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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54화 (54/434)

54화 : 콩나무 내부의 히든 루트 (1)

“웃어?”

포위된 박병철이 웃자, 상승 길드원들은 인상을 구겼다.

“그럼 이 상황에서 안 웃을까?”

박병철은 놈들이 너무 한심해서 웃음이 나왔다.

“나보다 탑에 먼저 들어온 주제에 그렇게 전투력이 형편없다니.”

박병철은 [야성의 감각]으로 플레이어들의 속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겁에 질렸군.’

포위를 하느니 마느니 떠들고 있지만, 돌발 상황이라 대처가 어중간했다.

궁술사들의 어깨는 뻣뻣해져 있었고, 전사들의 발은 머뭇거렸다.

“크와아아!!!”

박병철은 갑자기 괴성을 질렀고.

“읏?!”

타앗!

놀란 플레이어들을 무시한 채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저놈이?!”

“쫓아라!”

박병철은 13층을 향해 질주했고, 나머지 상승 길드원들도 그 뒤를 쫓았다.

* * *

콩나무 줄기의 초입.

뿌리에서 겨우 10미터 정도 오른 지점.

“와, 은혁아. 우리 진짜 꼴찌인가 봐.”

염훈이 불안해했다.

“[신성한 날개]로 단숨에 올라갈까?”

염훈이 묻는 순간.

콰르르르르!

거대한 콩 열매가 굴러왔다.

“이쪽으로!”

나무옹이가 여럿 있어서 숨을 곳은 충분했다.

쿠쿠쿵……!

나무옹이를 빗겨 간 콩 열매는 뿌리 쪽으로 내려갔다.

“와 씨, 콩나무 아니랄까 봐! 뭔 함정이 이따위야?!”

염훈은 화를 냈고, 은혁은 피식 웃었다.

“염려 마. 우리한테는 보험이 있잖냐. 그치 오리야?”

은혁이 손에 쥔 오리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익! 익! 나쁜 인간들!”

오리는 발버둥 쳤지만 메탈 서전트의 쇠사슬에 묶여 있기에 꼼짝도 못 했다.

“이런 편법을 쓰다니! 그러고도 플레이어냐!”

오리가 악을 썼지만.

“플레이어니까 이런 편법을 쓰는 거지. 미션창에도 오리를 생포하지 말라는 규칙은 없던데?”

오리는 몬스터라기보다는 작은 훼방꾼, 관찰자 역할이지만, 공격하거나 생포하지 말라는 규칙은 없었다.

<12층 메인 미션 : 콩나무 줄기 오르기>

-목표 : 콩나무 가지 지역이 있는 13층 초입까지 올라갈 것. 빠르게 도착하면 추가 보너스. 단, 도착 순위 하위 10%의 경우에는 무조건 미션 실패.

-성공 시 보너스 : 순위에 따른 차등 보상.

-실패 시 페널티 : 1개월간 재도전 금지.

-제한 시간 : 1시간.

“자아, 그럼 슬슬 지름길 히든 루트를 알려주시지?”

“알려 줄 리가 없지! 바보 인간!”

“호오, 인질로 잡힌 주제에?”

사실 오리는 인간이 아니므로 ‘인질’이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지만 오리는 화가 나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길 안내 따위는 죽어도 하지 않을 거임! 죽일 거면 죽여 보시든가!”

오리는 되려 죽여보라고 도발해댔다.

“햐, 고놈 근성 있네.”

염훈은 왠지 감탄했다.

하지만 은혁은 속지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알고 있다.”

흠칫!

오리는 은혁의 눈치를 살폈다.

“죽어도 오리 왕이 부활시켜주기 때문이지?”

그랬다.

오리들은 죽어도, 여간해서는 오리 왕의 권능인 [생명의 바람] 스킬로 부활할 수 있었다.

“그, 그걸 어떻게……!”

“훗. 그건 알 거 없다. 어차피 죽일 생각도 없었지만, 슬슬 서로 협력해 보면 어떨까?”

“협력? 무슨 말도 안 되는……!”

오리가 말하려는 순간.

콱.

트렌트의 마정석 하나를 오리에게 강제로 먹였다.

“케켁, 무슨 짓이냐! 인간!”

“너희 오리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물건.”

트렌트의 마정석은 오리에게 나쁜 물건이 아니다.

오히려 먹으면 커지고 강해진다.

하지만 오리가 이것을 많이 먹을 경우, 오리 내면의 일시 각성을 촉진시켜서 오리 왕의 기억과 권능을 일부 뺏어 쓰게 된다.

그래서 트렌트의 마정석은, 오리에게는 금지된 음식이었다.

쿠구구구…….

오리의 몸에 기운이 솟고 덩치가 5% 정도 증가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거다.”

“그걸 누가 믿어!!”

“이제부턴 믿는 게 좋을 거다.”

은혁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오리 왕이 먹지 말라고 한 트렌트의 마정석을 먹었으니, 이제 내가 널 죽여도 오리 왕은 화를 내며 널 부활시켜주지 않을 거다.”

“그, 그런!”

“결국, 너는 몸속에서 마정석 기운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는 죽어선 안 돼. 그럼 부활이 안 되니까. 그럼 네게 남은 선택지는?”

“으으.”

“그래. 네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우릴 도와라.”

“익! 익! 자꾸 뭘 어떻게 도우라는 건데!”

“히든 루트 알려줘. 그리고 내부 구조도 알려주고. 길잡이 노릇만 잘해 달라는 거다.”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오리가 버럭 소리쳤다.

“히든 루트 들어가면 나오는 히든 미션 난이도가 얼마나 높은데! 그건 오리 왕도 통제하기 힘들어서, 히든 루트에 봉인해 둔 거라고!”

오리는 히든 루트에 있는 시련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통합 미션층에서 추가로 연속 히든 미션이라니! 그걸 해낼 거라고 믿는 건 미친 짓이지!”

오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열 받네.”

은혁은 오리를 마구 흔들었다.

부웅! 부웅!

“악! 무슨 짓이야!”

“너, 1층 튜토리얼 담당자였지?”

“그, 그래서?”

“기억 안 나냐? 너무 쉽다면서 A급이랑 S급 직업 보유자는 멋대로 따로 빼두고 난이도를 올렸었잖아?”

“그, 그건….”

“남들 난이도는 제멋대로 어렵게 맞춰 놓고 비웃을 때는 언제고, 막상 어려운 루트로 같이 가달라니까, 뭐 어째? 미친 짓?”

“아, 아니, 내 말은……!”

“음, 일단 좀 닥쳐 봐.”

부웅! 부웅!

은혁은 가차 없이 오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꽤액!”

“저기, 은혁아.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염훈이 말려서 은혁은 손을 멈췄다.

하지만 오리를 노려보는 은혁의 눈빛은 무시무시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탑으로 끌려 온 사람들한테, 굶주린 트롤을 갖다 놓고 다섯 명을 제물로 바치라는 둥 미친 짓거리를 즐겼던 네놈이, 막상 히든 루트로 안내하라니깐 미친 짓이라고? 내가 볼 때는 네가 미친 것 같은데?”

“음, 듣고 나니 내가 막 화가 나네. 야, 줘봐.”

이번에는 염훈이 오리를 움켜쥐고 뒤흔들 기세였다.

“아, 알았어! 사과할게!”

오리가 얼른 사과했다.

하지만 은혁과 염훈은 차가운 눈으로 오리를 내려다봤다.

“맹세해라.”

“맹세……?”

“첫째. 우리를 도울 것. 둘째. 내년의 신규 플레이어들부터는 괴롭히지 말 것.”

“알, 알았어.”

“맹세한다고 말해.”

“……맹세한다.”

“좋아. 그럼 히든 루트로 안내해.”

오리는 한숨을 내쉬고, 나무옹이로 이동했다.

똑똑! 똑, 똑, 또도독! 똑!

부리로 신호음을 보낸 순간.

끼기기긱…….

덜컹!

나무옹이의 비밀 문이 열렸다.

“가자.”

은혁, 염훈, 오리는 히든 루트에 진입했다.

* * *

콩나무의 내부는, 습한 공기와 약간 미끌거리는 바닥으로 이뤄진 던전이었다.

식물의 줄기 내부였기에 생소한 환경이었다.

그때, 히든 미션이 발동했다.

-12층 히든 루트에 진입하였습니다!

-모든 히든 미션을 클리어하는 경우, 지름길을 통해 13층 시작점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음, 이쪽으로 오는 게 옳은 선택이었군!”

염훈이 감탄하며 말했다.

13층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는 조금 위험을 무릅쓰고 히든 루트로 오는 게 나았다.

<12-B층 히든 미션 : 황금알을 낳는 닭>

-목표 : 황금알을 낳는 닭을 생포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황금알을 낳는 닭의 소유권 및 귀속 권리 획득.

-실패 시 페널티 : 죽음.

-제한 시간 : 25분.

-히든 미션이 시작됩니다!

-히든 미션 전용 아이템 ‘포획용 틀’이 제공됩니다!

-히든 미션 전용 버프 [야수 추적]이 제공됩니다!

은혁과 염훈은 새로 받은 버프 스킬을 발동해서 황금알을 낳는 닭을 찾아 나섰다.

“허, 여기서 닭을 찾으라니.”

염훈은 익숙지 않은 [야수 추적] 스킬을 쓰며 고뇌에 찬 표정을 지었다.

“너무 걱정 마. 금방 찾을 거야.”

이 히든 루트에 대한 지식은, 회귀자인 은혁에게도 좀 부족했다.

하지만 길잡이 오리가 있는 데다가 [야수 추적] 버프가 적용된 상태이니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은혁아.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염훈이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하자, 은혁은 호기심이 동했다.

“뭔데?”

“닭은 새의 일종이지.”

“……그런데?”

“자고로 새는 노래로 유인하는 법.”

염훈은 헛기침을 하고 2000년대 초반식 R&D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다.

“황금알~을 낳는 닭~ 오우~ 예~. 워후우우~ 워후~ 워어~!”

염훈의 구성진 노래가 히든 던전에 울려 퍼졌다.

“음, 잘 부르긴 하는데, 딱히 효과는 없을…….”

“거, 너무 시끄럽닭!”

어디선가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발걸음이 들린 곳에는 매우 거대한 황금 닭이 있었다.

3.5미터가량 되는 신장에, 부리 또한 뾰족해서, 묘하게 공룡을 올려다볼 때의 느낌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히익!”

오리는 은혁의 품속에서 와들와들 떨었다.

“크군.”

은혁은 중얼거렸다.

히든 미션용으로 제공된 포획용 틀보다 훨씬 컸다.

“뭐, 썰어서 담으면 되긴 하지만.”

“야, 그런 무서운 소릴 대뜸 하냐.”

은혁과 염훈이 티격태격하는 순간.

“꼬~ 끼오오오오!!!”

엄청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큭!”

“으윽!”

얼른 귀를 막지 않았다면 고막이 찢어졌을지도 모르는 소리였다.

그리고.

타탓!

황금 닭은 도망쳤다.

“앗! 도망친다!”

염훈은 달려서 쫓았다.

그 순간.

“걸렸닭!”

황금 닭은 급정지하더니 목 부위만 확 뒤로 꺾었다.

그리고 염훈의 머리를 노려 맹렬한 속도로 쪼아댔다.

파파파파팍!

“큭!”

[2초 무적]을 적절히 발동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방심했어도 머리가 뚫릴 정도의 맹렬한 쪼아대기였다.

하지만.

“[그림자 도약].”

파앗!

은혁은 황금 닭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왔다.

“꼬고곡?!”

황금 닭이 경악한 순간, 은혁은 황금 닭의 목덜미 위에 올라탔다.

“멈춰라. 항복하면 죽이지 않겠다.”

헤비 체인 소드를 목에 들이밀자 황금 닭은 공격을 멈췄다.

그리고 항의했다.

“죽이지 마라! 나, 나는 황금 닭이닭!”

“보면 알아.”

“오해하고 있닭! 나는 황금 닭이지, 황금알을 낳는 닭이 아니닭!”

“흠? 잠시만.”

은혁은 생각을 정리했다.

“즉, 황금알을 낳는 닭은 따로 있다는 건가?”

“그렇닭!”

“어쩐지. 포획용 틀이 너무 작더라니.”

은혁은 납득하고 재차 묻기로 했다.

“그럼 황금알을 낳는 닭은 어디 있지?”

“그건 알려 줄 수 없닭!”

“허, 대답 안 하면 죽일 생각인데?”

“헛소리! 어차피 날 못 죽인다는 거 알고 있다! 이곳 줄기 내부는 복잡한 갈림길이니까! 길잡이 없이는 굶어 죽을 것이다!”

“길잡이라면 있는데.”

은혁이 오리를 들이밀었다.

“앗?”

“얘도 일단 튜토리얼을 맡을 정도로 잔뼈 굵은 놈이니 여기 지리를 모르진 않겠지. 그러니 길잡이가 아쉬워서 널 죽이지 못하는 일은 없다.”

“으윽.”

“저기, 은혁아?”

염훈이 끼어들었다.

“그냥 이 황금 닭 죽이면 안 되냐?”

“어? 왜? 이놈이 아까 너 공격한 거 때문에?”

“그게 아니라…….”

“뭔데? 말해봐.”

“치킨…….”

“헉! 너 설마.”

“음.”

염훈은 입맛을 다셨다.

“이놈을 죽이고 통째로 인벤토리창에 넣은 뒤 5층에 가서 프라이드치킨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싼값에 파는 거지!”

염훈의 머릿속에는, 화염 스킬로 기름을 가열하는 은혁과, 고기를 정화시켜 맛을 좋게 한 뒤 튀기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실컷 먹고, 나머진 싼값에 파는 거야! 치킨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은 우릴 영웅으로 칭송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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