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브라이언의 위협과 강은혁의 반격
워잭의 자택을 나오자마자 하늘이 쿠르릉거리더니, 비가 쏟아졌다.
“아 씨, 우산 빌려달라고 할까?”
“우산 정도는 만들 수 있는데.”
은혁은 염훈의 그림자를 발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화악!
그림자가 치솟아 오르더니, [그림자 지배] 스킬로 만들어진 우산 형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거참, 용도가 참 다양하네.”
염훈이 감탄한 순간.
멈칫.
은혁은 발걸음을 멈췄다.
쏴아아아아…….
빗줄기 속에, 브라이언이 서 있었다.
염훈은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끼고 정면을 노려봤지만, 은혁은 태연했다.
‘오늘따라 인기 좋네?’
그렇게 생각하며 브라이언에게 묵례했다.
브라이언은 인사 대신 엽서를 내밀었다.
“네가 보낸 거지?”
“네.”
은혁이 편의점에서 산 공략집 뒤편에 붙어 있는 엽서였다.
누가 봐도 도발적인 내용이었다.
‘공략집치곤 내용이 너무 부실합니다. 제가 100층 공략하고 나면 공략집 제대로 쓸 테니, 그때까지만 장사하세요. 그럼 이만!’
이것은 브라이언 개인을 향한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이걸 받고 나니까 오히려 화가 가라앉더군. 고의적인 도발이구만?”
“그런 건 아니고, 늦든 빠르든 충돌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7대 길드 중, 은혁과 가장 우선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길드를 하나만 고르라면 당연 상승 길드였다.
‘계획대로 되려나?’
회귀 전에는 은혁과 상승 길드 사이의 충돌이 먼 미래의 일이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일부러 찾아오신 이유는?”
“너 혹시 예언자냐? 아니면 기연으로 비밀 공략집이라도 얻었냐? 어느 쪽이야?”
브라이언이 불쑥 물었다.
‘꽤 날카롭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히든 루트를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운이 좋았죠.”
“아무리 운이 좋아도 그렇지 그래도 그렇게 빨리 성장하는 게 말이 되나?”
“운이 아주 좋았죠.”
“흠, 거짓말쟁이한테는 벼락이 떨어질지도?”
브라이언은 슬쩍 [썬더 스트라이크] 스킬을 썼다.
먹구름이 잔뜩 낀 상태였기에 즉각 발동됐다.
번쩍!!
먹구름에서 벼락이 떨어지더니.
빠카칵!!
무지막지한 전하량이 아스팔트를 태워서 작은 분화구를 만들 정도였다.
“크악!”
이를 예상치 못했던 염훈은 몇 걸음 밀려났다.
치이이익……!
은혁이 있던 곳에서 매캐한 아스팔트 연기가 짙게 피어올랐다.
“으, 은혁아!”
“난 괜찮아.”
은혁은 [메탈 벙커 소환] 스킬을 급히 뾰족한 우산처럼 생성, 피뢰침으로 삼아서 죽음을 면했다.
은혁은 멀쩡한 모습으로 나왔지만.
“크윽.”
처덕!
염훈은 근육이 풀려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빗물을 타고 뇌격 데미지가 들어간 탓이다.
그 모습을 본 브라이언은 웃음을 감추지 않았고, 염훈은 발칵 화를 냈다.
“갑자기 공격이라니! 이게 무슨 짓이야!!”
브라이언은 실실 웃으며 선글라스만 매만졌다.
“어허, 벼락이 떨어지는 건 우연이라고? 혹시 평소에 나쁜 짓 많이 한 거 아닌가? 나쁜 놈한테 벼락 떨어진다던데.”
“이……!”
염훈이 검을 뽑으려 했지만.
“참아라.”
은혁이 힘겹게 말렸다.
그 꼴을 본 브라이언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눈물겨운 우정이구만. 됐다, 됐어. 내가 위대하신 블릿츠 데바를 대신하여 사과드리지. 미안하네.”
브라이언이 점잔 빼는 태도로 사과했다.
5층에서는 폭력 금지이므로, 형식적으로나마 사과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승 길드 측 입장만 전하고 가지.”
상승 길드의 사실상의 지도자인 브라이언은 은혁에게 선언했다.
“네 모험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 100층탑을 오르지 마라. 더 오르려 들면, 상승 길드 차원에서 방해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죽이겠다.”
“왜요?”
“상승 길드는 100층탑의 모든 길드 중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오르는 길드여야 한다. 그런데 너는 방해와 도발을 너무 많이 했다. 그러므로, 상승 길드의 이름을 걸고 네가 오르지 못하게 하겠다. 그뿐이다.”
“뭐야.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결국, ‘너는 우리의 이권과 체면에 해를 끼쳤으니 미운털 박혔음~’이라는 거잖습니까.”
“좋을 대로 떠들어라. 다시 말하지만, 더 오르려면 죽음을 각오해라. 그건 네 동료도 마찬가지다.”
브라이언은 통보를 마치고 뒤돌았다.
그리고는 선심 쓰듯 한마디 덧붙였다.
“아, 15층까지는 올라도 좋다. 딱 거기까진 봐주지.”
그러고는 정말로 저벅저벅 떠나갔다.
우산을 쓴 채 구경하던 일부 행인들은 허둥지둥 뒷걸음질 쳤다.
“거, 되게 재수 없네.”
염훈이 떠나는 브라이언의 뒤에 대고 주먹 감자를 먹였다.
“염훈.”
“왜? 하지 말라고?”
“응. 체력 아깝잖아.”
“칫. 넌 괜찮냐?”
“몸이 좀 저리긴 한데, 괜찮을 거야.”
은혁은 가볍게 몸을 풀며 말했다.
“넌 여기 있어.”
“어?”
“[그림자 지배] + [질주] 융합 스킬.”
은혁은 냅다 퓨전 스킬을 썼다.
-히든 이펙트 발동!
“[그림자 질주].”
쉬우우우우우……!
굵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기에 그림자가 많은 날이었다.
은혁은 자신이 마치 그림자가 된 것처럼 맹렬하게 이동했고, 여유롭게 등을 보이며 떠나가는 브라이언의 등 뒤로 접근했다.
“뭣?!”
브라이언은 부길드장답게 경계 자세를 취했지만 늦었다.
[그림자 지배]와 [암습]을 융합한 퓨전 스킬이 이미 발동 중이었다.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그림자 암습].”
빠칵!!
은혁의 헤비 체인 소드가 브라이언의 머리통을 찍었다.
그리고.
키유우우우우웅!!
빗소리를 찢어발기듯, 칼날을 회전시켰다.
슬래셔 호러 영화에 나올 법한 참혹한 장면이었다.
“……!”
뒤통수를 맞은 브라이언은 충격 때문에 아무 말 못 했다.
하지만 우산을 쓰고 이동하던 행인들은 죄다 기겁했다.
“흐아아악!!”
“꺄아아아!!”
“경비대! 경비대애!!”
플레이어, NPC 할 것 없이 죄다 절규하며 도망치기 바빴다.
“큭, 크와아악!!”
브라이언이 기합과 함께 은혁을 걷어찼고.
뻐억!!
은혁은 헤비 체인 소드와 함께 튕겨 나갔다.
빗길을 몇 바퀴 구르고 아파하며 일어났다.
“크으, 역시 부길드장. 튼튼하군요.”
은혁은 히죽 웃었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도 일격에 죽일 자신이 있는 공격이었건만, 브라이언은 그걸 견뎌냈다.
브라이언은 응급 치료 스킬을 걸면서 은혁을 노려봤다.
“네, 네놈이…… 감히 날 죽이려고?”
“어허! 아닙니다. 오해이십니다.”
은혁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쪽이 먼저 번개 공격을 나한테 갈겼잖습니까. 그래서 정당방위죠.”
“웃기지 마! 그건 자연적인 번개였다! 그리고 방금 네가 한 행동은 보복 행동이지, 어떻게 정당방위가 되냐!”
“와, 정의 길드원처럼 말씀하시네. 그럼 지금 바로 워잭한테 판정 내려달라고 할까요? 누구 말을 들어 줄까 궁금하네요.”
은혁이 가리킨 곳은 워잭의 자택이었다.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
“차마 못 그러겠죠? 그야 자존심 문제도 있고, 당신은 워잭이랑 사이가 안 좋은 편이니까.”
은혁은 히죽 웃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잘난 척하면서 위협한 다음 제멋대로 떠나실 거면 뒤통수는 조심하시길. 안 그러면 뚝배기 깨집니다. 교훈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쁘군요.”
“감히……!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 줄 알기나 하냐?”
“감히 상승 길드의 부길드장을 대놓고 적대시하다니 제정신이냐~ 뭐 그런 이야기를 하실 겁니까? 그 이야기라면 이미 하셨는데요.”
“뭐?”
“아까 저보고, 15층보다 높이 올라가면 죽이겠다고 면전에 협박을 하고 갔잖습니까. 그건 적대시한 게 아닙니까? 적대시가 아니면 그냥 갑질인가요?”
은혁의 양심은 떳떳했다.
“7대 길드의 부길드장 자리가 높은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협박한 다음 쿨하게 떠나도 되는 지위라는 건 아니죠? 협박하고 뒤돌아서 쿨하게 떠나는 건 자유인데, 자기 뒤통수는 조심해야죠.”
누구에게나 남을 협박할 권리는 있다.
단, 협박하고 떠날 때 뒤통수가 깨질 수도 있다.
그걸 본 염훈은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구나. 이제 알겠어.’
염훈은 깨달았다.
‘은혁이 협박하고 떠나는 브라이언을 공격한 건, 자신이 일방적으로 협박당하고 가만히 있는 상대가 아니란 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구나.’
즉, 100층탑의 플레이어로서 대등한 존재임을 각인시켜 주기 위해 은혁은 무리하게 폭력을 휘두른 것…….
‘은혁이 괴팍해서 그런 게 아니라, 부당한 권리 침해에 항거하고자 그런 거구나…….’
염훈은 그렇게 해석했다.
‘아니야. 그냥 열 받아서 죽이려고 했어.’
은혁은 자기를 보는 염훈의 속마음을 유추하고, 또 속마음으로 답변해 줬다.
브라이언은 이를 갈았다.
“네가 입장 차이라는 걸 모르는구나? 여긴 7대 길드가 지배하는 길드연합국이다. 그리고 난 그 길드연합국의 권력자다!”
“허이구, 본색 나오시는군요. 100층탑을 공략하는 건 상승 길드다~ 가장 강한 자가 공략한다~라면서 강자존 원칙을 준수하는 척하시더니, 막상 뒤통수가 깨지고 보복하고 싶을 때는 권력자임을 들이밉니까?”
“그래? 그럼 죽든가. 블릿츠 데바여!”
브라이언의 주먹에 전기력과 신성력이 깃들었다.
“[홀리 썬더 스트라이크]!!”
냅다 준 궁극기를 날렸다.
번쩍!!
하지만 그 순간.
“[2초 무적]!!”
염훈이 몸으로 막았다.
콰콰쾅!!!
콰르르르르르르……!!!
[2초 무적]의 힘에 충돌한 브라이언의 공격은 대부분 무효화됐고, 일부는 좌우로 갈라지더니 담장과 주택을 파괴했다.
“풉.”
은혁은 웃었다.
부서진 담장과 주택 중에는 워잭의 것도 포함되었으므로.
“그건 무슨 기술이지?”
브라이언이 조금 당황한 어조로 염훈에게 물었다.
“[2초 무적].”
염훈이 콧김을 뿜으며 말했다.
“[2초 무적]은 굵고 짧은 스킬이지만, 당신의 번개 공격도 굵고 짧은 거 같은데? 얼마든지 카운터 쳐 주지!”
“사기 스킬이군.”
브라이언은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강은혁만 주의했는데, 역시 그의 동료인 염훈도 사기 스킬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는 육중한 갑옷을 입은 워잭이 경비대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인원을 모아 오느라 조금 늦은 듯했다.
워잭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내 집 앞에서 싸우다니. 배짱들이 좋으시군?”
“경비대 데리고 꺼져라, 워잭.”
“그럴 수 없소. 여기 페넬레시아까지 왔으니 둘 다 그만두시오!”
워잭이 말한 순간, 경비대원들 사이에서 갈색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이 한 걸음 나섰다.
흰 빛깔의 머리카락과 허름한 갈색 옷차림 때문에 얼핏 보면 노파 같다.
하지만 막상 대화를 나눠보면 피부, 표정, 목소리에서 생기가 흐른다.
마치, 젊은 뮤지컬 여배우가 노파 역할을 맡은 것처럼.
“후훗! [강제 평화] 스킬을 쓰게 만들 건가요, 브라이언?”
“제기랄.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는 평화 길드 주제에.”
브라이언은 화를 냈지만, 워잭과 페넬레시아가 동시에 말리니 더는 싸울 수도 없었다.
워잭이 불러온 경비대장은 은혁에게 다가갔다.
“방금 불법적인 전투 행위가 있었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사실입니까?”
“아니오. 사실이 아닙니다.”
은혁은 상황을 설명했다.
경비대장은 기막혀하며 판단을 워잭에게 넘겼다.
워잭 또한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은혁과 브라이언을 번갈아 봤다.
같은 시선이었지만 브라이언 쪽이 더 자존심 상할 수밖에 없었다.
은혁은 일반 플레이어였지만, 브라이언은 워잭과 같은 부길드장이다.
워잭으로부터 한심하다는 눈길을 공평하게 받으면, 브라이언 쪽이 더 손해일 수밖에 없다.
“하하핫.”
브라이언은 허공을 향해 허허롭게 웃었다.
‘위험하다.’
그 웃음은 규칙이고 뭐고 날뛰어야겠다는 의미의 웃음이었다.
“잠깐!”
페넬레시아가 먼저 브라이언을 막았다.
“날뛰고 싶은 모양이군요. 그래도 참아주시겠어요, 브라이언?”
“꺼져, 할망구.”
그 순간, 페넬레시아의 눈썹이 뾰족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