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 박병철 참교육 (3)
은혁은 남은 제한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 1분 14초…….
-남은 시간 : 1분 13초…….
-남은 시간 : 1분 12초…….
“얼마 안 남았군.”
뻐억!
은혁의 발차기가 박병철의 턱에 작렬했다.
“이게 현실이다.”
은혁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항복조차 못 하게 된 기분이 어때?”
흠칫.
박병철은 고통도 잊은 채 부들거렸다.
은혁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너는 분명히 강했지. 그걸 너도 알기에 같은 길드원들을 거리낌 없이 배신하고, 심장을 뽑아 먹고 여기까지 올라왔을 거다.”
“…….”
“하지만 네 강함은 딱 거기까지다. 금기를 저지르면서까지 강해졌지만, 결국 너는 항복조차 스스로 못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지. 직접 이런 상황에 처해보니까 어때? 네가 한 짓이 후회되나?”
자신은 설교와는 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도, 은혁은 말했다.
“마지막 기회다. 지금이라도 네가 저지른 걸 인정하고, 앞으로는 바뀌겠다고 맹세하면, [계약 대결]이고 뭐고 쌍방 합의로 취소한 다음 보내줄 수도 있다.”
[계약 대결]은 절대적인 대결이지만, 쌍방이 진심으로 합의한다면 취소의 여지가 있었다.
은혁은 박병철이 고개만 끄덕여도, 항복 의사가 있는 걸로 받아 줄 의향이 있었다.
‘그걸 염훈이 원할 테니까.’
사실 은혁의 본성대로라면 박병철을 잔혹하게 죽여 없애는 게 맞다.
하지만 염훈은 그걸 원치 않을 터였다.
‘내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와 준 염훈이지.’
그런 염훈이 일부러 의견을 개진해서, ‘박병철을 죽이지 말고 5층으로 데려가서 처벌받게 하자’라고 했다.
박병철의 비정상적인 야성, 투쟁 본능을 꺾으려면, 항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를 체험시켜야 했기에 혀를 자르고 턱을 쪼갰다.
‘사실 재생력 가진 적을 그렇게 만드는 게 내 취향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쩔 거냐, 박병철. 당장 결정해라.”
그 순간.
“크그으윽……!”
박병철의 눈빛에 묘한 기운이 서렸다.
은혁이 자신을 당장 죽일 것 같지 않다는 것을, 특유의 야성적인 감각으로 알아챈 것이다.
우득, 우드득…….
박병철은 멀쩡한 손으로 망가진 턱을 붙여서 수복시켰다.
그리고 늑대의 표정으로 비웃었다.
“유치한 새끼. 이 정도로 내가 항복할 것 같았냐?”
죽느니만 못한 상황의 절망을, 투쟁 본능이 이겼다.
촤악!
박병철의 팔다리가 재생됐다.
“캬아아아!!”
박병철은 또다시 은혁에게 달려들었다.
은혁은 한숨처럼 스킬을 발동시켰다.
“[메탈 체인 소환].”
철그럭!
은혁은 미리 소환술사 스킬을 준비해 뒀고, 쇠사슬이 박병철과 나뭇가지를 연결했다.
쇠사슬 그물은 거미줄보다 촘촘했고, 타이어체인보다 튼튼했다.
“크윽?!”
“난 너처럼 끈질기기만 한 놈은 싫어해. 내가 봐주기 전에 끈질김을 보이는 거면 근성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몇 번이나 봐줬는데도 끈질기면 그건 그냥 멍청한 거 아니냐?”
은혁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넌 좀 더 맞아야겠다.”
구경 중이던 상승 길드원들까지 덩달아 흠칫했다.
“무투가 숙련도를 올려야 하니까. 무기는 안 쓰고 주먹이랑 발만 쓰겠다.”
일반적으로 숙련도를 높이려면, 직업에 맞는 무기나 스킬을 반복해서 쓰면 된다.
하지만 무투가의 경우에는 더 효율 좋은 방식이 있었다.
무투가의 주먹은 일반 무기 판정이라, 때리면 때릴수록 숙련도가 오른다.
더더군다나 무투가 특성상 콤보 개념이 적용돼서 연속 공격이 성공하면 더 빨리 오른다.
“이, 이 새끼가 날 뭘로 알고……!”
“뭐긴 뭐야, 재생력 가진 샌드백 새끼지. 각오해라.”
은혁은 의미 없는 폭력을 즐기지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의미가 있는 폭력은 솔직히 많이 즐긴다.
“히이익.”
그제야 박병철은 투쟁 본능보다 훨씬 더 큰 진정한 공포를 마주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몇 번이나 항복할 기회가 있었지만, 야성의 본능에 눈이 흐려져 놓치고 말았다.
“흐랴아아아압!!”
퍼버버버벅!!
기합과 함께 주먹으로 면상을 몇 대 갈기더니.
투두두두두두두……!
몸통을 그 이상으로 냅다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라이벌이라고 했냐?’
주먹과 주먹을 꽂는 시간 사이에, 은혁은 생각했다.
‘너 따위가 나를?’
급소를 노리는 게 아니라, 발달된 흉근, 복근 위주로 노려서, 샌드백 갈기듯 마구잡이로 패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두두두……!!
-무투가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무투가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무투가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무투가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무투가 숙련도 : 97%.
-무투가 스킬 [무아연환격]을 획득하셨습니다!
무아지경 속에서 날리는 연타 공격이 그대로 스킬로 변했다.
“컥, 커커컥…….”
박병철은 사슬에 묶인 채 모든 공격을 맞았다.
‘투쟁 본능과 재생력만 갖고 지 잘난 줄 아는 너 같은 새끼가 내 라이벌이라고?’
투두두두두두……!
‘네놈뿐만이 아니야! 그 누구도 감히 나를 라이벌이라고 칭할 수는 없다! 허락하지 않겠다!’
회귀자 특유의 투지와 오만함이 주먹에 담겼다.
투두두두두두둑……!!!
퍼벅……!
콰드득!!
박병철의 상반신 근육이 죄다 터지기 시작했다.
“크와아아아악!!!”
은혁은 포효하며 공격을 꽂아 넣었다.
때릴 때의 충격으로, 때리는 은혁의 주먹, 근육, 어깨 관절이 망가지고 있었다.
“크와아앗!! 흐와아아아악!!!”
하지만 은혁은 자기 몸이 부서지건 말건 무투가의 주먹을 연신 꽂아 넣었다.
‘무방비의 적을 두들기며 최대 데미지를 꽂아 넣는다.’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진 은혁의 머릿속에는 그것 말고는 없었다.
“……!!”
구경하던 상승 길드원들은 재미를 잊었다.
늑대인간 박병철의 야성보다 은혁의 야성이 더 강했다.
박병철을 사냥하려던 상승 길드원들의 집요함보다, 은혁의 집요함이 훨씬 강했다.
-무투가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무투가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무투가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무투가 숙련도 : 103%.
-축하드립니다! 무투가 숙련도가 100%를 초과했습니다!
-2차 각성 선택지를 선택해 주십시오!
-A. 직업의 등급을 올린다.
-B. 직업을 승급한다.
“A를 선택한다.”
-축하드립니다! 2차 각성하셨습니다!
-2차 각성 선택지로, 등급을 올리셨습니다!
-C+급 직업 돌진하는 무투가 → B-급 직업 돌진하는 무투가
-모든 스탯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모든 스킬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체력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체력 : A-.
-축하드립니다! 의지력,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의지력 : S.
현재 무투가 숙련도 : 3%+.
-무투가 스킬 [천근추]를 획득하셨습니다!
-무투가 스킬 [금강권]을 획득하셨습니다!
-무투가 스킬 [점혈타법]을 획득하셨습니다!
-무투가 스킬 [진공풍파신장]을 획득하셨습니다!
-무투가 스킬 [광풍충파]를 획득하셨습니다!
“후우…….”
은혁은 끊어질 것 같던 팔과 어깨가 회복되는 걸 느꼈다.
“[점혈타법]으로 마무리!”
투두둑!
이미 다진 고기처럼 망가진 박병철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점혈타법]에 당해서 기절했다.
그 직후, 제한 시간이 다 되었다.
-승자는 강은혁 님!
시스템 메시지가 판정을 내렸다.
‘휴, 위험했네.’
때리는 데 정신이 팔려서 제한 시간이 겨우 3분이라는 것을 뒤늦게 떠올렸다.
-패배자 박병철 님은, [계약 대련]의 규칙에 따라, 강은혁 님이 사전에 명령한 대로, 체력을 회복한 즉시 5층으로 되돌아가 자수하여 공정하게 재판을 받으셔야 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은혁은 피식 웃었다.
실컷 두들겨 패고 나니 개운해졌다.
‘이게 최선이지.’
박병철을 노예로 부리거나 하는 쪽도 생각해 보긴 했지만, 그건 역사를 너무 개변하는 일이었다.
‘가장 확실한 건 회귀 전 역사대로 추락사시켜 버리는 건데.’
하지만 그렇게 하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 공식적으로 상승 길드 소속인 박병철을 은혁이 죽이게 되면, 은혁은 상승 길드와 척을 지게 된다.
아무리 상승 길드원들이 박병철을 죽이려 했다고 해도, 은혁이 직접 손을 써서 박병철을 죽일 수는 없었다.
둘째. 염훈이 크게 실망한다.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신뢰와 성기사로서의 의지와 관련된 일이라서.’
박병철을 구한 뒤 재판을 받게 만들려 했는데, 은혁이 박병철을 죽여 버릴 수는 없었다.
이 경우는 제대로 재판에 넘기는 게 그나마 공정한 결말일 터였다.
‘휴, 그럼 다음은…….’
상승 길드원들 쪽을 돌아보려고 한 순간.
‘오? 왔다! 그 느낌이다!’
시간이 정지하고, 오른손과 눈동자만 겨우 움직이는 감각.
-축하드립니다! ‘모든 직업의 가능성’이 새로운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새로운 직업 카드를 뽑아주십시오!
‘역시, 전투를 좀 치열하게 즐기면, 직업 선택권이 찾아오는 건가.’
늘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확률이 조금 높아지긴 하는 것 같았다.
둥실둥실…….
눈앞에 12장의 카드가 떠올랐다.
뒷면만 보여서 어느 게 어떤 직업 카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쉬이익!
박병철의 몸에서 드루이드 카드 하나가 날아오더니, 은혁의 드루이드 카드와 충돌하며, 두 장 다 공개됐다.
-모든 직업의 가능성이 선택권을 제시합니다!
-본래 갖고 있던 드루이드의 가능성과 지금 쓰러뜨린 플레이어가 지니고 있던 드루이드의 가능성 중 원하는 것을 고르십시오!
‘뭐가 나오려나?’
A. B+급 직업 ‘돌을 지배하는 드루이드’. (본래 지니고 있던 가능성)
B. A+급 직업 ‘붉은 늑대의 드루이드’. (박병철을 쓰러뜨리고 복사한 가능성)
‘살짝 고민되네.’
돌을 지배하는 드루이드라면, 암석이나 광물과 관련된 드루이드일 터였다.
‘[돌 부수기] 같은 스킬이 가능하겠지.’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직업들이랑 비교했을 때 완전히 동떨어진 직업이라는 거야.’
지금까지 얻은 전사, 마법사, 도적, 무투가, 소환사 직업은 은혁의 전투에 도움이 되는 직업들이었다.
하지만 돌을 지배하는 능력은 한 번에 와닿는 게 없었다.
‘그래서 왠지 더 신경 쓰여.’
당장의 시너지 효과는 기대되지 않지만, 얻어뒀을 때 예상치 못한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 전투력에 도움이 되는 건 붉은 늑대의 드루이드인데.’
은혁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재촉했다.
-빨리 선택해 주시길 바랍니다!
-너무 시간을 끄는 경우, 직업 선택이 무효화됩니다!
‘이런! 빨리 골라야 한다!’
은혁은 두 직업 다 마음에 들어서 속이 탔다.
‘아이 씨, 둘 다 얻을 수도 없고!’
한 직업당 하나의 가능성만 택할 수 있었다.
‘……도박이긴 하지만, 해보자.’
“A를 고른다!”
-축하드립니다! B+급 직업 ‘돌을 지배하는 드루이드’를 선택하셨습니다!
-고유 드루이드 스킬 [돌 부수기]를 획득하셨습니다!
-고유 드루이드 스킬 [돌 합치기]를 획득하셨습니다!
-드루이드 스킬 [고속 생장]을 획득하셨습니다!
-드루이드 스킬 [암석 탐지]를 획득하셨습니다!
-드루이드 패시브 스킬 [광물학 숙련]을 획득하셨습니다!
‘어? B+급 직업치곤 초기 스킬을 꽤 많이 주네?’
문제는 직접적인 전투에 쓰기에는 좀 애매한 것들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후우…….”
은혁은 길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마셔라.”
힐링 포션을 박병철에게 강제로 먹였다.
“컥, 콜록콜록…….”
만신창이가 된 박병철이었지만, 곧 죽을 지경이었는데도 늑대인간이라 그런지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혁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혹여 염훈이 이 상황을 보고 있던 게 아닌가 걱정했다.
다행히 염훈은 한참 멀리 있어서 은혁이 박병철을 죽느니만 못하게 괴롭히던 걸 보지 못했다.
“박병철. 내 목소리 들리냐?”
“크륵, 으윽…….”
“크흠! 내가 너 심하게 때렸다고 염훈한테 일러바치지 마라.”
만약 염훈이 이 꼴을 봤다면, 너무 심하게 괴롭힌 거 아니냐며 화를 낼 게 뻔했다.
그래서 포션으로 치료해 주며 입막음(?)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