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82화 (82/434)

82화 : 브라이언과의 대결 (2)

“괜찮겠냐?”

염훈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은혁은 씨익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구경꾼들은 그 표정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진심으로 이길 생각이다……!’

기자들은 따라 올라갈 수 없다는 게 괴로웠고, 구경꾼들도 동감이었다.

‘재미있군요.’

인파 속에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평화 길드의 부길드장 페넬레시아였다.

그녀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서 인파 속에 숨어 있었다.

‘과연 어느 쪽이 이길까……?’

페넬레시아는 등 뒤에 있는 길드연합국 통합 랭킹 게시판을 흘깃 보았다.

……

-97위 : 강은혁.

-98위 : 블롱델.

-99위 : 염훈.

-100위 : 피치.

강은혁과 염훈의 랭킹은 지난번보다 아주 근소하게 상승했다.

반면에 브라이언의 랭킹은…….

-38위 : 브라이언.

상당히 높지만 최상위권은 아니었다.

브라이언의 랭킹이 의외로 낮아 보이는 이유는, 랭킹 순위에 단순히 일대일 전투력이나 지위만이 반영되는 게 아니라, 100층탑 관리국의 종합적인 판단이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드연합국 특수 감옥에 갇혀 있는 최악의 죄수들도 랭킹에 포함되니까…….’

특수 감옥, 일명 ‘평화의 감옥’이라 부르는 곳에는 랭킹 11위의 아벨, 랭킹 16위의 그린 주스 같은 거물이 갇혀 있었다.

페넬레시아는 한숨을 내쉬며 최상위 10위를 바라봤다.

-1위 : ???

-2위 : ???

……

……

-9위 : ???

-10위 : ???

1위부터 10위까지는 랭킹 표시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이 관리국에 비공개 신청을 해서라는 소문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위부터 10위까지의 격차가 워낙 작아서, 너무 쉽게 순위가 뒤집혀서, 운명치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100층탑도 공식 판정을 내리기가 어려우니까.’

착잡한 심정으로 랭킹 게시판을 보던 페넬레시아는 은혁과 브라이언을 생각했다.

‘어쩌면…….’

강은혁이 정말로 브라이언을 이긴다면, 랭킹의 판도가 어떻게 요동칠지 궁금해졌다.

‘그때가 평화 길드가 활약할 때겠지.’

페넬레시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19층 : 술래잡기의 체육관.

배구 경기장을 연상시키는 실내 체육관.

“오셨군요.”

배구 심판 옷차림을 한 19층 관리자가 있었다.

“두 사람이 친구인가요? 뭐, 중요한 질문은 아니고. 빨리 게임을 골라요.”

심판처럼 생긴 사람이 태블릿 PC 형태의 메뉴를 내밀었다.

-제1구역 : 일반 실외 술래잡기 (14/16)

-제2구역 : 일반 실내 술래잡기 (10/16)

-제3구역 : 야간 실외 술래잡기 (6/16)

-제4구역 : 어둠 속 실내 술래잡기 (3/16)

“참고로 괄호 속의 숫자는 최대 인원과 대기 인원입니다.”

심판이 가르쳐 줬다.

염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보다 브라이언은?”

“아, 그분은 VIP 대기실에서 대기 중입니다. 두 분이 원하는 구역을 고르면, 뒤따라가겠다고 하시더군요.”

“허참, 부길드장이라고 특별 대우를 하나요?”

염훈이 따지듯 말하자 심판은 피식 웃었다.

“돈만 내면 자잘한 편의를 봐준답니다. 가령 이런 식으로.”

심판은 염훈에게 말하더니, 은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은혁이 심판과 악수하자, 심판은 은혁의 손에 작은 쪽지를 쥐여 줬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타도! 브라이언! 강은혁 님! 이 메시지를 보면 제2구역으로 와 주십쇼! 함께 브라이언을 쓰러뜨립시다!!’

“조금 전까지 있던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입니다.”

심판이 소곤소곤 말했다.

“수상쩍네. 가지 말자, 은혁아.”

염훈이 말했지만, 은혁은 흥미를 보였다.

‘이게 변수가 될 수 있겠어.’

왜냐하면 이런 메시지는 당연히 회귀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없을 때의 내 승률이 50%에서 60% 정도인데, 이걸 이용한다면?’

문제는 은혁이 예견할 수 없는 변수라는 게 문제였다.

그 순간, 염훈이 심판에게 질문했다.

“저기요, 심판님?”

“그냥 심판이라 불러요.”

“이 쪽지는 누가 썼는지 아세요?”

“페어리 길드였죠.”

“은혁아, 페어리 길드가 썼다는데? 알고 있냐?”

“…….”

“왜, 왜 그렇게 봐?”

“아무것도 아니야.”

회귀자 은혁이 고민하는 동안, 염훈은 그냥 심판에게 대놓고 질문해서 답을 얻었다.

“제2구역으로 가겠습니다.”

은혁이 말했고, 염훈은 은혁이 자신 있어 하는 걸 보고 동의했다.

“아차차, 잠시만요. 저도 브라이언에게 메시지 좀 남기고 싶은데.”

“쪽지 전달은 10 골드입니다.”

“그냥 바닥에 남기죠.”

은혁은 헤비 체인 소드를 들어 올리더니.

카가가가각!

헤비 체인 소드를 바닥에 그으며,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낙서를 남겼다.

‘우리는 제2구역에서 기다리겠다. 만약 두렵다면 제2구역에는 들어오지 말 것. 강은혁 씀.’

“……거, 쪽지 가격이 얼마나 한다고, 왜 바닥을 통째로 갈아 버리는 겁니까?”

심판은 투덜거리며 은혁과 염훈을 전송시켜줬다.

* * *

-제2구역 : 일반 실내 술래잡기(12/16)

-일반 실내 술래잡기에 참가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4인이 더 모이면 술래잡기가 시작됩니다!

-대기 시간 동안은 폭력이 금지됩니다!

선수 대기실 겸 락커룸을 연상시키는 미션 대기실이었다.

“여긴……?”

염훈이 중얼거린 순간.

스윽.

한쪽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염훈이 경계하자,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손을 내저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페어리 길드입니다. 저는 길드장 크리미크라고 하고요, 얘들은 저희 길드원입니다.”

크리미크가 고개를 숙이자 나머지 플레이어들도 고개를 숙였다.

“강은혁 님과 염훈 님 맞으시죠?”

“맞습니다.”

은혁이 답했다.

그러자 크리미크의 얼굴이 환해졌다.

“여러분 소식 듣고 일부러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도 여러분과 함께, 상승 길드에 맞서 싸울 수 있게 해주세요!”

크리미크가 외친 순간.

“부탁드립니다!!”

크리미크 뒤에 있는 녀석들도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염훈은 당황해했고, 은혁은 속으로 웃었다.

‘웃기네. 너네 상승 길드의 1.5군이잖아.’

그랬다.

이들, 페어리 길드는 상승 길드 바깥에 존재하는, 일종의 하청 길드였다.

사실상 상승 길드의 1.5군 대우를 받는다.

이는 7대 길드 고위직들은 다 알지만 일반 플레이어 사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교묘하게도, 이들은 상승 길드에게 공적을 때때로 뺏기는 방식으로 상승 길드를 돕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다른 길드와 마찬가지로 상승 길드에게 괴롭힘당하는 작은 길드로 알려져 있다.

‘브라이언 이놈이 깜찍한 수를 썼네? 자기 부하들을 미리 잠입시켜 뒀구만.’

5층에서는 마치 은혁과 브라이언 단둘의 일인 척하더니, 정작 19층에는 자기 부하들을 심어 뒀다.

‘크크크.’

은혁은 얕은수를 쓴 브라이언이 가소로워서 웃고 싶은 걸 참느라 애썼다.

그동안 염훈이 대화의 주도권을 받았다.

“여러분도 상승 길드에 무슨 원한을 품고 있나 봐요?”

“맞습니다, 염훈 님!”

크리미크는 물어봐 줘서 고맙다는 듯이 상승 길드를 욕했다.

크리미크 뒤편의 길드원 중에는 우는 이들도 있었다.

‘참 연기 잘하네. 연습 많이 했나 보군.’

은혁은 웃음이 나오려는 얼굴 근육을 진정시키느라 힘들었다.

그동안 다행히 염훈이 이야기를 받았다.

“아, 상승 길드 이야기는 까도 까도 끝이 없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여기, 19층에서 우리는 복수할 수 있습니다!”

크리미크는 계획을 말했다.

“19층 제2구역의 메인 미션이 뭔지 아십니까?”

염훈과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염훈은 정말 몰랐고 은혁은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좁은 복도에서의 술래잡기입니다!”

1명의 술래와 15명의 플레이어가 겨루는 게임.

19층은 몬스터가 없이 플레이어 간의 대결을 유도하는 층이었다.

“레벨이 가장 높은 자가 술래가 되고, 나머지 플레이어는 모두 도망자가 됩니다.”

“어? 그럼 브라이언이 술래 확정이란 소린데?”

염훈이 조금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은혁을 봤다.

은혁은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미크는 마저 설명했다.

“맞습니다. 아마 브라이언이 술래가 되겠죠. 그렇게 술래와 도망자가 나뉘면 술래잡기가 시작됩니다. 술래가 도망자를 ‘터치’하면 도망자는 감옥에 갇힙니다.”

“음…….”

“전원이 갇히면 술래의 승리가 되고 도망자 전원이 패배, 그 외의 경우에는 술래의 패배이고 도망자 전원의 승리.”

“어? 가만있어 봐. 도망자들은 술래를 공격 못 하는 거죠?”

“아, 가능합니다.”

“그럼 도망자 15명이 힘을 합쳐서 한 번에 술래 1명을 공격하면 끝나는 거 아닌가요?”

“이론상 그렇지만, 술래에게 한 대만 맞아도 도망자는 자동으로 감옥으로 전송되니까요.”

“그래도 15대1인데?”

“지금 우리는 모여 있지만, 실제 게임은 다른 장소에서 시작되고 다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복도에서의 술래잡기입니다.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아, 다 흩어져서 시작하는구나…….”

염훈은 어느 정도 납득했다.

“뭐, 규칙 설명은 다 하신 모양인데, 그래서 어떻게 힘을 합치자는 겁니까?”

“간단합니다. 방금 염훈 님이 말씀하신 그 방법대로 합니다.”

“다 모여서 한 번에 공격하자?”

“맞습니다. 미리 약속 장소를 정해서, 거기에 모입니다. 그리고 일제히 술래에게 돌진해서 치명상을 입히는 거죠. 아니면 더 나아가서 죽…….”

말하던 크리미크는 흠칫했다.

자기 표현에 자기가 놀란 것 같았다.

“휴, 순간적으로 겁먹었네요. 브라이언에게 하도 많이 당해 와서, 막상 죽인다는 계획을 말하려니 겁부터 나는군요.”

크리미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은혁도 크리미크의 연기 실력에 쓴웃음을 지었다.

“대략 이렇습니다. 하시겠습니까?”

크리미크가 묻자, 염훈은 은혁을 돌아봤다.

은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번 싸움은 목숨을 건 싸움이 될 겁니다.”

“압니다. 저희 길드도 각오하고 일부러 대기하고 있던 겁니다.”

페어리 길드원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군요. 그럼 [맹세]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맹세]라면?”

“브라이언을 오늘에야말로 패배시키겠다는 내용의 맹세지요.”

“물론입니다.”

크리미크는 지체 없이 말했다.

은혁은 감탄하고 인정하기로 했다.

‘연기 실력은 정말 엄청나군.’

크리미크의 능력이라면 [맹세]를 우회하는 스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맹세]로 묶이면 오히려 은혁의 작전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었기에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정도 각오라면 [맹세] 없이도 당신을 믿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순간.

파앗!

브라이언이 들어왔다.

“꽤 늦게 오셨군요.”

“일부러 천천히 왔다. 복수는 천천히 즐기는 편이라서.”

브라이언은 5층에서와는 달리, 사나운 웃음을 드러냈다.

‘이미 함정에 빠뜨렸다고 생각 중이겠지.’

은혁은 브라이언의 심정(?)이 이해가 가서 별 내색하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크리미크와 그 부하들을 흘끔 봤다.

“우연이군. 여기서 또 만나다니. 저번처럼 또 처발릴 준비 됐나?”

“다, 닥치십쇼!”

크리미크가 화를 냈다.

정확히는 화를 내는 척했다.

“이번에야말로 우리는 힘을 합쳐 당신을 쓰러뜨릴 겁니다!”

자세히 보면 연극조의 말투였지만, 부들부들 떠는 목소리 연기는 진짜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삼자가 보면 브라이언과 크리미크 일행이 서로 적대적인 것처럼 보일 터였다.

실제로 염훈도 덩달아 흥분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코웃음 쳤다.

“흥, 너희 따위는 강은혁을 처리하면서 같이 쓸어버릴 뿐이다.”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옳소!”

염훈이 가세했다.

“그동안 여러 사람을 짓밟으면서 적을 많이 만들어 온 것! 후회할 거다!”

“후후. 기대하지.”

브라이언은 간단히 물러났다.

크리미크 측과 너무 말을 많이 섞으면 사실 같은 편이라는 게 들통 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짧은 촌극을 보며 은혁은 속으로 웃었다.

하지만 너무 말이 없으면 브라이언이 의심할 가능성이 있기에 목소리를 냈다.

“참아라, 염훈. 우리의 연합 계획을 너무 말하지 마.”

“윽, 미안.”

염훈도 물러났다.

은혁은 브라이언에게 말했다.

“이걸로 13명. 3명만 더 들어오게 기다리죠.”

잠시 뒤, 소규모 파티원 3인이 더 들어왔다.

그 순간.

-술래잡기 인원 확보 완료!

-미션창이 개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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