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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68화 (68/434)

68화 : 강은혁의 목적

딱히 전선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막장 내전이었기에, 사상자의 총합은 상상을 초월했다.

‘대략 30만.’

당시 길드연합국 인구수가 100만을 조금 넘긴 수준이었으니, 약 30%가 죽거나 다친 셈이다.

“그 끔찍한 길드 대전이 어떻게 끝났을 것 같소?”

“평화 협정?”

“무조건 평화 협정이었지.”

워잭은 치욕스러워했다.

“전쟁은 딱 그쳤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소. 왜냐하면 협상 조건이랄 게 없는, 그냥 평화 자체를 위한 무조건 평화 협정이었으니까. 그래서 이 모든 게 평화 길드의 빅 픽처였다는 소문까지 나왔을 정도요. 7대 길드 모두가 ‘무조건 평화’를 조건으로 전쟁을 그쳤으니…….”

“허……!”

“그날 이후로 7대 길드는 각자 나름의 교훈을 얻었소. 그중 하나가, ‘각 길드의 길드장은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었지.”

성좌의 화신을 맨손으로 찢어 죽이는 강자들이 7대 길드의 길드장들이다.

그들이 전쟁의 전면에 나서면, 인구수 급감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았다.

“7대 길드의 길드장들 대부분이 통치 관련 문제에서 물러나고 부길드장들이 활약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요.”

“어쩐지. 부길드장 이름만 들리고 길드장이 안 보이더라니.”

염훈은 이제야 좀 감이 잡힌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정의 길드가 받아들인 교훈은, 굴욕적이지만 다음과 같소. 절대적인 정의란…… 없다는 결론이었소.”

“…….”

“결국, 정의 길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절대적인 정의의 추구가 아니라, 일반 플레이어가 각자 나름의 정의를 추구할 수 있도록, 동시에 타인의 정의를 침해하지 않도록 보편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뿐. 그리고 그걸 위해 필수적인 존재가 바로 길드연합국.”

긴 설명을 마친 워잭은, 홍차 냄새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것이, 길드연합국의 간략한 역사와 지금의 정의 길드가 추구해 온 방식이오. 정의 길드는 광범위한 정의 행사에 나서는 대신, 길드연합국을 수호하는 것을 우선한다. 끝.”

“잘 들었습니다.”

염훈은 자신이 들은 것에 대한 감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기대에 비해 실망이 크군요.”

“그런 비판도 감수해야겠지…….”

“하지만 실망만큼이나 경의를 표합니다.”

염훈은 앉은 채로 워잭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음……?”

염훈이 보인 반응에 워잭이 놀라워하자, 염훈은 설명했다.

“독선적인 정의를 마냥 추구하는 대신, 정의의 한계를 인정한 거니까. ‘우리가 절대적인 정의다~ 길드연합국은 우리가 세운 정의 기준에 무조건 따르라~’ 하면서 폼 잡고 여기저기 설치는 집단보다는 훨씬 낫죠.”

정의 길드의 정의 행사는 길드연합국의 유지와 보안 문제에 집중된다.

범죄자 체포 같은 것도 경비대 NPC와 연계하여 나선다.

염훈이 보기에, 정의 길드는 삼가는 법을 아는 집단이었고,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런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소.”

워잭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럼, 오해는 풀렸다고 봐도 되겠지. 그럼 우리 길드에 가입하시겠소?”

워잭은 질문하며 자기 잔에 차를 한 잔 더 따랐다.

“으음.”

염훈은 팔짱을 끼고 고민에 빠졌고, 은혁은 즉각 답했다.

“거절합니다.”

투쾅!!

콰자작!!!

워잭이 초음속으로 움켜쥔 찻잔이 유리구슬처럼 변하고, 뜨거운 찻물은 증발해서 잼처럼 졸아들어 있었다.

“크흠, 실례. 사과드리오.”

“……은근히 다혈질이시군요.”

“그보다 왜 거절이요?”

“정의 길드 밑에 들어가면, 지배할 수 없으니까. 그 경우에는 제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테니까요.”

“음? 이해가 잘?”

“남들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제 계획을 알려드리죠.”

워잭의 눈이 커졌다.

순식간에 신규 플레이어 랭킹 1위에 도달한 초신성의 계획이라면, 워잭도 꼭 듣고 싶은 것이었다.

“맹세하겠소. 부디 알려주시겠소?”

“제 목적은 100층탑 공략입니다. 길드연합국은 제 발판에 불과합니다.”

은혁은 거침없이 말하더니, 아차 했다.

“아, 발판이라고 하니까 표현이 좀 심하군요. 점프대라고 하죠, 점프대.”

“……!”

워잭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은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제가 정의 길드에 들어간다? 그건, 7대 길드의 통합길드장이 되기 위한 제 진짜 목적에 방해만 됩니다.”

“통합길드장이라니……!”

“길드가 일곱 개나 있으면서, 제각기 따로 노니까 안 되는 겁니다. 얼핏 보면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아차 하는 순간 길드 대전이 터지는 겁니다. 누군가는 통합에 나서야죠.”

정의 길드의 부길드장은 발끈했다.

“오만한 사람 같으니! 당신이 어떻게 통합길드장이 된단 말이오!!”

“7대 길드의 길드장들을 모두 꺾어서.”

“뭐?!”

“아마 길드연합국 법전에도 나와 있을걸요?”

-길드연합국 헌법 제1조 : 길드연합국은 7대 길드의 길드장들이 지배한다.

-길드연합국 헌법 제1조의 특례법 : 단, 다음의 각 항에 해당하는 경우, 길드연합국의 통합길드장이 선출될 수 있다.

제1항. 특정 플레이어가 7대 길드의 길드장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투표권을 위임받는 경우.

제2항. 특정 플레이어가 7대 길드의 길드장들을 무력으로 제압하여 투표권을 강탈하는 경우.

은혁은 기억 속 길드연합국 헌법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말이 통하는 길드장도 있긴 하겠지만, 평화롭게 모든 투표권을 위임받긴 어려울 것 같고……. 결국 말 안 듣는 길드장들을 힘으로 꺾어야겠죠.”

“가, 감히……!”

“예. 그런 반응도 이해합니다. 지금의 저에게는 길드장에게 도전할 권리조차 없으니까.”

길드장들이 뒤편에 물러나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도전권이 없다.

길드장에 대한 도전권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100층탑에 존재하는 히든 아이템 중 하나인 ‘길드장 도전권’을 얻는다.

이는 공식적인 도전권이며, 이를 사용할 경우 길드장은 거절할 수 없다.

둘째. 부길드장을 꺾어야 한다.

이는 비공식적인 도전권이며, 부길드장이 우선 자신의 패배를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 비공식적 도전권을 사용할 경우 길드장은 거절할 수 있다.

‘즉, 지금의 나는 레나를 꺾었으니 연구 길드의 길드장 빌에게 도전할 비공식적인 도전권을 얻은 상태다.’

비공식적 도전권이므로 빌이 거절할 수 있긴 하지만, 명예가 걸린 일이므로 거절할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저는 부길드장을 다 꺾고, 도전권을 얻어서 길드장도 다 꺾을 겁니다. 그렇게 5층 길드연합국을 통합한 뒤, 100층을 향해 달리는 것…… 이게 제 계획입니다.”

“그딴 게 뭔 계획이란 말이오!!”

워잭이 화를 냈다.

그러자 은혁이 도리어 화를 냈다.

“거, 알려달라고 해서 다 알려줬더니만 왜 화를 냅니까?”

“말이 되는 계획을 말해야지!!”

“거, 자꾸 언성 높이시네요? 그게 우리를 초청한 사람의 태도입니까?”

“으그그극……!”

워잭은 분했지만, 명예 때문에 더 크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리 납득하기 어려우신 이유도 이해는 갑니다. 이제 겨우 길드연합국 전체 랭킹 100위에 돌입한 제가, 7대 길드를 모두 꺾겠다고 하니 화가 날 수밖에요.”

은혁은 이해심 많은 사람처럼 말하더니, 히죽 웃었다.

“이 자리에서 실력 행사라도 해서, 제 계획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지만…….”

은혁은 특유의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염훈은 몇 번 당했기에(?) 은혁이 떡밥을 드리우고 있는 게 보였다.

“해보시오!”

흥분한 워잭은 떡밥을 물었다.

은혁이 계획을 줄줄이, 무성의하게 설명한 이유도, 사실은 워잭을 살살 도발하기 위함이었다.

“허어, 여기서 [계약 대결]이라도 하시겠다는 건가요?”

“실력 행사는 당신이 먼저 꺼낸 이야기 아니오? 설마 그게 허세는 아니겠지?! 이제 와서 무서우면 그렇다고 말하시오!”

워잭이 벌떡 일어나며 추궁했다.

은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코 아닙니다.”

“좋아, 그럼 바로 덤벼 보시오!”

“모처럼 [계약 대결]을 하기로 했으니, 시간과 장소를 합의로 정하죠.”

은혁은 홍차를 한 잔 더 따랐다.

그 태도가 워잭의 마음을 더 달아오르게 했다.

“허참, 그럼 언제가 좋소?”

“제가 듣자 하니…….”

은혁은 회귀 전 지식을 더듬어 봤다.

“일주일 뒤에, 구원 길드가 주최하는 무술 시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구원 길드 수련장에서 무술 대회가 열린다.

그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선택지가 생긴다.

A. 상금을 획득한다.

B. 구원 길드 부길드장에게 도전한다.

B를 골라서 거기서도 이기면 정식으로 길드장에게 도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A를 고른다.

‘물론 나야 B를 고를 생각이지만.’

“설마 거기서 싸우자는 거요?”

“네.”

“어째서?”

“공개된 장소에서의 싸움이니까 뒷말은 없을 거 아닙니까. 그리고 어차피 구원 길드의 부길드장하고도 싸울 거니까 같은 장소에서 하면 편하지 않겠습니까?”

“허.”

워잭은 비틀거리더니 소파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런 허세를?”

“딱히 허세는 아닙니다. 그보다 계약 내용이나 마저 정하죠.”

은혁은 인벤토리창에서 종이를 꺼내고 대충 적었다.

<대결 조건>

-시간 : 7일 뒤.

-장소 : 구원 길드 수련장.

-대결 방식 : 대련.

-승패 결정 방식 : 대결이 치러지는 시간과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 죽거나 기절하거나 패배를 인정하는 경우 패배가 된다.

그 경우 상대방은 자동으로 승리한 게 된다.

-강은혁의 승리 시 : 정의 길드 길드장에게 도전할 권리.

-강은혁의 패배 시 : 정의 길드 부길드장의 부하가 된다.

특이 사항 : 만약 천재지변 등의 이유로 대결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 이 계약은 무효로 한다.

“일부러 좀 느슨하게 적어 뒀습니다. 동의하시는지?”

워잭은 고혈압 환자처럼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좋소! 동의하오! 거기서 봅시다!!”

그러더니 응접실을 거칠게 떠났다.

쿵쿵!

“……!”

벌컥!

다시 열고 들어왔다.

“다시 생각해 보니 여긴 내 거처군! 나가주시오!”

“아, 잠시만요. 홍차 좀 마저 마시고.”

은혁은 ‘부르는 건 자유지만 내쫓는 건 아니란다’라는 태도를 역력히 드러내며 홍차를 마셨다.

워잭은 성을 내면서도, “부디 천천히 음미하며 드시길!!” 하고 떠났다.

쾅!

“으와, 은혁아. 또 뭔 짓이냐.”

염훈은 중간에 끼어서 아무 말 못 하다가 입을 열었다.

“염려 마. 이길 테니까.”

“야, 네가 레나를 이기긴 했지만, 그건 청염백광태도에 숨겨져 있던 한 방이 터져서 그런 거 아니냐? 일대일로 붙으면 네가 질 것 같은데?”

염훈의 눈은 정확했다.

은혁의 레벨은 39.

워잭의 레벨은 79.

은혁과는 레벨 차이가 40이나 난다.

특히 워잭의 순수 물리 공격력과 물리 방어력은 부길드장들 중에서도 1, 2위를 다투고 있다.

보통은 그만큼 느려져야 정상이지만, [초신속]이라는 고유 스킬을 갖고 있으므로 약점이 보완된다.

다양한 능력과 시너지 효과로 강적을 차례로 꺾은 은혁이지만, 단순하게 강하고, 튼튼하고, 빠른 워잭을, 지형지물이 평탄한 대련장에서 꺾는다?

염훈으로서는 그런 장면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그렇지. 하지만.”

은혁은 다과를 한 움큼 크게 쥐어서 입안에 털어 넣고는 마저 설명했다.

“나한테 다 계획이 있다.”

“되게 미심쩍은 말투로 말하네.”

염훈도 다과를 한입 물었다.

와삭, 와삭.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다과를 먹었다.

“은혁아.”

“응?”

“그나저나 이 응접실 되게 편하다.”

싸구려 테번에 묵고 있는 두 사람은, 홍차, 다과, 소파 맛을 보자 죽치고 앉게 됐다.

“에구구. 좀 눕자.”

염훈은 아예 긴 소파에 누웠다.

“나참, 여기서 잠을 자냐?”

은혁은 웃더니, 자기도 맞은편 소파에 누웠다.

30분 뒤.

“거, 빨리 좀 집에 가시오!!”

워잭이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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