 가게 안에 있는 거 전부!”

“미쳤구만!!”

염훈과 직원이 동시에 외쳤다.

은혁을 관찰하던 다른 플레이어들도 흠칫 놀라서, 은혁을 품평하던 수군거림이 뚝 그쳤다.

직원과 염훈은 은혁을 말리려 했다.

“백사의 독이라니! 그걸 먹으면 죽어요!”

“야, 은혁아. 비싼 밥 먹고 왜 또 미친 짓을 하려고 그래? 그냥 저번에 만들었던 포션 한 번 더 마시든가!”

둘 다 말렸지만 은혁은 히죽 웃었다.

턱.

대뜸 손을 염훈의 어깨에 얹었다.

“걱정 마, 염훈. 난 널 믿는다.”

“또 뭔 소리야?!”

“오늘 [중급 회복] 말고, 또 스킬 얻지 않았냐?”

은혁은 염훈의 성기사 숙련도에 따른 스킬 습득률을 대략 외우고 있었다.

숙련도에 따라 스킬이 꼭 맞춰서 나오는 건 아니지만, 대략적인 확률은 계산 가능했다.

“그, [중독 치료]랑, 이것저것 새로운 치료계 스킬을 배우긴 했는데.”

그랬다.

은혁이 드레이크 길드를 박살 낼 때, 염훈에게 싸우지 말고 치료만 하라고 했던 이유.

‘회복계 스킬 습득 확률을 높여 주려고!’

절묘하게 [중독 치료]가 뜬 것은 은혁의 계획이 100% 맞아떨어졌다는 뜻이다.

“놀라지 말고 잘 들어라, 염훈.”

“이미 놀랐는데?”

“지금부터 내가 만들 포션은 사실상 맹독에 가까워.”

“이미 알고 있어!”

“왜냐하면 백사의 독이 들어가기 때문이야.”

“사람 말을 들어! 네 설명만 하지 말고, 좀!”

“그러니까 염훈. 네 도움이 필요해.”

“안 도와! 절대 안 도와줘!”

“자, 거기 직원분? 재료 부탁해요.”

은혁은 인벤토리에서 금화를 잔뜩 꺼냈다.

촤르르륵!

황금빛으로, 가게가 일순 환해질 정도였다.

“헉!”

“저게 다 얼마야?”

“아니, 저 사람 신규 플레이어라며?”

“며칠 전에 겨우 튜토리얼을 뚫고 온 인간에 왜 저리 돈이 많아?”

‘흠? 내가 도박장에서 돈을 땄다는 소문은 아직 안 났나?’

회귀 전에는, 은혁 대신 잭팟에 당첨된 사람의 정보가 다음 날 신문에 날 정도로 유명했다.

하지만 은혁이 워낙 조용히 돈만 챙겨서 떠나서인지, 아니면 그곳 지배인이 딴마음을 품어서인지 은혁의 잭팟 소식은 크게 퍼지지 않은 듯했다.

“끄응차.”

상인 NPC가 재료를 모조리 챙겨 왔다.

“고마워요.”

은혁은 연금술 작업대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이번엔 좀 긴장되네.’

은혁이 지금 만들려는 것은, 은혁도 회귀 전 소문으로만 들은 영약이었기 때문이다.

‘평화 길드의 길드장이 젊은 시절, 이 영약을 만들어, 막힌 마력 잠재력을 뚫었다더라.’

회귀 전, 비싼 돈을 주고 산 정보.

하지만 불확실했다.

‘한번 시험해보자!’

달그락, 달그락.

촤악.

은혁은 빠른 손놀림으로 포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꽤 많은 이들이 구경하고 있었지만 은혁의 손놀림을 눈으로 따라가지 못했다.

“오옷.”

“정말 만드는 건가.”

“저 백사의 독은 먹으면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죽는다죠?”

“머리만 하얗게 되는 줄 알아? 피부며, 눈동자도 하얗게 변한다더라!”

플레이어들은 흥미 반 긴장 반 상태에서 수군거렸다.

덜거덕.

주르륵.

-포션 제작에 성공하셨습니다!

한 번에 성공했다.

그래서 왠지 더 불길했다.

“……완성.”

은혁은 심호흡을 했지만.

“우욱.”

냄새부터가 극악했다.

“저 사람 봐. 자기가 만들어 놓고 급 후회하는 표정!”

“그 정도인가!”

“진짜 저건 먹으면 안 됩니다. 먹으면 죽는다에 내 왼쪽 불알을 겁니다.”

“그래도 저 사람이라면 먹을 거야. 분위기가 그래.”

그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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