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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70화 (70/434)

70화 : 경험치 없는 사냥터

“하필이면 내가 유일하게 못 참는 소리를 하다니. 사과하시지?”

페넬레시아의 목소리 톤은 온화했지만, 말투는 뾰족하기 그지없었다.

브라이언은 코웃음 쳤다.

“꺼지라고 했어, 할망……!”

“[강제 평화].”

파앗!

페넬레시아는 브라이언에게 [강제 평화] 스킬을 걸었다.

브라이언은 당분간 누군가를 공격할 수도 없고, 공격당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 이년이 정말로?!”

“지금부터 하루 동안 싸움 금지. 자, 돌아가세요.”

“돌았구만! 그 스킬을 나한테 정말 썼다고?! 길드 사이에 전쟁 일으키고 싶냐!!”

브라이언이 불을 토하듯 했지만, 페넬레시아는 워잭을 가리켰다.

“워잭의 동의를 얻고 쓴 스킬이야. 워잭은 내가 어쩔 수 없이 [강제 평화]를 썼다고 증언해 줄걸? 다른 길드도 인정할 테니 열 좀 식히시죠?”

“으그그그극……!”

브라이언은 이를 갈며 물러나야 했다.

‘설마 워잭이 페넬레시아를 데리고 올 줄이야.’

여기서 싸우면 워잭이 말리러 올 줄은 알았지만, 페넬레시아의 등장은 조금 의외였다.

은혁이 큰 그림을 점검하는 동안, 브라이언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강제 평화] 스킬의 영향 때문에 은혁을 치진 못했다.

“24시간 뒤에 두고 보자.”

타앗!

브라이언은 빠르게 사라졌다.

“우음, 뒤통수 맞은 게 충격이었나 봐. 엄청 빠르게 사라지네.”

염훈은 묘한 부분에서 감탄했다.

워잭은 한숨을 내쉬더니 은혁에게 말을 걸었다.

“부길드장을 적으로 돌리다니. 제정신이오?”

“저 인간이 먼저 협박하고 시비 걸었는데요.”

15층보다 높이 오르면 죽는다는 식으로 협박한 건 브라이언이 먼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기로 상대 머리통을 부수다니! 목격자들이 뭐라고 떠들겠소! 내일 신문이 두렵지도 않소?!”

워잭이 지적했지만, 은혁은 ‘어쩌라고’ 하는 표정만 지었다.

워잭은 기가 차서 더는 말을 못 했다.

“후훗! 투지가 너무나 강한 청년이군요.”

페넬레시아가 웃으며 다가왔다.

“처음 뵙는군요. 평화 길드의 부길드장 페넬레시아라고 해요.”

그녀는 부드럽게 악수를 청했다.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자애로운 노파 같기도, 젊은 가수 겸 연기자 같기도 했다.

매우 예의바른 태도의 여인 같지만, 그녀도 정상은 아니었다.

페넬레시아의 고유 스킬은 [강제 평화].

[광역 평화] 스킬로 많은 이들을 살리기도 했지만, 페넬레시아는 마지막까지 자기가 속한 평화 길드의 길드장을 옹호했다.

평화 길드의 길드장 ‘피스메이커’는, 길드 대전 도중 두 번째로 많은 사람을 죽인 존재다.

‘페넬레시아가 피스메이커를 옹호한 이유는…….’

은혁은 회귀 전 지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일단은 모른 척해 두기로 했다.

“반갑습니다. 강은혁입니다.”

은혁은 별 내색하지 않고 악수를 했다.

“인사가 많이 늦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평화 길드는 당신을 주시하고 있답니다.”

“하하. 관심 감사합니다.”

은혁은 가볍게 웃어넘겼다.

페넬레시아도 호호 웃었다.

“앞으로 어쩔 건지 물어도 될까요? 브라이언은 정말 당신을 죽일 작정인 것 같던데.”

“뭐, 싸워서 이기면 그만이죠.”

“흐음, 젊은이를 무시하고 싶진 않지만, 브라이언은 강해요.”

“압니다. 지금의 저보다는 2배 이상, 한 2.5배 정도 강하겠죠.”

아마 염훈과 힘을 합쳐서 싸워도 아슬아슬하게 비기는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덕분에 하루의 시간은 벌었으니까요.”

하루 동안 성장하고, 꼼수를 축적할 필요가 생겼다.

“후훗. 바쁘겠군요. 그럼 더는 붙잡지 않겠어요. 행운을 빌어요, 젊은이.”

“네.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가자, 염훈.”

은혁은 그렇게만 말한 뒤 그 자리를 떴다.

테번으로 향하는 길에 염훈이 말했다.

“은혁아. 상승 길드를 적으로 돌려도 되는 걸까?”

“이미 그쪽에서 이쪽을 적으로 돌렸잖아. 오히려 잘됐어.”

“아니, 지금 이 상황의 어디를 봐서 잘됐다는 건데?”

“24시간 벌었잖아.”

은혁은 히죽 웃었다.

[강제 평화] 스킬에 걸린 브라이언은 24시간 동안 은혁을 공격하지 못한다.

“우선 오늘은 쉬자. 그리고 내일 아침 15층으로 바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 너머까지 최대한 올라갈 작정이었다.

* * *

-15층 : 경험치가 없는 사냥터.

토끼, 다람쥐, 사슴, 여우, 멧돼지, 독수리, 매, 비둘기, 참새…….

각종 사냥감들이 녹색 숲과 초원을 달렸다.

조선 시대 왕이 누렸을 법한 널찍한 사냥터와 골프 클럽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건물이 있는 곳.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펼쳐진 곳.

그곳이 15층이었다.

“캬, 날씨 좋다.”

“진짜 상쾌한 아침이네. 역시 최고의 휴양지야.”

“5의 배수인 층들은 꽤 평화롭고 좋다니까.”

“평생 여기서 살고 싶구만.”

클럽 소다와 클럽 샌드위치는 제법 비싼 편이었지만, 첫 번째 통합 층인 11층~14층 구간을 깬 플레이어 기준에서는 아주 부담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무 오르기와 경쟁을 힘겹게 뚫고 온 플레이어들이 쉬어가라고 만든 곳이 15층이었다.

<15층 메인 미션 : 사냥 또는 휴식>

-목표 : 사냥감을 사냥하거나, 휴식을 취할 것.

단, 사냥감을 사냥하더라도 경험치는 전혀 얻을 수 없다.

또한, 휴식을 취하는 클럽 하우스 건물과 그 인근에서는 모든 폭력 행위가 금지된다.

-성공 시 보너스 : 없음.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없음.

완전히 쉬었다 가라는 뜻이 강하게 깃든 층이 15층이었다.

“이보게, 웨이터. 진 토닉 한 잔 더.”

플레이어가 빈 잔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NPC는 진 토닉을 영수증과 함께 서빙했다.

그때였다.

퀘에엑!

꾸이잇!

사냥감들이 절규했다.

“어엇?”

“무슨 소리야?”

플레이어들이 놀랐다.

그러자 시중을 들던 NPC가 한숨을 내쉬었다.

“또 그녀가 활약하는군요.”

“그녀?”

“여러분은 최근에 오신 분들이라 잘 모르시겠지요.”

NPC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냥감을 괴롭히는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무슨 뜻이지?”

“사냥감을 죽이지 않고 괴롭히기만 하는 플레이어 말입니다.”

“허, 변태 같은 작자군. 이름은?”

“이시노 센이라고 합니다. 길드연합국 랭킹 97위인 플레이어지요.”

“읏.”

그 말에 플레이어들이 주춤했다.

97위.

랭킹 100위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공식 랭커다.

게다가 90위~100위 언저리의 랭커일수록, 남의 눈치 안 보고 제멋대로 날뛰는 플레이어인 경우가 많았다.

“랭커인가…….”

“랭커면 59층 너머로 갈 생각이나 할 것이지, 왜 여기서.”

“곤란하게 됐네.”

플레이어들이 조금 주춤하는 동안, 그 와중에도 사냥감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쿠웨엑!”

“끼익! 끼익!”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동물들의 비명.

새파란 하늘 아래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오니, 휴식을 취하던 플레이어들은 참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못 참겠군!”

“가서 멈추게 해야겠어.”

“거기 웨이터 NPC. 이시노의 약점은?”

그러자 NPC는 개인 정보는 말할 수 없다고 답한 뒤 얼른 물러났다.

“쯧, 쓸모없는 NPC 같으니.”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다른 플레이어가 말했다.

“그만둬.”

나이 지긋한 중년이었다.

“[사냥의 낙인]에 찍혀서 비참해지고 싶지 않다면, 좀 쉬다가 16층으로 가건, 아래로 내려가건 해라.”

“아저씨는 뭐예요?”

“어디에나 있는 사냥터지기지.”

NPC가 아니면서도 NPC처럼 생활하는 플레이어들은 100층탑 구석구석에 있었다.

사냥터지기를 자처하는 이 중년 사내도 그런 자였다.

“이시노가 한번 날뛰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려. 그냥 그러려니 하라고.”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무시했다.

“저기 보인다.”

멀리 활통을 등에 멘 궁술사 플레이어가 있었다.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는데?”

“그러게?”

하지만 손놀림은 기계처럼 빠르고 정확했다.

슈슈슉!

활에서 화살이 날아갈 때마다, 전부 명중했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히는 부위가 아니라 팔다리 위주로 꽂혔다.

“퀘에엑!”

“쿠이익!”

그걸 본 플레이어들이 결심했다.

“더는 못 봐주겠군.”

“우린 여럿이니까 한 번에 덮치자.”

“그래. 그러자.”

그때, 궁술사 이시노가 플레이어들이 있는 곳을 돌아봤다.

그리고 빙긋 웃더니, 손짓했다.

까딱까딱.

“저 새끼가 도발하는 건가?”

“돌격!”

타앗!

플레이어들이 일시에 이시노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 이시노의 미소가 싹 사라지고 냉혹한 사냥꾼의 얼굴로 변했다.

화살통에 가는 손 속도도 몇 배나 빨라졌다.

슈슈슈슉!

퍼버버벅!

순식간에 날아든 화살들이 전부 플레이어들에게 명중했다.

그것도 급소가 아니라 팔다리 위주로 꽂혔다.

“끄아악!”

“으으윽……!”

쓰러진 플레이어들을 향해 이시노가 다가갔다.

“[사냥의 낙인].”

파앗! 파앗!

플레이어들 위로 연달아 [사냥의 낙인]이 찍혔다.

“으윽?!”

“이게 뭔…….”

당황하는 그들에게 이시노가 히죽 웃어 보였다.

“이제부터 너넨 사냥감이야. 도망쳐.”

웃으며 머리를 쓸어 올리는데, 이마에 작은 문신이 있었다.

행복 길드의 문신이었다.

“아앗!”

“행복 길드……!”

이시노는 행복 길드 1군 부감독이었다.

감독이 부르지 않는 동안에는 15층에 머물며 사냥 게임을 하곤 했다.

“가장 재밌는 사냥감은 인간이지? 자, 안 죽일 테니까 도망쳐.”

스르륵.

화살이 박혔던 플레이어들은 어느새 회복되어 있었다.

“서, 설마.”

“그래. 너네는 평생 사냥감이야.”

“히익……!”

플레이어들은 허둥지둥 도망쳤다.

머리 좋은 플레이어는 게이트 쪽으로 달려갔지만.

터텅!

보이지 않는 힘에 튕겨 나갔다.

“악?!”

“하하하! 사냥감이 사냥터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슈슈슉!

퍼버벅!

“아아악!”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아하하하! 도망쳐! 도망쳐 봐!”

“히이익!”

평화로운 15층은 어느새 지옥처럼 변해갔다.

도망치던 플레이어는 그제야 깨달았다.

‘일부러였구나!’

사냥 클럽 하우스 건물과 그 근처에서는 폭력 행위가 금지된다.

그래서 이시노는 토끼, 사슴 따위를 고통스럽게 괴롭히며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비명을 듣다 못 견딘 플레이어들이 섣불리 이시노를 처리하러 건물 부지 밖으로 나오면?

그럼 이시노는 본색을 드러내고 인간들에게 [사냥의 낙인]을 걸고 갖고 노는 것.

‘처음부터 유인당하고 사냥당하는 건 우리였구나.’

절망 속에서 고통받는 그 순간.

철그럭.

성기사 한 명이 나타났다.

“그쯤 하지?”

이시노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은 누구죠?”

“성기사 염훈.”

“용건은?”

“네가 하는 미친 짓을 좀 말리려는 것뿐인데.”

이시노는 빙긋 웃더니.

슈슈슉!

약자들에게 화살을 날렸다.

퍼버벅!

“끄아아!”

“아악! 그냥 죽여줘!”

그걸 본 염훈은 검을 뽑았다.

“마지막 경고다. 이 사람들 풀어줘.”

타앗!

이시노는 [도약] 스킬을 쓰더니, 인근 나무 위로 피했다.

“싫다면?”

“답은 이미 아는 거 같은데? 묻기도 전에 멀리 튀는 걸 보면.”

염훈은 투덜거렸고, 이시노는 히죽 웃었다.

“그럼 사냥 게임을 시작해 볼까요?”

답변은 염훈이 아니라, 이시노의 바로 뒤편에서 들려왔다.

“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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