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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80화 (80/434)

80화 : 보물창고

“라루방툼에 가봤자 별거 없을 거요. 어차피 저번에 온 파괴자 해피에게 이미 다 털렸을 거요.”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라루방툼은 다크 드워프 특유의 꼼꼼함이 적용된 금고 방으로 알고 있는데.”

“…….”

“왜 입을 다무는 거요? 아마 라루방툼 밑에는 비밀방이 추가로 있을 텐데.”

“그, 그건 또 어떻게 알고……!”

“다 알고 온 건 아니지만, 다크 드워프에 대해서는 알지. 일반 드워프에 비해 호탕함은 덜하지만, 더욱 철두철미한 존재 아니오?”

“큭……!”

“아아, 진정하시오. 다 뺏으러 온 건 아니니까.”

“오만한 소리를……!”

“나 없이는 당신도 라루방툼 비밀방에 혼자 갈 수 없지. 당신 없이도 나 혼자서 라루방툼 비밀방을 찾기 어렵고. 그러니 함께 가서 반씩 나눠 가집시다.”

“반씩?”

“라루방툼 비밀방 안에 있는 일반 금화와 은화는 내 거, 나머지 귀금속과 종족 문화유산은 당신 거. 어떻소?”

“정말이오?”

윌칸의 눈이 커졌다.

금화와 은화도 귀중하지만, 그보다는 다크 드워프 종족의 문화유산이 더 중요했다.

라루방툼 비밀방에는 망자들을 돌려놓을 아티팩트와 문화유산이 있었다.

은혁이 금화와 은화만 챙겨 가고 나머지 것들에 대한 권리를 순순히 포기한다면, 윌칸으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좋소!”

“아, 근데 내가 시간이 좀 없는데.”

브라이언과의 대결까지 2시간도 남지 않았다.

은혁은 일부러 시간을 빠듯하게 운영해 왔지만, 아무리 그래도 1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은 있어야 했다.

‘무기 업그레이드 시간이 조금 걸릴 테니까.’

윌칸은 시간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는 은혁을 보고는 자랑하듯 이렇게 말했다.

“아, 이런 경우를 대비한 드릴 장치가 있소. 거기로 안내하지.”

라루방툼은 본래 침입자가 나타나면 스스로 통로가 파괴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재발굴하는 드릴 장치가 숨겨져 있었다.

“읏차.”

윌칸이 평평해 보이는 벽에 지문을 갖다 댄 순간.

삐빅!

-다크 드워프 군주 윌칸 만세.

-폐쇄된 구역 복원용 드릴을 기동합니다.

덜컹.

천장 한쪽이 통째로 열리더니, 드릴 장치가 느릿느릿 내려왔다.

길이에 비해 다소 가느다란 느낌의 드릴이었다.

“바로 이거요.”

“웃!”

드릴은 뾰족한 부분이 바닥에 향하도록, 높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대략 3미터 크기의 드릴이었다.

다크 드워프들만이 제작 가능한 그레이 스틸 합금으로 제련된 드릴은 어둠 속에서는 검게 보이고 빛 아래서는 은백색으로 빛이 났다.

그레이 스틸 합금은 강철보다 단단하면서도 세라믹 속성을 동시에 띠고 있기에 절연체 효과도 갖고 있었다.

바위와 광맥이야 기본으로 뚫고, 극단적이지만 각종 정령이 만든 방어막도 우습게 꿰뚫었다.

“아름답지 않소? ‘그레이 드릴’이라는 평범한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 모……습……!”

자랑하던 윌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은혁의 눈이 드릴을 보며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조금 전 시간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줘.”

“에?”

“저거 달라고!”

은혁은 처음부터 저걸 노리고 있었다.

회귀 전 은혁이 읽은 고고학자들도 보고서에 언급했을 정도로 엄청난 드릴이었다.

즉, 은혁은 라루방툼 자체보다, 라루방툼의 폐쇄된 통로를 뚫을 드릴이 진짜 목표였던 셈이다.

“저걸 달라니. 미안하지만 저건 라루방툼의 일부라서, 단순한 중장비가 아닌 문화유산이라고 봐야……!”

“메탈 서전트!”

파앗!

메탈 서전트는 소환되자마자 차렷 자세를 취했다.

“준비됐나, 메탈 서전트!”

“넵! 부탁드립니다, 주인님!”

“[메탈 서전트 강화]!!”

파앗!

-메탈 서전트의 특기가 추가됩니다!

-메탈 서전트의 방어력이 증가합니다!

-메탈 서전트의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메탈 서전트 강화] 스킬은 딱 한 번만 쓸 수 있는 스킬로, 메탈 서전트의 능력을 영구적으로 강화시킨다.

“오오오오……!”

메탈 서전트는 부들부들 몸을 떨더니.

“시스템 리부트 완료! 이전보다 강화된 메탈 서전트! 기동!”

“크기는 똑같은데……?”

윌칸이 눈치 없이 중얼거렸다.

찌릿.

메탈 서전트는 똘망똘망한 눈매를 가늘게 만들고 윌칸을 흘겨보더니.

“강은혁 주인님! 새로 얻은 기능을 선보일 수 있게 해주십쇼!”

“물론이다, 메탈 서전트. 드릴을 탈취하라!”

“존명!”

타앗!

메탈 서전트는 단숨에 도약하더니 그레이 스틸 드릴의 구동부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메탈 서전트의 오른손이 해킹용 툴로 변환하더니.

“[메탈 해킹]!!”

파카카칵!

구동부의 외장재에 구멍을 뚫고, 금속 장비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과연 메탈 서전트. 다재다능하구나.”

은혁은 소환술사답게 소환수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메탈 서전트의 [메탈 해킹]은 방화벽이 따로 없는 단순한 금속 장비의 소유권을 전환하는 용도로 쓰인다.

“아앗?! 그만둬!!”

뒤늦게 윌칸이 막으려 했지만.

-소유권 이전 완료!

-그레이 드릴의 소유권은 메탈 서전트와 소환술사인 강은혁에게 공동 귀속됩니다!

“좋았어! 잘했다, 메탈 서전트! 소환 해제!”

그렇게 은혁은 그레이 드릴을 통째로 인벤토리창에 넣었다.

“으으, 무겁구만.”

“이, 이 나쁜 놈아!!”

“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우리 문화유산이며 중요 장비라고 했잖아! 그걸 왜 통째로 뺏는 건데! 그리고 금화랑 은화만 네가 절반 챙기고 나머진 다 나한테 준다며!”

“오해가 있군. 정리합시다.”

은혁은 급한 사람처럼 굴던 태도를 싹 바꾸고 느긋하게 설명했다.

“첫째. 이건 라루방툼 바깥에 있는 거니까 먼저 찜하는 게 임자지. 공식적으로 당신 국가 소유라고 해도, 당신 국가는 이미 멸망했으니까.”

“……!!”

뼈를 때리는 팩트 폭행이었다.

저 드릴이 라루방툼 내부에 있는 문화유산이었다면 약속대로 윌칸의 소유가 되겠지만, 드릴은 라루방툼 바깥에 있었다.

“둘째. 나한테 이게 꼭 필요하니까.”

은혁은 19층 스테이지의 형태와 브라이언과의 최종 결전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소. [돌 부수기]!”

빠칵!

은혁은 폐쇄된 통로의 약한 지점만 노려서 [돌 부수기]로 부쉈다.

드릴 없이도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구멍이 만들어졌다.

“자, 빨리 반띵하러 갑시다!”

“못 해! 반띵은 억울해서 못 해!”

작은 체구의 윌칸은 방방 뛰며 저항했다.

그레이 드릴을 뺏긴 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라루방툼 내부의 보물까지 반으로 나누기는 싫었다.

“그럼 4 대 6도 괜찮소.”

은혁은 선선히 물러났다.

어차피 황금알을 낳는 닭도 있겠다, 은혁이 돈에 쪼들릴 일은 딱히 없다.

윌칸은 그것도 싫다고 하려 했으나.

“망자화된 당신네 종족에게 안식을 준 건 내 동료요. 그걸 잊은 거 아니겠지?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시오.”

결국, 윌칸은 은혁의 제안대로 해야 했다.

은혁은 위에 대고 소리쳤다.

“염훈! 내려와서 대신 금화 좀 챙겨줘! 난 인벤토리 꽉 찼어!!”

* * *

모든 걸 끝마치고 나오자 히든 미션 클리어 판정이 떴다.

-축하드립니다! 18층 히든 미션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2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45.

“좋았어.”

다크 드워프 군주와의 거래(?)를 통해 드릴도 얻었고, 금화도 잔뜩 얻었다.

“잘 가시오. 제발 잘 가시고 다신 오지 마시오.”

윌칸은 작별 인사를 했다.

분노보다는, 얌전히 떠나줘서 고맙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두 사람은 떠나며 화기애애하게 대화했다.

“되게 착한 다크 드워프다. 그치? 우리도 착하고.”

염훈이 웃으며 말했다.

은혁도 피식 웃었다.

‘드워프들의 장비는 사이즈가 안 맞아서. 크게 챙겨 나올 게 없었지.’

라루방툼 속에는 고대 유물급 무기와 방어구도 있긴 있었다.

은혁이 거기에 눈독을 들이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사이즈가 잘 맞지 않았고, 따로 에센스 추출을 일일이 하자니 효율이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화만 40%가량 챙겨 나왔다.

그게 염훈이 느끼기엔, 평소 은혁의 행보에 비해 무척 착한 것이었다.

“그럼 5층으로 돌아가자.”

“음.”

파앗!

두 사람은 게이트를 통해 5층 광장에 도달했다.

오후 3시의 어중간한 시간이라 그런지 광장의 게이트 부근에는 플레이어들이 많지 않았다.

염훈은 조금 지쳤고,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내가 조금 지친 정도면, 은혁이 녀석은 더 많이 지쳤을 텐데.’

15층부터 18층까지, 자신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한 건 은혁이었다.

‘피로 회복을 할 시간이 부족해.’

브라이언과 싸우기까지 2시간도 안 남았다.

그때, 은혁이 염훈에게 불쑥 물었다.

“타코 좋아해?”

“엥?”

“타코 말이야, 멕시코 음식.”

“긴장되어서 입맛이 별로 없…….”

염훈이 말하는데, 은혁이 작은 가게를 가리켜 보였다.

가게 창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50% 세일! 스파이시 치킨 타코! 일단 드셔보세요!’

“거하게 먹기에는 속이 더부룩하니까, 타코랑 콜라 하나씩만 사 먹자. 내가 살게.”

“…….”

사준다는 걸 마다할 염훈이 아니었다.

두 사람 다 몸이 흙투성이였기에, 안에다 주문만 한 뒤, 가게 밖의 벤치에 앉아 먹기로 했다.

“저, 안에 들어오셔도 되는데…….”

타코 가게 여주인이 말했지만 두 사람은 사양하고 그대로 먹었다.

“후, 잘 먹었다.”

염훈은 걱정도 잊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은혁은 슬쩍 웃고는 질문했다.

“이제 어떡할래?”

“응? 뭐를?”

“너도 알다시피 브라이언과의 싸움은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이지.”

“음…….”

“18층까지 공략하는 거야 탑 공략이니까 당연히 함께했지만, 브라이언과 싸우는 일에까지 네가 함께해야 할 이유는 없어.”

“그러니 나보고 빠져라?”

“……라고 말하면 왠지 또 화낼 거 같은데.”

“당연하지!”

염훈은 주먹으로 자신의 흉갑을 탕탕 두들겼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함께 100층탑을 오르기로 한 이상 브라이언을 같이 상대해야지. 같이 가자!”

“그래? 진심으로?”

“물론!”

“아무리 힘들어도?”

“무, 물론!”

“흐음? 확실해? 예를 들어, 내가 지옥에 떨어져도 네가 날 건져 올릴 정도로의 진심임?”

“거, 더럽게 구체적으로 묻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더럽게 구체적이잖냐. 대답해라.”

“아오, 젠장. 그래! 네가 지옥에 떨어져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건져 올릴 정도로 각오했다!”

“그렇군.”

은혁은 헤비 체인 소드를 꺼내더니, 손잡이를 염훈에게 내밀었다.

“쥐어라.”

“음?”

꽤 드문 경우였다.

예전에 염훈이 은혁의 검을 들고 배달(?)한 적이 있긴 하지만, 평상시에 검 손잡이를 맡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꽉.

염훈이 손잡이를 강하게 쥔 순간.

“세븐 칼리버 사용자 추가. 염훈.”

은혁이 말하자 세븐 칼리버에서 제인의 목소리로 녹음된 시스템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사용자 추가 확인.

-플레이어 염훈은 세븐 칼리버의 제2소유권자로 지정되었습니다.

“오케이. 됐다.”

“엥? 뭘 한 거?”

“사용자 인식. 지금까지는 제2형태인 청염백광태도까지만 네가 쥘 수 있었거든? 앞으로는 세븐 칼리버의 모든 형태를 네가 쥐어도 된다. 제2소유권자로 승격했으니까.”

“야, 그래도 돼?”

염훈은 기겁하며 물었다.

은혁이 세븐 칼리버에 보이는 애착은, 염훈이 봐도 유별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은혁이 보인 행동은 전사로서의 반쪽이나 다름없는 세븐 칼리버의 소유권을 염훈에게 줘도 상관없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녀석. 날 그 정도로 믿는 거구나. 단순한 친구를 넘어 검을 맡겨도 될 정도의……!’

염훈이 왠지 뭉클한 기분을 느낄 무렵.

‘좋았어. 등록 과정을 끝냈으니, 이걸로 승률은 50% 이상이다. 여차하면 플랜 B로 갈 수 있으니까.’

은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은혁이 염훈을 자기 검에 등록시킨 건, 브라이언과의 결전에서 전략의 폭을 높이기 위함이지 신뢰하고는 별 관련이 없었다.

‘이런 걸 하지 않아도, 어차피 난 녀석을 믿으니까.’

“그럼 좀 있다가 테번 앞에서 보자.”

“어? 넌 어디 가게?”

“비밀이야.”

“같은 편끼리?”

“같은 편이니까 더욱 비밀이지. 테번에 가서 씻고 있어.”

은혁은 [질주] 스킬로 어디론가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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