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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71화 (71/434)

71화 : 미친 사냥 (1)

“에?”

이시노가 뒤돌아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자 [은신] 스킬을 쓴 은혁이 보였다.

염훈이 정면에서 이시노에게 다가가는 동안, 은혁은 [은신] 스킬을 쓴 채 나무 그림자 사이로 이동하다가 나무 위로 몰래 올랐던 것이다.

“하필 내가 숨은 나무에 올라오다니. 재수가 별로 없는 놈이군.”

“크읏.”

“크읏 좋아하네. 너도 궁술사니까 이미 게임 끝난 거 알겠지?”

궁술사는 원거리 전투에 능하지만, 등 뒤를 잡히면 무력할 수밖에 없다.

“바로 무기 버리고 항복해라?”

“…….”

이시노는 망설이는 척했다.

‘[점프 샷]뿐이야.’

공중에 뜬 상태에서만 쓸 수 있는 스킬.

‘항복하는 척하다가 [점프 샷]으로 거리를 벌리고 근거리 헤드샷으로 이 사람부터 죽인다!’

“어라? 뭔가 머리를 요리조리 굴리는 중인 것 같네?”

“훗!”

타앗!

이시노는 나뭇가지 위로 [도약]했다.

이시노의 의지는 높이 뛰는 것이었지만.

덜컥!

“컥?!”

높이 도약하자마자 다리가 뭔가에 걸렸다.

“[그림자 사슬].”

은혁은 이시노에게 항복을 권하던 시점에서 이미, 나뭇가지의 그림자를 모아 발목에 [그림자 사슬]을 채워뒀다.

그것도 모르고 높이 뛰었으니 공중에서 덜컥 걸려 쓰러질 수밖에.

뚜둑!

우당탕!

이시노는 나뭇가지를 부수고 나무 몸통에 부딪히면서 추락했다.

대롱대롱…….

그러고는 발목이 붙잡힌 채 나무에 거꾸로 매달렸다.

“으윽…….”

멀리서 사냥감을 안 죽이고 괴롭히는 능력은 가히 최상급이지만, 이런 의외의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많이 부족했다.

이시노가 겨우 정신을 차린 순간, 이미 염훈이 눈앞에 있었다.

염훈은 검을 옆면으로 휘둘렀다.

“[신성한 일격].”

뻐억!!

이시노는 의식을 잃었다.

* * *

5분 뒤.

‘으으……?’

신성한 기운이 이시노의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왠지 눈물이 났다.

‘어떤 성스러운 분이 나를 치유해주고 있어……?’

“오, 이 새끼 눈 떴네.”

치유자가 말했다.

치유자의 정체는 염훈이었다.

“어……?”

염훈의 표정과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중급 치유] 스킬의 빛은 더없이 성스러웠다.

“은혁아. 네 말대로 숙련도 빨리 오른다.”

-성기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성기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성기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성기사 숙련도 : 28%+.

“그래? 그럼 다시 기절시킬까?”

“시간 아깝지 않아? 24시간 이내에 쉬지 않고 탑을 올라야 한다며.”

“그것도 그렇긴 한데. 어차피 15층에서 좀 할 일이 있어서.”

“그럼 치료는 이 정도로 하자.”

염훈은 스킬 사용을 멈췄고, 은혁은 이시노의 다리를 가볍게 찼다.

“빨리 일어나. 일어나서 일해.”

“에……?”

“저 사람들처럼 일하라고.”

은혁이 가리킨 곳에는, 이시노에게 사냥당하던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허억, 허억.”

“너무 힘들다. 으으.”

이시노가 기절한 동안 일어난 일은 다음과 같다.

* * *

15분 전.

염훈에게서 치료받은 플레이어들은 연신 은혁과 염훈에게 감사해했다.

“감사합니다!”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어떻게 보답을 해야 좋을지.”

플레이어들은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은혁은 히죽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제 소환수가 하는 일 좀 도와주시겠어요?”

“소환수를 돕는 일이라시면?”

“실은, 제가 여기서 사냥하는 동안 아이템 루팅을 해야 하는데, 저와 제 소환수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서 말입니다. 루팅 일을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하, 가죽 모으기 말씀이지요?”

플레이어들은 납득했다.

여기서는 경험치를 전혀 얻을 수 없지만, 토끼 가죽이나 멧돼지 고기 등은 모아서 팔면 꽤 돈이 된다.

‘가죽이랑 고기 루팅하는 걸 도와달라는 거구나.’

플레이어들은 납득했다.

“물론 도와드려야죠!”

“저 악독한 궁술사를 처치해 주시고 우릴 구해 주셨으니까요!”

“맡겨만 주십쇼!”

플레이어들은 은인에게 은혜를 갚을 생각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하지만 은혁을 은인으로 모시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약 15분 동안 은혁은 미친 듯이 사냥해댔다.

“[섀도 임펠링]!!”

파바바바바박!!

그림자 가시가 갑자기 사냥감을 꿰뚫어대는가 싶더니.

“[블레이징 러시]!!”

투쾅!!

화르르르르르!!

화염의 돌진으로 사냥감의 퇴로를 막고.

“흐랴아아압!!”

콰콰콰콰콱!!

전기톱을 연상시키는 헤비 체인 소드로 마구 학살해댔다.

마치, ‘생태계 파괴란 이런 거다!’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 같은 사냥법.

플레이어들이 어이없어하는데, 뭔가가 자기들 허벅다리를 툭툭 쳤다.

“어?”

“이쪽입니다, 여러분.”

똘망똘망한 인상의 금속 소환수, 메탈 서전트가 전에 챙겼던 나무 막대를 들고 서 있었다.

“여러분은 가죽 해체 작업에 임해 주십시오. 해체한 가죽은 메탈 워커의 등 위에 즉시 적재하시고요.”

메탈 서전트가 지시했다.

“허참.”

“저 사람 사냥법을 더 구경하고 싶은데.”

“일단 일합시다.”

은혁에게 구원받은 플레이어들은 메탈 서전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각종 사냥감의 가죽을 제거하고 모았다.

그러면 메탈 워커들이 다시 모았다.

쿠쿵……!

콰콰콰콰……!

이 와중에도 사냥은 계속되었다.

“허억, 허억.”

“점점 힘든데……?”

사냥하는 쪽보다, 가죽만 모으는 쪽이 먼저 지치기 시작했다.

“저 사람, 언제까지 사냥한대?”

“그, 그러게.”

“좀만 쉬었다가 하자.”

그러자 메탈 서전트가 나무 막대를 휘둘렀다.

“이 사람들! 게으름을 피우다니!”

“으왓!”

“은인이랍시고 떠받들 때는 언제고, 조금 힘드니까 농땡이 피웁니까!”

메탈 서전트가 마치 훈련 교관처럼 외치자, 플레이어들은 후다닥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메탈 서전트는 덩치는 작았지만 목소리는 단호했고, 묘하게 장악력이 높았다.

“삐빗. 삐빗!”

메탈 워커들도 일 못 하는 플레이어들을 비웃는 소리를 내며 재촉했다.

일부 메탈 워커는 너무 일을 느리게 하는 플레이어를 머리로 들이받기도 했고, 메탈 서전트는 은근히 그걸 조장했다.

“흑흑.”

“15층은 휴양층이라고 해서 왔는데 왜 이리 서럽냐.”

결국, 플레이어들은 눈물 같은 땀을 흘리며 가죽 모으기에 힘썼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던 은혁은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메탈 서전트…… 이름을 메탈 캡틴이라고 해도 되겠구만.’

그런 생각을 하며 염훈에게 다가갔다.

마침 염훈에게 맡겼던 이시노의 치유는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 * *

그리고 현재.

“상황은 대충 알겠지? 너도 일해라?”

은혁이 재차 요구하자, 이시노는 어이가 없었다.

“설마 당신은…….”

“뭘 눈치챘는지는 모르지만 입 닫는 게 좋을 거다.”

은혁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시노는 속마음으로만 말했다.

‘날 물리치고 저 사람들을 구한 이유는 당신이 착해서가 아니라, 노동력 착취하려고 구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소리 내서 따지면, 은혁은 정말로 이시노의 목을 칠 기세였다.

“저기요…….”

“할 말이라도?”

“그냥 가죽 모으기보다, 제 능력을 쓰면 사냥에 도움이 될 수도…….”

“흠? 별로 강해 보이진 않던데?”

“이래 봬도 행복 길드의……!”

“1군 부감독이라고? 알아.”

‘왜냐하면, 회귀 전 역사대로라면 네 죽음으로 염훈이 유명해지기 시작하거든.’

염훈과 은혁은 20층 무렵부터 친해지는데, 은혁은 이 무렵에 염훈의 명성을 전해 들었다.

염훈은 자력으로 15층에 오고, 사악한 이시노와 맞서 싸워서 죽인다.

그리고 성기사 염훈의 명성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다.

‘정작 행복 길드는 이시노의 죽음에 관심도 없었지.’

행복 길드는 죽음에 대해 아주 민감하지 않아서, 누가 행복 길드원을 죽여도 집단적인 보복에 나서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여간, 이시노는 죽어 마땅한 놈이고, 원래는 죽었어야 할 놈이다.’

그런 이시노가 자신을 좀 더 잘 써먹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네 능력은?”

“사냥감을 잘 찾아서 죽이지 않고 괴롭히는 능력입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염훈이 끼어들었다.

“최악인데? 약자를 괴롭히면서 즐기는 그런 타입이잖아?”

염훈이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목소리에 살기가 깃들자, 이시노가 펄쩍 뛰었다.

“하, 하지만 쓸모 측면에서 봐주세요.”

“쓸모라.”

은혁이 중얼거렸다.

사실 은혁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죽이지 않고 몰이사냥 할 줄 아냐?”

“네.”

“좋아. 그렇게 하지. 넌 반대편에서 몰아라.”

은혁은 그렇게 말하자 염훈이 물었다.

“난 뭘 할까?”

“넌 저 일꾼들 회복시킨 다음 버프 좀 걸어줘. 버프 연습 좀 해.”

“…….”

그렇게 또 일이 시작됐다.

슈슈슉!

이시노는 활을 쏘며 사냥감들을 안 죽이고 몰아댔다.

촤자자자작!!

은혁은 전기톱 같은 헤비 체인 소드로 사냥감을 학살해댔다.

“저, 저런.”

사냥터지기 플레이어가 망연자실해했다.

은혁이 헤비 체인 소드를 휘두를 때마다 사냥감은 도륙되고, 일어나는 검풍으로 사냥터도 망가질 정도였다.

“거기! 좀 적당히 하시오! 사냥감을 다 멸종시킬 작정인가!!”

“[회전 베기]!!”

은혁은 듣지 못한 사람처럼 사냥감을 학살해댔다.

‘전체 사냥감의 70% 정도 죽였군.’

눈에 잘 띄지 않는 두더지, 같은 것을 빼면, 눈에 띄는 큰 사냥감은 그야말로 학살을 해댄 것이다.

그러자 성좌의 관심을 끌었다.

-사냥의 성좌, 골콘다가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냅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NO

‘다이렉트 메시지.’

성좌들은 플레이어에게 함부로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다.

성좌와 대화를 나누려면, 성직자로서 계약을 하거나, 다른 직업으로 시작한 다음, 승급이나 히든 이벤트 따위를 통해 성좌 계약을 맺어야 한다.

그러나 정말로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경우에만 운명치 소모를 각오하고 메시지를 보내온다.

“YES.”

-무슨 짓이냐! 모처럼 가꾼 사냥터를 엉망으로 만들 셈인가!

의지력이 낮은 존재라면 듣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정도의 노성이었다.

하지만 은혁은 태연했다.

현재 의지력 스탯이 S이기도 했고.

‘골콘다의 부츠.’

7층의 고블린 던전에서 고블린을 학살하고, 드레이크 길드의 공적치를 뺏어 압도적인 1위를 달성했을 때, 얻은 보상이다.

그걸 착용하고 있으니, 골콘다가 아무리 화를 내도 편안했다.

“사냥을 열심히 하면 칭찬해 주셔야지, 왜 화를 내시는지?”

-그대가 하는 건 사냥이 아니라 학살 아닌가! 애초에 15층에 경험치를 주지 않는 사냥터를 만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경험치를 주는 사냥터를 만들면, 플레이어들은 마구잡이로 사냥을 해댈 가능성이 높았다.

사냥의 성좌인 골콘다는, 가급적 많은 이들이 사냥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나름 사냥터를 설계한 것이다.

그런데 은혁이 나타나더니 모조리 박살 내고 있었다.

“마저 사냥해야 하니까 막지 마시길.”

-이런 오만한 놈! 사냥의 참맛을 가르쳐 주마!

성좌는, 자신의 권능이 미치는 15층에 히든 미션을 만들어냈다.

<15층 히든 미션 : 축복받은 멧돼지 사냥.>

-목표 : 골콘다의 축복을 받은 멧돼지를 처치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영구적인 경험치 보너스 +3%. 속력 스탯의 한 단계 증가.

-실패 시 페널티 : 죽음.

-제한 시간 : 30분.

-히든 미션 전용 아이템 ‘사냥용 투창’이 제공됩니다!

-히든 미션 전용 버프 [투창 숙련]이 제공됩니다!

히든 미션답게 아이템과 버프가 제공됐다.

그 순간.

“부오오오오!!!”

거대한 멧돼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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