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브라이언과의 대결 (1)
30분 뒤.
제인과 낸시의 미래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났다.
겉보기에는 별거 아니었지만, 차원 폭발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원인은 은혁의 고속 업그레이드 때문.
다행히 기적적으로 부상자는 없었다.
“이런, 괜찮아요?”
은혁이 물었다.
“괘, 괜찮아.”
“하지만 공장은 안 괜찮아요.”
제인과 낸시가 대답했다.
“미안해요. 무기 업그레이드를 워낙 급하게 하다 보니.”
“으응, 제3 형태랑 제4 형태를 동시에 시도했으니 뭐…….”
제인은, 자신도 성격이 급한 편이지만 은혁은 더하다는 생각을 했다.
“뒷정리도 하지 못하고 가서 미안해요. 일단 수리비…….”
은혁은 얼른 두 사람에게 사과하고, 18층에서 얻은 다크 드워프의 금화를 잔뜩 수리비로 지불했다.
“정말 미안하면 이겨!”
“힘내요!”
제인과 낸시가 은혁의 등에 대고 외쳤다.
* * *
염훈은 테번의 공용 샤워실에서 씻고 나온 뒤 연신 하품을 했다.
‘샤워를 해도 졸립네.’
그때, 몸 전체에 검댕을 뒤집어쓴 은혁이 나타났다.
“으악, 너 왜 그래?!”
“별거 아냐.”
은혁은 헤비 체인 소드를 툭 두들겨 보였다.
염훈이 [신성한 오러]를 집중시킨 눈으로 그걸 보니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기 업그레이드라도 하고 왔냐?”
“후후, 나중에 가르쳐 줄게.”
은혁은 히죽 웃었다.
“자, 오후 5시까지 40분쯤 남았네. 잠 깨러 가자.”
“잠 깨러?”
“연금술 상점.”
* * *
은혁과 염훈은 연금술 상점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또 오셨군요.”
연금술 상점 점원 NPC가 말했다.
점원 NPC는 이전에 비해 차분한 성격으로 변해 있었다.
성격뿐만 아니라 머리카락도 차분한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다.
“분위기가 확 변했네?”
염훈이 신기해하자, 점원 NPC가 후후 웃었다.
“저번에 맛본 백사의 독 포션 후유증으로…….”
과거에 몰래 은혁의 포션을 훔쳐 맛본 대가로 엑소시스트 포즈(?)로 발광했는데, 후유증이 남았는지 머리 모양과 목소리가 무척 차분하게 변해 있었다.
“흠흠, 오늘은 잠 깨는 약 좀 사러 왔습니다.”
은혁이 말하자 점원 NPC는 농축 커피를 꺼내왔다.
그야말로 짧고 굵은 잠 깨는 약 그 자체였다.
“후아암.”
은혁은 허락도 안 구하고 유발과 유봉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트렌트의 마정석 남은 걸 넣고 깨고 갈았다.
콩콩콩……!
드르르륵, 드르르륵.
은혁은 하나씩 정성껏 갈았다.
두 개째를 하려 한 순간 염훈이 끼어들었다.
“재밌어 보이네. 나도 해보자.”
“자. 곱게 갈아.”
콩콩!
콩콩!
“야!”
“왜?”
“너 일부러 그랬지.”
“아, 아냐.”
은혁은 콩콩 소리가 두 번 나는 것에 무척 민감해했다.
“되게 민감해하네.”
“누군가가 콩을 두 번 까면 왠지 그날은 일진이 안 좋더라고.”
“…….”
“빨리 갈기나 해.”
염훈은 트렌트의 마정석을 갈면서 문득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난 은혁이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군.’
그걸 이제야 궁금해한다는 것도 좀 우습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나한테 궁금해할 틈도 안 줬지. 그리고…….’
어째선지 은혁은 염훈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맞춰줬다.
그래서 역으로 은혁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고, 은혁이 뭐 하다가 탑에 들어오게 됐는지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기회 봐서 물어봐야지.’
“은혁아. 너 맥주 좋아하냐?”
“어? 그냥 남들만큼?”
“그럼 이 일이 다 끝나면, 치맥이나 하러 가자.”
그러자 은혁이 피식 웃었다.
“저번에 콩나무에서 치킨 이야기 하더니, 그동안 치맥 먹고 싶은 거 많이 참았나 보네?”
“뭐, 그런 것도 있고. 너무 여유 없이 올라왔잖아? 오늘만 해도 그렇고.”
“뭐, 그러자. 잘하는 가게 알고 있으니까. 그날은 내가 쏘는 걸로.”
은혁은 선선히 염훈의 제안에 동의했다.
염훈은 만족했고 그러려니 했지만, 만약 염훈이 탐정 자질이 있었다면 한 가치 규칙을 깨달았으리라.
강은혁은, 100층탑 공략과 관련이 없는 부탁이라면, 염훈의 부탁은 무조건 들어준다는 사실을.
“자, 그럼 마셔볼까!”
은혁과 염훈은 원샷했다.
꿀꺽!
꿀꺽!
“……!”
“푸하아! 어때?”
“어우, 진하네. 하루 동안은 잠이 전혀 안 올 거 같은데?”
“맞아.”
“엥?”
“약 24시간 동안 각성 상태가 유지될 거야. 대신 지속 시간이 지나면 이틀가량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지.”
“허참.”
염훈은 정말로 피로가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 알고 있었기에 밀어붙인 거구나.’
부길드장과의 대결 당일에 15층부터 18층까지 공략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은혁은 눈을 부릅떴다.
“컨디션은 평소의 85% 정도인가.”
하지만 짧은 시간 15층부터 18층까지 공략하고 왔기에 레벨과 숙련도가 상승했으므로 전체 전투력은 전보다 상승했다고 봐야 한다.
‘간만에 스탯창 좀 보자.’
<강은혁의 스탯창>
레벨 : 45.
근력 : B+. 체력 : A-.
속력 : A+. 의지력 : S.
마력 : S-. 매력 : B.
본성 : [독식하는 자]. [은근히 싸움을 즐기는 자]. [회귀자].
계약 성좌 : 없음.
직업 : 못 하는 게 없음(모든 직업의 가능성).
E+급 직업 ‘노력하는 전사’ (숙련도 : 36%+). (2차 각성으로 등급 1회 상승시킴.)
A+급 직업 ‘화염을 지배하는 마법사’ (숙련도 : 19%+). (2차 각성으로 등급 1회 상승시킴.)
S+급 직업 ‘그림자를 지배하는 도적’ (숙련도 : 15%+). (2차 각성으로 등급 1회 상승시킴.)
무등급 직업 ‘무기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대장장이’ (숙련도 : 70%).
B-급 직업 ‘돌진하는 무투가’ (숙련도 : 8%+). (2차 각성으로 등급 1회 상승시킴.)
B급 직업 ‘금속 차원의 소환술사’ (숙련도 : 30%.)
B+급 직업 ‘돌을 지배하는 드루이드’(숙련도 : 30%.)
‘대략 이 정도인가.’
3차 각성한 직업이 하나쯤 있었으면 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대신 2차 각성한 직업이 무려 4개나 됐다.
‘눈에 보이는 스탯창에 실망할 거 하나 없다. 스탯창에 구현되지 않는 직업 중첩 시너지까지 감안하면 결코 부길드장급에 뒤지지 않아.’
직업이 늘어날수록 스탯 잠재력 간의 시너지도 상승해서, 은혁은 초반부터 무척 강했다.
지금은 직업이 꽤 쌓였으므로 그 시너지 효과는 더 클 터였다.
스탯창을 확인한 은혁은 생각했다.
‘반드시 이긴다.’
그렇게 생각한 은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다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브라이언이 강적이긴 하지.’
“싸우러 가볼까.”
* * *
오후 5시.
브라이언은 중앙 광장 한가운데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은혁과 어디서 만나 싸우자고 약속한 건 아니지만, 중앙 광장은 일반적인 약속 장소였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브라이언을 보며 수군거렸다.
“오늘이지?”
“으음.”
“정말 브라이언이 강은혁이랑 싸운다고?”
“5층은 싸움 금지인데.”
“그러니까 저기 서 있는 거지. 강은혁이 게이트를 이용하려 하면, 쫓아가서 싸우려는 거야.”
“근데 그게 부길드장이 할 일인가? 좀 치졸하지 않아?”
“그러니까 강은혁이라는 놈이 여간내기가 아닌 거지. 아주 도발을 계획적으로 했다던데?”
“강은혁은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든 거야? 브라이언을 상대로 도발해서 이득이 있나?”
“만약 강은혁이 브라이언을 이긴다면, 저번에 레나에 이어 부길드장을 두 명 연속 꺾는 게 되는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퍼졌다.
7층에서, 상승 길드가 뒤를 봐주는 드레이크 길드를 박살 낸 것.
상승 길드 공략집의 엽서로 도발한 것.
박병철과, 박병철을 처리하려는 상승 길드원들을 박살 낸 것.
그리고 얼마 전에는 실제로 헤비 체인 소드로 브라이언의 머리를 부수려 한 것까지.
브라이언이 도발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도록, 인내심의 한계를 부수듯이 단계적으로 도발을 해왔다.
누가 봐도 은혁의 도발은 과도할 정도였다.
이 상태에서 브라이언이 은혁에게 집착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신규 플레이어 딱지를 벗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은혁이 대형 길드의 부길드장에게 싸움을 거는 것에 대해서 크게 부정적으로 보는 이는 없었다.
‘그야 브라이언도 망나니니까.’
브라이언은 누구보다 탑을 먼저 오른다는 명목으로 남을 짓밟거나 갈취하는 일을 자행해 왔다.
남들을 막 죽이는 타입은 아니지만 짓밟고 누가 위인지 분명히 하는 걸 즐겨왔다.
‘강은혁이 이겼으면.’
그걸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앗, 저기 온다.”
저벅저벅…….
은혁과 염훈이 중앙 광장으로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겉보기에 묘하게 대조되었다.
은혁은 몸 곳곳에 작은 생채기와 먼지, 검댕 따위를 그대로 묻히고 있었고, 염훈은 방금 씻어서 그런지 말끔했다.
“사람 엄청 많네.”
염훈이 중얼거렸다.
“뭐, 부길드장이랑 대놓고 싸우는 거니까. 귀찮게 카메라도 몇 대 보이는군.”
은혁이 답하며 ‘인슈어런스 아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긴장되냐?”
염훈이 불쑥 물었다.
“전혀.”
은혁은 태연히 대답했다.
하지만 염훈은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나도 같이 싸우러 가지만, 이 녀석은 모든 걸 걸고 싸우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왠지 뭉클(?)해졌다.
‘안 되겠어. 뭔가 기운을 내게 해줘야지.’
“혹시 내 용기를 돋운답시고 노래 부르지 마라. 오늘은 진지한 싸움이니까.”
은혁이 선수 치듯 말했다.
염훈은 뜨끔했다.
“이런, 야인X대 오프닝 곡 안 좋아해?”
“…….”
은혁은 잠시 고민했다.
염훈은 그 틈을 타, 평소의 구성진 목소리로 은혁을 위한 출정가를 불렀다.
“바람처럼 스쳐 가는~ 정열과 낭만아……!”
염훈이 막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못 봐주겠군.”
보다 못한 브라이언이 다가왔고, 은혁은 염훈을 툭 쳐서 조용히 시켰다.
“반갑군요.”
“24시간을 꽤 효율적으로 쓴 모양이더군.”
“첩자라도 시켜서 우릴 조사했습니까?”
“준비를 철저히 했다더군.”
“반면에 그쪽은 혼자 오셨군요.”
“이건 길드 업무가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전이니까.”
브라이언은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럼 부하를 시켜서 우릴 감시하질 말든가.’
은혁은 속으로만 말하고 고개를 끄덕여 줬다.
“뭐, 좋을 대로 하시죠. 어디서 싸울까요?”
“구원 길드의 체육관 아니면 다른 층으로 가야겠지.”
“그럼 19층에 가죠. 어차피 깨야 하는 층인데.”
겸사겸사 일 처리를 하겠다는 식의 말투였다.
대결을 앞둔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여유로운 것이,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러지.”
브라이언은 화를 내는 기색도 없이 동의했다.
브라이언의 성격을 아는 은혁은, 브라이언의 이 반응이 허세가 아니라 정말 괜찮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위험하군. 냉철한 상태야. 내가 이길 확률은 한 60% 정도겠군.’
회귀자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승률이 60%라는 것은 매우 낮은 편이다.
하지만.
‘싸우고 싶다.’
상승 길드의 오만한 부길드장 브라이언이, 지금 은혁을 진지한 호적수로 인정하고, 도발에 넘어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즉, 방심하고 있지 않다는 것.’
방심하고 있는 부길드장 레나를 상대로 이긴 은혁이다.
이번에는 방심하고 있지 않은 부길드장 브라이언을 상대로, 자신의 전투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회귀자인 내 전투력과 계획이, 방심 안 하는 부길드장급에게도 통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먼저 가시죠.”
“그러지.”
브라이언은 19층 게이트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