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 콩나무 미션 (2)
11층 참가자 중 120명 정도가 고개를 갸웃거린 반면, 나머지 인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자, 상승 길드원들! 다들 배운 대로만 해라!”
“이해가 안 가는 자는 상승 길드 길드원용 공략집을 참조할 것!”
상승 길드원들은 이미 핸드북 사이즈의 공략집을 들고 있었다.
“안개 지역을 돌파하여, 콩나무의 뿌리 지점까지 도착할 것! 시작하라!”
오리 왕이 외치자, 다른 오리들도 재잘거렸다.
“후후후! 뒤덮인 안개를 뚫고 가려면 꽤 힘들 겁니다!”
“비행 스킬로 날아가는 꼼수는 쓰기 힘들걸요! 특수한 안개라서 오리가 아닌 존재는 오랫동안 날기 어려우니까!”
“제한 시간 이내에 과연 해낼 수 있을까요?”
“우린 바람을 탈 줄 아니 먼저 갑니다!”
오리들은 그렇게 약 올리듯 외친 뒤, 오리 왕을 따라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플레이어들은, 막상 밉살스러운 오리가 사라지자 조바심을 냈다.
“우, 우리도 가자!”
“근데 어디로?! 죄다 안개라서……!”
“일단 상승 길드 플레이어들 뒤를 쫓아갑시다!”
“좋은 생각이군요!”
다른 플레이어들도 우르르 상승 길드의 뒤를 따랐다.
상승 길드원들은 뒤에서 허둥지둥 쫓아오는 플레이어들을 비웃듯이, 이동 속도를 올렸다.
“따라가자.”
은혁과 염훈은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동했다.
“젠장, 지독한 안개네.”
“앞에 가는 상승 길드만 무조건 따라가자!”
그때, 안개 너머로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이다!”
“저기서 콩나무라는 걸 찾아야 하나?”
“나무가 겁나 많은데?”
쿠쿠쿠쿠…….
그때, 숲으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제야 사람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챘다.
숲이 가만히 있지 않고 꿈틀거리며 다가오고 있던 것이다.
“저, 저거!”
“트렌트다!”
“다들 조심해!”
숲의 절반은 트렌트였다.
트렌트는 나무 형태의 거인으로, 자의식을 갖고 있었다.
특히, 숲에 함부로 침입하는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다.
플레이어 중 절반 정도가 주춤했다.
하지만 상승 길드원들은 그 반대였다.
“뛰어!”
“놈들이 뿌리를 완전히 들어올리기 전에 돌진!”
뿌리를 박고 있던 트렌트가 몸을 일으키기까지 짧게는 5초, 길게는 10초가량 걸렸다.
파바바밧!
상승 길드원들은 [질주], [돌진], [저공 비행] 등을 써가며 재빨리 트렌트들을 스쳐 지나갔다.
“앗!”
“약았다!”
상승 길드원이 아닌 플레이어들은 엉거주춤하게 멈춰 서거나, 어설프게 상승 길드원들을 쫓으려 했다.
하지만.
“쿠오오!”
콰직!
트렌트의 공격에 당할 뿐이었다.
“제길!”
“다들 힘을 합칩시다!”
상승 길드원들이 숲을 관통해서 저만치 앞서 나간 사이,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한곳에 모여서 트렌트와 싸움을 시작했다.
“[라이트닝 볼트]!”
“[봉황각]!”
“[암습]!”
플레이어들은 각각 마법사 스킬, 무투가 스킬, 도적 스킬 따위를 시전했다.
하지만.
쿠쿠쿵…….
트렌트들은 데미지를 입긴 했지만, 의미 있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런! 이 트렌트들은 죄다 100년 이상 묵은 트렌트입니다!”
한 드루이드 플레이어가 외쳤다.
“겉 부분에 피해를 먹여 봤자 여간해서는 안 쓰러져요!”
그 순간.
뚜둑.
피해를 입은 트렌트들은 다시 뿌리를 땅에 박았다.
슈르륵, 슈르륵…….
땅에서 양분을 모아 회복하는 한편, 나무줄기를 길게 늘어뜨려 휘둘러댔다.
“으악!”
“이건 사기야!”
“그래도 약점은 있어요! 불에 약합니다!”
“화염 계열 마법사분들! 나와 주세요!”
후방에 있던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용기를 냈다.
“[파이어볼]!!”
“합쳐서 쏩시다!”
“연계형 [파이어볼]!!!”
콰쾅!
콰콰콰쾅!!
화르르르……!
확실히 화염 계열 스킬은 효과가 좋았다.
“우리도 쏘자! [플레임 애로우]!”
궁술사들도 가능한 자들은 화염 화살 스킬로 가세했다.
“쿠오오!”
“크우우우……!”
트렌트들이 쓰러졌다.
“됐다!”
“역시 화염이 정답이었어!”
그 순간.
촤아악!
하늘에서 물줄기가 쏟아졌다.
마치 누군가가 큰 양동이 여러 개로 들이붓는 듯한 물줄기였다.
“어?!”
“뭐, 뭐임?!”
그러자 오리들이 하늘에서 비웃었다.
놈들이 양동이를 잔뜩 입에 물고 되돌아온 것이다.
“화염 스킬은 반칙!”
“화재 방지 차원에서 물을 끼얹었습니다! 괜찮죠?”
오리들은 약을 올렸다.
“야, 이 미운 오리 새끼들아!”
플레이어들이 화를 내며 화살이며 스킬을 날려댔지만.
“어쿠, 위험!”
오리들은 양동이를 내던지고 얼른 도망쳤다.
양동이를 잃었으니 두 번 방해하러 오긴 힘들 터였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의 사기가 꺾였다.
불이 붙었던 트렌트들은 물에 맞은 뒤, 순식간에 회복했다.
“이래서 상승 길드 놈들이 안 싸우고 그냥 간 건가……!”
“뭐야, 이거! 11층에서 힘을 다 빼면 어떻게 14층까지 가란 말이야?!”
“망할, 포기하고 다음 회차를 노려야 하나.”
플레이어들이 자포자기하려는 순간.
콰쾅!
외곽 쪽에 있던 플레이어 둘은 포기하지 않고 무식하게 싸우고 있었다.
은혁과 염훈이었다.
타앗!
은혁이 높이 뛰어올랐다.
“[강타]!!”
헤비 체인 소드로 트렌트를 내리쳤다.
콰쾅!!
파카카카칵!!
톱밥이 미친 듯이 튀고, 트렌트 하나가 통째로 반 토막 났다.
“염훈! 그걸 써라!”
“알았어! [무적 돌진]!!”
콰콰쾅!!!
[2초 무적] 상태에서 [신성한 날개]를 펼치고 온몸으로 충돌하자, 트렌트가 여러 마리 쓰러졌다.
“저 사람들…….”
“강은혁과 염훈이다……!”
“왜 계속 싸우는 거지? 그것도 외곽 쪽에서?”
그때, 은혁이 외쳤다.
“여러분! 이쪽입니다!”
은혁과 염훈이 구멍을 뚫어 둔 외곽 쪽 루트를 가리켰다.
“아직 포기하긴 일러요! 이쪽에 길을 뚫었습니다!”
트렌트 대다수가 플레이어들에게 집중된 사이, 은혁과 염훈은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외곽 쪽 트렌트들을 처치했다.
“5층으로 퇴각하실 분은 퇴각하시고, 나머지 분들은 우리가 어그로 끌 테니 빙 돌아서 가요!”
은혁이 외치자 플레이어들은 당황해했다.
“당신들은 어쩌고!”
“여긴 나랑 염훈, 둘이면 충분합니다.”
“하, 하지만.”
“괜찮으니 빨리 움직여요! 당장!”
은혁이 외치자, 플레이어들은 미안해하면서도 은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부는 한계를 자각하고 5층 방면 게이트로 되돌아갔고, 일부는 용기를 얻고 앞으로 나아갔다.
“고맙소!”
“무운을 빕니다!”
플레이어들이 이동한 순간.
“쿠오오오!”
트렌트들은 도망치는 이들을 쫓는 대신, 남아 있는 은혁과 염훈에게 다가갔다.
남은 염훈과 은혁은 무식한 물리 공격 위주로 싸웠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29.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30.
묵묵히 트렌트를 사냥하던 은혁은 레벨이 2 올랐다.
‘레벨업하기 은근히 좋은 곳이라니깐.’
트렌트는, 전형적으로 묵직한 한 방을 지닌 대신 느린 몬스터다.
트렌트를 처치하면 경험치를 꽤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여기서는 느긋하게 전멸시키는 게 경험치 면에서는 이득이야.’
얼핏 보면, 무조건 빨리 달려서 뿌리에 도착하는 게 이득인 것 같다.
오리들 또한 빨리 달리라고 재촉했고, 트렌트를 못 죽이게 훼방을 놨다.
하지만 그건 함정이다.
미션창을 자세히 보면 의외로 제한 시간은 5시간으로 길고, 뿌리까지 멀지도 않다.
안개 때문에 생기는 조바심 때문에 경험치 밭을 두고 가는 격이다.
“야, 은혁아! 화염 주문 좀 팍팍 쓰면 안 되냐? 이제 오리도 없는데!”
트렌트를 처치하다 지친 염훈이 물었다.
“안 돼. 너무 바싹 태워서 죽이면 트렌트의 마정석 안 나와.”
끈적한 수액이 굳어서 만들어진 ‘트렌트의 마정석’은 쓸모가 있었다.
“흡!”
은혁은 헤비 체인 소드를, 나무꾼이 벌목하듯 휘둘러댔다.
키이이잉!
콰콰콰콰콰……!
‘좋았어!’
불을 쓰지 않고 트렌트를 죽이려면 물리 공격력이 강해야 했다.
도끼나 망치로 무식하게 치는 게 의외로 효과적이다.
반면에 은혁이 지닌 헤비 체인 소드는…….
‘거의 벌목기 수준이지.’
본래 대형 몬스터나 외피가 단단한 몬스터를 처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묵직한 전기톱 형태의 대검.
그게 헤비 체인 소드였다.
‘너넨 오늘 다 죽는다.’
“하앗!”
키이잉!
콰드드득!
콰직!
빠가각……!!
은혁은 미친 듯이 썰어젖혔다.
톱밥을 하도 뒤집어써서 머리카락이 하얗게 될 무렵, 은혁은 [메탈 서전트 소환] 스킬을 썼다.
“메탈 서전트! 트렌트의 마정석을 회수하라!”
“네, 주인님!”
메텔 서전트는 드론 모드로 변신하더니, 트렌트의 마정석을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탈 서전트는 크기가 너무 작았다.
‘힘내라! 똘이 장군!’
은혁은 속마음으로 응원하며, 몰려드는 트렌트와 맞서 싸웠다.
그러자 전사 숙련도는 물론, 소환술사 숙련도도 조금씩 올랐다.
-전사 숙련도가 6% 증가했습니다!
-현재 전사 숙련도 : 29%+.
-소환술사 숙련도가 6% 증가했습니다!
-현재 소환술사 숙련도 : 10%.
-소환술사 스킬 [메탈 워커 소환]을 획득하셨습니다!
-소환술사 스킬 [메탈 스파이크 소환]을 획득하셨습니다!
“오오!”
[메탈 워커 소환]은 일꾼 유닛을 뽑는 스킬이다.
[메탈 스파이크 소환]은 금속으로 된 가시와 파편을 바닥에 소환하는 스킬로, 공격, 함정, 견제용으로 좋다.
“[메탈 워커 소환]! 연속으로!”
파앗!
은혁은 메탈 워커를 여섯 유닛 소환했다.
소환술사 숙련도는 낮았지만 마법사 직업은 이미 2차 각성까지 했기에, 마나 사용 효율이 좋았다.
“삐빅.”
“삐립 삐.”
메텔 워커들은 여행용 트렁크 두 개 크기의 유닛들로, 바퀴와 집게 팔이 달려 있었다.
몸체의 내부가 비어 있어서 사물을 담아 옮기기 적합했고, 물 위에서도 몸이 둥둥 뜨는 특성이 있다.
메탈 서전트와 달리 지능이나 눈치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메탈 서전트! 메탈 워커를 지휘하여 마정석을 모아라!”
“알겠습니다!”
메탈 서전트가 트렌트의 사체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지휘봉 삼았다.
“자, 트렌트의 사체에서 마정석만 회수해라!”
“삐빅. 삐잇.”
메탈 워커들은 일을 했다.
겉모습은 똑같은 메탈 워커였지만, 일을 잘하는 녀석과 못하는 녀석이 있었다.
실제 로봇이라기보다는 금속 차원의 생명체에 가깝기에 특성이 미묘하게 달랐던 것이다.
그때마다 메탈 서전트는 칭찬과 타박을 번갈아 했다.
일을 잘하는 녀석에게는.
“옳지! 잘한다!”
일을 못하는 녀석에게는.
“야! 그렇게 요령 피울래?!”
메탈 서전트는 나무 막대기를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삐빗! 삐빗!”
야단맞은 메탈 워커들은 허둥지둥 일했다.
‘올 킬 달성까지 얼마 안 남았다!’
트렌트를 전부 죽이면, 공적치에 따라 올 킬 업적이 달성된다.
‘체력이 슬슬 한계인데.’
은혁은 트렌트의 공격에 한 대도 안 맞았고 때리기만 했는데도 지쳤다.
‘화염 스킬을 전혀 안 쓰고 무기로만 싸우려니 확실히 빨리 지친다.’
머릿속 분석과는 별개로 입가에는 사나운 미소가 감돌았다.
‘이거야, 이거! 회귀 전 전사 시절의 느낌!’
믿을 건 자신의 손에 쥔 검과 노력뿐이던 시절의 감각.
“크와아아아!!”
은혁은 투지를 폭발시키듯 포효했다.
그리고 남은 트렌트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구오오오오……!”
트렌트들도 포효했다.
나무로서는 처음 느끼는, 절박함 가득한 포효였다.
* * *
“흠?”
박병철은 흠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방금, 엄청난 투지가 밀려왔는데……?’
박병철은 붉은 눈으로의 뒤를 돌아봤지만 안개뿐이었다.
짙은 안개는 스펀지처럼 먼 곳의 소리마저 빨아들여서, 은혁의 포효는 박병철의 예민한 귀에도 잘 들리지 않았다.
‘착각인가.’
박병철은 다시 앞을 봤다.
앞에는 다섯 구의 시체가 있었다.
박병철이 죽인 상승 길드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