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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72화 (72/434)

72화 : 미친 사냥 (2)

“흠.”

은혁은 전투 자세를 취했다.

“쿠우우……!”

투레질을 하는 멧돼지의 입가에서 허연 김이 뿜어져 나왔다.

얼핏 보면 은혁이 지금껏 죽인 멧돼지랑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파앗!

골콘다가 멧돼지에게 축복을 내렸다.

-성좌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냥당하는 존재의 분노] 패시브 스킬이 적용됩니다!

-[돌진 강화] 스킬이 적용됩니다!

-[축복받은 가죽] 패시브 스킬이 적용됩니다!

-[거대화] 스킬이 적용됩니다!

멧돼지는 단숨에 4중 버프를 받았다.

“아앗, 저런!”

“갑자기 성좌가 강림해서 히든 미션을 던지고 가다니……!”

가죽 수거하던 플레이어들은 멀리 피신한 뒤 벌벌 떨었다.

성좌가 강림했다 떠난 잔여 기운에 닿은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손발이 떨렸다.

“부오오오오오!!!”

거대한 멧돼지는 오직 은혁만 노리고 돌진했다.

투두두두두두……!

땅이 울렸다.

“흡!”

은혁은 [도약] 스킬로 가볍게 피했다.

멧돼지는 그대로 돌진하여 숲에 충돌했다.

콰콰쾅!!

콰두두두두두……!!

거대한 멧돼지는 숲의 나무를 수수깡 부수듯 한참을 뚫고 갔다.

“세상에…….”

“뚫고 가는데도 속도가 전혀 줄지 않는다고?”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본래 15층의 멧돼지는 맷집만 강하지, 공격력은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성좌의 가호를 이렇게 직접 받은 멧돼지의 돌진력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은혁아. 혼자서 괜찮겠냐?”

염훈은 은혁이 혼자 힘으로 클리어할 줄 알았기에 플레이어들 근처에 서 있었다.

“걱정 마! 돼지치곤 빠르군!”

은혁은 투창을 위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멧돼지를 도발했다.

‘놈의 돌진력을 역이용해서 한 방에 꿰뚫는다!’

각오를 마친 은혁의 투지에 이끌린 것인지, 멧돼지는 바닥을 구르며 다시 돌진해왔다.

“부오오오!!”

‘이런, 생각보다 더 빠른데?’

은혁은 공을 고르는 타자처럼, 이번 돌진은 피하기로 했다.

“[그림자 도약]!”

파앗!

반대 방향으로 일단 피신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히익?!”

예상 밖의 전개에 멍 때리고 있던 이시노가 피하지 못한 것이다.

퍼벅!!

콰드득!!

충돌하면서 밑으로 깔렸는데, 그대로 짓밟히는 바람에 통째로 갈려 버린 것이다.

“히익!”

“너무 끔찍해!”

“아! 차라리 멀리 튕겨 나갔으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저렇게 허무할 수가……!”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전부 이시노의 [사냥의 낙인]에 찍혀서 죽지도 못하고 괴롭힘 당한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런데도 너무나 허무하고 참혹한 죽음이라 그런지 안타까워했다.

‘운명이란 건가.’

은혁은 새삼 입맛이 썼다.

본래 염훈 손에 죽었어야 할 이시노가 이토록 허무하게 죽은 이유는, 역사의 흐름이 본래 흐름대로 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아, 운명이란 뭔지.”

은혁이 탄식하자, 멀리 있던 염훈이 딴죽을 걸었다.

“은혁아. 사실상 그 궁술사는 너한테 시달리다가 지쳐서 넋을 놓고 허무하게 죽은 거 아니냐? 운명 탓만 하긴 좀……?”

은혁은 염훈의 지적을 무시하고 계속 싸웠다.

콰쾅!

콰두두두……!

은혁은 15층 전체를 배경으로 싸웠다.

‘계속 피하면 힘이 빠지려나?’

도리어 멧돼지는 약이 올라서 더 날뛰었다.

때때로 미리 피하지 못한 플레이어들까지 휘말렸다.

“으악!”

“피해!”

난데없이 투우장에 강제 참가하게 된 사람들처럼, 플레이어들은 도망치느라 바빴다.

심지어는 일반 사냥감들까지 치어서 죽고 말았다.

퍼버벅!

파바바박!

15층의 훌륭한 사냥터가 부서지고, 나무가 꺾이고, 바닥의 흙이 다 헤집어져서 돌바닥이 드러날 정도가 됐다.

‘슬슬 됐다.’

은혁은 다시 달려드는 멧돼지의 바닥 쪽을 향해 스킬을 썼다.

“[돌 부수기]!”

쩌적!

흙이 다 파헤쳐진 돌바닥이 반으로 갈라지고.

“쿠웨엑?!”

멧돼지의 다리가 걸렸다.

뿌드득!!

자기 돌진력이 자기 다리를 부순 격이 되어 버렸다.

“흡!”

은혁은 사냥용 투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차하앗!!”

빠악!!

그리고 단번에 머리를 파괴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40.

원래는 경험치를 얻을 수 없는 공간이므로 레벨도 오를 리 없지만, 성좌의 가호를 받은 존재를 죽였기에 경험치와 무관하게 레벨이 올랐다.

그리고 숙련도도 마찬가지로 올랐다.

-드루이드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드루이드 숙련도 : 12%.

-소환술사 숙련도가 4% 증가했습니다!

-현재 소환술사 숙련도 : 20%.

-전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전사 숙련도 : 36%+.

그리고 히든 미션 클리어 보상이 이어졌다.

-축하드립니다! 15층 히든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성공 시 보너스로, 사냥 시 경험치 획득량이 영구적으로 3% 증가합니다!

-성공 시 보너스로, 속력 스탯 잠재력이 영원히 한 단계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속력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속력 : A → A+

보상 메시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15층 최초로 모든 사냥감을 처치하는 올 킬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학살의 사냥꾼’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좋았어.”

은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그 직후.

털썩!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위대한 성좌 골콘다이시여! 보고 계십니까!”

-사냥의 성좌, 골콘다는 불쾌한 표정으로 당신을 노려봅니다!

다이렉트 메시지는 끊었지만, 그래도 관심을 아주 거두진 않은 상태였다.

“드릴 말씀이 있사오니, 저에게 다시 말을 걸어주십시오!”

그러자 다시 다이렉트 메시지가 연결됐다.

-……뭐냐.

묘하게 삐친 목소리였다.

-내가 보낸 시련을 극복했다고 자랑이라도 하려는 거냐? 그런 거냐?

“결코 아닙니다! 염훈, 좀 도와줘.”

은혁은 싸우면서 부서뜨린 나무로 재빨리 제단을 쌓았다.

“한 개로는 부족하군! 차핫!”

은혁은 [쾌속보]와 헤비 체인 소드로 재빨리 제단을 여러 개 쌓았다.

-성좌, 골콘다는 설마설마하는 기색으로 지켜보는 중입니다!

시스템 메시지로 따로 나올 정도면, 골콘다는 자기도 모르게 엄청 집중해서 구경하는 중이란 것이다.

“여러분! 여기요, 여기!”

은혁은 그동안 노동하던 플레이어들에게 손짓했다.

“자, 갑시다!”

메탈 서전트가 인솔했다.

그러자 플레이어들은 은혁이 사냥한 가죽을 모조리 제단 위에 얹었다.

터턱!

터턱!

가죽이 쌓인 제단이 여러 개 생겨났다.

“제가 바치는 번제물을 받아주소서!”

화르륵!

화염 스킬로 불을 붙였다.

고대인이 고대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듯한 장면이었다.

-사냥의 성좌, 골콘다에게 매우 많은 양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사냥의 성좌, 골콘다가 기뻐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흘러나왔다.

-뭐, 뭘 하는 거냐.

목소리에는 의문이 깃든 한편, 감추기 힘든 기쁨도 깃들어 있었다.

“지금 느끼고 계신 그대로입니다. 보십시오.”

은혁은 엉망이 된 사냥터와 지금 바친 제물을 가리켜 보였다.

“제가 거칠게 사냥한 것은, 제 나름의 경배 방식이었나이다! 화끈한 사냥을 한 이유는, 그렇게 화끈한 사냥을 해야만 골콘다 님께 제대로 된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으음……!

“제가 보여드린 여흥이 너무 거칠었는지요? 혹여 그렇다면 고개 숙여 사죄드리옵니다!”

-아, 아니다. 사죄하지 말거라. 내가 너에 대해 오해를 한 것 같구나.

골콘다의 목소리는 흐뭇함이 가득했다.

자신을 깔보는 듯 행동하던 과격한 플레이어가 무릎을 꿇고 제물을 바친 순간, 그동안의 불만은 눈 녹듯이 사라진 상태였다.

-으하하! 유쾌하도다! 온 힘을 다해 사냥하고, 또 번제 의식을 치를 정도로 예의를 갖춘 플레이어여! 재미있었노라! 요즘은 너 같은 자를 찾기 어렵지!

“황공합니다!”

-내 너에게 작은 선물을 줘야겠구나. 원하는 것이 있느냐?

“네!”

은혁은 사양 않고 외쳤다.

“다자카우스의 꼬리를 바랍니다!”

-뭣?!

다자카우스는 드래곤 컬트 소속의 준신화급 드래곤이었다.

사실, 드래곤 컬트에 속한 드래곤이라고 전부 신급 존재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집단으로서의 드래곤 컬트는, 지고의 위상, 성좌 연합과 맞먹는 신급 존재 집단이다.

다자카우스는 나이가 겨우 350살밖에 안 된 작은 드래곤임에도 준신화급 드래곤으로 분류되는 위업을 세웠다.

그만큼 악랄한 일을 많이 저질렀기에, 사냥의 성좌인 골콘다가 직접 사냥에 나섰고, 다자카우스는 죽었다.

다자카우스는 사냥당하는 순간, 꼬리를 잃었는데, 다자카우스는 자신의 악의와 고집을 그 꼬리에 남겨 두었다.

골콘다는 다자카우스의 꼬리를 전리품으로 삼음과 동시에,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지키고 있었다…….

라는 이야기.

은혁은 당돌하게도 그 다자카우스의 꼬리를 콕 집어서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으음. 그건 좀.

“음? 그건 안 된다고요?”

-아, 오해하지 말라. 내게 귀한 물건이어서가 아니라, 한 블랙 드래곤의 악의가 깃든 꼬리이기 때문에 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라라? 설마 위대하신 골콘다 님께서는 제가 그런 악의에 쓰러질 사람으로 보입니까?”

은혁은 의도적으로 엉망진창이 된 15층을 둘러보았다.

“골콘다 님이 꾸며 놓으신 사냥터를 전부 파괴하고 ‘학살의 사냥꾼’ 칭호까지 얻은 제가? 겨우 꼬리에 깃든 악의에 질 것 같다 이 말씀이십니까?”

-그건 아니다만…….

“그럼 그냥 주시죠.”

-…….

골콘다는 그제야 은혁의 노림수를 깨달았다.

은혁은 골콘다가 사냥의 신이라는 점, 15층의 설계자가 골콘다라는 점, 15층의 히든 미션을 유발하는 방법이, 최대한 사냥을 무지막지하게 해대서 골콘다의 관심을 끄는 것이라는 점…….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알고 능수능란하게 이 다이렉트 메시지까지 끌고 온 것이다.

“줘요!”

-아니, 이건 좀…….

“줘요! 다자카우스의 꼬리 줘요!”

-내 말 좀…….

“줘요! 줘요! 약속대로 줘요!”

-……알았다. 대신 조심해서 사용하거라…….

조르기에는 장사가 없었다.

-다자카우스의 꼬리를 획득하셨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은혁에게 다자카우스의 꼬리를 전해줬다.

골콘다는 이미 영역을 떠난 지 오래였다.

“좋았어!”

은혁은 다자카우스의 꼬리를 확인했다.

-다자카우스의 꼬리 :

5성급 아이템.

저주받은 아이템.

준신화급 블랙 드래곤 다자카우스의 꼬리다.

사냥의 성좌 골콘다가 직접 끊어 낸 꼬리에는, 다자카우스의 악의가 가득 담겨 있다.

이 악의에는 특유의 파동이 존재하여, 물리적으로도 주변에 충격파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이 자체로 5성급 무기이며 훌륭한 창이지만, 저주받은 아이템이므로 섣불리 장착하면 영혼이 어둠에 잠식당하게 될 것이다.

판매 불가.

아이템을 확인한 은혁은 옆을 흘끔 보았다.

가죽 모으기 일을 하던 플레이어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은혁을 보고 있었다.

스윽.

은혁은 메탈 서전트에게 눈짓을 했다.

“이 사람들! 왜 손을 멈춘 겁니까! 얼른 마저 일해요!”

메탈 서전트가 야단을 쳤다.

플레이어들은 탄식도 하지 못하고 마저 일했다.

“후후.”

은혁은 웃으며, 딱 하나 남은 거대한 멧돼지 사체를 통째로 챙겼다.

골콘다의 가호를 직접 받은 멧돼지 사체였다.

골콘다가 직접 버프를 걸었기에, 가죽에는 [축복받은 가죽]의 힘이 남아 있었다.

‘이 멧돼지 사체 가죽으로 가죽 갑옷을 만든다.’

전기 에너지를 다루는 브라이언과 싸울 때 특히 방어에 도움이 될 터였다.

은혁은 콧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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