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콩나무 내부의 히든 루트 (2)
“하하! 염훈. 네가 그런 소릴 하다니.”
은혁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사실, 5층에도 치킨 파는 가게는 이미 있었다.
하지만 황금 닭을 보고 표정을 진지하게 바꿨다.
“확실히 이 황금 닭을 치킨으로 튀기면 꽤 비싸게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으아, 이 악마들아!”
황금 닭은 처음으로 공포에 질렸다.
자기를 죽이는 건 기본이고, 어떻게 요리해야 더 좋을지 진지하게 토론하는 인간들 앞에서는 황금 닭도 견디지 못했다.
“항복이닭!”
결국, 황금 닭은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아, 진짜 요리 잘할 자신 있었는데.”
염훈은 연신 입맛을 다셨다.
헬스남 출신이라 그런지 아쉬움이 컸다.
퍽퍽한 닭가슴살 위주로만 먹고, 치킨을 자주 못 먹은 탓이다.
“나중에 치맥 잘하는 곳에 데려다줄게. 좀만 참자.”
은혁이 염훈을 다독였다.
‘으으, 가증스러운 악마들. 저들끼리만 우애를 다지다니.’
조용히 있던 오리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동했다.
저벅저벅…….
복잡한 갈림길을 5분 정도 걷자.
“여기닭.”
신식 양계장을 닮은 넓은 공간이 나왔다.
닭장들이 수백 개 있었으며, 닭장 사이의 거리가 꽤 넓었음에도 닭은 무수히 많았다.
“꼬꼬꼬!”
“꼬끼엑!”
무수히 많은 닭의 깃털은 죄다 색깔이 각양각색이었다.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심지어는 미국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흰색 파란색 붉은색 조합도 있었다.
“뭔 닭이 이래?”
염훈이 어이없어하며 한 걸음 내디디는 순간.
삐빅!
-접근 권한 없음!
히든 던전의 시스템이 진입을 금지시켰다.
황금 닭은 웃었다.
“크크! 이 중에 황금알을 낳는 닭이 딱 한 마리 있닭! 여기서 골라야 한닭!”
“호오…….”
힘들게 뛰어들어서 잡는 방식이 아니라, 딱 한 마리 선택해서 잡는 방식이었다.
“기회는?”
“기회는 1인당 1회닭!”
“그렇군.”
은혁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염훈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크흠, 왜 그렇게 쳐다보냐?”
“에? 평소처럼 감으로 한 방에 팍! 뽑는 거 아니었어?”
“…….”
이쪽 히든 루트는 은혁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회귀 지식으로 뽑아내는 게 불가능했다.
“흠흠, 잠시만.”
은혁은 오리의 목을 비틀었다.
“꿰궤궥?!”
“네 차례다.”
은혁은 입을 벌린 오리의 목에 잔뜩 트렌트의 마정석을 쑤셔 넣었다.
그 순간.
기이이잉……!
오리의 몸에서 빛이 나고 덩치가 순간적으로 커졌다.
-히든 이펙트 발동!
-오리 왕의 권능을 일부 사용합니다!
“옷, 오오옷?!”
오리는 지금의 오리 왕이 지니고 있던 힘과 기억을 일부 각성, 전송받았다.
“자, 골라!”
“으, 으음.”
오리는 짙은 보라색 닭을 가리켰다.
“저거, 저게 황금알을 낳는 닭인 듯?”
“좋아!”
은혁은 포획 선언을 하고, 닭장 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포획용 틀을 사용하자 아무런 저항 없이 보라색 닭이 잡혔다.
얌전하게 잡힌 닭과 포획용 틀은 그대로 일체화되더니 아이템으로 변했다.
-축하드립니다! 12-B층의 히든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닭의 소유권은 강은혁 님께 귀속됩니다!
-황금알을 낳는 닭 :
3성급 아이템.
매일 새벽 4시 30분이 되면, 50 골드의 가치를 지닌 황금알을 1개~4개를 낳는다.
이 황금알은 실제 달걀이 아니라, 달걀 형태를 한 실제 황금이다.
황금알을 낳는 닭 또한 실제 닭이 아니라, 황금알을 낳도록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에 가깝다.
“좋았어.”
50 골드면 대략 250만 원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최소 250만 원이 생기는 셈이다.
운이 좋으면 하루에 200 골드, 즉 1,000만 원 상당의 이득을 얻을 수도 있었다.
‘정기 수입원 확보.’
은혁이 씨익 웃자, 황금 닭은 어이없어했다.
“어, 어떻게! 그걸 어떻게 찾은 거냐!”
황금 닭이 오리에게 묻자, 오리는 어리둥절해했다.
“그, 글쎄?”
어느새 오리의 몸에 깃들었던 버프는 사라져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닭!”
황금 닭은 후다닭 어디론가 달려갔다.
“앗, 골든 딥 프라이드치킨이 도망친다!”
염훈은 이미 메뉴명까지 정해 둔 모양이다.
그는 즉시 [신성한 날개]로 쫓으려 했지만.
“너무 바싹 쫓진 말자. 도망치게 둬.”
“뭐? 왜?”
“히든 미션은 아마도 세 개일 테니까.”
은혁이 히든 던전 규모로 예상하건대, 히든 미션은 3개나 4개 정도일 터였다.
그중 하나는 히든 던전 보스와의 대결이 포함될 터였다.
황금 닭을 뒤쫓아서, 그 위치를 찾아내는 게 더 이득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12-B층 히든 미션 : 보물전을 찾아라>
-목표 : 콩나무 줄기 내부에 위치한, 클라우드 자이언트의 보물전을 찾을 것.
-성공 시 보너스 : ‘보물에 미친 클라우드 자이언트’와 평화롭게 대화할 권리. 단, 1분 동안만 지속된다.
-실패 시 페널티 : 죽음.
-제한 시간 : 30분.
-히든 미션이 시작됩니다!
-히든 미션 전용 버프 [헤이스트]가 제공됩니다!
은혁의 예상대로 다음 히든 미션이 떴다.
‘[메탈 서전트 소환]!’
파앗!
은혁은 작은 크기의 메탈 서전트를 비행 형태로 날아가게 한 뒤, 닭의 위에 살짝 착지시켰다.
황금 닭은 눈치채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도망쳤다.
‘이거라면 거리가 아무리 멀어져도 놓치지 않겠지.’
소환사는 소환수의 위치를 자동으로 추적할 수 있었다.
“막아라! 침입자다! 막아라! 안 나오고 뭣들 하느냐!”
황금 닭은 계속 울부짖으며 도망쳤고.
“스우우우…….”
나무줄기 곳곳에서 나무 수액 형태의 슬라임들이 솟아 나왔다.
“으악, 수액 슬라임이다!”
오리가 비명을 질렀다.
“느리지만 통로에서 싸우면 이기기 어려운……!”
“거, 조용히 좀.”
은혁은 비명 지르는 오리를, 염훈이 갖고 있던 포획용 틀로 잡아 버렸다.
그러자 오리는 아이템화되더니.
“얍.”
인벤토리창에 넣자 그대로 들어가 버렸다.
“쳇, 꽤 수가 많은데?”
염훈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슬라임을 보며 혀를 찼지만.
“여기서 슬라임이라니. 재료비 굳었네.”
은혁은 묘하게 기뻐했다.
염훈은 미심쩍었다.
“슬라임이 약한 몬스터냐?”
“칼로 죽이기엔 어려운 몬스터지.”
슬라임은 그 형태와 색깔, 속성이 꽤 다양했는데, 지금 나온 슬라임들은 나무줄기 히든 던전 내부에서만 찾을 수 있는 희귀한 나무 수액 슬라임이었다.
‘사체만 수거해도 엄청 비싸게 팔 수 있지. 물론, 나는 팔 생각이 없지만.’
은혁은 계획이 다 있었다.
“염훈. 가급적 죽이고 시체에 정화 스킬 쓰지 마라. 아니, 그냥 내가 나설게.”
은혁은 무기를 집어넣고, 양손에 화염 주문을 준비했다.
‘가열해서 통째로 슬라임 농축액으로 만들어야지.’
* * *
황금 닭은 자신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위험해! 빨리 알려야 해! 빨리 알리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은, 저 둘이 위협적이라는 뜻이기도 했지만, 자기 자신의 목숨이 더 위험하다는 의미였다.
‘경계를 똑바로 서지 못했다는 죄로 죽을 수는 없어!’
끼이익.
보스룸의 문을 열고 들어간 황금 닭은 조심스레 안을 살펴봤다.
아름다운 하프 음악 소리만 들릴 뿐, 황금 닭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주인님?”
대답은 없었다.
촤르륵…….
보물전 내부에서 금화 쏟아지는 소리와 아름다운 하프 연주음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일하시는 중이시구나.’
황금 닭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물전의 문을 부리로 두드렸다.
“주인님. 접니닭.”
“뭐냐, 난 바쁘다.”
촤르르륵.
금화와 은화가 흐르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긴급 사태입니닭. 들어가겠습니닭.”
황금 닭은 위험을 무릅쓰고 보물전 안으로 들어갔다.
화악…….
문을 열자마자 황금빛이 눈을 찔렀다.
“흥, 멍청한 놈.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보물전에는 거인이 있었다.
혼돈의 구름이 뭉쳐서 피와 살점으로 변하여, 거인 형상으로 만들어진 거인 일족.
클라우드 자이언트였다.
키가 5미터가량 되는 그 존재의 좌우에는 금화와 은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클라우드 자이언트는 특히, ‘보물에 미친 클라우드 자이언트’였기에, 금화와 은화를 자루에 채우느라 바빴다.
“허억, 허억.”
강건한 클라우드 자이언트가 숨을 헐떡이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더요, 더 빨리요.”
어디선가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빨리 금화를 모아야 해요. 도둑놈들이 오기 전에.”
아름다운 목소리는 한켠에 세워진 거대한 하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사람의 키만큼 큰 하프였는데, 기괴하게도 두꺼운 입술이, 하프의 울림통 꼭대기 쪽에 달려 있었다.
자아를 가진 그 하프는 시도 때도 없이, 교묘하게 클라우드 자이언트를 재촉했다.
“어서요. 금화를 자루에 채워요.”
“알고 있어.”
클라우드 자이언트는 대답하며 금화를 자루를 채웠다.
하지만.
뻐엉!
자루가 터지고 말았다.
“아아, 이번에도 실패네요.”
하프가 푸념했다.
자루에 딱 맞게 꽉 채우는 것.
하프는 이것을 매일 지시했다.
클라우드 자이언트는 그동안 모은 보물들을 하프의 지시대로 채워 넣었다.
만약 클라우드 자이언트가 게으름을 피우면, 말하는 하프가 금화와 은화를 소멸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휴, 잠깐 쉬자.”
“쉴 틈은 없어요.”
“황금 닭이 보고하러 왔잖나.”
클라우드 자이언트는 딱딱하게 말하고 황금 닭을 노려봤다.
“뭔 일로 왔는지 알고 있다. 침입자가 황금알을 낳는 닭을 훔쳤다는 것 때문이겠지.”
“아, 알고 계셨습니까?”
“내가 궁금한 건, 네가 왜 여기 왔느냐, 인데.”
“그야 보고를 하려고…….”
“무서워서 도망친 거 아닌가?”
“…….”
황금 닭은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부리를 닫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때, 하프가 밉살스럽게 재잘거렸다.
“게다가 바보처럼 스파이까지 붙이고 왔군요.”
“스파이……?”
그때, 황금 닭 뒤에 숨어 있던 메탈 서전트가 휙 도망치려 했다.
“쉬익!!”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던 하프가, 갑자기 목소리를 날카롭게 변화시키며 바람을 쏘아댔다.
파악!
“앗!”
메탈 서전트는 하프가 쏘아낸 바람의 화살에 맞고 쓰러졌다.
“벼룩 같은 놈!”
어느새 메탈 서전트는 클라우드 자이언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크기 차이를 감안하면, 인간이 두 손가락으로 벼룩을 생포한 것만큼이나 빠르고 정밀한 손놀림이었다.
팟!
메탈 서전트는 사라졌다.
“……소환 해제됐군.”
시야 공유로 보고 있던 은혁이 소환을 해제한 것이다.
클라우드 자이언트는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콰직!!
손날을 휘둘러 황금 닭의 목을 쳤다.
“……!!”
거대한 황금 닭은 목을 잃은 채 푸드득거리다가 쓰러졌다.
“무서워서 도망친 주제에 스파이까지 등에 붙이고 들어오다니. 쓸모없는 놈.”
클라우드 자이언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촤르륵.
금화와 은화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잘 죽였어요. 그보다 놈들은 어쩔 거죠?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 침입자는 내 손으로 죽인다.”
“그래요. 명심해요. 여기 오는 것들은 전부 도둑이에요.”
“알았으니 물러나 있어. 놈들이…… 도착했군.”
클라우드 자이언트가 노려본 곳에는 이미 은혁과 염훈이 와 있었다.
방어용 슬라임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오는 길임에도 전혀 지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순간, 은혁과 염훈의 히든 미션이 클리어됐다.
-축하드립니다! 12-B층의 히든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성공 시 보너스로, ‘보물에 미친 클라우드 자이언트’와 평화롭게 대화할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대화하는 동안에는 서로 공격할 수 없으며, 단 1분 동안만 지속됩니다!
은혁과 염훈의 눈앞에 60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클라우드 자이언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침입자들이여. 목적은 금화인가? 은화인가?”
“그보다 먼저 고백할 게 있는데.”
은혁이 말하며, 인벤토리창에서 황금알을 낳는 닭을 꺼내 보였다.
“이걸 훔쳤다.”
“뻔뻔하고 당당한 도적놈이군.”
“돌려달라면 돌려줄 수도 있는데.”
“별 희한한 도적놈이군. 그럼 돌려다오.”
“여기.”
은혁은 지체 없이 황금알을 낳는 닭이 든 포획 틀을 던져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