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11층~14층 클리어
콰직!
주르륵!
궁전 천장은 높았고, 돌은 거대했다.
그 돌에 맞고 파괴된 클라우드 자이언트의 두개골 파편과 핏물이 은혁의 어깨로 떨어졌다.
은혁의 공작에 의한 간접 살해였기에 숙련도가 조금씩 올랐다.
-도적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도적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도적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도적 숙련도 : 14%+.
-고유 도적 스킬 [그림자 결속]을 획득하셨습니다!
-소환술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소환술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소환술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소환술사 숙련도 : 16%.
-소환술사 스킬 [메탈 벙커 소환]을 획득하셨습니다!
-드루이드 숙련도가 5% 증가했습니다!
-현재 드루이드 숙련도 : 10%.
-드루이드 패시브 스킬 [자연 친화]를 획득하셨습니다!
그동안 밀렸던 드루이드 숙련도까지 같이 올랐다.
“크와아아!!”
이성을 잃은 족장이 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슈칵!!
족장이 휘두른 미디엄 엑스가 동포들의 시체마저 절단시켰다.
그는 쏟아지는 궁전의 파편 속에서도 은혁에 대한 증오를 감추지 않았다.
“어차피 살 수 없다면! 네놈도 같이 죽어야 할 것이다!!”
“그 정도 근성이 있으면 처음부터 잭이랑 사생결단을 벌이지 그랬냐.”
은혁은 비아냥거림을 잊지 않은 채, [메탈 벙커 소환] 스킬을 발동했다.
파앗!
철컹!
반구형 4인용 금속 벙커가 생성됐다.
“통째로 박살 내주마!!”
부우웅!!
족장이 미디엄 엑스를 휘둘렀지만.
“[화염 방패]!!”
파악!
콰쾅!!
일부러 약하게 [화염 방패]를 비스듬히 생성하고, 터뜨려서 족장을 주춤하게 했다.
그 직후 은혁은, 벙커의 분사구를 통해 추가로 스킬을 날렸다.
“[광풍충파]!!”
투쾅!!
비틀거리는 타이밍에 맞춰 날린 무투가 스킬에, 족장은 넘어지지도, 서지도 못한 어중간한 상태로 그로기에 빠졌다.
“크윽……!”
족장과 은혁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은혁의 눈빛을 읽은 족장은 확신했다.
‘아, 나는 이렇게 죽는구나.’
은혁의 최대 장기는 상대의 약점을 가차 없이 후벼 파서 최대 데미지를 쏟아붓는 것이었다.
그 악랄한 투지가 은혁의 눈빛에 숨김없이 드러났고, 눈이 마주친 순간 족장은 사실상 죽음을 받아들였다.
“[염열파]!!”
화르르르륵!!!
벙커의 분사구를 통해 뿜어진 화염을 뒤집어쓴 족장은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그 직후, 불이 붙은 족장의 머리 위로.
퍼버벅!
파괴된 궁전의 천장 잔해가 연달아 쏟아졌다.
“끝이다!”
은혁은 청염백광단검을 승화시킨 뒤, 분사구를 통해 내던졌다.
푸욱!!
족장의 심장에 칼날이 꽂힘과 동시에.
콰르르르르르……!!
궁전이 완전히 무너졌다.
* * *
“헐…….”
“허얼…….”
미리 탈출한 염훈과 오리는 어이가 없어서 무너진 궁전의 잔해를 바라만 봤다.
“14층의 스테이지를 사실상 완파시키다니.”
오리는 어지럽다는 듯이 날개를 머리에 갖다 댔다.
“은혁이 녀석, 괜찮겠지?”
염훈이 구름 위를 조심스레 걸었다.
무너진 잔해를 어찌 치워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파파팍!
돌무더기를 부수며 칼날 하나가 튀어나왔다.
헤비 체인 소드였다.
“으으, 생매장당할 뻔했네.”
은혁은 틈새로 낑낑대며 몸을 빼냈다.
“은혁아! 괜찮냐?!”
“좀 무모했나? 으으, 좀 꺼내줘.”
클라우드 자이언트의 시체를 쿠션 삼고, [메탈 벙커 소환]과 [섀도 실드]로 몸을 보호했지만, 그래도 아팠다.
-축하드립니다! 14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미디엄 엑스를 획득하셨습니다!
파칵!
건물 잔해를 뚫고, 거대한 도끼가 은혁에게 날아왔다.
“음, 이건 마음에 드네.”
-미디엄 엑스 :
4성급 아이템.
거대한 양손 외날 도끼.
클라우드 자이언트의 족장과 지고의 위상 잭의 손을 거친 무기.
일반 물질에 대한 절단력도 뛰어나지만, 구름, 연기, 공기 등의 기체 따위의 매질에 대한 절단력은 절대적이다.
그렇게 절단된 매질은 마력으로 전환되어 사용자에게 흡수된다.
‘이건 어떻게 쓰는 게 좋을까?’
세븐 칼리버 제3형태로 이식하는 게 무난한 선택이긴 하지만, 은혁은 조금 더 효율적으로 쓸 생각이 있었다.
은혁은 자신의 [패링]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세븐 칼리버에 추가로 미디엄 엑스를 추가하는 건 약간 콘셉트가 겹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청염백광단검을 느긋하게 회수했다.
“어이, 오리.”
은혁은 도끼를 어깨에 얹은 채 지시했다.
“나한테 [바람 감옥] 스킬 써봐.”
그러자 오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킬을 썼다.
“[바람 감옥]!”
화아아악!!
바람이 은혁의 몸을 휘감는 순간.
투콱!!!
은혁이 휘두른 미디엄 엑스 단 한 방에 소멸했다.
슈우우우…….
바람이 흩어지고, 마력이 회복됐다.
경악한 오리의 날개 그림자만이 은혁의 그림자 위에서 파닥거렸다.
“좋았어. 도끼 형태라 좀 익숙하진 않지만 효과는 좋군. 어떤 식으로든 써먹어 주지.”
은혁은 인벤토리창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고유 스킬을 썼다.
“[그림자 결속]!”
오리의 그림자와 은혁 자신의 그림자가 겹쳐진 순간에 발동한 스킬로, 그림자끼리 겹쳤을 때만 쓸 수 있었다.
파앗!
-[그림자 결속]이 발동되었습니다!
[그림자 결속]이 발동하면, 두 사람의 그림자는 하나로 연결되고, 반강제로 파티를 맺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그림자 결속] 상태에서는 상대의 힘을 일부 빌리는 것도 가능해진다.
“꽤액!”
놀란 오리가 황급히 날아오른 순간.
투툭.
-[그림자 결속]이 해제됐습니다!
상대가 저항하는 경우, 스킬 지속 시간은 겨우 3초 정도였다.
“음, 오래 연결되진 않네.”
“방금 뭐였음?”
“아, 별거 아냐. 저항하는 상대와 강제 파티 맺기가 몇 초나 지속되는지 시험했을 뿐.”
은혁은 그렇게 말하더니, 악수를 청했다.
“잡다한 일로 수고 많았다, 오리. 앞으로는 플레이어들을 괴롭히지 말고 살도록.”
“흥.”
오리는 날개로 악수를 받아줬다.
은혁은 퇴직금 조로 트렌트의 마정석을 몇 개 더 줬다.
“칫. 칫. 잘난 척하긴.”
오리는 투덜거리면서도 고맙게 받았다.
오리에게 있어서 마정석은 단순히 힘을 키워주는 물건일 뿐만 아니라, 다른 오리들과 변별되는 개성의 원천이기도 했다.
똑같은 ‘오리’라는 이름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마정석을 다수 섭취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리 왕 다음가는 고유의 정체성을 지닌 존재가 될 수 있을 터였다.
“다음에 또 보자.”
은혁이 웃으며 말했다.
오리도 은혁에 대해서 미운 정이 들었는지 그동안 부려 먹혔던 것에 대한 서운함도 싹 잊은 듯했다.
“뭐, 또 봐도 좋고. 그럼 이만!”
오리는 좋은 마음을 담아 작별 인사를 날린 뒤, 푸드득 날갯짓하며 사라졌다.
“휴, 그럼 일단락된 건가?”
염훈이 잔뜩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음, 메인 미션 깼으니 언제든 15층으로 갈 수 있어. 5층으로 돌아갈래? 아니면 이대로 15층으로?”
“일단 5층으로 가자.”
염훈은 금화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돈 나눠 가져야지. 인벤토리가 꽉 찼어.”
두 사람은 씨익 웃었다.
둘은 돈을 나누고, 통째로 뽑아 올린 게이트로 향했다.
“은혁아. 넌 이 돈 어디에 쓸 거냐? 난 은행에 좀 넣어둘 생각인데.”
“이율이 낮지만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
“넌 뭐에 쓰게?”
“난 좀 쓸 곳이 많지.”
은혁은 4만 골드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아, 좀 모자랄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빌려줄래?”
“어? 그러지 뭐.”
염훈은 가볍게 대답했다.
* * *
“헐? 이게 뭐야?”
“14층 수리 복구?”
중앙 광장 게시판에는 새로운 게시물이 부착되었다.
100층탑 관리국 요원이 직접 와서 붙이고 간 것이므로 예외적인 내용이었다.
<11층~14층 관련 공지 사항>
11층~14층 통합층 게이트가 일시적으로 잠길 예정입니다.
모종의 사태로 인해 14층 스테이지의 상당 부분이 파손되어, 스테이지 복구 또는 시나리오 재수정이 불가피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복구 작업에는 약 일주일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이 기간 중 예약하신 플레이어분들께서는, 다른 일자로 예약을 변경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헐! 이게 뭐임?”
“14층이 박살 났다는 거야?”
“아니, 스테이지가 뭐 어떻게 파괴됐기에…….”
아직 11층~14층 구간에 도달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은 기막혀했다.
“아이 씨, 내일 예약했구만.”
“도대체 누가 한 거래?”
의아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눈치 빠른 이들은 금방 눈치챘다.
“이럴 때가 아니군.”
“인터뷰 신청합니다!”
신문사를 운영하는 플레이어들은 바로 이전 회차에서 11층~14층에 도전한 플레이어들을 찾느라 바빴다.
광장에 모인 이들은 입소문을 종합해서, ‘강은혁과 염훈 2인조가 저지른 일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어디서도 두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신규 랭커 진입!
길드연합국 공식 랭킹 게시판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에게는 신규 메시지가 떴다.
-98위 : 블롱델.
-99위 : 강은혁.
-100위 :염훈.
“우와, 이놈들 랭커 됐네?”
100층탑의 랭킹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길드연합국 최상위 100인.
그들을 랭커라 부른다.
“탑에 들어온 지 1년은커녕, 한 달도 되지 않은 놈들이……!”
“굉장한데?”
“혹시 이놈들이 그놈들인가?”
“응? 그놈들이라니?”
“왜, 구원 길드에서 떠들던 ‘구원자’ 말이야. 수련과 실전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모두를 구원할 거라는…….”
“에이, 말도 안 돼.”
“진짜야. 특히 강은혁은 연구 길드의 부길드장인 레나까지 처발랐다고?”
“그러고 보니 요즘 레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 혹시……?”
랭킹에 관심 있는 플레이어들까지 가세해서, 광장에서는 수군거림이 끊이질 않았다.
그것을 상승 길드 본부의 브라이언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승 길드 본부 또한 다른 거대 길드와 마찬가지로 광장 근처에 있었고, 2층에는 부길드장 브라이언의 집무실이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브라이언은 화난 표정으로 광장을 노려보다가 다시 책상 앞으로 왔다.
책상 앞에 있던 2군 감독관은 차렷 자세로 침을 꿀꺽 삼켰다.
브라이언은 질문했다.
“11~14층 통합층 공략 도중에 절반 넘게 죽고, 전원이 실패했다고 했나?”
보고를 들은 브라이언은 기가 막혔다.
보고를 맡은 상승 길드 2군 감독관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사실 그는 이번 공략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관찰 및 보고 임무만 맡았는데, 브라이언의 눈총을 받는 건 자신이었다.
“돌발 상황이 발생했나?”
“그렇습니다.”
스윽.
브라이언은 선글라스를 벗고 감독관을 노려봤다.
“무슨 돌발 상황이었지?”
“배신자가 나타났습니다. 박병철이라고…….”
“흠…… 그럼 더더욱 이해가 안 가는데?”
“네?”
“박병철의 능력은 플레이어의 심장을 뽑아 먹고 강해지는 능력이야. 놈이 동료를 배신을 했다면, 강해져서 그놈이 통합층을 다 클리어했겠지. 하지만 자네의 결과 보고 대로라면 박병철도 실패했다는 거 아닌가?”
브라이언의 말에 2군 감독관은 혀를 내두르고 싶었다.
브라이언의 말은, 상승 길드에서 배신자가 나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배신자 또한 층계 공략에 실패했다는 것이 납득이 안 간다는 의미였다.
“왜 박병철도 실패했지? 설마 다른 놈들이 박병철의 다리를 잡았나?”
“그것도 그렇지만,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 들어 보셨을 겁니다. 강은혁이라고…….”
2군 감독관은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타탁, 빠지짓……!
온몸에서 정전기가 튀었고, 몇 개는 목덜미에 좁쌀만 한 화상 자국을 남겼다.
브라이언은 심호흡을 했다.
“현재 박병철은?”
“5층에 오자마자 경비대에 자수했습니다.”
경비대는 5층 공용 NPC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의 길드가 관리한다.
박병철에 대한 사적인 복수는 물 건너갔다.
“강은혁은?”
“강은혁은 현재 14층에 있다가 막 귀환 했다고 합니다. 동료 염훈과 함께인 것까지 확인됐으며…….”
“가서 잡아 와.”
“네?”
“강은혁을 잡아 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