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 레나와의 대결 (2)
쿠쿠쿵……!
공장의 소음보다 더 큰 격돌음이 울려 퍼졌다.
공장 내부에서는 은혁이 주고 간 설계도와 설명서대로 세븐 칼리버 제작이 한창이었다.
“와씨, 지금이라도 내가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냐?”
염훈이 발을 동동 굴렀다.
제작을 주도하는 제인과 낸시에 비해 염훈이 할 일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가만히 보고만 있지 말고 [중급 치유]나 좀 걸어 줘!”
낸시가 소리쳤다.
무리해서 일하다 보니 체력이 확 깎여 나가는 중이었다.
“여기에는 [광역 정화] 스킬 좀!”
제인도 소리쳤다.
공정 작업은 마무리 단계였고, 키워드만 외치면 칼은 변신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즉, 마무리 단계.
하지만 마무리 단계가 가장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제기랄. 강은혁 이 녀석은 굳이 멀쩡한 무기 두 개를 하나로 합친다고 이 난리람?”
염훈이 푸념하자 의외로 제인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첫째. 무기 가변 시스템은 그 자체로 범용성이 높아지니까. 둘째. 그래야 위력이 강해지니까.”
여러 무기를 하나로 합치는 이유는 휴대의 편함 때문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무기를 하나로 합칠 때 시너지 효과로 인해 각 무기의 위력과 내구도가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무기 두 개를 합치면 20%, 세 개를 합치면 30%…… 이런 식으로 효율이 증가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진짜 보면 볼수록 대단해…….”
제인만이 세븐 칼리버의 가치를 깨닫고 연신 감탄했다.
처음 보는 설계도인데도 보자마자 전부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마치, 미래의 내가 이걸 제작하고, 타임머신을 통해 과거의 내가 읽는 듯한 기분이야. 그 정도로 말이 안 되는 기분이라니!”
그녀의 기분은 놀랍게도 사실에 가까웠다.
쿠쿠쿵……!
콰쾅……!
연신 격돌음이 울려 퍼졌다.
‘완성되면 바로 들고 튀어 나가야겠군.’
일대일 대결이지만, 무기를 전해주는 것은 반칙이 아닐 터였다.
‘더 빨리! 더 빨리 만들어!’
염훈은 생각했다.
* * *
‘더 천천히 만들어도 된다.’
은혁은 생각했다.
‘아직 밑천이 다 드러나지 않았거든.’
-전사 숙련도가 2% 상승했습니다!
-현재 전사 숙련도 : 12%+.
전사 숙련도가 낮아진 게 아니다.
은혁은 전사 숙련도를 100% 꽉 채우고, 2차 각성에 돌입했다.
2차 각성 선택지에서 등급 올리기를 택했다.
‘전사, 마법사 직업은 2차 각성에 도달했다.’
덕분에 스탯 잠재력도 올랐다.
현재 은혁의 스탯창은 다음과 같다.
<강은혁의 스탯창>
레벨 : 28.
근력 : B. 체력 : B+.
속력 : A-. 의지력 : S-.
마력 : S-. 매력 : B-.
본성 : [독식하는 자]. [은근히 싸움을 즐기는 자]. [회귀자].
계약 성좌 : 없음.
직업 : 못 하는 게 없음(모든 직업의 가능성).
E+급 직업 ‘노력하는 전사’ (숙련도 : 12%+). (2차 각성으로 등급 1회 상승시킴.)
A+급 직업 ‘화염을 지배하는 마법사’ (숙련도 : 5%+). (2차 각성으로 등급 1회 상승시킴.)
S급 직업 ‘그림자를 지배하는 도적’ (숙련도 : 93%).
무등급 직업 ‘무기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대장장이’ (숙련도 : 30%).
C+급 직업 ‘돌진하는 무투가’ (숙련도 : 78%).
부길드장급과의 목숨을 건 대련은, 은혁의 숙련도 상승 폭을 미친 듯이 증가시켰다.
‘전투 중에 2차 각성을 두 번이나 하다니. 레벨 격차가 커서 그런가 엄청 미친 듯이 오르네.’
전사와 마법사의 등급을 올렸고, 위력이 대폭 상승했다.
2차 각성의 상징으로 숙련도에 + 표시가 붙었다.
물론, 그 대가는 비쌌다.
“쿨럭, 쿨럭.”
은혁의 오른쪽 옆구리에는 [네버 멜팅 아이스] 주문으로 생성된 고드름이 박혀 있었다.
왼쪽 골반과 무릎에는 [빙결 저주]가 걸려서 끊임없이 얼어붙고 있었다.
손발의 동상도 심각해서 힐링 포션을 적신 붕대로 감았는데, 그 힐링 포션이 수시로 얼어붙어서 [화염 방패] 주문을 양손에 걸어줘야 했다.
얼어 죽은 시체보다 처참한 몰골이었다.
-설마 강은혁이 지나?
-죽을 거 같은데? 너무 많이 맞음.
-죽는 건 아니고 연구 길드에 끌려가겠죠?
-끌려가면 어떻게 됨?
-부하가 되도록 ‘설득’하겠지, 뭐.
-7대 길드 부길드장 놈들. 5층의 질서를 유지하는 척하면서, 정작 다른 층에서는 개깡패짓 한다니깐?
-ㅋㅋㅋ. 위엣놈 용감하네. 7대 길드를 욕하다니.
시청자들은 은혁이 할 수 있는 건 버티기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표정에 여유가 있네?”
레나가 진심으로 신기해했다.
“마치, 싸우다 보면 이 정도로 엉망이 되리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아.”
‘정답.’
은혁은 씨익 웃었다.
세븐 칼리버까지 갖춘 뒤 기회를 봐서 7대 길드의 부길드장과 실력을 겨루는 게 플랜 A.
이 경우는 플랜 B이지만 이것도 은혁의 예상 범주 내였다.
‘플랜 B의 핵심은 얻어터지더라도, 압도적으로 강한 적과 싸우면서 숙련도를 고속으로 올리는 것.’
물론, 너무 얻어터지다간 그대로 얻어터져서 죽는 수가 있지만, 은혁은 회귀 전에 99층에 노력과 근성으로 도달한 몸이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사는 구간과, 정말 그대로 죽어 버리는 구간의 얇은 선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잘 알았다.
“[봉황각].”
은혁은 싸우면서 익힌 무투가 스킬을 허공에 썼다.
파삭!
은혁의 왼쪽 다리의 얼음이 부서지면서, 다리에도 크게 상처가 생겼다.
피가 흐르며, [빙결 저주]가 일시적으로 풀렸다.
“[디스펠].”
그리고 공용 마법사 스킬로 [빙결 저주]를 해제했다.
레나가 빙긋 웃었다.
“제법이네? [빙결 저주] 푸는 법도 알고.”
[빙결 저주]를 풀려면, 저주가 걸린 부위를 제거한 뒤 [디스펠]로 해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은혁은 발차기 스킬인 [봉황각]을 대뜸 허공에 써서 자기 왼쪽 골반과 무릎을 부수고, 그 직후 [디스펠]을 쓴 것이다.
레나는 은혁을 분석했다.
“지능적으로 싸우는 주제에 치명상을 입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 손익 계산을 하면서 싸우는 주제에 싸움 그 자체를 즐기는 타입…….”
레나의 분석을 들은 은혁은 히죽 웃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엄청 모순적인 타입은 오랜만이네. 마치 행복 길드의 길드장 같아.”
레나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야.”
레나가 양손에 머금은 [빙결 저주]를 하나로 합쳤다.
‘[즉각 빙결의 룬]인가.’
레나의 양손에서 만들어진 룬에 닿으면, 그 순간 온몸이 완전히 얼어붙는다.
즉시 얼어붙으므로 버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이 한 방으로 마무리 지을게. 싸우면서 강해지는 타입이랑 계속 싸우기는 불안하니까.”
“기대되는군요.”
“응! 다음에 눈을 뜨면, 연구 길드의 실험실 속일 거야. 거기서 길드 가입 열심히 권유할 테니까 잘 부탁해!”
“무의미합니다.”
“뭐가?”
“아무리 열심히 권유해도 연구 길드에는 가입 안 합니다.”
“어째서?”
“그건 말이죠.”
타앗!
은혁은 말하는 척하며, 레나의 빈틈을 노렸다.
‘[섬영권]으로 턱 끝을 노린다!’
대화 도중의 방심을 이용한, 작은 무투가 기술로 끝을 보기로 했다.
하지만.
“실망이야.”
투확!
레나는 양손의 [즉각 빙결의 룬]을 강하게 움켜쥐며 과부하를 걸었다.
화악!
룬이 터지고 냉기가 방출됐다.
“웃!”
[즉각 빙결의 룬]을 직접 은혁의 몸에 닿게 하는 대신, 룬을 강제로 터뜨려서 냉기만 분사하는 기법이었다.
촤아악!
쩌저저적……!!
은혁의 왼팔이 닿아서 얼어붙었다.
‘위험!!’
은혁은 청염백광단검의 칼날을 승화시킨 뒤, 왼팔을 통째로 잘랐다.
서걱!
털썩!
‘크으! 아프다. 이건 진짜 아파.’
은혁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마법사 스킬 [명상]과 무투가 패시브 스킬 [통각 제어]를 중첩시킨 덕분에, 그나마 팔이 잘린 것치고는 아픔이 덜했다.
레나는 기막혀했다.
“진짜 특이하네. 얼음이 더 퍼지기 전에 자기 팔을 스스로 잘라낸 거?”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어도 온몸이 얼어붙을 것을 미리 잘라서 막았다.
자기 스킬을 아는 레나 자신도 해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의 판단력과 순발력이었다.
“청염백광단검이 없었으면 큰일 났겠군…….”
은혁이 조용히 읊조렸다.
초고열의 칼날이었으니 망정이지, 어중간하게 날카로운 장검이었다면 제때 팔을 자르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을 바꿔야 할지도.”
레나의 목소리에 살기가 깃들었다.
“[즉각 빙결의 룬]까지 견디는 너를 보니, 내 처음 생각이 틀렸던 것 같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틀렸는지 궁금하군요.”
은혁의 목소리는 눈보라가 없었어도 사람 귀에 겨우 들릴 정도였다.
은혁은 만신창이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은혁의 얼굴에는 여유와 투지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저 여유와 투지는 뭘까?’
레나는 자신이 소환한 눈보라 속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은혁은 레나가 싸웠던 그 어떤 적보다…….
‘적? 적이라고?’
레나는 당황했다.
레나는 은혁을 부하로 삼기 위해 포획하기로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은혁을 적으로 인정하고 말았다.
‘위험해.’
레나는 은혁을 통제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죽이는 수밖에.’
그때였다.
“강은혁!!”
염훈이 [신성한 날개]로 비행하며 외쳤다.
“여기다, 염훈!!”
‘좋아. 계획대로다. 타이밍 완벽!’
은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진지함을 드러낸 레나에게, 완성된 세븐 칼리버의 제1형태와 제2형태로 반격.
그리고 승리.
승리 후에는 염훈을 통한 회복까지.
“강은혁! 네 검 가져왔다!!”
“오오! 이리 던져!!”
한 손으로 받아내기가 조금 어렵겠지만 자신 있었다.
“좋아! 받……!!”
염훈은, 세븐 칼리버 제1형태인 헤비 체인 소드를 던지려다 멈칫했다.
“야이, 너 팔……!”
“괜찮아. 세븐 칼리버나 줘! 어서!”
레나는 호기심 때문에 은혁을 방해하고 있진 않았다.
은혁은 재차 손짓했지만, 은혁의 잘려 나간 팔을 보는 염훈의 표정이 굳었다.
“야, 뭐 해?”
은혁이 재촉했지만, 염훈은 허공에서 비행을 유지했다.
그리고 급한 일부터 처리했다.
“야이 썅년아.”
냅다 레나에게 욕을 박았다.
이게 염훈 기준에서는 가장 급한 일이었다.
“어?”
“너, 연구 길드에 영입하려고 왔다며? 그러다 의견 갈등으로 싸우면 싸우는 거지, 이 씨X 내 친구 팔은 왜 잘라 먹었냐? 엉?!”
“아, 그건 내가 자른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염훈이 버럭 소리를 치자 레나가 기막혀했고, 은혁이 머뭇머뭇 가세했다.
“맞아, 염훈. 내 팔은 사실 내가 스스로…….”
“너도 마찬가지야!!”
염훈은 은혁에게도 화를 냈다.
자신이 공장에서 세븐 칼리버 제작을 돕는 동안, 은혁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거, 팔이 잘릴 정도면 소리라도 쳐서 날 부르지 그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