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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59화 (59/434)

59화 : 박병철 참교육 (2)

은혁은 일부러 대결까지의 시간을 좀 넉넉히 했다.

“염훈.”

은혁은 열매 꾸러미를 염훈에게 넘겼다.

그리고 귀에 대고 속닥속닥 지시사항을 전했다.

“이렇게만 하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을 거야.”

“정말?”

“정말.”

“근데 너는 괜찮겠냐? 너 혼자 남으면…….”

“괜찮아. 일대일 대결이니까 넌 여기 없어도 돼.”

“그건 그렇지만.”

망설이는 염훈에게, 포획용 틀에 갇힌 오리를 건네줬다.

“오리에게 길 안내를 맡기고, [신성한 날개]를 써서 올라가. 다들 나한테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동안 네가 제일 먼저 클리어하는 거다. 물론, 내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알지?”

“음, 일단 알았다. 그럼 클리어하고 내려올까?”

“아냐. 거기 있으면 곧 올라가지. 자리 지키고 있어.”

“알았다.”

파앗!

염훈은 [신성한 날개]로 먼저 올라갔다.

오리 왕의 권능이 담긴 짙은 구름 속에서는 오랫동안 비행할 수 없지만, 오리를 길잡이 삼았기에 비행길을 찾아 날 수 있었다.

“앗.”

“저런.”

선수 치는 염훈을 본 상승 길드원들은 잠시 망설였다.

미션 클리어를 누구보다 빨리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정작 은혁과 박병철이 싸우는 걸 구경하느라 선수를 뺏겼다.

“쳇. 머리를 썼군?”

“뭐, 상관없어. 13층 클리어는 좀 늦어지겠지만, 14층을 우리가 먼저 깨면 되니까.”

“저 강은혁이란 놈도 싹수가 노란 놈이군. 박병철에게 이기건 지건 우리가 손 좀 봐줘야겠는데?”

상승 길드원들은 은혁도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약 대결]에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어서 노려보기만 했다.

“크르르르…….”

박병철은 [늑대인간 변신] 스킬을 발동하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눈에 보이는 몸의 상처는 완전히 회복된 상태.

어느새 3초 남았다.

-3초.

-2초.

-1초.

-시작!

“캬아아악!!”

박병철은 선수필승의 의지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타앗!

은혁은 [도약]으로 피하더니.

“퓨전 스킬 [섀도 테이크 다운]!”

[패링]과 [그림자 지배]를 융합하여, 박병철의 돌진력을 이용해 나뭇가지에 충돌시켰다.

콰쾅!!

박병철의 몸이 나뭇가지를 여러 개 박살내고 튕겨 나갔다.

“오옷!”

“끝이다!”

상승 길드원들이 외쳤다.

엄청난 기세로 튕겨 나간 박병철은, 아래로 추락할 것 같았지만.

타앗!

이내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더니, 체조 선수처럼 그대로 빙글 돌아 다시 은혁에게 달려들었다.

“[그림자 도약].”

파앗!

은혁은 박병철의 등 뒤로 이동했지만, 반격을 가할 틈도 없었다.

‘빠르군.’

박병철은 말 그대로 자기 그림자가 휘날릴 정도로 빠르게 이동해댔다.

그래서 박병철의 등 뒤로 [그림자 도약]을 발동할 수조차 없었다.

“뭐, 뭐야, 저거!”

“마치 원숭이 같군.”

“우리랑 싸울 때보다 더 빨라……!”

박병철은 전투 중 추락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위태로울 정도로 나뭇가지 사이를 날다람쥐처럼 이동해댔다.

‘재밌네.’

대결 구역을 13층 전체로 했기에, 박병철은 쉬지 않고 움직여댔다.

“캬캭!”

“우끼끼!”

원숭이들은 미친 듯이 날뛰는 붉은 늑대인간을 보고 경악해서 도망쳤지만.

“캬악!”

콰직!

박병철이 원숭이를 물어뜯는 게 더 빨랐다.

그리고 그 상태로 [붉은 감염] 스킬을 썼다.

슈욱!

박병철의 몸 상처 곳곳에서 피가 빠져나오더니, 물린 원숭이들의 상처로 들어갔다.

“끼긱……!”

“갸갹…….”

콩나무 원숭이들은 눈을 까뒤집고 발광을 일으켰다.

푸확!

털썩!

대부분 발광 도중 죽었지만.

-콩나무 원숭이가 변이를 일으킵니다!

-늑대 원숭이가 되었습니다!

“크르르르!”

콩나무 원숭이 세 마리는, [붉은 감염]에 의해 박병철의 명령을 듣는 존재가 됐다.

“뭐야, 저거!”

“저게 돼?!”

상승 길드원들은 기막혀했다.

자신들이 박병철을 몰아넣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박병철에게는 공개하지 않은 스킬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가라! 강은혁을 죽여라!”

박병철은 붉은 늑대의 드루이드가 지닌 고유 스킬의 힘으로 명령했다.

“캬캬캭!”

늑대 원숭이들은 삼각 편대를 만들어서 은혁에게 달려들었다.

“[염열파].”

화르르륵!!

마법사 2차 각성으로 등급을 올린 이후로 더욱 강해진 [염열파]를 허공에 흩뿌리자, 원숭이들은 순식간에 전멸했다.

‘어디지?’

은혁은 머리로 생각한 직후, 몸으로 느꼈다.

‘아래다!’

[도약]으로 빠르게 위로 피한 것과 동시에.

콰직!

은혁이 서 있던 나뭇가지가 밑에서 위로 잘렸다.

“쳇.”

박병철은 혀를 찼다.

모처럼 원숭이들을 미끼로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한 뒤, 나뭇가지 밑에서 공격했건만, 은혁은 가볍게 [도약]으로 피한 것이다.

‘놈이 직업이 여러 개라는 게 사실이었군.’

[도약]은 도적, 무투가 등 속력 계열 직업의 공용 스킬인데, 은혁은 마치 두 직업의 장점만 뽑아 쓰듯 효율 좋게 [도약]을 쓴 것이다.

‘그래도 신체 능력은 내가 더 위다!’

박병철은 굵은 나뭇가지 위에 착지했다.

그걸 본 은혁은 주의했다.

‘[모아 뛰기]구만.’

[도약]이 별 준비 동작 없이 발동 가능한 스킬이라면, [모아 뛰기]는 점프력을 모았다가 크게 뛰는 스킬.

꾸구구국……!

늑대인간의 발목, 무릎, 허벅지, 허리 관절에 힘이 집중됐다.

뜨드드득……!

보통 인간이라면 관절 손상과 근육 파열로 아파서 굴러야 정상이지만, 관절 재생쯤은 가뿐히 해내는 늑대인간 박병철은 태연했다.

‘좀 더, 더 모은다.’

보는 사람이 식은땀이 생길 정도로, 박병철은 [모아 뛰기]의 힘을 모으고 있었다.

“야, 뭐 하냐!”

“놈이 [모아 뛰기]를 하기 전에 견제를 해야지!”

“너 직업이 여러 개라며! 멀리서 [파이어 볼]이라도 날려!”

구경하는 상승 길드원들이 훈수 두듯이 외쳤다.

하지만 은혁은 히죽 웃기만 할 뿐.

박병철은 은혁의 웃음을 이해했다.

‘정면으로 받아내겠다 이거지?’

사실, 박병철은 은혁을 엄청 의식해 왔다.

은혁이 신규 플레이어 랭킹 게시판을 보기 전부터, 박병철은 그 이전부터 은혁을 주시해 왔던 것이다.

‘나랑 닮은 놈이지. 아니, 닮은 놈이어야 해.’

어느 쪽이 진짜 신규 랭킹 1위인지, 매듭을 짓고 싶었다.

그리고 은혁 또한 그런 박병철을 이해했고, 이런 싸움을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굳이 목숨을 살리면서까지 이런 무대를 마련한 게 그 방증이었다.

“와라!”

“크와아아악!!!”

투쾅!!!

박병철은 오른쪽 다리 일부가 박살 날 정도의 폭발력으로 비행 돌진했다.

은혁은 미리 양손 안에 준비하고 있던 스킬을 합쳐서 발동했다.

“[화염 방패] 2겹 발동!”

범위는 좁고, 두께가 두 배인 [화염 방패]가 은혁의 앞에 생성됐다.

그리고 박병철의 돌진 공격과 충돌했다.

터텅!!

콰콰쾅!!!

[화염 방패]가 깨지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부웅……!

은혁과 박병철 모두 허공에 살짝 뜬 채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이 뜬 채로 간격이 어중간하게 벌어진 순간.

두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통째로 썰어주마.’

‘배때기를 후벼주지.’

0.1초보다 짧은 시간 동안, 두 남자는 서로의 생각과 다음 공격 궤적을 완벽히 이해했다.

정상인들이라면 서로 흠칫하거나 방어 과정에 들어갔겠지만, 이 둘은 계획대로 공격했다.

“하앗!!”

은혁의 헤비 체인 소드가 휘둘러지고.

“캬아악!!”

박병철이 몸을 비틀며, 찌르는 듯한 옆차기를 날렸다.

촤악!!

은혁의 회전톱 칼날이 박병철의 상체를 사선으로 길게 쨌다.

퍼벅!!

대신 박병철의, 이미 조금 부서진 늑대인간의 발끝이 은혁의 복부를 깊게 뚫었…….

“[그림자 탈출]!”

파앗!

은혁의 본체였던 것이 그림자가 되고, 은혁은 자신이 있던 곳 뒤편으로 빠르게 튕겨 나갔다.

‘뭣?!’

경악하는 박병철을 향해 은혁은 히죽 웃었다.

“아깝게 됐다.”

은혁은 박병철의 다리를 가리켜 보였다.

“내게 폭발적인 돌진을 해올 때 네 다리는 조금 망가졌어. 만일 지금 네 다리가 멀쩡했다면, 네 발끝은 내 [그림자 탈출]보다 빠르게 내 몸에 박혔겠지.”

박병철이 돌진 속력을 최대화하기 위해 무리해서 [모아 뛰기]를 한 탓에, 다리가 조금 부서져서 겨우 3cm 정도 짧아졌다.

그 3cm가 부족해서 은혁의 복부에 상처를 깊이 입힐 수 없었다.

“큭, 크윽……!”

박병철이 뒤늦게 [고속 재생]에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은혁과 다시 눈이 마주친 순간.

‘늦었다! 걸렸어! 당했다!’

박병철은 패배를 직감했다.

“[블레이징 러시].”

화륵!!

콰콰콰콰쾅!!!

“커헉!!”

박병철은 가까운 거리에서 은혁의 공격에 직격당했다.

화염과 광풍의 힘이 담긴 돌진형 퓨전 스킬에 당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뿐.

쿠당탕!

맞아서 튕겨 나간 박병철은 운 좋게 넓은 나뭇가지 위에 떨어졌다.

박병철은 즉시 몸을 옆으로 굴렀다.

콰쾅!!

[파이어 볼]이 수직으로 떨어졌다.

‘피하자. 피해야 한다.’

하지만 충격으로 뇌가 흔들리는 탓에 일어나는 게 고작이었다.

저벅저벅.

은혁은 달려들지도 않고 정면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차라리 항복하지 그래? 별로 봐주고 싶진 않지만, 항복하면 봐줄 수밖에 없으니까.”

은혁은, ‘아, 나는 너무 착해’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웃기지 마!!”

달려들기 위해 크게 한 발 내디딘 순간.

철컹!

콰직!

가시 함정이 발밑에서 튀어나왔다.

‘[메탈 스파이크 소환] 스킬은 참 쓸모가 많군.’

금속 함정이므로 눈으로 자세히 보면 보인다.

하지만 지금처럼 도발당한 상태이거나 머리에 충격이 가해진 상태에서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걸린다.

“크와악!!”

쫘자작!!

박병철은 독하게도, 함정에 걸린 발목을 손톱으로 찢어 자른 뒤, 한 발로 은혁에게 돌진해 왔다.

“캬아악!!”

[야성의 일격] 스킬.

무적 판정까진 아니더라도, 한번 발동하면 적의 공격에 맞아도 취소되지 않는 손톱 공격이다.

“독기는 인정하지만.”

은혁은 헤비 체인 소드를 높이 들었다.

“봐주진 않는다.”

달궈진 칼날처럼 뜨겁고도 날카로운 목소리.

키유웅!!

슈칵!!

은혁은 가차 없이 박병철의 한쪽 팔을 썰었다.

자동으로 [야성의 일격]이 해제됐지만.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

박병철은 [야성의 일격]을 팔로 휘두르는 척하면서, 은혁을 물어뜯어서 일발 역전 할 생각이었다.

“캬아!!!”

박병철은 은혁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했다.

하지만.

콱!!

어느새 박병철의 입천장에 청염백광단검이 쑤셔박혀 있었다.

“커컥?!”

“입이 큰 늑대인간의 의외의 약점이지.”

은혁은 품평하듯 말했다.

“입을 너무 크게 벌리면 빈 공간과 그림자가 생겨서, [그림자 도약]으로 단검만 보내는 게 가능해진다는 거.”

“커…… 커컥.”

박병철은, 좀 기괴하면서도 우스운 꼴로 바둥거렸다.

“끄후우…… 크허헉…….”

한쪽 팔과 다리가 없는 늑대인간이, 입천장에 단검이 박혀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버둥거리는 모습은 너무 참혹했다.

하지만.

“푸하하하!! 와핫하하하하하!!!”

은혁은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은혁은 회귀 전에 노력하는 검성이었고, 지금도 그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노력 끝에 적을 꺾는 것을 즐겼고, 적이 괴로워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즐거움을 표출했다.

근처에 염훈이 있을 때는 잘 짓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은 가히 악마 같았다.

“재생력을 또 발휘해 보지 그래? 응?”

은혁은 느긋한 어조로 제안했고, 박병철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미 전의는 꺾였다.

“하, 항…… 칵, 항보커어어……!”

“뭐? 잘 안 들리는데. 잠시만.”

은혁은 박병철의 입에 손을 넣더니, 입천장에 박힌 청염백광단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뽑는 순간.

“[승화]!!”

슈칵!!

화륵!!

은혁은 뽑으면서 입천장을 긋고, 혀를 자르고, 턱을 쪼갰다.

“쿠우어어어억!!”

박병철은 바닥을 굴렀다.

이미 재생력은 한계였고, [승화]를 일으킨 청염백광단검의 칼날은 재생을 방해했다.

“이제 항복 선언은 불가능하다.”

단순히 괴롭히기 위해 잔혹한 공격을 가한 게 아니다.

항복을 외치지 못하게 하려고 만신창이로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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