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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35화 (35/434)

35화 : 오염된 개울가 (1)

레나는 귀여운 얼굴로 뻔뻔하게 답변했다.

“그치만 레나의 계산에 따르면 우리는 이번 레이드에서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은걸. 레나의 계산은 틀림이 없는걸.”

사실 레나만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았다.

혼자 전력을 다했다가, 나머지 부길드장 3인에게 협공을 당하면 그대로 죽어 버리니까.

갑옷이 깨진 워잭조차도, 잔뜩 지치고 다친 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여력이 상당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너처럼 대놓고 힘을 아끼는 건 좀 아니지!!”

브라이언이 재차 소리쳤다.

5층에서 스크린을 통해 보고 있는 플레이어들도 동의했다.

“뭐야, 저 여자!”

“저러고도 부길드장이냐!”

“생긴 건 귀여운 소녀 같이 생겨서는 겁나 얄밉네.”

5층 광장에 야유가 흘러넘쳤다.

“하지만 소득이 있는걸.”

레나가 불쑥 말했다.

“소득이라면?”

“부길드장급 넷이 전력을 다하지 않고 따로따로인 지금으로서는 무리지만, 적절한 구심점이 하나 생기면 그때는 한 방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계산해 냈는걸.”

“으음. 구심점이 생기면, 이라.”

7대 길드 중, 이 자리에 없는 길드는 행복 길드, 평화 길드, 구원 길드였다.

그들 정도가 아니면 제멋대로인 이들에게 새로운 구심점이 생기긴 어렵다.

“그들은 회의장에도 잘 나타나질 않거니와, 오늘 우리도 어렵게 합의를 이룬 걸 감안하면…….”

“다른 방법도 있어.”

레나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 중, 뜻 있는 사람이 부길드장급으로 강해지면 되는 거얌.”

스크린 전체에 레나의 얼굴이 꽉 찼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진지한 동그란 눈으로 말했다.

“7대 길드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긴 어려워. 결국, 7대 길드에 속하지 않은 자들 중에 우리만큼 강한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거야. 레나는 그렇게 생각해.”

레나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척 가리켰다.

“그러니 10층 이하에서 놀고 있는 플레이어들! 노동하듯 사냥하지 말고, 좀 더 진취적으로 높은 층에 도전할 것! 레나의 계산대로라면 여러분은 가능해! 할 수 있어!!”

레나의 진지한 목소리가 묘하게 플레이어들을 감동시켰다.

그 순간.

“이보시오, 레나! 당신은 화산룡과의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도 않았으면서 뭘 혼자 카메라를 독차지하는 거요!”

“워잭 말이 맞아. 여태 놀다가 혼자서 막판에 감동적인 소리하면 되냐?!”

“나도 동의해야겠군. 레나? 당신은 전투에 참가 안 했으니 공략 방송 후원금에서 당신 몫은 없소.”

워잭, 브라이언, 테일러가 한마디씩 하자 레나는 울상을 지었다.

“흑흑. 다들 레나만 싫어해. 레나, 카메라 앞에서 울 거야.”

“울거나 말거나!”

네 사람은 전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서로 티격태격했다.

그 순간.

두두두두……!

바닥이 크게 떨렸다.

“아?”

“이런!”

콰콰쾅!!

땅 밑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화산룡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부길드장들이 물러난 사이, 몸을 회복시키고, 땅 밑의 용암을 헤엄쳐 온 뒤 바닥에서부터 뚫고 올라온 것이다.

그때였다.

“좋아, 바로 지금!!”

레나의 눈이 번뜩였다.

‘[조인트 마인드].’

레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또한 작전의 일부였다.

정신 공유 주문으로 작전을 전달했다.

‘우리들이 방심이 최고점에 이른 직후! 바로 지금이 기회야!’

나머지 세 명의 부길드장들도 레나의 작전을 깨달았다.

방심이 극에 달해서 공격당하는 순간, 티격태격할 틈도 없어지는 이 순간이 구심점이 되어줬다.

그들은 레나에게 전달받은 작전을 수행했다.

1단계는 워잭이 수행했다.

“[강타]!!”

콰콰쾅!!

대지를 가르는 듯한 공격이, 바닥을 뚫고 나온 화산룡의 기세를 죽였다.

“[뇌신 강림]!! 블릿츠 데바여! 오소서!!!”

블릿츠 데바의 화신으로 변한 브라이언은 성전무투가라는 희귀 승급 직업인답게 연속 공격을 먹였다.

퍼버버버버버벅!!!

뇌신의 힘이 깃든 연속 공격은 용암으로 회복한 화산룡의 비늘을 증발시켰다.

“크으, 지친다.”

[뇌신 강림]의 지속 시간은 짧은 데다가 반동이 컸다.

그런 브라이언의 뒤에 테일러가 바싹 붙어 다음 스킬을 날렸다.

“[슬로우].”

감속 주문을 썼다.

부길드장이 쓰는 것치곤 평범한 스킬 같았지만.

우뚝…….

화산룡과 그 주변의 용암의 흐름까지 느려졌다.

거의 정지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걸 보고 있는 5층의 구경꾼들은 경악했다.

“말도 안 돼.”

“드래곤은 마법 저항력이 높아서 저런 식으로 디버프를 거는 건 불가능할 텐데?!”

5층 사람들의 경악을 아는지 모르는지 테일러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머니가 가벼워졌군.’

그는 금화를 소모시켜서 주문의 위력과 성공률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마무리 부탁하네, 레나.”

“레나한테 맡겨둬!”

쩌저적…….

레나가 선 곳 주변에는 이미 서리가 내리고, 바닥에서 고드름이 위로 솟고 있었다.

남들이 싸우는 동안 모은 마력을 이번의 큰 주문 한 방으로 모조리 쏟아낼 생각이었다.

구구구구구궁……!!

그녀의 양손에 냉기의 에센스가 응축되었고, 그녀는 워잭의 어깨를 밟고 뛰어올랐다.

“[프로스트 소울]!!!”

그녀는 화산룡의 머리를 향해 스킬을 날렸다.

번쩍!!!

푸른 섬광의 위력은 엄청나서, 5층에서 스크린으로 보는 이들의 눈이 시려 올 정도였다.

화아아아악……!!!

냉기의 정수가 드래곤의 머리통을 통째로 얼렸다.

그리고.

투툭.

투투툭.

얼어붙은 화산룡의 머리가 얼음 조각으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슬로우]가 곧 해제될 걸세. 마무리는 동시에 하세나.”

테일러가 모처럼 공정하게 제안했다.

그러자 워잭, 브라이언, 레나가 가세해서 함께 기본기로 막타를 먹였다.

퍼버벅!

쩌저적!!

와장창……!!

화산룡의 머리가 깨져 나가고, 59층의 메인 미션은 클리어되었다.

“와아아아아!!!”

5층 광장의 플레이어들이 환호했다.

“깼다! 정말로 깼어!!”

“역시 부길드장끼리 힘을 합치니까 되는구만!!”

마침내 길드연합국이 59층의 벽을 뚫는 순간이었다.

59층의 부길드장들은 여전히 살라맨더들과 싸우는 부하들을 수습했다.

“좋아! 게이트를 찾으러 가자!”

워잭이 외쳤다.

59층의 게이트 미션은 3군주 세력이 이미 클리어하고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3군주 세력은 길드연합국과는 완전히 다른 집단이고 관리국이 그 사실을 인정했기에, 59층부터는 길드연합국 측에서도 추가로 게이트를 찾고, 게이트 미션을 클리어 해야만 했다.

플레이어들이 게이트를 찾아 나선 그 순간.

화면이 뚝 그쳤다.

-오늘의 영상은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어둡게 변했던 광장 하늘도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광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아, 정말 잘 봤다.”

“레벨이 높고 숙련도가 높아지면 우리도 저렇게 강해질 수 있으려나?”

“판판이 노는 것 같아도, 결국은 부길드장들이 해내는구만.”

“왠지 의욕이 솟는다!”

“좋아, 나도 간다! 단숨에 59층에 갈 수는 없어도 일단 오른다!!”

플레이어들이 게이트를 이용해 올라갔다.

한동안 막혀 있던 59층을 다른 이들이 뚫었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용기를 준 것이다.

“그럼 우리도 갈까, 염훈?”

“부럽다…….”

염훈도 흥분한 상태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은혁아.”

“응?”

“우리도 저 사람들처럼 방송할 수 있냐?”

“엥? 후원금 받고 싶어서?”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염훈은 진지하게 손짓 발짓 해가며 변명을 시작했다.

“뭐랄까, 내가 100층탑에 들어온 뒤로 나만의 삶의 목표라든가 그런 게 없었거든? 막연히 너와 함께 100층에 가면 좋겠다~ 정도였을 뿐.”

“음, 그런데?”

“근데 방금 방송 보니까 왠지 가슴이 뜨거워지는데.”

“흠.”

실제로 염훈은 층수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성기사답게 약자를 보호하고 악인을 혐오하는 성격으로 변해간다.

“돈이나 명성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역할을 맡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말하면서 염훈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은혁은 혼자 생각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좋은 놈이라니깐.’

“방송을 하려면 5층 방송국의 방송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꼭 길드를 설립해야 해.”

그래서 치킨좋아도 작게나마 길드를 꾸린 것이다.

“방송 채널 개설료도 꽤 들지만, 지금 시작하는 건 솔직히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은혁은 찬찬히 설명했다.

‘게다가 나는 회귀자라서 지금은 더더욱 안 된다.’

회귀 지식을 통해 승승장구하는 게 카메라로 낱낱이 송출되는 건 무척 껄끄러운 일이다.

“아, 나도 당장 방송 열자고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우리도 높은 층에 올라가면, 저 7대 길드의 부길드장처럼 강해지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건 가능하겠지?”

“물론. 그 정도가 되면 우린 따로 카메라맨 구하지 않아도, 방금 우리가 본 것처럼 방송국에서 알아서 취재 요청을 해온다.”

실제로 방금 본 방송도, 4대 길드 소속 카메라맨이 아니라 5층 중앙 방송국에서 취재 요청을 하고 붙은 카메라맨에 의해 촬영된 것이었다.

“좋아! 의욕이 더 생겼다!”

은혁과 함께 100층탑을 더 빠르게 올라갈 동기가 부여됐다.

‘역시 함께 방송 보길 잘했어.’

은혁 또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바로 9층으로 올라갈까!”

“물론!”

* * *

-9층 : 오염된 개울가.

9층은 필드와 던전으로 구성된 층이었다.

오염된 개울가가 펼쳐진 필드.

오염물을 토해내는 공장 형태의 던전.

기괴하게 변한, 오염된 고블린 같은 몬스터만 등장했다.

죽여 봤자 독극물을 뿜어내며 죽기 때문에, 8층의 홉고블린보다 덩치는 작아도 더 성가셨다.

플레이어는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오래 있지 못했다.

“우웁. 더는 못 있겠다.”

독가스가 곳곳에 깔려 있어서 호흡조차 쉽지 않았다.

공기 정화 스킬이 있는 성직자나 드루이드가 있는 파티만이 그나마 견뎠다.

“어휴, 이래서 7층 던전에 사람들이 사냥하러 몰리는 거구나.”

플레이어들이 막막해하는 순간, 미션창이 떴다.

<9층 메인 미션 : 공장 셧다운.>

-목표 : 9층의 공기와 수질을 오염시키는 공장을 30분 이상 중단시킬 것.

-성공 시 보너스 : 100골드 획득. 또는 24시간 동안 공장의 소유권 획득. 둘 중 하나를 선택.

-실패 시 페널티 : 24시간 동안 재도전 불가능.

-제한 시간 : 없음.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공장의 기능을 30분간 정지시키면 클리어였다.

보스 몬스터인 공장장을 처치하거나, 공장을 통째로 때려 부수는 등의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공장 주변에 고블린 경비대가 우글거려서 쉽지 않았고, 오염된 대기 환경 때문에 어려웠다.

사냥해서 얻을 수 있는 사체나 마정석도 시원찮고, 미션 보상금도 그저 그렇기에, 대부분 메인 미션만 빨리 깨고 다음 층으로 넘어가는 층이었다.

“9층 메인 미션 관심 있으신 분들 모두 여기로 오세요.”

공기 정화 장치가 여러 개 달린 캠프 앞에서 사람들이 외쳤다.

캠프에는 자유시장 길드의 깃발이 꽂혀 있는 것도 있고, 상승 길드나 정의 길드의 깃발이 꽂힌 것도 있었다.

7대 길드의 공략 도우미들이다.

돈을 받고 공략을 돕는 일을 한다.

7층에서 자릿세를 강제로 뜯어내던 드레이크 길드에 비하면 무척 양심적이고, 또 안전했다.

“저희는 자유시장, 상승, 정의 길드 연합의 공략 도우미입니다!”

“9층 공략 막막하신 분들! 이리 오세요!”

“자유시장 길드 소속의, 부감독급 가이드가 직접 동행하며 공략을 돕습니다!”

7대 길드의 마크는 신뢰도가 높아서, 꽤 많은 이들이 그곳으로 갔다.

특히, 많은 이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었다.

‘가브리엘을 섬기는 성직자 올리버.’

그가 공략대의 대장이었다.

올리버는 한때, 자유시장 길드 1군 공략대의 부감독이었다.

하지만 최근, 남들이 맡기 싫어하는 힘든 지역에서 일하고 싶어했기에 스스로 9층의 연합 공략대를 이끌었다.

길드원 비길드원 가리지 않고 잘 이끌어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공략대에 참가합니다.”

“저희도요.”

많은 이들이 올리버가 이끄는 공략대에 참가했다.

올리버의 부하들이 공략 희망자들을 텐트 안으로 인솔했다.

그걸 보며 올리버의 부관 두 명이 잡담을 나눴다.

“오늘따라 유난히 참가자들이 많군요.”

“후후. 방금 5층에서 59층 공략 방송이 있었다네요. 그거 보고 자극받은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올라온 거죠.”

“그건 좋은데, 유난히 여기로 많이 몰려서 캠프가 터질 지경이군요.”

“뭐, 방문자의 거의 99%가 여기 오죠. 워낙 유독 가스가 심하니까…….”

“후후. 초짜들은 당혹스럽겠죠. 몬스터랑 피 튀기면서 싸우는 거에 막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갑자기 독가스 자욱한 층이 나왔으니.”

“독가스 대항책을 가진 저희 공략대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겠죠.”

9층 연합 공략대의 부관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모든 건 우리들의 올리버 대장님 덕분이죠.”

“맞아요, 맞아. 자유시장, 상승, 정의 길드 세 곳이 모두 인정할 정도의 인품, 거기에 참가자들의 수요를 헤아릴 정도의 지성까지.”

두 사람은 올리버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느라 입에서 침이 마를 지경이었다.

“자, 그럼 인원도 다 모인 것 같으니 올리버 님을 부르러 갑시…….”

그때, 올리버의 천막이 거칠게 젖혀졌다.

“앗, 올리버 대장님.”

올리버는 짧은 녹색 머리에 안경을 쓴 청년이었다.

올리버는 매서운 눈으로 밖의 오염된 개울을 노려봤다.

“저것들이지?”

“네?”

“저기 두 놈 말이야. 저 두 놈이 강은혁과 염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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