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 금속 차원의 소환술사
일부러 시비를 거는 은혁의 태도를 본 염훈은 속으로 소리쳤다.
‘야! 한쪽 팔도 잘린 놈이 뭔 허세야!! 오늘은 일단 물러나!!’
“후…….”
레나는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우후후…….”
한숨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과연.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상대구나.”
레나는 [즉각 빙결의 룬] 주문을 양팔에 걸었다.
파칵!
바싹 타서 탄화된 양팔이 터져 나갔다.
쩌저적……!
그 자리에 얼음으로 된 전투용 팔 두 개가 생성됐다.
쩌적…… 쩌저적……!
냉기는 끊임없이 레나의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가더니, 몸 전체가 얼음으로 변했다.
“나도 전력을 다해 주겠어.”
레나는 [재현재귀의 서리여왕] 상태에서만 쓸 수 있는 궁극기를 발동했다.
“[재현재귀의 냉기 프렉탈]!!!”
화아악……!!
[빙결의 룬]의 힘이 담긴 얼음이 프렉탈 형태로 점차 퍼져 나갔다.
한번 퍼뜨리면 레나 자신도 마나가 다 떨어질 때까지는 해제하지 못하는 궁극기였다.
-와씨, 저건 사기다.
-저걸 어떻게 이겨.
-저건 못 이기네.
시청자들도 전부 탄식했다.
끊임없이 퍼져 나가는 냉기는 9층 전체를 집어삼킬 정도였다.
정작 시전자인 레나 본인은, 퍼져 나가는 얼음 속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으니, 최상의 공격이자 방어였다.
하지만 은혁은 청염백광태도를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칼날에 화염을 뿜었다.
“[화염 방사].”
화륵!
히든 이펙트 중에서도 기본 중의 기본인 [블레이징 엣지] 스킬을 발동시켰다.
청염백광태도는 붉은 화염에 감싸이자 보라색으로 빛을 발했다.
-히든 이펙트 발동!
청염백광태도의 칼날은 이미 고체가 아니라 보라색 화염과 빛 그 자체였다.
“[바이올렛 블레이드].”
푸른색을 넘어 보랏빛에 도달한 칼날.
사실 초고온의 자외선은 사람 눈에 안 보이므로, 색깔을 관측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히든 이펙트 효과로 선명한 보라색으로 보였다.
쩌저저적……!!
냉기의 파장이 은혁의 코앞에 다가온 순간, 은혁은 검을 위로 올려 쳤다.
“[패링]!!”
터텅!!
냉기의 파장이 아주 조금이지만 튕겨 나갔다.
“말도 안 돼!!”
레나가 경악했다.
[패링]은 물리적인 공격만 튕겨내는 전사 스킬이었다.
하지만 은혁은 [재현재귀의 냉기 프렉탈]을 튕겨냈다.
‘일반 무기로는 불가능하지.’
빛과 화염으로 승화하는, 물리 법칙을 초월한 칼날을 지닌 청염백광태도였기에, 그리고 그것에 히든 이펙트를 부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화악!!
태풍의 눈 한가운데가 오히려 고요한 것처럼, 은혁도 [패링]으로 만든 고요한 공간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 1초쯤 유지되려나?’
은혁은 그 빈 공간 속에서.
휙!
청염백광태도를 하늘 높이 던졌다.
-헐! 뭐임?!
-칼 놓친 건가!
-으악 사버ㅑᅟᅢᆽ덕랴ㅐ저댜ㅐ로마!!!
시청자들의 경악.
레나의 시선 또한 하늘로 올라갔다.
그 순간.
뻐억!!!
은혁의 어퍼컷이 레나의 턱을 갈겼다.
‘어떻게?’
은혁과 레나 사이의 거리는 5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그 5미터도 그냥 5미터가 아니라 냉기의 프렉탈로 가득 찬 거리였다.
‘[섀도 암].’
은혁은 자신의 그림자를 오른팔에 끌어모은 뒤, 그걸로 레나의 턱을 향해 [섬영권]을 갈겼다.
‘[섀도 암]과 [섬영권] 융합 스킬이니까…… [진 섬영권] 이라고 불러야겠군.’
털썩.
레나의 무릎이 꺾이고 의식이 사라졌다.
하지만 [재현재귀의 냉기 프렉탈]은 레나가 의식을 잃어도, 마력만 갖추고 있으면 계속 퍼져 나갔다.
“얍.”
은혁은 [섀도 암]을 길게 뻗어서 레나를 자기 앞으로 끌고 왔다.
쩌저적…….
은혁의 몸도 순식간에 얼어붙어 갔다.
하지만 은혁은 태연하게 자신의 그림자와 레나의 그림자가 겹치게 했다.
“[그림자 감옥].”
화악!!
은혁은 자신과 레나의 그림자를 합쳐서, 레나의 몸을 감싸는 그림자 감옥으로 만들었다.
그 순간.
팍!
[재현재귀의 냉기 프렉탈]은 허무하게 소멸했다.
마력을 제공하는 레나를 통째로 [그림자 감옥] 속에 담아 버렸기에 마력이 원천 차단된 탓이다.
“휴, 이겼다.”
은혁이 안도하는 순간, 덜컥, 무릎에서 힘이 빠졌다.
턱!
염훈이 먼저 잡아줬다.
“[중급 치유].”
은혁의 일대일 대결이 끝나자마자, 염훈은 은혁을 치료해줬다.
“만신창이구만.”
염훈이 퉁명스레 말했다.
“아…….”
“미리 말해두지만 얼음 박힌 상처나 동상은 치료해도, 네가 직접 자른 팔은 쉽게 치료 못 한다. 표면이 타서.”
“음. 그렇지.”
어이없게도, 레나에게 당한 냉기 공격보다, 청염백광단검으로 직접 자른 팔의 단면 치료가 더 어려웠다.
염훈이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냈던 게 새삼 이해가 갔다.
“미안하고, 고맙다.”
은혁이 불쑥 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100층탑에서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염훈 말고는 없었다.
염훈은 아직도 조금 삐쳤는지 코웃음을 쳤다.
“고마우면 돈 내놔. 앞으로는 치료비 받을 거임.”
“…….”
은혁의 표정이 전 재산을 잃은 사람처럼 슬퍼졌다.
“야야, 농담이야. 거, 돈도 꽤 많은 놈이 엄청 서러운 표정 짓네.”
그 순간, 밀렸던 숙련도 상승 메시지가 밀려 들어왔다.
-도적 숙련도가 10% 증가했습니다!
-현재 도적 숙련도 : 103%.
-축하드립니다! 도적 숙련도가 100%를 초과했습니다!
-2차 각성 선택지를 선택해 주십시오!
-A. 직업의 등급을 올린다.
-B. 직업을 승급한다.
-전사 숙련도가 11% 증가했습니다!
-현재 전사 숙련도 : 23%+.
-마법사 숙련도가 10% 증가했습니다!
-현재 마법사 숙련도 : 15%+.
-무투가 숙련도가 15% 증가했습니다!
-현재 무투가 숙련도 : 93%.
“휴, 갑자기 튀어나오니 정신이 없네.”
은혁은 레나를 생포한 [그림자 감옥]이 풀리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일단 도적 직업의 등급을 올리기로 했다.
-축하드립니다! 2차 각성하셨습니다!
-2차 각성 선택지로, 등급을 올리셨습니다!
-S급 직업 그림자를 지배하는 도적 → S+급 직업 그림자를 지배하는 도적
-모든 스탯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모든 스킬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속력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속력 : A.
-축하드립니다! 매력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매력 : B.
-현재 도적 숙련도 : 3%+.
“좋았어.”
[그림자 감옥]을 유지하는 게 훨씬 편해졌다.
‘겨우 9층에서 이 정도로 강해지다니! 부길드장을 안 죽이고 생포하는 게 정말 가능할 줄이야!’
은혁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시간이 멈췄다.
‘직업 선택의 차례구만.’
은혁은 이제 시간이 멈추는 느낌에도 익숙해졌다.
‘다 좋은데, 이게 완전 랜덤이라는 게 좀 아쉬워.’
-축하드립니다! ‘모든 직업의 가능성’이 새로운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새로운 직업 카드를 뽑아주십시오!
시간이 정지되고, 12장의 카드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때, 패배한 레나의 몸에서 직업 카드가 떠오르더니 날아왔다.
-모든 직업의 가능성이 선택권을 제시합니다!
-본래 갖고 있던 마법사의 가능성과 지금 쓰러뜨린 플레이어가 지니고 있던 마법사의 가능성 중 원하는 것을 고르십시오!
A. A+급 직업 ‘화염을 지배하는 마법사’. (본래 지니고 있던 가능성)
B. S급 직업 ‘냉기를 지배하는 아크메이지’. (레나를 쓰러뜨리고 복사한 가능성)
‘허. 승급한 상대 직업을 통째로 복사할 수도 있네?’
마법사에서 승급을 선택하면 도달할 수 있는 직업 중에 아크메이지가 있다.
‘하지만 거절한다.’
단숨에 승급을 건너뛰고 아크메이지로 오를 수 있다면 좋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화염 지배] 능력을 잃게 되면 곤란하거든.’
거대한 적, 재생력을 가진 적을 상대할 때 불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었다.
‘이런저런 퓨전 스킬 효율도 좋고.’
그래서 화염을 지배하는 마법사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완전히 랜덤으로 골라보자.’
은혁은 허공에 둥실둥실 떠 있는 12장의 카드 중 하나를 골랐다.
‘제발 좋은 거 뜨기를!’
-축하드립니다! B급 직업 ‘금속 차원의 소환술사’를 선택하셨습니다!
-소환술사 스킬 [메탈 서전트 소환]을 획득하셨습니다!
“오옷!!”
선택을 마치자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렀고, 은혁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소환 계열 직업인 드루이드, 사령술사, 소환술사를 내심 부러워했던 은혁이다.
“그것도 희귀한, 금속 차원의 소환술사가 되다니!”
정령, 맹수, 귀신 따위가 아니라 금속 차원의 기계 병사를 소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스킬은 꼭 써봐야 해!’
“[메탈 서전트 소환]!”
파앗!
회색빛 섬광과 연기가 손 앞에서 터지더니.
철컹!
눈앞에 메탈 서전트가 나타났다.
“……아?”
“메탈 서전트 소환 완료! 주인님을 뵙니다!”
척!
메탈 서전트가 거수경례를 붙였다.
“……야.”
“왜 그러십니까. 주인님?”
“너무 작지 않아?”
메탈 서전트는 작았다.
소년들이 갖고 놀 만한 장난감 로봇 크기.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주인님.”
메탈 서전트가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 부위가 액체 금속이었기에 표정 짓기가 가능했는데, 표정도 똘망똘망해 보였다.
“잠입, 암살, 파괴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쇼!”
“음, 일단 목소리는 듬직한데.”
“변신!”
메탈 서전트는 시키지도 않은 변신을 하더니, 비행기 형태로 변했다.
“오옷!”
은혁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정찰기 형태인가!”
“넵! 드론 모드입니다! 하앗!!”
메탈 서전트는 수직 이륙하더니, 올리버의 부관들 곁으로 쏜살처럼 날아갔다.
올리버의 부관들은 여태 카메라로 촬영 중이고, 마지막까지 후원금을 요청하고 있었다.
“어엇! 저게 뭐지?”
“뭔가 날아와요!”
두 사람은 허둥거렸다.
“주인님을 불법 촬영하는 놈들! 각오하라!”
메탈 서전트는 탄환을 뿌려댔다.
타타타타!
“아얏! 아!”
BB탄 크기의 쇠 구슬이었는데 위력도 BB탄 기관총 수준이었다.
“얍!”
그래도 메탈 서전트는 보조 팔을 꺼내더니, 놈들의 카메라며 통신 장치를 낚아챘다.
“아, 안 돼!”
“돌려줘요!”
올리버의 부관들은 허공에 손짓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오? 크기에 비해 제법인데?”
은혁 곁에서 구경하던 염훈이 감탄했다.
부우웅…….
메탈 서전트는 하늘에서 카메라를 은혁의 앞에 떨어뜨린 뒤, 안전하게 착륙했다.
“어떻습니까, 주인님!”
“음! 잘했다. 제법 마음에 들었다.”
은혁은 흐뭇했다.
‘일일이 명령을 내리거나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 줄 아는군.’
즉, 메탈 서전트는, 기계 형태의 소환수치고는 보기 드문 ‘눈치’의 수준이 뛰어난 소환수였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좋아. 잘 부탁한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선사하마!”
이것도 회귀 전의 은혁이, 소환사 계열 직업을 보며 늘 부러워했던 부분이었다.
소환술사가 소환수에게 이름을 부여하면서, 둘 사이가 돈독해지는 명장면을 곁눈질하며 부러워했던 것이다.
“정말입니까!”
메탈 서전트는 기뻐했다.
염훈이 미심쩍어하며 끼어들었다.
“야, 강은혁. 너 혹시 이상한 이름 지어주려는 거 아니지?”
실력이 출중한 소환사일수록 자기 소환수한테 기묘하면서 깜찍한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듣고 놀라지나 마라.”
은혁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메탈 서전트를 내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