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 세븐 칼리버 제2형태
염훈이 화를 내자 은혁은 좀 당황했다.
“그야 일대일…….”
“일대일 대결이고 나발이고! 그럼 네가 높은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상황이면! 그럼 난 널 도우면 안 되겠네?! 너랑 절벽이랑 일대일 상황이니까!! 엉?!”
“그, 그건 아니지.”
은혁은, 특정 지형 환경 속 위기와 두 당사자 간의 대결은 완전히 다르므로, 둘 다 마찬가지라는 식의 염훈의 주장은 전형적인 그릇된 유비 추론의 오류임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아, 시끄러! 젠장! 나는 네가 우정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야!!”
“아니, 갑자기 뭔.”
“팔이 아작 날 정도의 목숨이 걸린 싸움이면! 날 부를 법도 하잖냐!!”
“…….”
“너, 지금 ‘팔이 아작 나는 것도 이미 계산해 두었다. 전부 계획대로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지!”
“아, 아냐.”
은혁은 뜨끔했다.
염훈은 눈치챘다.
“분명 그랬겠지! 네 실력이면 보나 마나 저 썅년을 기막힌 방법으로 쓰러뜨릴 히든 카드가 몇 장이나 있겠지! 난 그게 불만이란 말이다!!”
염훈은 민감한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은혁이 팔이 잘린 채로 태연하게 있는 꼴을 보니, 뭐라 말하기 힘든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팔이 잘려 나갈 정도로 위험하면 바로 나를 불러! 머릿속에 히든 카드를 숨겨 놓고 있건 말건! 도움이 되건 안 되건! 팔이 잘릴 지경이면 도와달라고 부르라고!!”
“아……!”
“동료라느니 함께 100층탑을 정복하자느니 했으면서! 정작 자기 몸뚱이가 만신창이가 되는 국면에서는 날 빼놓지 말란 말이다! 알았냐!!”
“으음……!”
은혁은 회귀 이전 이후를 막론하고, 염훈 때문에 동요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심 동요했다.
‘이 녀석의 지적도 일리가 있군.’
은혁은 내심, 염훈을 회복 및 보조로 활용하며, 그에게 가급적 안전한 일만 맡겨왔다.
‘아직은 염훈이 강하지 않아. 좀 더 키워주자’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은 은혁 나름의 은혜 갚기이며 우정을 소중히 하는 방식이었지만…….
‘동료라는 건 그런 게 아니지.’
은혁은 100층탑을 함께 오르자고 했고, 염훈도 동의했다.
그리고 은혁은 염훈을 우정으로 대했지만, 민감한 국면에서는 뒤로 빼놓았다가 불러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 부분은 사과하는 게 낫겠군.’
“미안하다, 염훈. 하지만 딱히 널 후방에 빼놓고 싶어서 뒤로 보낸 건 아니다.”
“그럼?”
“널 믿어서다.”
은혁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세븐 칼리버는 내 분신과 같지. 그걸 제작하는 과정에서 감독 과정을 맡기고, 운반까지 맡길 수 있는 건 너뿐이다.”
은혁의 목소리에는 진심만이 담겨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완성된 세븐 칼리버를 직접 내게 건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염훈 너뿐이라서 맡긴 거다.”
“쳇. 끝에 와서 감동적인 소리를…….”
“뭐,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신성한 날개] 스킬을 갖고 있는 건 너뿐이니까 배달부는 너 말고는 없지…….”
은혁은 소곤소곤 뒷말을 덧붙였다.
“뭐, 인마?”
염훈이 그 소리를 들은 순간.
“[거스트 오브 윈드].”
레나의 돌풍 스킬이 기습적으로 염훈에게 작렬했다.
“우왓?!”
“수상한 검이여! 내게로 오라!”
레나가 낭랑하게 외치자, [냉기 지배]의 힘으로 차가운 바람이 세븐 칼리버를 끌고 왔다.
턱!
레나가 세븐 칼리버를 움켜쥐었다.
“후훗. 스틸 성공.”
“이, 이런! 이런 젠장?!”
염훈은 경악했고, 순간적으로 죽고 싶어졌다.
모처럼 은혁을 위해 칼을 갖고 왔는데, 바로 주지 않고 화를 내고 훈계하다가 뺏긴 격이었으니까.
염훈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바닥에 추락해 버렸다.
레나는 꺄르르 웃었다.
“이게 여태 공장에서 만들고 있던 신비한 검이구나?”
레나는 감탄했다.
“엄청 크네? 꼭 전기톱 같아. 이름이 뭐야?”
“세븐 칼리버 제1형태, 헤비 체인 소드입니다.”
은혁은 태연했다.
철컹!
은혁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칼날에 동력이 들어갔다.
“우아, 이건 위력이 엄청나겠는데? 내 [냉기 방패]도 통째로 깨부술 것 같아.”
“감상 잘하셨으면 이제 돌려주시죠?”
은혁이 한쪽뿐인 손을 내밀었다.
“흐응, 어떻게 할까?”
레나의 얼굴에 잔혹함이 깃들었다.
은혁의 검으로 은혁을 처치하기로 마음먹은 눈치였다.
염훈은 미안한 마음에 죽고 싶은 심경으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으아아아! 미안! 진짜 미안!!”
“뭘 미안해하냐?”
“저 검! 검 뺏겼잖아! 아악! 미안하다! 자살로 사죄할게!!”
염훈은 미안해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동료라느니 믿으라느니 실컷 소리친 직후에 칼을 뺏겼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은혁은 속으로 웃었다.
“그럼 앞으로는 내 부탁이나 제안에 딴죽 걸지 않고 들어주겠다고 맹세해. 이번처럼 후방에 널 보내도 서운해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그럼 봐주지.”
“맹세! 맹세! 시발 다 맹세한다!!”
“좋아, 그럼!”
은혁은 [쾌속보]를 발동하여, 레나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훗. 뺏으려고?”
레나는 냉기의 정령을 20마리 가까이 단숨에 소환해냈다.
스오오오……!
냉기의 정령이 어지럽게 뿜어내는 푸르스름한 냉기는 그림자마저 산란시켜, 은혁의 기습 전법인 [그림자 도약]마저 쓰기 어렵게 했다.
“뚫고 와보렴, 은혁 군.”
은혁이 냉기의 정령을 뚫고 오는 타이밍에 맞춰, 레나는 헤비 체인 소드를 휘둘러 은혁의 팔다리를 모조리 자를 작정이었다.
하지만.
끼익!
[쾌속보]를 강제 취소해서 급정지했다.
빙판이나 다름없는 바닥에서 증기가 피어올랐다.
“내 한쪽 팔을 뺏은 대가는 큽니다.”
은혁이 뒤끝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어머? 그건 네가 자른 거…….”
“내가 자른 거긴 하지만, 저 녀석이 상심했잖습니까.”
은혁이 턱짓으로 염훈을 가리켰다.
“그 대가로, 당신은 그 두 배인 양팔을 잃어야겠습니다.”
“훗! 어떻게?”
“이렇게. 세븐 칼리버 제2형태 발동!”
은혁이 외치자, 레나가 쥐고 있던 헤비 체인 소드가 기동음을 냈다.
“변신! 청염백광태도!!”
파앗!
세븐 칼리버가 빛을 내뿜더니 변신했다.
기존의 청염백광검이 곧게 뻗은 장검 형태였다면, 청염백광태도는 거대한 도 형태였다.
“아?”
레나가 놀랐다.
자신이 검을 쥐고 있는데도 은혁의 목소리에 변신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음성 인식 시스템까지 추가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 거지.’
은혁은 히죽 웃었다.
그때, 제인의 목소리가 내장된, 검 내부의 시스템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세븐 칼리버 제2형태 시동.
-제2형태 청염백광태도 전용 사용자 확인 중…….
-무단 사용자 확인!! 강제 승화!!!
번쩍!!
검 손잡이를 포함해, 검 전체에서 불꽃과 빛이 폭발하듯 일어났고.
화륵!!
“꺄아아악!!”
레나의 양쪽 팔이 통째로 타들어 갔다.
검을 쥐고 있던 손은 통째로 숯이 되어서 새하얀 빙판 바닥에 떨어졌고.
털그렁!
청염백광태도 또한 떨어졌다.
“아악!! 아아아악!!”
“거, 잘 타는군요.”
은혁은 흐뭇하게 웃으며 구경했다.
레나도 살면서 겪은 고통 중에 이토록 심각한 고통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레나는 냉기의 정령의 통제력까지 잃고 데굴데굴 굴렀다.
-대장장이 숙련도가 5% 증가했습니다!
-현재 대장장이 숙련도 : 35%.
-대장장이 스킬 [재료 적출]을 습득하셨습니다!
신무기에 숨겨진 힘을 효과적으로 선보여서인지, 대장장이 숙련도가 올랐다.
‘[재료 적출]이라.’
[도축] 스킬이랑 사실상 동일한 스킬이었기에 은혁은 만족했다.
염훈은 상황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야, 은혁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냐……?”
“훗. 그 대답은.”
은혁은 [그림자 지배]로 바닥에 떨어진 청염백광태도를 휙, 주워 왔다.
물론, 은혁이 쥘 때는 아무렇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림자로 컨트롤 할 때도 은혁에게는 피해가 들어오지 않았다.
“세븐 칼리버여! 네가 답해줘라.”
청염백광태도 형태의 세븐 칼리버는 시스템 메시지 형식으로 답해줬다.
-제2형태인 청염백광태도는, 청염백광검의 에센스가 주입되어 만들어진 특수한 형태입니다.
-사용권은 1차적으로 대천사 미카엘에게만 존재하며, 그 사용권을 위임받은 플레이어는 강은혁뿐입니다.
-따라서 미카엘, 또는 강은혁이 아닌 존재가 청염백광태도를 쥐는 경우, ‘소유권 가르침 폭발 프로토콜’이 진행됩니다.
-이 경우, 칼날과 손잡이 전체에서 ‘강제 승화’가 발동하여, 허가 없이 쥔 자의 손과 팔을 불태웁니다.
“소, 소유권 가르침 폭발……?”
“응.”
은혁은 제인에게 감사했다.
제인이 은혁의 지시대로, 사용자가 아닌 자가 이용하려 할 때 강제 승화를 일으키도록 하는 기능까지 제대로 추가․구현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무지게도, 세븐 칼리버에 내장된 시스템 메시지에 자기 목소리까지 녹음했다.
‘제인은 역시 천재라니깐.’
“청염백광검 최대 위력의 70%짜리 폭발이니 뭐, 양쪽 팔 잃고 끝난 레나의 저항력이 대단하다고 봐야지. 음.”
“세상에…….”
염훈은 입을 떡 벌렸다.
‘원래 계획은 네가 내게 헤비 체인 소드를 던져주는 순간 뺏기는 거였지만, 뭐, 결과적으론 동일한가.’
은혁은 회귀한 직후부터, 하나의 작전이 실패해도 다음 단계의 계획으로 이어지도록 여러 층의 계획을 세워뒀다.
플랜 A, B, C…… 하는 형태가 아니라, A-1, A-2, A-3…… 하는 형태에 가까웠다.
“자아, 그럼.”
은혁은 청염백광태도를 쥔 채 레나 곁으로 갔다.
“[빙결 저주]!!”
레나는 자기 양팔에 빙결의 저주를 걸 정도로 절박했지만, 청염백광의 푸른 불꽃은 스스로 하얀 빛을 내며 계속 타올랐다.
“어째서! 어째서 이 불은 꺼지지 않는 거야!”
“그야 미카엘과 우리엘의 자존심이니까요.”
미카엘의 검으로 알려진 청염백광검은, 사실 우리엘과의 합작품이다.
은혁은 친절하게 답변까지 해 준 뒤 스킬을 썼다.
“[화염 해제].”
팟!
2차 각성한 화염을 지배한 마법사답게, 은혁은 즉각적인 [화염 해제]도 가능했다.
“허억, 허억…….”
레나의 두 눈에 처음으로 의문과 절박함이 깃들었다.
“왜지? 왜 [화염 해제]로 날 살려주는 거지?”
“죽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그쪽이 멋대로 나한테 덤빈 거지.”
“……!”
“그리고, 죽이면 교훈을 주지 못하니까.”
은혁의 여유와 투지는, 상황이 유리해졌는데도 큰 차이가 없었다.
대신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저, 다른 사람의 팔 한쪽을 망가뜨린 사람은, 자기 양쪽 팔이 망가질 것까지 각오해 둬야 한다는 교훈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쁘군요.”
“큭……!”
레나는 이를 갈았다.
“으와, 뒤끝 하나는 엄청나네.”
염훈이 뒤에서 중얼거렸다.
은혁은 들었지만 무시했다.
“사생결단을 굳이 보고 싶으시다면 상대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제안을 하나 하고 싶군요.”
“제안?”
“나와 제인에 대한 반강제적인 영입 시도를 철회하고, 조용히 물러나는 겁니다.”
“읏……!”
“그게 싫으시면 계속 싸워도 됩니다. 뭐, 안 그래도 세븐 칼리버 변신 시스템 테스트도 좀 필요한데.”
철컹!
철컹!
은혁은 제1형태 헤비 체인 소드와, 제2형태 청염백광태도를 일부러 번갈아 변신시키며 도발했다.
“음, 역시 변신시킬 때마다 검이 덜컥덜컥 걸리는 느낌이 나네요. 테스트할 겸 더 싸워 주면 저야 좋은데.”
은혁은 자신의 우위를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