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 오염된 개울가 (2)
“아……!”
부관들이 자세히 살펴보니, 염훈과 은혁이 개울가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뭔가를 하느라 바빴다.
성기사인 염훈은 개울가에서 뭔가를 찾더니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 왕건이다!”
“쩝, 또 허탕이네.”
“그러게 그림자로 꼼수 쓰지 말고 제대로 주워.”
“칫.”
개울 속에서 뭔가를 줍는 듯했으나, 반쯤은 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저 개울물, 저거 다 독물인데.”
“독에 중독되지도 않나 봐요……?”
두 부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염훈이야 [정화]의 달인이었고, 은혁은 8층에서 얻은 그린 링 때문에 일반적인 독에는 100% 저항력을 갖추고 있었다.
“으음.”
올리버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부관 두 명은 얼른 눈치를 살폈다.
‘왜 화를 내실까?’
‘그러게요. 저 사람들이 너무 유유자적하게 개울에서 놀아서?’
‘그런 것 가지고 화내시는 분이 아니잖아요.’
두 부관은 눈짓으로 대화를 나눴으나, 무엇이 올리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따라와.”
올리버는 자기 자신에게 [정화] 스킬을 걸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부관 두 명은 황급히 뒤를 따랐다.
* * *
첨벙첨벙!
은혁과 염훈은 오염된 개울에서 열심히 뭔가를 찾고 있었다.
“찾았다!”
염훈이 검은 조약돌 비슷한 걸 들어 올렸다.
오염된 마정석이었다.
훗날 검은 마정석이라 불리게 될 이 물건은 일반 마정석과 달리 마력 기관을 운용하거나 연금술을 다룰 때는 쓸모가 없었다.
단, 은혁이 만들고자 하는 세븐칼리버의 메인 프레임 업그레이드에 꼭 필요했다.
‘파이늄 금속을 블랙 파이늄으로 빠르게 재연성하려면 오염된 마정석이 꼭 필요해.’
은혁이 원하는 건 변신하는 마검이었기에 블랙 파이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은혁과 염훈은 오염된 개울가의 바닥에서 오염된 마정석을 하나씩 골라내고 있었다.
“자, 내놔.”
은혁이 손을 뻗자, 염훈이 역으로 손을 뻗었다.
“너야말로.”
“쳇.”
은혁은 금화를 3개 염훈에게 던져줬다.
염훈도 오염된 마정석을 건네줬다.
“오염된 마정석을 하나 주울 때마다 금화를 3개씩 개꿀! 이러다 너 빈털터리 되는 거 아니냐, 은혁아. 크크.”
“자만하지 마라.”
“이대로 널 파산시켜주지. 후후.”
“자만할 시간에 더 열심히 주워.”
은혁이 타박을 주면서 [그림자 지배]를 발동했다.
그리고 [그림자 망토]로 연계해서는, 자기 그림자를 그물처럼 넓게 뿌리더니.
“합!”
단숨에 건져 올렸다.
촤아악……!
그림자에서 물만 빠지고 작은 돌 알갱이만 남았다.
“에이, 그냥 돌멩이뿐이네.”
은혁은 허탕친 돌멩이는 개울 밖으로 휙 던졌다.
“앗, 나는 또 하나 발견!”
첨벙!
염훈이 오염된 마정석을 들어 보였다.
“햐, 그러고 보니 너 성기사였지.”
은혁은 자신이 작은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신성한 오러].’
염훈은 그걸 눈에 걸고 있으니 오염된 마정석을 은혁보다 쉽게 골라낼 수 있었다.
그때였다.
“크워어……!”
“크우우……!”
개울가 저편에서 고블린 정찰병들이 다가왔다.
하지만 고블린 특유의 재빠름은 온데간데없고, 좀비처럼 느렸다.
“야, 강은혁. 고블린 새끼들 또 온다.”
“쩝, 너는 마저 주워라. 내가 처리할 테니까.”
그 순간.
콰콰쾅!!
어디선가 날아온 마법에 오염된 고블린들이 모조리 처치되었다.
“어?”
연기가 걷힌 곳에서 올리버와 방금 마법을 쓴 부관 두 명이 걸어왔다.
염훈은 즉시 검을 뽑을 기세였지만.
“괜찮아, 염훈.”
“아는 인간이야?”
“들어서 알지.”
‘올리버.’
자유시장 길드 1군 공격대의 전 부감독.
부감독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부감독 대우를 받고 있으며, 지금은 9층 연합 공략대의 대장이다.
전투력은 지금의 은혁보다는 약했지만, 자유시장 길드 소속치고는 인격이 괜찮은 편이었고, 인망이 두터운 편이었다.
“무슨 장난을 하고 있는 겁니까?”
올리버가 물었다.
“아니, 장난이 아니라…….”
염훈이 말하려 했지만 은혁이 이번에도 입을 틀어막았다.
그 순간.
콰직.
“악?!”
“후후. 입틀막을 하도 많이 당해서 이젠 깨물기로 했다.”
“크으, 떠들고 싶으면 맘대로 떠들어라.”
은혁은 깨물린 손가락을 털면서, 가끔은 염훈이 하고 싶은 대로 맘껏 떠들게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뭘 하고 있었건 간에 사실 크게 궁금했던 건 아니고.”
올리버가 말했다.
‘우린 궁금한데.’
‘그러게요.’
두 부관은 표정으로만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 보게 되면 꼭 한마디 해주고 싶었던 게 있습니다.”
염훈은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은혁을 돌아봤지만, 은혁은 네가 상대해도 좋다는 식의 손짓만 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염훈이 응대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7대 길드를 깔보지 말라는 겁니다.”
“음……? 딱히 깔본 적 없는데.”
“웃기는 소리!”
올리버가 발끈했다.
“당신들! 우리 자유시장 길드의 부길드장, 테일러 님을 기억합니까?”
“아, 금화로 막 시간 조작하던 사람? 그 사람이 뭐 어쨌다는 겁니까?”
“하! 위대한 부길드장님께서 직접 길드 가입을 권유했는데도 오만하게 거절했다죠?”
올리버의 말투에는 깔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염훈도 말투가 조금 변했다.
“거절한 게 맞긴 한데, 딱히 오만하게 거절한 적은 없는데.”
“이보세요! 테일러 님이 직접 가서 권유한 거잖습니까! 그걸 면전에서 거절했으면 그게 무례입니다!”
“아니, 우리가 그 사람을 불러낸 다음 거절한 게 아니라, 그 인간이 먼저 우리 있는 곳에 찾아왔대도?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지. 왜 우리 있는 곳에 일부러 와서 시비야? 그게 무례 아닌가.”
“으음.”
올리버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부관들이 보는 앞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특히 저놈 표정이 맘에 안 들어!’
염훈의 표정뿐만 아니라, 그 뒤의 은혁의 표정이 더 마음에 안 들었다.
은혁의 표정은 염훈의 말대꾸를 무척 대견해하는 표정이었다.
‘더 짜증 나!’
그래서 좀 치졸하지만 말투를 트집 잡았다.
“무례라고 했죠? 하! 무례 이야기 나와서 말입니다만, 그쪽도 아까부터 멋대로 반말로 응대하고 있잖습니까. 그것도 무례입니다만.”
“풉! 대범한 존댓말 캐릭터인 척하더니만 그거 신경 쓰고 있었나? 그럼 아예 내가 반말 시작할 때 ‘반말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면 될 거 아냐? 말빨에서 밀리니까 당신 말투도 무례하다~ 라는 식으로 물타기 해서 체면치레하려는 꼴이 우습군.”
“이, 이익……!”
올리버의 얼굴이 아주 조금 붉어졌다.
머리카락이 녹색이라 그런지 붉어진 게 눈에 확 띄었다.
‘안 되겠다. 우리가 나섭시다.’
‘그러십시다.’
올리버의 부관들이 스윽 나섰다.
“정말 무례하시군요!”
“정말 경우 없는 분이시군요!”
올리버의 부관들도, 자유시장 길드원치고는 나름 인망이 높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상관을 모욕하는 염훈을 보고 둘 수는 없었다.
“당신들은 또 뭐야? 쌍둥이처럼 생겨가지고는.”
염훈이 피식 웃자, 두 부관은 그 틈을 치고 나갔다.
“우리 외모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올리버 님의 명예를 훼손한 당신의 언행입니다!”
“즉각 사과하십시오!”
“그렇잖으면 참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염훈은 정말로 화가 났다.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은혁과 개울가에서 오염된 마정석 채집 중인데, 갑자기 끼어들어서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시키고 있었다.
‘아이씨, 강은혁한테 미안하네.’
은혁은 조만간 신규 플레이어 랭킹 1위 자리를 탈환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런데 이상한 녀석들과 엮이고 말았다.
그러자 은혁이 피식 웃었다.
‘염훈 녀석. 날 신경 쓰느라 큰 소리를 내지르지 못하고 있구만.’
그 와중에도 말싸움은 이어졌다.
“즉각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야!!”
참던 염훈이 확 소리쳤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다른 플레이어들도 정화통 달린 캠프의 창문으로 돌아볼 정도였다.
“당신네 상관하고 대화 중인데, 부하들인 당신네들이 왜 끼어들어서 일을 키우는 거야? 썩 비켜!!”
“못 비킵니다!”
부관들이 강성하게 나서자, 정작 말싸움을 시작한 올리버도 주춤했다.
‘이 부관 녀석들 왜 일을 키워!’
올리버가 원한 것은, 테일러 부길드장의 명예를 위해 따끔하게 한마디 해준 뒤 물러나는 것.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우린 올리버 님의 부관! 그러니 올리버 님의 명예가 곧 우리 명예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왔다.
“흠. 그거, 흘려들을 수 없는 소리군요.”
뒤에서 구경하던 은혁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저 또한 염훈의 친구이니, 염훈의 명예가 곧 제 명예입니다. 저도 개입해야겠군요.”
은혁은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 녀석들이 적당히 하고 물러나면 50점. 이 녀석들과 [계약 대결]까지 엮어서 써먹을 수 있으면 100점인데.’
은혁은 올리버의 성격을 대충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크게 엮일 일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올리버의 인품이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속한 길드에 대한 충성도가 좀 지나치게 높을 뿐, 자유시장 길드원치고는 돈에 그렇게 목을 매는 타입도 아니었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지만 여기서는 나랑 엮여줘야겠다.’
“하지만 우리 모두 바쁜 사람들이고, 플레이어 간 싸움이 커지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렇지요?”
은혁은 겉으로는 싸움을 말리는 사람인 척했다.
하지만 이다음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 빨리 정리하죠. 일단, 우리는 자유시장 길드의 테일러 부길드장님과는 완만하게 합의를 봤습니다. 근데 뒤늦게 하급자인 당신들이 나서서 명예를 지키느니 마느니 하시니 좀 웃기는군요. 과잉 충성은 외부인이 볼 때 웃길 뿐입니다.”
은혁의 표현에 올리버는 이를 악물었고, 올리버의 부하들은 펄쩍 뛰었다.
“뭐, 뭐라고요?!”
“비겁하게 팩트로 때리냐!!”
“게다가 당신들은 다른 플레이어들 모아서 공략팀 운영하는 쪽 아닙니까? 지휘부에 속한 사람들이 우르르 와서 우릴 방해하니, 본분을 상실한 쪽은 여러분이죠.”
은혁의 말은 아주 올리버의 가슴을 후벼 팠다.
하지만 은혁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본전도 못 찾는 기분이지만 하는 수 없지. 일단 물러나자.’
올리버가 뒤늦게라도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는 기색을 본 은혁은 좀 더 도발하기로 했다.
“이제 가십쇼. 일을 더 키우는 대신 그냥 보내드릴 테니, 여러분은 여러분 할 일이나 하시죠.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머릿수로 미션 깨는 거 말입니다.”
올리버의 얼굴이 다시 확 붉어졌다.
“우리가 하는 일을 무시하는 겁니까! 머릿수로 몰려다닌다고 폄하하지 마십쇼!”
“머릿수로 미션 깨는 건 사실이잖습니까.”
“생존률을 높이는 지혜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백지장 하나 옮기는 데 수십 명씩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효율이 너무 낮죠. 자유시장 길드면 좀 효율을 중시해야 하지 않나요?”
은혁이 캠프를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공기 정화 장치가 달린 캠프에서 공략 준비 중인 플레이어들은 반투명한 창문을 통해 은혁과 올리버의 말다툼을 보고 있었다.
올리버는 캠프를 등 뒤에 둔 상태였기에 그 사실도 모른 채 언성을 높였다.
“이제 겨우 9층에 올라온 주제에 너무 오만하군요!”
올리버는 19층까지 이미 클리어했다.
9층에 머무는 이유는, 남들 하기 싫어하는 독가스 층에 머물며 저렴한 값에 다른 이들의 공략을 돕기 위해서였다.
오히려 가성비로 따졌을 때 매우 훌륭한 일이다.
그것을 은혁은 폄하했고, 올리버는 물러날 수 없었다.
“흠, 그럼 내기할까요?”
은혁은 내기를 입에 올렸다.
내기라는 단어를 꺼내자, 올리버는 덥석 물었다.
“내기? 무슨 내기요!”
“오늘, 9층을 어느 팀이 먼저 공략하나를 걸고 내기하죠.”
“훗.”
올리버가 갑자기 허리에 손을 얹고는 비웃었다.
“저기요. 9층 공략대를 이끄는 게 제 직업이거든요?”
“그래서요?”
“뭐가 그래서입니까? 9층 메인 미션 공략 횟수로만 따지면 우리 길드장님보다 더 많다고요!”
메인 미션은 1인당 1회가 기본이었지만, 추가 보상을 받지 못하는 대신 여러 번 클리어 가능한 미션이 있었다.
9층 메인 미션이 그러했고, 올리버의 미션 클리어 횟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등반 가이드가 등반객보다 산에 대해 더 잘 아는 법!’
왜냐하면 등반 가이드는 거의 매일 산을 타므로.
올리버는 말하자면 9층 담당 최고의, 최대 등반 횟수를 지닌 등반 가이드나 다름없었다.
‘그런 나한테 9층 메인 미션을 누가 먼저 깨느냐~ 가지고 내기를 걸어? 웃기는군.’
올리버는 그런 자신감을 담아 은혁에게 서툰 도전은 삼가라고 했다.
은혁은 은혁 대로 웃었다.
“그럼 선의의 경쟁을 제안해도 거절하지 않으시겠군요?”
“뭐요?”
선의의 경쟁이라는 표현이 또다시 올리버의 신경을 건드렸다.
웅성웅성…….
어느새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