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 콩나무 궁전과 잭 (3)
-14층 메인 미션에 실패했습니다!
-실패 시 페널티로, 보스 몬스터와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지고의 위상, 잭이 나타났습니다!
묘하게 사실과 어긋난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은혁은 사납게 웃었다.
먼저 나타나서 대결을 건 쪽은 은혁이지 잭이 아니었으므로.
“넌 뭐지?”
“뭐겠냐.”
은혁은 대답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부웅!
헤비 체인 소드가 잭의 목을 노렸고.
카가가각!
잭의 도끼날이 그것을 겨우 막았다.
“큭! 족장을 탈출시킨 건 네놈이냐!”
“그렇다. 고맙지?”
“뭐?”
“찾고 있는데 나타나 줬으니 고맙지 않나?”
은혁은 질문과 함께 연속으로 검을 휘둘러댔다.
카캉!
파카카칵!
잭은 자신이 힘에서 밀리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강한데? 아니, 단순히 강하다기보다는.’
인간 형태로 힘을 제약하고 있는 지고의 위상이 지닌 약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한 공격이었다.
카가가강……!
‘하지만 놈의 연속 공격도 끝이다!’
잭은 양손 무기를 쓰는 플레이어가 지닌 한계를 잘 알았다.
‘양손 무기를 쓰는 전사 타입의 연속 공격은…… 앞으로 두 호흡 정도가 한계다!’
그 직후 잭은 봐주지 않고 반격할 생각이었다.
파카칵!
채챙!
잭은 은혁의 무기를 쳐내는 데 성공했다.
“죽어라!”
잭은 손날치기를 은혁의 목에 날렸다.
겉모습은 소년의 형태지만 본질은 지고의 위상이었다.
클라우드 자이언트 족장보다 몇 배나 강한 수도 공격이 은혁의 목을 노렸지만.
“[봉황각].”
투콱!
상체를 뒤로 젖히며 올려 차기.
“컥!”
잭의 몸이 살짝 허공에 떴다.
“[광풍충파]!!”
콰콰쾅!!!
잭의 몸을, 압축된 폭풍과 충격파가 무투가 스킬로 구현되어 갈겼다.
“윽?!”
잭은 10미터가량 튕겨 나갔다.
‘이놈 전사 아니었나?’ 하는 표정을 짓는 순간, 은혁은 이미 추격타를 날리고 있었다.
“[광풍돌진권].”
콰콰콰쾅!!!
“커헉!”
“아직 멀었다.”
은혁은 새로 얻은 무투가 특수기를 썼다.
“[진공풍파신장].”
어지럽게 흩어진 공기가 갑자기 은혁의 몸 뒤편으로 몰리고, 은혁의 앞은 진공으로 바뀌었다.
쉬오오오……!
……!!
공기의 소멸과 동시에 소리가 일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에 맞춰 마력과 광풍을 머금은 손바닥이 전방을 후려쳤다.
콰콰콰콰콰쾅!!!
박병철을 두들겨 패고 2차 각성한 직후라 그런지 은혁의 무투가 스킬의 위력은 하늘을 떨리게 했다.
“아직이다.”
은혁은 다시 헤비 체인 소드를 꺼냈다.
그리고 검을 쥔 오른손에는 [강타]를, 왼손에는 [금강권]을 걸었다.
‘이놈은 무투가이면서 전사였군!’
잭이 답을 알아냈다.
답은 답이지만, 정답이라기엔 많이 부족한 답이었다.
“차하앗!!”
은혁은 기합을 내지르고 공격하는 척하더니.
툭.
[그림자 지배]로, 그림자를 날카롭게 해서 목걸이만 잘라냈다.
“엇?!”
그리고 그대로 [그림자 도약]시켜서 은혁은 자기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목걸이 열쇠를 챙겼다.
‘전사와 무투가 스킬을 정면에서 가해서 그것에만 정신이 팔리게 한다. 그리고 뒤에서 도적 고유 스킬 [그림자 지배]로 목걸이 열쇠를 훔친다.’
그게 은혁의 계산이었다.
“감히……!”
잭이 분노를 표출하는 동안에도 은혁은 바빴다.
“[메탈 서전트 소환].”
손바닥 위에 메탈 서전트를 소환하고, 드론 모드로 즉시 변환시켰다.
“이걸 염훈에게.”
“네, 주인님!”
메탈 서전트는 보물 창고의 열쇠를 갖고 날아갔다.
“너……!”
“자, 마저 싸울까?”
은혁은 히죽 웃었다.
잭 입장에서는 고약한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됐다.
A. 이대로 은혁과 싸운다. 그 대신 보물 창고에 든 걸 은혁의 동료에게 다 뺏긴다.
B. 은혁을 무시하고 보물 창고를 지키러 간다. 그 경우 은혁은 이동 중인 잭에게 최대 피해를 강요할 수 있다. 즉,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 비천한 인간이 감히……!”
“그 비천한 인간한테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존재가 바로 지고의 위상 아닌가.”
지고의 위상, 드래곤 컬트, 성좌 연합.
소위 말하는 신적 존재들 중에서도 인간을 가장 장난감 취급하는 건 지고의 위상들이었다.
플레이어가 지닌 영혼과 육체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이는 뒤틀린 괴물들.
그게 지고의 위상이었다.
“그게 싫으면 본체를 드러내 보시든가. 뭐, 그것도 무리겠지만.”
“……!”
잭이 본체를 드러내려면 운명치를 상당 부분 소모해야 한다.
게다가 일종의 변신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시간이 걸린다.
은혁이 그 틈을 놓칠 리가 없다.
실제로, 지금 잭이 망설이는 틈도 놓치지 않았다.
‘[쾌속보].’
[질주]에 비하면 한 템포 느린, 엇박자의 빠른 걸음이었다.
잭은 발작적으로 기합을 내지르며 도끼를 휘둘렀다.
“크와앗!!”
파바바박!
하지만 발이 뭔가에 걸렸다.
‘엇?!’
“[그림자 묶기].”
다가오는 은혁에게 정신이 팔린 탓에 발과 발밑의 그림자가 묶인 걸 늦게 눈치챘다.
그 틈에 은혁은 청염백광태도를 들고, [화염 방사]를 걸었다.
“[바이올렛 블레이드].”
-히든 이펙트가 발동했습니다!
어지간한 준신급의 적도 일격에 죽일 수 있는 보랏빛 칼날이 생성됐다.
지고의 위상인 잭조차도 흠칫 놀랐다.
“끝이다.”
쉬익!
쉬쉬식!
은혁은 [그림자 분신]으로 페이크 공격을 미리 날린 뒤.
[질주]로 달려들며 머리를 노렸다.
퍼버벅!!
잭의 머리통이 단박에 터져 나가고, 불이 붙었다.
화르르륵!!
아무리 지고의 위상이라도 머리가 터지고 뇌 파편에 불이 붙으면 살 수가 없었다.
“에? 이게 끝?”
위축시킬 생각이었는데 정말로 죽여 버렸다.
원래 은혁의 계획은…….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척하고 냅다 도망쳐서 염훈이랑 보물 챙기고 튀는 거였는데……?’
일부러 견제 효과를 최대로 하려고 위협적인 [바이올렛 블레이드]를 발동했던 것이다.
“아니, 정말로 내가 이긴 거라고?”
-축하드립니다! 지고의 위상, 잭을 처치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지고의 위상을 죽인 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지고의 위상, 잭의 마정석을 획득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39.
-무투가 숙련도가 5% 증가했습니다!
-현재 무투가 숙련도 : 8%+.
-전사 숙련도가 3% 증가했습니다!
-현재 전사 숙련도 : 35%+.
-전사 스킬 [회전배기]를 획득하셨습니다!
-도적 숙련도가 3% 증가했습니다!
-현재 도적 숙련도 : 11%+.
-도적 스킬 [벽타기]를 획득하셨습니다!
“허참, 어이가 없네. 이렇게 약할 리가 없는데.”
은혁은 시스템 메시지까지 확인했으면서도 연신 찜찜했다.
‘지고의 위상이 이렇게 약했던가?’
페이즈 2를 각오했던 은혁은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이건 사실 은혁의 착각이었다.
99층에서 지고의 위상 뮤비즈와의 격전이 너무도 참혹했기에, 그때의 처절한 기억 때문에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간 것이다.
관리국에 의해 14층으로 배정된 지고의 위상은, 그것이 본체인 경우라면 몰라도, 소년 형상인 경우에는 사실상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4층 히든 보스 수준일 뿐.
“본체를 드러내기 전에 죽였으니 됐지, 뭐.”
은혁은 잭의 마정석을 챙겼다.
‘나중에 무기나 갑옷 만들 때 강화용으로 쓰기 딱 좋아 보이네.’
그때, 은혁의 등 뒤로 그림자가 졌다.
“흠?”
“위대한 용사여.”
클라우드 자이언트의 족장이었다.
그 뒤에는 클라우드 자이언트들이 도열해 있었다.
“지고의 위상을 처치한 그대의 용력에 찬탄을 금할 수 없구나.”
“고맙군.”
“하지만…….”
족장은 죽은 잭의 도끼를 집어 들었다.
우우우웅……!
족장은 자신의 도끼를 되찾자,
“저 콩나무 궁전은 우리 것이다. 침입자인 너희들을 그냥 둘 수는 없다.”
-서든 이벤트 발동!
-메인 미션이 갱신되었습니다!
메인 미션의 시나리오가 변경됐다.
<14층 메인 미션 : 배은망덕한 거인들.>
-목표 : 클라우드 자이언트 족장을 처치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미디엄 엑스의 소유권이 플레이어에게 귀속된다. 기존의 메인 미션 보상도 얻는다.
-실패 시 페널티 : 클라우드 자이언트의 노예가 된다.
-제한 시간 : 1시간.
‘이거 재밌네.’
기존의 메인 미션에는 실패했지만, 역으로 지고의 위상을 혼자서 처치한 탓인지 시나리오가 미쳐 돌아갔다.
“덤벼.”
은혁은 까딱까딱 손짓을 했다.
지고의 위상인 잭도 죽인 마당에, 그보다 약한 놈들을 상대로 쫄 이유가 없었다.
“플레이어여. 네 강함은 안다.”
족장도 그 사실을 알고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나는 족장의 권능으로 동포를 늘릴 수가 있다!!”
클라우드 자이언트들이 그토록 족장에게 목을 매고 있던 이유.
그것은 족장과 그의 도끼, 그리고 구름만 있으면 동포를 추가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도하게 동포를 늘려대면 구름이 줄어서 궁전을 포함한 14층 전체가 통째로 허물어지기에 함부로 발동하진 않는 능력.
그러나 지금의 족장은 물불 가리지 않기로 했다.
‘저 인간 놈은 잭보다 더 위험해.’
지고의 위상이 처음 침략해 왔을 때 느꼈던 감각보다, 은혁이 보이는 여유로운 태도가 더 불길했다.
‘내 눈이 틀림없다면, 이놈은 내게 배신을 당했으면서도 즐거워하고 있어.’
“맞아.”
은혁은 속을 읽은 사람처럼 대답했다.
“네 도끼, 미디엄 엑스는 클라우드 자이언트 귀속형 아이템이라 죽여도 함부로 뺏어 쓰기 힘들거든?”
원래대로라면 미디엄 엑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청염백광검 봉인 해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더 귀찮은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네가 날 배신해 준 덕분에 서든 이벤트로 미션이 변경되어서, 그냥 너희만 다 죽이면 뺏어 쓸 수 있게 됐다. 배신해 줘서 고맙다.”
“미친놈……!”
족장은 더 여유 부리지 않기로 했다.
“클라우드 자이언트여! 태어나라!!”
그는 그렇게 외치며 도끼로 바닥의 구름을 찍으려 했다.
하지만.
“[그림자 사슬].”
철컥!
은혁은 말하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클라우드 자이언트의 그림자로 전송, 그대로 사슬 형태로 변형시켜 도끼를 묶었다.
“컥?!”
자기 그림자에 연결된 그림자 사슬이 도끼를 잡아채자 족장은 헛숨을 들이켰고.
“[블레이징 러시].”
화르륵!!
콰콰쾅!!!
포위망이 약한 쪽을 향해 냅다 퓨전 스킬을 갈겼다.
“크아아악!!”
“어억!!”
화염 돌진 공격에 맞은 클라우드 자이언트들의 몸이 붕 뜰 정도였다.
“큭.”
작용 반작용 법칙에 의해, 은혁도 충격으로 머리가 약간 띵했다.
“켁켁, 막아라!! 몸으로 날 가려라!!”
족장이 겨우 [그림자 사슬]을 끊어내고 외쳤다.
“쳇.”
[그림자 사슬]을 더 쓰려고 해도 시야가 차단되어서 좀 애매했다.
‘일단 정공법으로 가보자.’
은혁은 세븐 칼리버를 헤비 체인 소드 형태로 변환시켰다.
키이이잉……!
칼날을 전기톱보다 빠르게 회전시키더니.
“흐읍!”
탓!
[쾌속보]와 [돌진]을 섞어 쓰며 적들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회전배기]!!”
키유우우우웅!!!
그러자 묘하게 믹서기를 연상시키는 소리와 함께 마운틴 자이언트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크아악!!”
“밟아! 밟아 죽여!!”
“제길! 이 쥐새끼 같은 놈!!”
몇몇 용감한 마운틴 자이언트가 달려들어 은혁을 밟으려 했지만.
콰드드득!!!
발이 세로로 썰릴 뿐이었다.
“끄아아아!!”
“족장! 뭐 하는 겁니까! 아악!!”
“기다려라! 지금 증원이 간다!”
슈오오오오…….
족장은 새로운 클라우드 자이언트를 다수 생성해냈다.
“쳇.”
은혁은 한발 늦었다는 걸 느꼈다.
‘플랜 B로 가지, 뭐.’
은혁의 작전 중 플랜 A와 플랜 B의 차이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플랜 A는 보스만 죽인다. 플랜 B는 모조리 다 죽인다.’
타앗!
“작전상 후퇴!”
은혁은 궁전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