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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49화 (49/434)

49화 : 10층의 연구

‘인공 플레이어.’

NPC와는 달리 플레이어의 자격을 지닌, 100층탑의 시스템에 항거하는 자유의지 생명체.

“인형처럼 아름다운 인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A 계열. 부길드장 직위에 걸맞은 B 계열. 그리고 이번 C 모델은 전투력 증강에 중점을 두고 변신 시스템을 추가했는데…….”

“변신을 하면 투지가 너무 강해진다는 단점이 생기는 거군요.”

“맞아. 네 덕분에 C 계열 모델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났어. 이제부턴 완전히 새로운 D 모델을 연구해봐야겠어.”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묘하게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폐기 절차 시작.”

빌이 허공에 손짓하며 스킬을 썼다.

키이잉!!

[원자 분해] 스킬에 적중된 레나는 약간의 분자 잿더미만 남고 전부 소멸해 버렸다.

예상했기에 은혁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빌은 레나를 구하기 위해 내 제안에 응한 게 아니야 자기 손으로 레나를 완전히 폐기하기 위함이지.’

빌은 ‘SS+급 직업 원자를 지배하는 사이오닉 메이지’였다.

초능력자의 승급 직업인 사이오닉 메이지는 초능력 계열 스킬과 마법사 계열 스킬을 폭넓게 쓸 수 있었다.

“그렇게 막 죽여도 됩니까? 그래도 부길드장인데요.”

은혁이 묻자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울 데이터와 메모리는 주기적으로 백업하고 있었으니까 걱정 없어.”

“그게 아니라 부하들이 반발할 텐데요.”

“전혀. 각자 자기네 실험 신경 쓰기 바쁘고, 레나는 잠시 개인 연구로 바쁘다고 하면 되지, 뭐.”

“그녀의 기억은요?”

“기억도 그대로 유지될 거야.”

“그녀는 자기가 실험체라는 걸 압니까?”

은혁이 묻자 빌은 물끄러미 은혁을 바라봤다.

“그냥 궁금해서요.”

“흠, 그렇군.”

빌은 선선히 대답해줬다.

“그녀도 알지. 그녀도 동의했어. 정확히는 A 계열 모델이었던…… 뭐더라? A-001이었나? A-002였나? 아, 하필 이 부분 기억을 지워 버렸구만. 하여간 누군가가 동의했어. 어디 찾아보면 동의 서류가 있을 텐데…….”

“그건 됐고요. 최신 나노강화제나 주시죠.”

“주는 건 상관없는데, 정말 최신 나노강화제를 원해?”

“예. 위험성은 상관없으니 무조건 최신으로.”

은혁은 회귀 전 지식으로, 이 무렵 연구 길드가 발명한 나노강화제를 알고 있었다.

‘너무 위험해서 폐기된 물건이었지, 아마?’

하지만 은혁에게는 생각이 있었기에 그걸 요구했다.

빌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게, 환골탈퇴 나노강화제라서.”

“환골탈태요?”

“환골탈퇴.”

“……에?”

“원래 이름은 환골탈태 나노 강화제였는데, 내가 맞아보니까 너무 아프더라고.”

빌은 연구 길드에서 제작한 식품 의약품 연구 보고서라고 적힌 거대한 서류함을 뒤적거리더니, 관련 연구 보고서를 꺼내줬다.

은혁은 대충 눈으로 훑어봤다.

“이런. 부작용이 꽤 있군요.”

붉은 글씨로 임상 실험 결과가 적혀 있었다.

사망. 사망. 사망.

한 마디로, 약한 자가 나노강화제를 맞으면, 오히려 못 견디고 죽는다는 연구 결과였다.

“그래. 그래서 환골탈퇴로 이름 바꿨지. 근육량 자체가 많은 사람이 아니면 견디질 못하더군. 실험체의 90%가 죽었고, 10%도 고통 때문에 근육이 괴사해서 별 효과가 없었어. 정말로 이 나노강화제 맞고 싶나?”

“후후.”

“뭔가 나쁜 생각을 하는 웃음이군.”

“설마요. 정말 좋은 건 제 친구에게 양보하는 타입이라.”

환골탈퇴 나노강화제는 스탯상의 잠재력보다, 실제 근육량에 따라 효과가 다른 물건이었다.

마침 염훈의 체형은 전형적인 헬스남이라서 딱 좋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제 팔이나 치료해 주시죠.”

“좋아. 그럼 어떻게 치료해 줄까. 팔만 배양해서 붙여줄까? 아니면 고속치료제를…….”

“초고속 재생의 목걸이를 부탁합니다.”

“허참, 내 살림 거덜내려고 왔나 보군.”

빌은 졸린 눈으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책상 서랍을 열고 뭔가를 꺼냈다.

“이건 레나한테 주려고 한 건데.”

“그 레나가 잘못을 저질러서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거 아닙니까. 레나에게 벌주는 셈 치고 저한테 주시죠.”

“진짜 뻔뻔하구만. 어떤 벌을 주느냐는 길드장인 내가 결정할 일 아닌가?”

“맞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결정을 촉구할 뿐이죠.”

“거참 요리조리 뺀질뺀질…… 한 마디도 밀리지 않으려고 하는군.”

빌이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말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아졌어. 이건 안 줘.”

“줘요.”

“왜 줘야 하는데? 주는 사람이 싫으면 안 주는 거지. 다른 방식으로 네 팔을 치료해 줄 테니 이건 단념해.”

“그럼 이것도 단념하시죠.”

은혁은 인벤토리창에서 뭔가를 꺼냈다.

“어? 그건 뭐야?”

“추가 교섭 재료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죽은 척하기 알약.”

“어?! 그거 우리 연구소에서 유출된 거잖아.”

“맞습니다.”

은혁은 8층에서 하무광을 처치하고, 그곳 히든 던전에서 이것을 찾아냈다.

하무광은 연구 길드에서 쫓겨나기 전에 이것저것을 훔쳐 떠났는데, 그중 하나가 죽은 척하기 알약이었다.

“한 알만 있어도 복제가 가능하시죠? 근데 하무광 때문에 싹 다 잃어버린 상태고.”

“으음.”

“이것을 추가로 드릴 테니, 초고속 재생의 목걸이 줘요.”

“허참. 완전히 당했군.”

빌이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나는 길드장치곤 교섭 능력이 부족해. 네 태도는 좀 배워야겠어.”

빌은 은혁에게서 죽은 척하기 알약을 받고, 초고속 재생의 목걸이를 던져줬다.

이제, 은혁에게는 죽은 척하기 알약이 딱 두 알 남았다.

“그 목걸이는 진짜 귀한 거니까 소중히 여겨라.”

“감사합니다. 그럼.”

은혁은 볼일이 끝났으니 더 대화할 것도 없다는 듯이 휙 몸을 돌렸다.

“잘 가시게.”

빌은 빌대로 책상 앞에 앉아서 레나를 업그레이드할 계획표를 짜기 시작했다.

* * *

“녀석, 엄청 늦네.”

공원 한켠에 앉은 염훈이 투덜거렸다.

염훈은 현재 공원의 잔디를 주제로 연구 중이었다.

-연구 제목 : 10층 공원의 녹색 잔디는 대략 몇 포기쯤 될까?

-연구 결과 :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많음.

염훈은 반쯤은 장난으로, 신경질적으로 종이에 연구 결과를 적었다.

그 순간.

-축하드립니다! 10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10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엥? 이게 돼?”

-단, 진지한 연구가 아니며,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해 연구된 내용입니다!

-연구 성과 수준이 매우 낮음으로 책정되었습니다!

-미션은 클리어하셨으므로 다음 층으로 이동이 가능하십니다! 그러나 매우 변변치 못하고 불성실한 연구 결과를 내놓으셨기에, 본 미션에 추가 도전하는 일에 제한이 가해집니다. 만약 10층 메인 미션에 추가로 도전하고 싶으신 경우, 과학 철학 교양 학습을 10시간 이수하셔야 합니다!

묘하게 깐깐한 시스템 메시지였다.

마치, 통과는 시켜주지만, 네가 잘해서 통과시켜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다음 층으로 빨리 가버리라는 것처럼 읽히기도 했다.

“허참.”

염훈은 왠지 과제를 엉망으로 제출해서 야단맞은 기분을 느꼈다.

10층 메인 미션에 또 도전할 생각은 없었지만, 왠지 아쉬웠다.

“기왕 하는 거 좀 더 진지하게 연구할걸.”

염훈은 투덜거리다가 은혁 생각을 했다.

“이놈은 왜 이리 안 나와?”

염훈이 뒤를 돌아본 순간.

“엇?”

은혁은 어느새 염훈 곁에 서 있었다.

히죽 웃는 은혁의 메인 미션이 클리어됐다.

은혁의 연구는 이러했다.

-연구 제목 : ‘은혁은 왜 이리 돌아오지 않는 거냐’는 조로, 염훈이 투덜거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연구 결과 : 15분.

-축하드립니다! 10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매우 쉬운 연구이므로 10 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연구 성과 수준은 매우 낮음으로 책정되었습니다!

-단, 아무도 과거에 연구한 바 없는 최초의 연구 결과이므로 100 골드를 추가 획득하셨습니다!

은혁은 염훈을 보며 히죽 웃었고, 염훈은 왠지 억울해했다.

“뭐야, 이거. 내가 연구한 것보다 더 연구 같지 않은 건데 왜 네가 더 많이 버는 거야?”

“내 연구는 10층 최초니까.”

염훈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그보다, 바로 11층으로 갈까, 아니면 그만 5층으로 돌아가서 쉴까.”

은혁은 염훈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당연히 5층이지!”

아직도 은혁의 팔은 잘린 상태였다.

게다가 염훈도 조금 지친 상태였다.

[정화] 스킬을 말 그대로 숨 쉬듯 써댔기에, 마력과 체력 소모가 모두 컸다.

“그나저나 네 왼팔은…….”

“아, 내 왼팔은 신경 쓰지 마. 초고속 재생의 목걸이 받아왔어.”

은혁은 나오는 길에, 간단한 [디텍트] 주문으로 부정한 마법이 걸려 있는지 확인해 봤다.

연구 길드장 빌이 수상한 위치 추적 주문이라도 걸어놨나 싶었기 때문이다.

‘빌이 그런 수를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회귀 전 지식으로 빌의 성격을 간파하고 있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조사 결과 정상이었고, 은혁은 초고속 재생의 목걸이를 장착했다.

-초고속 재생의 목걸이 :

6성급 아이템.

상시 재생력 +25%.

하루에 3회 [초고속 재생] 스킬 사용 가능.

잘려 나간 팔과 다리, 혹은 내장 기관을 즉시 재생시킬 수 있다.

단, 체력 스탯 잠재력이 B- 미만인 경우는 장착할 수 없다.

“하앗! [초고속 재생]!!”

은혁이 스킬을 쓴 순간.

푸확!!

은혁의 잘린 팔의 단면에서 새로운 팔이 튀어나왔다.

“꿱?!”

묘하게 그로테스크한 장면이라, 염훈이 괴성을 질렀다.

“후우, 지금 무슨 생각 했는지 안다, 염훈.”

은혁도 헐떡이며 말했다.

“드래X볼의 피X로 같다고 생각했지?”

“아니, 나는 가이버를 떠올렸는데.”

“가이버? 그게 뭔데?”

“모르냐? 그 명작 만화를?”

“흠.”

“100층탑을 나가면 꼭 봐라. 두 번 봐라.”

염훈은 묘하게 강조했다.

“후, 그러지.”

은혁은 무척 지쳐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참, 내려가면 자기 전에 이거 투약해라.”

은혁은 주사기 형태의 환골탈퇴 나노강화제를 던져줬다.

그러자 염훈은 무척 실망했다는 눈빛으로 은혁을 봤다.

“은혁아. 내가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마약은 하지 않는다.”

“뭐래, 이 바보가. 자세히 봐.”

“어? 한자로 뭐라 적혀 있는데…….”

“한 글자씩 잘 읽어 봐. 이렇게 적혀 있을걸? 환골……탈…….”

“화, 환골탈태?!”

“뭐, 대충 그런 거지.”

은혁은 마지막 글자를 교정해 주지 않았다.

“와씨, 이거 좋은 거지?”

“엄청 좋은 거지. 연구 길드가 연구 중인 물건이니까. 연구 길드장이 직접 준 거다.”

“이걸 나한테 준다고?”

“난 목걸이 받았다니까. 그리고 넌 9층에서뿐만 아니라 여태 잘해줬고.”

은혁은 멋쩍은 듯 목덜미를 긁으며 말했다.

“……고맙다.”

염훈도 왠지 감동을 받았다.

멋쩍어진 두 사람은 일부러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며 게이트로 갔다.

그리고 5층으로 귀환했다.

* * *

파앗!

5층에 도착한 순간.

“앗! 왔다!”

“비켜! 다 비켜!”

“내가 먼저입니다!”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올리버의 부관들이 멋대로 찍어서 송출한 방송을 본 이들이었다.

은혁이 레나와 대등하게 싸워 결국 승리하는 모습을 본 이들은 크게 흥분했다.

“키보드 길드의 길드장 강석춘이오!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어딜! 우리 스파클링 길드가 먼저입니다! 저희 스파클링 길드는 7대 길드에 준하는 거대 길드로서……!”

“월드 쿵푸 연합 길드입니다! 7대 길드를 뛰어넘는 8대 길드를 세우는 일에 관심 없으신가요!”

중소 규모급 길드의 길드장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은혁이 레나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고, 은혁이 이미 ‘1인 길드’급으로 강하다는 것을 자기들 눈으로 봤다.

그러니 체면이고 뭐고 길드장이 직접 영입하러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물론, 기다리고 있던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타워일보의 야마다 신조 기자입니다! 잠깐 인터뷰 좀!!”

“저희 100층 뉴스가 먼저입니다!”

“다 비켜요! 저는 7대 길드를 규탄하는 모임, ‘칠규모’의 대표 양동혁…….”

“거, 사람들 왜 이럽니까! 이러면 강은혁 님만 더 불편해할 뿐입니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명함을 은근슬쩍 건네지 마!!”

신문사, 뉴스 방송국은 물론 다양한 정치 목적을 지닌 이들까지 은혁에게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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