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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57화 (57/434)

57화 : 콩나무의 나뭇가지로

* * *

-13층 : 콩나무의 나뭇가지.

“후엑, 후엑.”

13층에 도착한 염훈은 숨을 몰아쉬었다.

“산소가 갑자기 확 모자란 느낌인데? 안개도 짙고.”

“당연하지. 그리고 이건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야.”

줄기 내부를 통해 올라오느라 환경의 변화를 깨닫는 게 조금 늦었다.

그때, 미션창이 떴다.

<13층 메인 미션 : 열매 모으며 나뭇가지 오르기.>

-목표 : 열매 7개를 모아, 14층 입구에 도달할 것. 그곳에 있는 오리 왕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성공 시 보너스 : 오리 왕이 주는 점수에 따라 다름.

-실패 시 페널티 : 추락.

-제한 시간 : 1시간.

염훈은 메인 미션 내용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저기, 은혁아?”

“응. 피 냄새지?”

두 사람은 주위를 경계했다.

“으으…….”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상승 길드 소속의 2군 플레이어가 죽어가는 중이었다.

두 사람이 다가간 순간.

“……맙소사.”

열 구도 넘는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이 심장이 완전히 뽑혀 있었고, 지금 죽어가는 자는 불행 중 다행으로 내장만 조금 흘린 상태였다.

“사……려…… 줘어…….”

“염훈. 치료 가능하냐?”

은혁이 묻자 염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능하긴 한데,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내장이 아예 밖으로 흘러나온 상태였기에, 억지로 배 속에 쑤셔 넣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그 상승 길드원은 괴로움에 발버둥을 쳤다.

“깔끔하게 팔다리가 잘린 걸 치료하는 게 차라리 낫지, 원.”

은혁과 염훈은 치료를 마무리하며 투덜거렸다.

오염된 내장 기관을 힐링 포션으로 씻다시피 하는 과정에서 상승 길드원은 까무러쳐 졸도하고 말았다.

“어이, 일어나.”

은혁은 가차 없이 다시 깨웠다.

“으윽?”

“치료는 끝났다. 이제 정보 좀 뱉어봐.”

“아, 알았다.”

다행히 그 상승 길드원은 상황 파악이 빨랐다.

“전부 박병철 그놈이 한 짓이다.”

은혁의 예상대로였다.

박병철은 동료까지 잡아 먹어가면서 힘을 키우고, 미션 경쟁자를 처치했다.

아무리 상승 길드라 해도 도를 넘어선 일이었기에, 상승 길드원들은 힘을 모아 박병철을 쫓았다.

하지만 하필 13층 초입의 구름이 평소보다 짙었다.

박병철은 구름 속에 몸을 숨기고 [늑대인간 변신] 스킬을 썼다.

예리해진 감각으로, 자신을 뒤쫓아 온 상승 길드원들을 하나씩 끊어 먹는 식으로 사냥했다.

“거, 완전 개새끼네.”

사정을 들은 염훈이 화를 냈다.

“그럴 거면 그 새끼는 뭐하러 길드에 가입한 거야? 동료 길드원 잡아먹으려고? 그런 건 당사자인 상승 길드는 물론, 정의 길드도 가만두지 않을 텐데?”

“염훈. 너도 5층 밖은 다 무법지대인 걸 알 텐데?”

“아니, 놈도 휴식을 취하고 아이템 사러 5층으로 돌아갈 거 아냐? 그때 처벌받을 텐데?”

“놈은 머리가 좋아.”

박병철은 자신이 동료 길드원들을 잡아먹은 걸 들키지 않은 경우 5층에 돌아가고, 크게 들킨 경우에는 아예 5층에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놈은, 상승 길드 속에서 말 잘 듣는 장기 말이 되는 대신, 상승 길드원들을 죽이고 3군주 쪽에 붙기를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해.”

“으음. 3군주라면…….”

7대 길드가 상호견제 때문에 59층을 겨우 뚫기 시작했다면, 3군주는 59층보다 높은 곳을 오르고 있었다.

박병철은, 3군주 측 스파이와 접선해서 그쪽에 붙으려는 계획인지도 모른다.

‘욕망에 충실한 놈이군.’

단, 너무 욕망에 충실했다.

박병철은 100층탑을 효율적으로 오르기 위해 상승 길드에 들어갔으나, 그의 자존심과 욕망은 곧 상승 길드를 배신하게 만들었다.

“사람 성격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지. 난 대충 상황 파악이 다 끝났다.”

은혁은 냉철한 어조로 말했지만, 염훈은 목소리에 화가 가득했다.

“가자, 강은혁! 가서 놈을 잡는 거야!”

“에?”

“뭐야, 그 반응은! 너도 그런 놈은 싫어하는 성격 아니냐!”

“그렇긴 한데…….”

은혁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미온적이었다.

‘일부러 가서 때려잡지 않아도 되는데.’

왜냐하면 회귀 지식 때문이었다.

‘놈은 14층에 도달하기 전에 추락해서 죽는다.’

굳이 은혁이 손을 쓰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추락사해서 죽기 때문이다.

동료 길드원을 죽여가면서 빠르게 올라가려는 놈이, 결국에는 목표 달성 전에 추락해서 죽는다?

이건 은혁의 참교육 미학(?)에 딱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염훈 생각은 좀 달랐다.

“그런 나쁜 놈은 안 죽을 정도로만 두들겨 팬 뒤, 강제로 5층에 끌고 가서 처벌을 받게 해야지!”

“……뭐, 꼭 그렇게 하고 싶다면 상관없긴 한데.”

쿠쿵…….

위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높은 곳은 구름이 더 짙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일단 13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면서 가자.”

두 사람은 부상자를 그 자리에 두고,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웃차, 생각보단 어렵지 않은데?”

나뭇가지는 적당히 촘촘했고, 굵기는 어른 허벅지 굵기였다.

적당히 탄력이 있지만 쉽게 부러지는 나뭇가지는 아니어서, 타고 오르기 적당했다.

“그냥 [신성한 날개]로 한 번에 쭉 올라가 볼까?”

“이 구름은 오리 왕의 권능이 담긴 구름이라, 일반적인 구름하고 달리 비행을 방해해.”

사실, 잡아 둔 오리를 시키면 구름을 뚫고 올라갈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직접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부우웅!

거대한 콩나무 열매가 날아오더니.

콰두두두!

나뭇가지를 부수고 튕겨 나갔다.

“뭐……!”

“캬캬캭!”

“꺄후우!”

콩나무 원숭이였다.

“저놈들이 12층 나무줄기 위로 콩나무 열매를 굴리는 놈들이야.”

콩나무 원숭이는 고릴라보다 덩치가 더 컸다.

“꺄후! 꺄갹!”

“끼이! 끼익!”

놈들은 어째선지 은혁을 손가락질하며 흥분했다.

“으으, 은혁아. 왠지 네가 마음에 안 드나 봐.”

“음. 그럴 수밖에 없지.”

“왜지? 네가 나보다 레벨이 높아서?”

“아니. 다른 이유가 있어.”

은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놈들은 잘생긴 남자를 싫어해. 그러니 나를 보고 더 화를 내는 거지.”

“……은혁아.”

“……나는 이런 농담 하면 안 되냐.”

“네 이미지랑 안 어울려. 남들 있을 땐 그런 썰렁 개그 하지 마라. 으으.”

염훈은 남이 들었을까 걱정된다는 듯이 주위를 돌아봤다.

“거,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냐. 부끄럽게.”

은혁도 왠지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돌린 순간.

“…….”

부상 치료를 받은 채 남겨진 그 상승 길드원이 누운 채로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크흠, 흠. 더 빨리 올라가자.”

은혁은 단숨에 [도약] 스킬로 치솟아 올랐다.

은혁이 허공에 뜬 순간.

“캬캭!”

원숭이들은 은혁의 이동 순간을 노려, 콩나무 열매를 여럿이 한꺼번에 던지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부우웅……!

항아리 크기의 콩나무 열매가 공중에 뜬 은혁을 노리고 날아든 순간.

“[광풍돌진권]. 위쪽으로.”

투쾅!

공기의 충격파를 발생시키며 수직으로 치솟았다.

“캬캭?!”

도적 스킬 [도약]으로 공중에 뜬 채로, 무투가 스킬 [광풍돌진권]을 위쪽 방향으로 쓰는 2단 점프.

은혁 이전에는 누구도 이런 식의 기법을 보인 적이 없기에 원숭이들은 고개를 쳐들고 놀랐다.

은혁은 원숭이 머리보다 몇 뼘 높은 곳에서 아래로 화염 주문을 뿌렸다.

“[네이팜 스프레이]!!”

화르르르륵!!

마법사 직업 2차 각성을 마친 은혁은 [화염 방사] 주문을 강화시킨 [네이팜 스프레이]를 썼다.

[네이팜 스프레이]는 마력 소모량이 큰 데다가, 위력, 범위, 불이 오래 남는다는 점 때문에 함부로 쓰기 어려운 스킬이다.

하지만 지금은 날랜 원숭이들을 처리하기 위해 마구 뿌리듯이 써댔다.

퍼버벙!!

화염 줄기가 목표에 적중함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나고, 이렇게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았다.

“캬아아악!!”

원숭이들은 순식간에 타죽었다.

-마법사 숙련도가 4% 증가했습니다!

-현재 마법사 숙련도 : 19%+.

바싹 탄 원숭이들의 사체는 나뭇가지에 완전히 들러붙어서 땅으로 추락하지도 않았다.

“[메탈 서전트 소환].”

은혁은 소환수를 시켜서 아이템 루팅을 대신 시켰다.

‘편하네.’

-열매 주머니를 획득하셨습니다!

-열매 주머니를 획득하셨습니다!

-열매 주머니를 획득하셨습니다!

열매 주머니 속에는 작은 열매가 3개씩 들어 있었다.

“에이, 대부분 빨간색이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이 섞여 있었는데, 대부분 빨간색이었다.

“미션창을 보니 7개를 모으라던데?”

“맞아.”

은혁은 회귀 전 기억을 떠올렸다.

13층의 끝에는 오리 왕이 있다.

오리 왕을 위해 모은 열매의 과즙으로 ‘칵테일’을 만들어 바쳐야 했다.

열매의 과즙에는 알콜 성분이 있었고, 오리 왕은 그 맛을 즐겼다.

‘오리 왕이 좋아하는 칵테일 배합은 무지개식이었지.’

즉, 모든 열매의 즙을 하나씩 배합한 칵테일이다.

참고로 제일 싫어하는 건 똑같은 색깔 7개로 만든 디저트였다.

“가자, 이쪽으로!”

은혁은 사다리 게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나뭇가지를 재빠르게 타고 올랐다.

‘열매의 배치는 무지개와 같다.’

빨주노초파남보.

즉, 13층 시작점 기준에서, 가장 좌측에 있는 나뭇가지 쪽에는 붉은 열매가 대부분이고, 가장 우측에 있는 나뭇가지 끝에는 보라색 열매가 많다.

‘결국, 가장 좌측 끝부터 가장 우측 끝까지 전부 거쳐야만 모든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거지.’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매우 힘든 일이다.

원숭이들의 방해도 거세진다.

그래서 상승 길드원들은 서로 협력해서 열매를 모으고 분배하곤 하지만…….

‘이번에는 박병철 때문에 팀워크는 다 깨졌지.’

쿠쿵…….

쿠르릉…….

지금 들리는 전투음은, 상승 길드원들과 박병철이 싸우는 소리였다.

염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구름 저편을 노려봤다.

“얼핏 잔영이 보이는군. 저기 박병철이 있다.”

염훈이 구름 너머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제는 [신성한 오러]를 눈에 집중시키기만 해도, 이 스테이지에서 가장 사악한 놈의 기운을 볼 수 있었다.

“음……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상황은 어때?”

“엄청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

상승 길드 2군 소속 플레이어들은 10명 정도였다.

어이없이 희생당한 동료의 복수를 한다는 마음으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죽여……!”

“놈이 클리어 못 하게만……!”

“통째로 밀어 버려……!”

구름을 뚫고 간간이 들려오는 흉흉한 외침만 들어도 대강의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단일 전투력은 박병철이 위였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상승 길드원들은 여럿이었다.

저렇게 싸우다 보면, 결국 박병철은 추락해서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저렇게 죽는 거였구만.’

은혁은 회귀 전 역사의 현장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달콤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회귀 전 은혁은 랭킹에 들지 못했기에, 박병철과는 충돌하지 않았다.

이곳에 도전한 시기도 달랐다.

그래서 박병철에 관한 일은 소문으로만 들었었다.

그 소문의 현장을 올려다보는 기묘한 체험은 회귀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은혁은 달콤씁쓸한 기분으로 구경했다.

하지만 염훈은 달랐다.

“올라가자.”

“가만히 둬도 박병철은 거의 100% 죽는데?”

“그걸 막자고.”

“어?”

“보아하니 상승 길드원들은 박병철을 밀어서 떨어뜨려 죽이려는 모양이야. 하지만 그렇게 두면 안 돼.”

“……너 설마.”

“맞아.”

염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재판을 받아야 해.”

“허?”

“놈들 두들겨 팬 다음 묶어서 게이트로 끌고 가자.”

“음…… 길드연합국 재판소에서 놈에게 유죄가 선고되어도, 사형이나 무기징역일 텐데?”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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