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 콩나무 미션 (1)
<독자 엽서>
독자 의견, 정기구독 신청, 또는 공략 제안이 가능합니다.
상승 길드 공략집 편집국에 보내주십시오.
정기 구독 신청 시에는, 구독료 송금 후 연락 바랍니다.
“불만 사항 같은 것도 적어서 보낼 수 있는데, 보낼래?”
“……됐어. 그 정도까진 아냐.”
“그래? 그럼 이 엽서는 내가 쓴다.”
은혁은 컵라면 먹는 취식대 옆에 서서는, 독자 엽서에 뭔가를 휘리릭 적었다.
염훈이 호기심으로 엿보려 하자.
“어허!”
은혁은 모의고사 때 컨닝하려는 친구를 막아서듯 몸으로 가렸다.
“좋아, 그럼 배송 부탁합니다!”
편의점에서 우편 서비스도 하고 있었다.
직원 NPC는 배송 완료까지 최소 6시간에서 최대 48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말해줬다.
“자, 그럼 나가서 먹자.”
은혁은 구매한 컵라면을 뜯어서 뜨거운 물을 부었다.
* * *
우편 보내고 10분 뒤.
주인공 일행은 편의점 바깥 테이블에서 먹방을 펼치고 있었다.
“우음, 컵라면 맛이 좋은데?”
염훈은 감탄했다.
‘얼큰 우육탕면 진한 맛’은 바깥의 컵라면보다 맛있어서,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치? 네 입맛에 맞을 줄 알았다. 이건 100층탑에서만 파는 거니까 맘껏 먹으라고.”
은혁은 은혁대로 평범한 치킨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근데 여기서 다 먹어도 되냐?”
“비상식량은 따로 챙겨뒀으니 염려 마.”
그때였다.
성큼성큼.
한 남자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잠깐 앉아도 될까?”
박병철.
신규 랭킹 2위인 자였다.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이네.’
회귀 전의 박병철은 11층~14층 구간에서 죽는다.
은혁이 11층~14층에 도전하는 건 그 이후의 일이기에, 박병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저, 신규 랭킹 1위가 어이없이 추락사했다니 다들 놀랐던 것 정도만 기억이 나네.’
상승 길드가 처리했다는 뒷소문이 있긴 했지만, 딱 뒷소문 정도여서 은혁도 깊게 파고들진 않았었다.
“앉으시죠.”
은혁이 말하자 박병철이 털썩 앉았다.
박병철은 조금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은혁을 쓰윽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고는 툭 내뱉었다.
“축하한다. 신규 랭킹 1위 했던데.”
“운이 좋았죠.”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강해진 거지?”
“운이 좋았죠.”
“재수 없는 새끼네, 이거.”
“그쪽도.”
팍!
박병철은 은혁이 먹던 샌드위치를 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순간.
“얍.”
샌드위치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겹쳐진 그림자에 [그림자 도약] 스킬을 발동, 은혁은 양손으로 만든 그림자로 쏙 튀어 오르게 했다.
탁.
가볍게 받아내서 우물우물 먹었다.
박병철은 코웃음 쳤다.
“괜찮은 잔재주군.”
“재주를 논할 때가 아니지 않냐, 이 예의 없는 새꺄?”
앉아 있던 염훈이 욕을 박았다.
“남이 밥 먹는 데 와서 대뜸 시비를 거는 새끼가 뭔 재주를 논하는 거야? 사과를 하거나 꺼지거나 해라.”
염훈이 으르렁거리는데도 박병철은 염훈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은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러시죠.”
“내 동료가 돼라.”
‘이건 좀 새로운 전개인데?’
회귀 전에도 이런 일은 없었기에 은혁은 흥미가 동했다.
“왜요?”
“너는…… 진지하게 100층탑을 정복하려 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도 100층탑을 정복할 거다. 같은 목적을 지닌 우리가 진지하게 한 팀이 된다면 좋지 않겠나?”
“뭐, 공통 목표를 지닌 사람들끼리 동료가 되고 하는 것 자체는 좋은데,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지라.”
“의외군. 냉철한 타입 같아 보이는데.”
“겉보기로는 알 수 없는 법이죠. 그쪽도 똑똑한 타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멍청한 타입이니까.”
“뭐?”
“이유가 궁금하다면 하나씩 설명해 줄 수도 있습니다.”
“궁금하군. 해봐.”
“왜 상승 길드에 가입한 겁니까?”
“상승 길드가 7대 길드 중에서 탑을 오르는 일에 가장 열심이니까.”
“상승 길드에 가입해 봤자 이용당하고 죽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해보셨습니까?”
은혁은 슬쩍 운을 띄웠다.
회귀 전 지식으로도 박병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는지는 알 수 없었기에, 박병철의 반응으로 단서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상승 길드가 날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오히려 날 죽이지 않고 길게 활용하겠지.”
‘그게 네 착각이다, 멍청아.’
박병철은 자신이 11층~14층 구간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기에 이렇게 오만한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식의 판단이 곧 오만입니다. 당신도 신규 랭킹 1, 2위를 다투는 강자이지만, 100층탑의 7대 길드가 어떤 존재인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어요.”
“강자존의 법칙이 통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그걸로는 충분치 않은가?”
“네. 충분치 않습니다. 상승 길드는 필요하다면 부하들을 짓밟으면서 올라가는 길드입니다.”
상승 길드는 선한 길드는 아니지만 딱히 악한 길드도 아니다.
왜냐하면 선악에 대해서는 애초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승 길드에 대해 박병철은, ‘강한 자를 무조건 우대하는 길드’라는 식으로 편리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식의 이해는 지금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큰 착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뭐, 상관없어. 상승 길드가 날 토사구팽하려 든다면, 내게도 한 방은 있으니까.”
박병철도 고집이 강한 편이었다.
“뭐, 그럼 그렇게 하시죠. 다만 저와 염훈은 특정 길드에 가입할 의향이 현재로서는 없으며, 특정 길드에 가입한 당신과 같은 팀을 맺을 의향도 없습니다.”
“……그런가. 그럼 11층에서 보지.”
박병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마디 덧붙였다.
“11층이 네가 오를 수 있는 마지막 층이 될 거다. 내 동료가 되지 않을 거라면, 거기서 끝장내주지.”
박병철은 그렇게 말하더니, 손가락으로 목을 쓰윽 긋는 시늉까지 했다.
“풉.”
은혁은 웃으며, 샌드위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박병철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웃기지?”
“도전 포즈를 꽤 귀엽게 하시는 것 같아서. 안 그러냐, 염훈?”
“그러게? 실제 칼부림이 난무하는 100층탑에서 손가락으로 지 목 긋는 시늉이라. 좀 유치한 듯?”
은혁과 염훈은 박병철의 도발 행위를 품평하며 피식거렸다.
“이 새끼들이……!”
뿌드득.
박병철은 이를 갈았다.
“이 굴욕에 대한 빚은 반드시 갚겠다. 기억해둬!”
박병철은 고집스럽게 한 번 더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투확!
그리고 [질주] 스킬로 흙먼지를 날리며 사라졌다.
“저 개 같은 새끼가! 뛰는 폼도 개 같은 게!”
염훈은 날아가는 박병철을 향해 쌍욕을 퍼부었다.
잠시 뒤, 오후 시간대가 되고 11층에 올랐다.
* * *
-11층 : 거대한 콩나무.
플레이어들은 완전히 평평한 녹색 잔디밭 위에 서 있었다.
이렇게까지 완전히 평평한 잔디밭은 느낌이 이질적이었기에, 250명의 플레이어 중 절반은 당황스러워했다.
“축구장도 이렇게까지 평평하진 않은데.”
“여기서 뭘 하면 되는 거지?”
플레이어들이 모인 대기 장소는 공기가 맑았지만, 대기 장소 바깥은 안개가 자욱해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플레이어들은 태연했다.
상승 길드 소속인 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오늘 11층부터 14층까지 이어지는 메인 미션은 단순한 미션이 아니라, 상승 길드의 1군으로 승격하느냐 마느냐를 겨루는 중대한 테스트다!”
2군 감독이 외쳤다.
“상승 길드에서는 누구보다 먼저, 효율적으로 높은 층에 오르는 자가 곧 법이다! 상승 길드에 가입한 연차, 레벨, 모두 상관없다! 너희는 동료이자 라이벌이다! 반드시 먼저 15층에 도달하도록! 알았나!!”
“옛!!!”
기존의 2군과, 새로 편입된 훈련반이 우렁차게 외쳤다.
2군 감독과 부감독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은 이미 11층~14층 통합 메인 미션을 클리어한 사람들이었고, 오늘은 시험관 자격으로 참가한 셈이었다.
“저 녀석, 엄청 노려보네.”
염훈이 투덜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상승 길드의 시험 브리핑 도중에도, 박병철은 은혁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태도는 마치 상승 길드의 테스트 따위보다, 은혁을 이기느냐 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듯했다.
“어이, 자네 듣고 있나?”
보다 못한 상승 길드 2군의 부감독이 박병철을 불렀다.
“…….”
“이봐. 신입이 그 태도가 뭔가?”
툭.
주의를 주기 위해 어깨를 건드린 순간.
푸콰콱!!
박병철의 손이, 자기 어깨를 건드린 부감독의 손을 움켜쥐어 터뜨렸다.
“끄아아악!”
부감독이 쓰러지자, 그제야 박병철은 부감독을 내려다봤다.
“함부로 손대지 마. 2군 부감독 주제에.”
그 말이 나머지 상승 길드원들을 분개시켰다.
“뭐야, 이 미친 새끼는?”
“아무리 상승 길드가 위만 보는 길드라지만 너처럼 위아래 없는 애새끼를 봐주는 길드는 아니거든?”
“감독! 이 새끼 손 좀 봐줘도 되겠죠? 여긴 5층이 아니니까.”
기존의 2군에서 오래 굴러 온 길드원들이 박병철을 포위하려 했지만.
“꺼져라.”
박병철이 [늑대의 눈]으로 명령했다.
“읏.”
“크윽.”
플레이어들이 본능적으로 물러났다.
‘A+급 직업 붉은 늑대의 드루이드.’
그것이 박병철의 직업이었다.
뽑을 때 이미 A급 직업이었고, 2차 각성 때 등급을 올려서 A+ 직업이 됐다.
‘전투력이 무시무시하지.’
드루이드는 드물게 있는 하이브리드형을 제외하면, 정령술 위주, 드루이드 술법 위주, 변신 위주로 나뉜다.
변신 위주는 드루이드치곤 정령술이나 다른 드루이드 스킬을 잘 못 쓰지만, 맨몸 전투력과 재생력은 성기사를 뛰어넘는다.
‘게다가 붉은 늑대는 아드레날린에 따라 전투력이 더 폭발하는 타입이지.’
박병철이 오만하게 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희귀 아이템 없이도, 동료가 없이도, 자기 몸뚱이만 믿고 날뛰면 그게 오히려 더 강하니까.
그때였다.
푸드득!
날갯짓 소리가 안개 저편에서 들려오더니.
“자자, 플레이어들 다 모였습니까!”
거대한 오리가 여러 마리 날아왔다.
그중에 유난히 덩치가 큰 오리가 눈에 띄었다.
“앗!”
“저 오리는!”
알아보는 이들도 드물게 있었다.
튜토리얼 1층의 그 오리였다.
“우리가 관리하는 층에 잘 오셨습니다!”
오리들은 푸드덕푸드덕 날면서 한 바퀴 돌았다.
“올해 본 얼굴도 있고 아닌 얼굴도 있군요! ……앗?!”
그때, 은혁을 알아본 한 오리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은혁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그 오리는 날개를 유난히 파드닥거리며 화를 냈다.
“흥! 이토록 빠르게 11층까지 오다니! 보나 마나 약삭빠른 꼼수를 부려서 온 거겠죠!”
“뭐, 그렇죠.”
“하지만 당신도 여기까지입니다! 정말 어려운 미션이니까!”
그때, 안개 저편에서 훨씬 커다란 오리가 훨훨 날아왔다.
그 오리의 날갯짓에서 이는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안개가 확 걷힐 정도였다.
“환영하오! 도전자들이여!”
그러자 오리들이 환호했다.
“오리 왕!”
“오리 왕!”
이름 그대로 오리들의 왕이었다.
“용맹한 도전자들이여! 11층부터 14층 구간의 첫 미션을 선사하겠노라!”
<11층 메인 미션 : 콩나무의 뿌리 찾기>
-목표 : 콩나무의 뿌리가 있는 곳까지 이동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도착 순위에 따른 차등 보상.
-실패 시 페널티 : 1개월간 재도전 금지.
-제한 시간 : 5시간.
기묘한 미션 내용을 본 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콩나무?”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