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 콩나무 미션 (3)
“으윽…….”
아니, 다섯 중 한 명은 아직 죽지 않았다.
박병철은 어이없어했다.
“심장이 뽑히고도 어떻게 살아 있지?”
죽어가는 자는 생존력 높은 전사였기에 심장이 뽑혀도 즉사하지 않았다.
“이 미친놈……! 심장을 뽑아가다니……!”
박병철은 [늑대인간 변신] 상태에서, [심장 먹기] 스킬을 썼다.
스탯 잠재력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이 배신자 놈……! 어떻게 동기를 죽이냐……!”
“동기 좋아하네. 경쟁자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동료 길드원 살해는…… 7대 길드 전체가 죄악시…… 하는…… 중죄다……!”
그 말에 박병철은 히죽 웃었다.
“뭐래? 안 들키면 되는 거잖아?”
박병철은 늑대인간 패시브 스킬 [야성의 감각]을 상시 발동 중이었다.
이 안개 속에서 박병철이 동료 다섯을 죽이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11층~14층 통합층의 경우, 메인 미션이 끝나면 다음 회차 플레이어들이 오기 전에 대청소가 이루어지지. 공략집에 다 적혀 있잖나?”
즉, 바닥에 떨어진 자잘한 쓰레기는 물론이고, 사체들도 전부 소멸된다는 의미였다.
증거가 소멸하게 되니, 박병철이 저지른 살인 증거도 자연히 소멸된다.
“……!”
“뭐,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진 마라.”
박병철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나는 쓰레기 같은 너희들의 심장을 먹고 강해질 거다. 그리고 최초로 100층탑을 공략해낼 거다. 너희는 내 영양분이 되는 거니까, 무의미하게 죽는 건 아니야.”
“큭, 크크큭…….”
죽어가던 플레이어가 비웃었다.
“뭐가 웃기지?”
“넌…… 아직 아무것도 몰라. 100층탑의 무서움을.”
“뭔 개소리지?”
“후후…… 푸흐…… 100층탑에서 가장 무서운 건 말이지…… 크큭…….”
웃음을 흘리던 플레이어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죽었다.
뭐라 말하기 힘든 불길함을 느낀 박병철은 주위를 둘러봤다.
물론, 아무도 없었다.
“쳇.”
인벤토리창에서 물통을 꺼내어 손과 입가의 피를 닦은 박병철은 서둘러 이동했다.
* * *
트렌트는 피를 흘리지 않는 몬스터였다.
하지만 허연 톱밥을 드러낸 채 갈라져 죽은 트렌트의 사체는 처참했다.
그런 트렌트의 사체가 끝도 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안개 저편에서.
쿠쿵!
마지막 트렌트가 쓰러졌다.
“허억, 허억…… 전멸!”
-11층의 모든 트렌트가 처치되었습니다!
-올 킬 보너스 공적치 판정 중……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축하드립니다! 강은혁 님께서 공적치 1위를 달성하셨습니다!
-트렌트 학살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너스로 500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너스로 체력과 마력이 완전 회복됩니다!
-업적 달성 보너스로 레벨이 상승합니다!
-현재 레벨 : 36.
“으와아아! 해냈다!!”
은혁이 두 주먹을 하늘로 뻗은 채 외쳤다.
모든 직업의 가능성을 얻은 이래로, 가장 효율 떨어지는 방식으로 무식하게 무기만 써서 사냥했다.
화염 스킬만 조금만 섞어 써도 소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을 테지만, 은혁은 고집스럽게 그러지 않았다.
“후엑, 후엑. 그만한 가치가 있길 바란다, 짜식아!”
염훈도 곁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동안 메탈 서전트와 메탈 워커는 바쁘게 마정석을 한곳에 모았다.
허벅지 높이까지 수북하게 쌓였다.
“전부 회수했습니다, 주인님!”
메탈 서전트가 경례를 척 붙이며 보고했다.
“잘했다!”
은혁은 인벤토리창을 연 뒤, 트렌트의 마정석을 죄다 집어넣었다.
“자, 그럼 이동하자, 염훈!”
“으으, 좀 쉬었다 가자.”
은혁은 공적치 1위로 체력과 마력이 완전 회복되었지만, 염훈은 2위여서 경험치만 좀 얻고 끝이었다.
“근육 피로야?”
“응.”
“[광역 정화] 스킬을 네 온몸에 써라.”
“그런다고 회복될 리가 없잖아. 회복 스킬을 쓰면 모를까 왜 정화 스킬을…….”
“야. 네 근육이 보통 근육이냐?”
“아.”
그러고 보니 환골탈퇴인지 환골탈태인지를 해서, 골근이 완전히 달라졌다.
“믿고 한번 해봐.”
“쩝.”
염훈은 반신반의하며 그렇게 해봤다.
파앗!
“오옷!”
피로가 싹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환골탈태의 진정한 효과였구나……!”
사실 그것 말고도, 환골탈퇴의 근육에는 자잘한 효과가 더 숨겨져 있었다.
다만 그것은 한참 뒤의 일이므로 은혁은 미리 알려주진 않았다.
“이동하자.”
은혁은 지체 없이 안개 속을 성큼성큼 걸어갔다.
“은혁아, 근데 콩나무 뿌리를 찾을 수 있을까?”
안개가 자욱한데, 그 조그만 걸 어떻게 찾느냐는 물음이었다.
“괜찮아. 쉬워.”
은혁은 도적 스킬 [아이템 탐지]를 썼다.
[함정 탐지]와 비슷한 스킬로, 근처의 미세한 아이템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키우는 스킬이었다.
“찾았다.”
은혁은 바닥에서 오리털을 찾았다.
꽤 많이, 한쪽 방향으로 떨어져 있었다.
“오리 녀석들은 다음 미션을 위해 콩나무로 향했지. 그때 떨어뜨린 털 조각들이야.”
즉, 오리털만 따라가면 다음 미션 장소로 이동이 가능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자, 안개가 확 걷히며 콩나무가 드러났다.
“……에?”
“저게 콩나무야.”
“아니, 잠깐. 콩나무라는 게 설마.”
“네가 생각한 게 맞아.”
은혁은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콩나무를 올려다봤다.
콩나무의 둘레는 아파트 단지 전체의 둘레와 비슷했다.
아파트 건물 한 동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전체의 둘레만큼 굵다.
보는 사람이 압도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크기였다.
그 커다란 콩나무가 대략 45도 각도로 솟아 있었고, 구름보다 높았다.
“잭과 콩나무에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한 종자야.”
“세상에…….”
“가자.”
두 사람은 콩나무의 뿌리라고 적힌, 콩나무 등반 사무소라는 건물로 갔다.
콩나무의 돌출된 뿌리 하나 밑에 지은 가건물이었다.
“거, 빨리 좀 와요! 두 사람이 꼴찌라고요!”
등산로 관리인 옷차림을 한 오리가 얄밉게 소리쳤다.
소리치던 오리가 은혁을 알아봤다.
“앗! 당신은 내가 담당했던 4구역의 플레이어!”
“흠.”
은혁의 눈에 비친 오리는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오리가 아는 척을 해도 심드렁했다.
“우리가 마지막인가?”
은혁이 뿌리 지역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그래요! 꼴찌들아! 빨리 와요!”
“음.”
은혁은 염훈에게 턱짓을 했다.
“꼴찌에서 두 번째 자리는 양보해주지.”
“흠, 혹시 꼴찌로 클리어하면 뭔 보너스라도 있냐?”
“아니. 하도 1위만 해서 가끔은 꼴찌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거든.”
“와 씨, 너 진짜 친구 별로 없었지?”
“……빨리 가라.”
그렇게 염훈이 꼴찌에서 두 번째로, 은혁이 꼴찌로 클리어했다.
-축하드립니다! 11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꼴찌로 도착하셨기에 보상 수준은 최소한으로 책정됩니다!
-포션용 빈 병 2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먼저 클리어한 이들은 많게는 포션을 20개씩 챙겨갔지만, 은혁은 아니었다.
꼴찌 한 것을 조롱이라도 하듯, 텅 빈 유리병만 잔뜩 제공했다.
“푸푸풉! 꼴찌래요!”
오리는 기쁜 듯이 웃었다.
“하하하! 그러게.”
은혁도 기쁜 듯이 웃었다.
그러자 오리는 조금 불안해했다.
“왜, 왜 웃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은 벌써 콩나무 위로 올라갔다고요?”
콩나무 뿌리 지역까지가 11층.
콩나무 줄기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과정이 12층이었다.
“웃을 때가 아니라, 빨리 올라가야죠?”
오리가 재촉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12층에 진출했는데, 꼴찌인 당신이 왜 여유를 부리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은혁은 웃음을 흘릴 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내 계획을 말씀드리죠.”
“뭐, 뭘 또 이상한 걸 하려고!”
오리가 도망치려 했지만.
파앗!
오리의 등 뒤 그림자에서 메탈 서전트가 튀어나왔다.
‘[그림자 도약] + [메탈 서전트 소환].’
오리의 뒤편 그림자에서 메탈 서전트를 소환한 것이다.
“이놈! 꼼짝 마라!”
“악! 이건 뭐죠?!”
“알 거 없다! 체포다!”
메탈 서전트는 사슬을 생성하더니, 오리를 생포했다.
“길잡이 노릇 좀 해줘야겠습니다.”
은혁은 오리를 집어 들었다.
* * *
콩나무는 45도 각도로 솟은 나무여서, 오르는 게 아주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각종 함정과 위험 요소들이 있었다.
쿠르릉! 쿠릉……!
소형차 크기의 콩 열매가 낙석처럼 굴러 내려왔다.
“으악, 또 온다!”
“숨어!”
콩나무 곳곳에는 나무옹이가 있어서, 그곳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콰쾅!
콰르르르……!
콩 열매는 한바탕 몰려오더니 뿌리로 똑바로 내려갔다.
“제기랄, 저게 말이 되냐?”
“무슨 열매가 저렇게 커?”
“그게 문제가 아냐. 저렇게 열매가 똑바로 굴러 내려간다는 게 말이 안 돼!”
거대한 둥근 열매가 나무줄기를 타고 똑바로 굴러 내려간다는 건, 작정하고 함정으로 만들어진 거란 뜻이었다.
“나는 이제 무리야! 포기!”
12층에서는 포기하는 자가 급증하고 있었다.
“포기! 포기합니다!”
“나도 포기! 내려줘!”
대부분이 상승 길드원들의 뒤만 쫓아오던 플레이어들이었다.
포기를 외치자 오리들이 날아왔다.
“흥, 우리가 착하니까 봐주는 겁니다.”
“얼씬도 하지 마시길.”
오리들은 두 마리씩 짝을 지어 날아오더니, 포기한 이들을 부리로 물어서 5층으로 귀환하는 게이트로 이동시켜줬다.
“뭘 선심 쓰는 척이야!”
“너희가 자꾸 바람으로 방해하잖아!”
그랬다.
오리들은 때때로 [안개 바람] 스킬로 갑자기 안개를 동반한 바람을 흩뿌리곤 했다.
나무줄기가 아무리 거대하다지만, 갑자기 안개로 시야가 막히고 바람에 흔들리게 되면 플레이어들도 견디기 힘들었다.
“이번 플레이어들도 그저 그렇군.”
보다 높은 곳에서, 오리 왕은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이래서야 14층의 히든 미션은 영원히 클리어 불가로 남겠어.”
오리 왕은 조금 더 높이 날아서, 12층의 끝자락에 도달한 상승 길드원들을 관찰했다.
“허억, 허억.”
“조금만 쉬자.”
그들은 상승 길드원 전용 공략집에 적힌 대로, 최대한 신속하게 이동했다.
‘11층부터 12층 끝까지는 신속 이동이 생명이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체력이 저하되고 함정에 당할 위험이 커진다.’
실제로 그러했다.
“근데 왜 이렇게 숫자가 적지?”
상승 길드는 이번에 120명 가까운 인원이 출발했다.
그런데 겨우 절반인 60명만 도착했다.
“어? 이상하네?”
“이렇게 수가 적을 리가 없는데?”
상승 길드원들은 12층과 13층의 경계면에서 휴식하며 인원수를 여러 번 세어봤다.
“우리끼리 경쟁이 심했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적은데.”
“……아, 저기 한 명 더 온다.”
상승 길드원 중에서는 맨 마지막으로 박병철이 왔다.
“선글라스……?”
박병철은 어째선지 안 쓰던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야, 너! 훈련반의 박병철이지?”
“다른 동기 녀석들은 어딨냐?”
상승 길드 2군 소속 플레이어들이 묻자, 박병철은 선글라스만 고쳐 썼다.
“모르겠는데? 왜 이렇게 모여 있지? 안 올라가나?”
그는 오만한 어조로 말하더니 상승 길드원들을 스쳐 지나갔다.
“이 새끼가, 선배가 묻는데!”
탁!
어깨를 친 순간.
툭.
선글라스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썅……!”
박병철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웃!”
“야, 야 저거.”
“너…… 눈이 왜 그러냐?”
박병철의 눈동자는 붉게 변해 있었다.
충혈 정도가 아니라, 각막과 홍채가 통째로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쳇.”
[심장 먹기]는 사기 스킬이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심장을 먹을 때마다 눈이 붉게 변하고, 붉은색이 짙어진다.
휴식을 취하면 붉은 기운이 가라앉지만, 그전에 들키고 말았다.
“뭐, 상관없어.”
박병철은 내뱉듯이 말했다.
“들키건 말건 1위로 클리어하면 되니까.”
동료 길드원 살해는 용서받기 어려운 죄이지만, 이번 테스트를 1위로 클리어하면 즉결 처형은 면할 수 있을 터였다.
상승 길드는 길드원의 생명을 중시하지만, 탑을 오르는 것을 더 중시하므로, 죄를 뛰어넘는 우수함을 증명한다면 박병철은 우대받을 터였다.
“이 미친 새끼 봐라?”
“신규 랭킹 1위였었다고 지금 정신 못 차리나 본데, 배신자를 좋게 보는 길드는 없거든?”
“이 새끼 포위해! 생포해서 감독관님께 넘기자!”
사사삭!
상승 길드 플레이어들이 박병철을 포위했다.
“크크큭.”
박병철은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