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 16층 클리어하고 바로 17층으로
<16층 메인 미션 : 코볼트 족장 처치>
-목표 : 코볼트들을 통솔하는 족장을 처치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레벨 1 상승.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없음.
비교적 쉬운 메인 미션이다.
코볼트 족장은 던전 전체에 하나가 아니며, 찾다 보면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제한 시간이 없고, 실패해도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으므로 다들 방심한다.
평소라면 방심해도 깰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지만.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스테이지가 강화됐어요. 코볼트 놈들이 더 강해지고 똑똑해졌습니다.”
“그래 봤자 코볼트죠.”
은혁이 가볍게 답하자 레스모는 왠지 화가 났다.
레스모가 뭔가를 더 말하려 하자, 은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일단 1분만 제게 시간을 주시죠.”
“1분? 좋습니다.”
레스모는 1분 동안 은혁이 자신을 설득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자 질주].”
파바바바박!
은혁은 컴컴한 동굴을 이용해 [그림자 질주]로 고속 이동했다.
“에?”
“우리 두고 그냥 가버린 거……?”
플레이어들이 기막혀 한 순간.
크아아아……!
코볼트 족장의 절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파바바박!
은혁은 다시 [그림자 질주]로 되돌아왔다.
“아직 1분 안 지났죠?”
은혁의 손에는 코볼트 족장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목의 절단면은 전기톱으로 썰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어, 어떻게?”
레스모가 물었다.
은혁은 [그림자 질주]로 기습한 뒤, [그림자 암습]으로 족장만 죽이고 다시 [그림자 질주]로 온 것이다.
설명해도 이해 못 할 것 같아서, 은혁은 피식 웃어 보였다.
-축하드립니다! 16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41.
“16층은 간단하군.”
은혁이 16층, 17층, 18층 강행군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난이도가 할 만하다는 것을 회귀 전 지식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쿵……!
마침 멀리서 무언가가 파괴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염훈이군.’
염훈은 [2초 무적]을 걸고 광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리고 코볼트 족장을 죽였다.
“자, 그럼 미션도 깼으니, 게이트로 갈 겁니다. 게이트까지 따라오실 분은 따라오시길.”
은혁은 사람들을 두고 염훈에게 갔다.
“……허.”
“겁나 세네.”
“랭커는 다르구만.”
남은 이들은 감탄했다.
* * *
브라이언은 자택에서 휴식 중이었다.
그때, 상승 길드 소속 첩보관이 나타났다.
“보고드립니다.”
“뭔가?”
“강은혁은 현재 벌써 16층을 클리어하고 17층에 도달했습니다.”
“뭐? 자세히 말해봐라.”
브라이언은 첩보관을 시켜 강은혁을 감시시켰다.
브라이언 나름의 방심하지 않는 경계 태세였다.
첩보관은 현재 강은혁의 행보를 설명했다.
브라이언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24시간 동안 싸울 수 없는 걸 알고, 재빨리 움직이는 거군.”
“방해할까요?”
“아니. 절대로 안 된다. 직접적인 접촉은 금지한다. 단, 감시는 계속하도록.”
“옛.”
첩보관이 사라지자, 브라이언은 찌푸렸던 얼굴을 펴고 웃었다.
‘여기까진 예상대로군.’
브라이언은, 자신이 [강제 평화] 때문에 못 움직이는 동안, 은혁이 한 층이라도 더 높이 오를 것임을 예상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서 레벨을 올리려 하겠지.’
대결 하루 전날 그러는 짓은 보통 자살 행위지만, 은혁에게는 염훈이라는 회복 전문가가 있었다.
‘그동안 나도 미리 준비를 해야겠군.’
브라이언은 비밀리에 따로 빼 둔 부하를 호출했다.
브라이언은 예상 대결 장소인 19층에, 미리 떡밥을 깔아 두기로 했다.
* * *
-17층 : 피라냐의 호수.
대다수 플레이어들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반 수중 스테이지였다.
넓은 땅이 펼쳐져 있고, 그 중심에 넓은 호수가 있었다.
그리고 호수에는 손바닥 크기의 피라냐가 살고 있었다.
<17층 메인 미션 : 피라냐 사냥>
-목표 : 제한 시간 동안 피라냐를 최대한 많이 사냥할 것. 단, 최소한 1kg 이상 사냥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사냥 성과에 따라 다름.
-실패 시 페널티 : 강제로 호수 한복판에 전송되어, 피라냐에게 1분간 물어 뜯김. 살아남는다면 즉시 재도전 가능하다.
-제한 시간 : 1시간.
곳곳에는 낚시꾼들을 위한 상점이 있었고, 거기서 잡은 물고기의 무게를 측정해 주는 장치도 있었다.
몇몇 플레이어들은 고지식하게 낚싯대를 구매한 뒤 낚시를 했다.
고지식하게 도전한 플레이어들은 죄다 피를 봤다.
“아얏! 아파파!”
“피라냐 새끼들! 겁나 높이 뛰네!”
낚싯대를 드리우면, 피라냐는 펄쩍 뛰어올라 플레이어의 손등을 물어뜯고 물속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몇몇 플레이어들은 과감하고 개성적인 방식으로 피라냐를 잡았다.
“하하! 저번에 15층에서 잡은 사냥감 사체를 미끼로 쓰니깐 잘 잡히네?”
“야, 마법사야. 전기로 좀 더 지져봐. 호수째로 튀겨 버리자고!”
“역시 우리 사령술사! 시독으로 다 조져 놓는구만!”
17층에 도달한 플레이어들은 다들 각자 직업의 특성에 통달했다.
“이거, 1kg가 아니라 100kg도 잡겠는데?”
“자자, 남의 영역 침범하지 말고 정도껏 잡읍시다!”
“그러는 그쪽은 돗자리를 왜 그리 넓게 펴시는데?”
“하하! 호수는 넓으니까 너무 다투지 맙시다.”
아닌 게 아니라 피라냐 10마리 잡기는 우스웠다.
하지만 그들의 큰 성공이 때로는 독이 되기도 했다.
정신없이 잡다 보니, 코볼트들이 등 뒤에서 접근하는 걸 너무 늦게 눈치챘다.
“캬캭!”
“돌격이다! 캬아!”
큰 곡괭이와 비포장 지면에서도 달리도록 개조한 광차를 탄 코볼트 중대의 습격.
그것도 여러 중대가 작정하고 달려들었다.
“으왓, 기습이다!”
“별거 아냐! 싸우자!”
“와아아아!!”
17층에 도달한 플레이어 정도면 코볼트쯤은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파이어볼]!”
“[냉기의 화살]!”
“[악령 소환]!”
“[용기의 오러]!”
마법사들이 화염구를 날려 코볼트들을 흩트리고, 궁술사가 냉기의 화살로 저격하고, 사령술사가 악령을 소환해서 앞을 막고, 용기 있는 성기사가 버프를 걸었다.
콰쾅!!
퍼버벅!
슈오오오……!
모처럼 기습한 보람도 없이 코볼트들은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라! 캬캭!”
코볼트 지휘관이 소리쳤다.
플레이어들은 비웃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모양인데?”
“흥, 증원군이라도 오려나 보지.”
“얼마든지 오라 그래. 우리도 레벨이 몇인데.”
대다수 플레이어의 레벨은 30을 넘겼다.
머릿수만 앞세우는 코볼트는 학살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 순간.
촤하아아악!!
호수 한가운데에서 뭔가가 치솟아 올랐다.
그 무언가의 거대한 몸 때문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뭐……!”
촤아아아……!
그 거대한 몸에서 떨어지는 물에 흠뻑 젖은 플레이어들은 호수에서 몸을 세운 존재를 올려다보고 기겁했다.
“거대한……!”
“다리 달린 피라냐……?”
“으윽, 머리가……!”
몰락한 지고의 위상을 갑자기 마주한 플레이어 중 의지력 스탯이 약한 자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 청록색 피라냐가 등장했습니다!
한때 강대한 존재였으나 몰락하여 호수에 숨어 사는 존재.
그것이 청록색 피라냐였다.
“캬캭!”
“캬아악.”
코볼트들은 산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처럼 엎드려 조아렸다.
그러자 플레이어들은 겁이 덜컥 났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은 주로 히든 루트에서 등장한다.
이들 중 히든 루트에 돌입한 경험이 있는 플레이어는 많지 않았기에, 너무 쉽게 절망해 버렸다.
“다, 다들 정신 차려!”
직업이 ‘냉소적인 사령술사’인 여성 플레이어 정도만 냉정했다.
“도망치면 살 수 있다고! 다 일어나! 어서!”
그 순간.
“구오오오오오…….”
“히익.”
눈이 마주쳤다.
깊은 밤의 늪처럼 깊고 끈적한 눈동자였다.
“아…… 아아……!”
사령술사는 여전히, 지금 당장 도망치면 살 수 있다고 냉철하게 계산해 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쿠쿵……!
몰락한 지고의 위상의 거대한 한쪽 발이 호수 밖으로 나왔다.
쩌억……!
청록색 피라냐는 미리 입을 벌렸다.
그대로 한 걸음 더 내디뎌서, 플레이어들과 코볼트 무리를 통째로 잡아먹을 기세였다.
“아아……!”
사령술사가 죽음을 예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쿠쿵……!
청록색 피라냐가 한 걸음 더 내디뎠다.
푸욱!
뭔가를 밟았다.
“쿠오오오오!!”
청록색 피라냐는 고통에 찬 절규를 내질렀다.
“에?”
“[섀도 임펠링] + [메탈 스파이크 소환] 융합!”
누군가가 단호한 어조로 퓨전 스킬 공식을 읊었다.
“퓨전 스킬 [가시 지옥].”
은혁은 그림자 꼬챙이와 금속 가시 함정을 만드는 스킬을 융합하더니, 그걸 청록색 피라냐가 발걸음 내딛는 곳 바로 아래에 쓴 것이었다.
“염훈! 지금이다!”
“흐랴아아압!!”
먼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염훈은 [신성한 날개]를 발동한 채, 파이크를 들고 돌진했다.
“죽어라!!”
아무런 기교 없는 돌진 공격이었으나, 들고 있는 다자카우스의 파이크가 사기였다.
퍼버벅!!
염훈의 파이크가 청록색 피라냐의 머리를 단숨에 꿰뚫었다.
“……!!”
원통한 눈빛으로 염훈을 노려봤지만, 염훈은 개의치 않았다.
“[신성한 오러]!!”
파앗!!
2차 각성한 성기사의 신성한 기운이 뇌를 파헤쳤다.
뇌가 뚫린 것만 해도 치명상인데 신성한 오러가 들어오자 견딜 수 없었다.
“……!!”
쿠쿵!!
청록색 피라냐는 옆으로 쓰러졌다.
“으악!”
“꺄악!”
사체에 깔릴 뻔한 플레이어들은 기겁했고, 코볼트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42.
“음, 막타를 양보했더니 레벨이 1만 오르네.”
은혁이 중얼거렸다.
청록색 피라냐는 몰락한 지고의 위상 중에서는 꽤 강한 편이었다.
다행히 염훈의 기습이 정확히 뇌를 뚫어서 지저분한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호수 속으로 도망치면 답도 없지.’
진짜 수중전을 펼쳐야 하는데, 은혁도 그건 좀 자신이 없었다.
“저, 저기요.”
냉소적인 사령술사가 말을 걸었다.
“네?”
“저, 구해주셔서 고맙습니…….”
“지금 좀 바쁜데.”
은혁은 말을 자르고 청록색 피라냐의 배를 갈랐다.
“[재료 적출].”
파앗!
청록색 피라냐의 마정석을 얻었다.
염훈이 은혁 곁에 착지했다.
“웃차. 그럼 이 녀석 갖고 가야지?”
17층 메인 미션은 피라냐의 무게를 재는 미션이다.
염훈이 청록색 피라냐의 머리를 노린 건 일격에 끝내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최대한 사체의 원형을 유지시켜서 최고 점수를 달성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근데 너무 커서 통째로 옮길 수 있을까?”
사체는 작은 빌라 크기였다.
“염려 마. [메탈 서전트 소환].”
파앗!
똘망똘망한 눈매가 인상적인 꼬마 로봇이 나타났다.
“뭘 해야 하는지 알겠지?”
“네, 주인님! 맡겨 주십쇼!”
메탈 서전트는 예전에 챙겨 둔 트렌트의 나뭇가지를 들고,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몰락한 지고의 위상에게 한 입 거리로 죽을 뻔했던 충격 때문에 넋이 좀 나간 상태.
“이 게으름뱅이들! 일어나라!”
메탈 서전트가 호통을 치자 플레이어들이 찔끔했다.
“살려줬으면 일을 해야지! 일어나!”
찰싹! 찰싹!
나뭇가지로 아프게 때려댔다.
“으으. 너무하네.”
“너무하긴 뭐가 너무합니까!”
메탈 서전트가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생명의 은인을 위해 사체를 조금만 옮겨달라는 부탁이 너무합니까!”
“좀 쉬고 싶…….”
하지만 메탈 서전트는 지칠 줄 몰랐다.
집요하게 일으켜 세웠다.
플레이어들은 마지못해 일어났다.
“자아, 사체 옆으로 정렬!”
그러자 플레이어들은 몰락한 지고의 위상의 사체를 보며 다시 두려움에 빠졌다.
“염훈. 부탁해.”
“쯧, 알았다.”
염훈은 [광역 축복]과 [광역 회복] 스킬로 플레이어들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켰다.
그리고 은혁이 한마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