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67화 (67/434)

67화 : 길드연합국의 역사

“하, 하지만 강은혁은 건드리지 않기로, 그, 현재 정의 길드와 암묵적인 합의를…….”

정의 길드의 부길드장 워잭은, 브라이언에게만큼은 강은혁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심사로 지속적으로 방해해 왔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정의 길드와 상승 길드는 모두 강은혁에게서 동시에 손을 뗀다’라는 암묵의 규칙이 생겨 버린 상태.

“워잭 놈과 전면전을 벌여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가서 데리고 와!”

“네, 넷!”

후다닥!

2군 감독관은 뜻하지 않게 스카우터 노릇을 하게 됐다.

“제기랄, 강은혁 놈. 감히 내 얼굴에 먹칠을 해?”

사실, 브라이언은 박병철을 영입할 때 은근히 부추겼다.

‘사실 강은혁을 영입하려다가 어려워서 널 영입한 것뿐이다.’

박병철이 다소 과하게 은혁에게 경쟁심을 불태운 것도, 사실은 브라이언의 교묘한 부추김 때문이었다.

박병철과 강은혁 사이에 라이벌 구도를 세워서, 박병철의 투지를 불태우게 하고, 더 나아가 훗날 강은혁 영입에 도움이 되도록 하려 했다.

부길드장에 걸맞은 안배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놈을 너무 깔봤어. 강은혁은 박병철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어.’

박병철은 신규 플레이어 랭킹 1, 2위 자리를 다투고 있던 은혁을 경쟁 상대로 여겼다.

하지만 은혁은 박병철 ‘따위’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아둔했다니.’

은혁은 상승 길드의 사업을 비웃고, 상승 길드원들이 방해가 되면 적극적으로 짓밟을 의향을 드러냈다.

‘대놓고 우리 길드 2군을 적대시한 이상, 이놈은 적이다.’

엄밀히 따지면 상승 길드 2군과 박병철이 먼저 은혁을 적대시한 것이었지만, 브라이언은 그딴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순간.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어떤 새끼가……!”

욕을 퍼부으려던 브라이언은 멈췄다.

두 명이 들어왔다.

한 명은 공략집 편집부 직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방금 강은혁을 잡으러 나갔던 그 2군 감독관이었다.

편집부 직원이 먼저 나섰다.

“저, 부길드장님. 이 엽서를…….”

“아니, 넌 좀 기다려봐.”

브라이언은 은혁이 보낸 엽서라는 걸 몰랐기에, 편집부 직원에게는 기다리라 했다.

그리고 방금 갔던 2군 감독관을 불렀다.

“넌 왜 다시 왔어?”

하지만 2군 감독관은 헐레벌떡 달려갔다 달려오느라 숨이 턱에 찼다.

“그, 그게.”

“빨리 말해, 이 새끼야!!”

“정의 길드가 선수 쳤습니다! 강은혁은 현재 정의 길드 부길드장인 워잭의 자택으로 인도된 상태……!”

“크아아아아아악!!!”

창밖에 번개가 쳤다.

* * *

“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네. 신기하다. 그치, 은혁아?”

“그러게.”

은혁과 염훈은 워잭의 자택 응접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두 사람이 14층을 클리어하고 5층에 도착하자마자, 정의 길드원 몇몇이 와서는 정중하게 자신들을 따라와 달라고 요청했다.

당연히 은혁은 거부했지만.

‘정의 길드 본부가 아니라, 워잭 님의 자택입니다. 체포가 아니라 면담 요청이니, 부디 따라와 주십시오.’

그들이 워낙 공손하게 요청했기에, 염훈은 은혁에게 까짓거 가주자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현재 워잭의 자택의 응접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응접실은 처음 들어와 보는군.’

로맨스 소설의 공녀님이나 살 법한 집을 연상시켰다.

소파는 너무 고급스러워서 미끄러울 지경인 벨벳 소파였고, 테이블은 축복받은 향나무로 제작된 것이었다.

염훈은 창가에 서서 정원 구경하랴, 번개 구경하랴 바빴다.

똑똑!

누군가가 응접실 문을 노크했다.

“네.”

은혁이 대답하자 문이 열리고, 워잭이 들어왔다.

철그럭.

쿵, 쿵…….

갑옷 소리와 발소리가 요란했다.

“와 줘서 고맙소, 두 분. 나는 정의 길드의 부길드장 워잭이라고 하오.”

척!

워잭은 거수경례를 해 보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강은혁. 이쪽은 염훈이라고 합니다.”

“음. 홍차를 준비했소.”

워잭의 뒤로 펑퍼짐한 메이드복 차림의 하녀들이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고급 홍차가 각자의 앞에 놓이고, 테이블 위에 다과가 놓였다.

“바로 용건으로 들어가죠. 저희를 여기로 부른 이유는?”

“음, 실례. 부디 잠시만.”

워잭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 두꺼운 건틀릿과 투구를 착용한 상태로 찻잔을 들었다.

부들부들…….

워잭의 손이 떨렸다.

건틀릿을 착용한 워잭의 손가락 굵기는 선박용 밧줄과 비슷한 정도였다.

“햐, 기차네! 그냥 벗고 드시죠.”

염훈이 감탄하고 권유하자, 워잭은 고개를 저었다.

“본인은 정의 길드의 귀감이 되기 위해…….”

달그락달그락…….

찻잔이 위태로웠다.

“그래서…… 늘 갑주를 착용……하고 있……소.”

“아니, 차 한 모금도 제대로 못 마시면서.”

“흡!”

휘릭!

워잭은 [초신속] 스킬을 써서 찻잔을 흔들었다.

촤자작!

찻잔 속의 홍차가 길고 가느다란 소용돌이처럼 솟구쳐 오르더니.

“하압!”

투구의 틈새로 찻잔 내용물을 뿌렸다.

꿀꺽!

뜨거운 홍차를 한 방에 마셨다.

“끄흐으! 뜨끈하구만.”

“…….”

“염훈 님? 뭘 그렇게 보시오? 마저 드시오. 홍차는 뜨거울 때 한 번에 마셔야 제 맛이니.”

염훈은 어이없어했고, 은혁은 피식 웃었다.

“정말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좀 피곤하군요.”

“음. 두 가지가 있소. 첫째 이유는, 14층 파괴에 관하여.”

“고의적인 스테이지 파괴인가 아닌가 의심한 거군요.”

플레이어들은 지금도 광장에서 어이없어하는 중이었다.

“물론, 저희는 고의적으로 14층 스테이지를 파괴한 게 아닙니다.”

어차피 고의로 한 파괴였다고 해도, 그것의 목적이 메인 미션 클리어였다면 죄를 물을 순 없다.

“물론, 그러셨으리라 믿소.”

워잭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내려놨다.

“당신들을 부른 둘째 이유는, 보호해 줄 테니 정의 길드로 오라는 거요.”

은혁은 피식 웃었다.

“스카우트 제의는 몇 번 있었지만, 보호를 떡밥으로 제의하는 건 처음이군요.”

“음, 상황은 당신 생각보다 심각하오.”

“설명해 주시죠.”

“당신은 현재 상승 길드와 적대적인 관계요.”

“뭐, 상승 길드 쪽에서는 저를 싫어할 수도 있겠지요.”

“상승 길드는 당신을 영입하려 했으나, 그 노선을 포기하고, 지금 당신을 처치하려 계획 중이오. 5층에서야 대놓고 그러진 못하겠지만, 15층 위로 진출할 때는 상당한 위협이 될 거요.”

“아하, 그러니 아예 정의 길드에 들어와라?”

“바로 그거요.”

“흠.”

은혁은 잠시 생각하는 시늉을 했고, 그의 예상대로 염훈이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그건 좀 이상한데요.”

“음? 뭐가 말이오?”

“여우에게 물려가기 싫으면 호랑이 밑으로 들어와라~라고 하는 게 연상되는데요.”

“호오…….”

“정말로 정의 길드가 이름대로 정의롭다면, 그리고 상승 길드가 그렇게 하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면, 막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근데 그걸 영입용 거래 수단으로 쓰는 것 같아서 영 이상하군요.”

“일리 있는 지적이오. 하지만 정의 길드에 대한 오해가 조금 있는 것 같소만.”

“오해를 풀어주시죠?”

“정의 길드는 자원봉사단도 아니고, 선의가 넘치는 수호자도 아니오. 우리가 추구하는 건 보다 거대한 정의지.”

“그 정의란?”

“길드연합국의 안전 보장 및 존속이오.”

“……에?”

워잭의 답변은 한 번에 와 닿는 답변이 아니었다.

“길드연합국의 간략한 역사를 말해줘야 할 것 같군. 들어보시겠소?”

“설명이 너무 길면 좀 어려운데요. 그치, 은혁아?”

“일단 들어주자. 홍차도 맛있고 하니.”

은혁이 말하자 워잭은 빠르게 설명했다.

“다들 알겠지만, 모든 플레이어는 100층탑에 강제로 끌려오는 거요. 다들 당황할 수밖에 없지.”

“음…….”

염훈은 크게 공감을 표했다.

염훈 또한 알몸으로 왔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튜토리얼의 난이도는 어렵고, 그것을 클리어한 플레이어들의 심리는 극도로 날카로울 수밖에 없소. 그런 그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유일하게 안전한 땅. 그게 5층이지. 7대 길드 체제가 확립되기 이전의 5층은, 힘겨운 튜토리얼 직후 평화의 땅이었기에, 오히려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했소.”

워잭은 허공을 올려다봤다.

폭행, 약탈, 강간 등…….

당시의 5층에는 최소한의 NPC와 상점만이 있었고, 길드연합국이 없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저들끼리 편을 먹고 NPC들을 습격하거나, 약한 플레이어의 물자를 뺏었다.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뜻있는 자들도, 그런 약탈꾼과 맞서 싸워야 하다 보니, 5층에 갇히고 말았다.

악한 자와 선한 자, 이기적인 자들과 뜻있는 자들이 뒤엉켜 싸우는 무간지옥.

그게 5층이었다.

“그런 막장 사회를 막기 위해, 보다 큰 이상을 위해 7명의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일어섰지.”

“7대 길드의 길드장들…….”

“맞소. 당시에는 길드장이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힘과 이상이 있었소. 탑에 끌려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이들에게, 그 힘과 이상은 엄청난 것이었지.”

워잭은 또다시 묘기 같은 홍차 마시기를 하고 말을 이었다.

“그들의 이상에 동조하는 자들은 빠르게 늘어났고, 마침내 7대 길드가 만들어졌소. 7대 길드의 강력함은 다른 길드를 압도했고, 자연스럽게 5층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지.”

“그 영향력이란……?”

“국가 건설이었소.”

워잭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누군가는 재미로, 누군가는 믿음으로, 누군가는 실험으로, 누군가는 시장 경제의 플랫폼 마련으로…… 7명 모두 품은 바 뜻은 달랐지만 5층에 국가를 세운다는 목표는 동일했소. 물론, 우리 정의 길드는, 정의에 기반을 둔 질서를 세운다는 목적으로 동참했지. 그렇게 비로소 세운 것이 이 귀중한 길드연합국이오.”

“처음부터 5층이 길드연합국이었던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거군요.”

“바로 그렇소. 그 뒤로 5층은 안정화되었소. 외부에서 온 플레이어들을 위한 최소한의 쉼터가 만들어진 것이지.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정의, 상승, 행복, 자유시장, 평화, 구원, 연구 길드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됐소.”

워잭은 투구 안쪽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의 길드는 그 이후로도 정의를 위해 싸웠고, 저스티스 길드장님은 내게 전권을 위임한 뒤, 휴식기에 들어가셨지.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날이오…….”

하지만 그 미소가 곧 어두워졌다.

“그 직후에 길드 대전이 치러졌소.”

워잭의 말에, 은혁은 속으로 대답해줬다.

‘훗날 그 길드 대전은 1차 길드 대전으로 알려질 겁니다.’

“평화 길드의 길드장이 갑자기 일으킨 그 전쟁은……!”

“워우, 잠시만요. 평화 길드요?”

염훈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딴죽을 걸었다.

“그렇소. 평화 길드장의 공식적인 전쟁 명분은, ‘5층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100층탑 전체를 말려 죽이자. 그리하여 진정한 평화에 도달하자’였소.”

“뭐, 뭣?! 그게 뭡니까!”

“평화 길드의 사상은 난해하오. 평화 길드의 부길드장은 그나마 온건한 편이지만, 길드장의 사상은 그토록 위험했소.”

“허참. 이름이 평화 길드라고 해서 좋은 줄 알았더니만.”

“하여간 당시의 나는 사태를 가볍게 여겼소. ‘평화 길드에 대항하여 나머지 6개 길드가 연합하면 금방 해결될 거다’라고 생각했지.”

“잘 안 됐습니까?”

“……평화 길드가 촉발한 갈등은, 어째선지 나머지 길드 간의 분쟁도 격화시켰소.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지. 7대 길드는 길드연합국으로 묶여 있었지만, 각 길드장 모두가 수장이었고, 이상도 다 다르다는 것.”

그래서 적과 아군의 구분이 없는 막장 내전이 펼쳐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