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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84화 (84/434)

84화 : 브라이언과의 대결 (4)

은혁은 크리미크의 안색이 걱정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크리미크는 얼른 사양하듯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뇨, 그럴 순 없죠. 염훈, 이분한테 회복 스킬 좀 걸어줄래?”

“오, 그럴게.”

염훈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자아, 앉아 계세요. 제가 회복 스킬과 [정화] 스킬을 적절히 쓰는 법을 잘 아는데요, 다른 성기사보다 효율이 좋아서…….”

“거, 괜찮다니까요!”

짝!

크리미크는 자기도 모르게 손에 염력을 담아서 염훈의 손등을 때렸다.

“아……!”

성기사용 건틀릿을 착용했는데도 아플 정도의 힘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크리미크는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염훈은 갑자기 큰 소리를 낸 크리미크 때문에 조금 머쓱한 것 같았다.

“아, 미안합니다. 그게…….”

“허, 허락 없이 머리에 손을 대려고 하니까 그렇죠! 성기사면 좀 조심성이 있으셔야죠!”

크리미크는 평정심을 잃고 소리를 쳐댔다.

‘이게 다 강은혁 저 인간 때문이야!’

워낙 연체동물처럼 받아들이는 은혁의 언행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크리미크가 은혁을 노려본 순간.

흠칫.

은혁은 크리미크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저기요.”

“네, 네?”

“같은 편 맞습니까?”

“에?”

“우리 같은 편 맞냐고.”

은혁의 눈빛은 작은 뱀이 막 입을 크게 벌렸을 때 같았다.

“거, 작전에 실수 없게 하려고 성기사가 버프 걸어주는 건 같은 편끼리 흔한 일 아닌가? 근데 왜 그런 반응을 보이고 난립니까? 되게 수상쩍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때, 브라이언에게서 호출이 왔다.

‘이런!’

몸속에 이식된 호출기에서 연락이 오면, 크리미크는 무조건 즉각 답신하도록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텔레파시] 스킬을 써서 답변했다.

제삼자가 봐서는 눈치 못 챌 정도지만, 은혁은 크리미크의 직업이 초능력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대화 중에 왜 딴생각을 하는 겁니까?”

은혁은 재차 추궁했다.

크리미크에게는 브라이언의 호출이 최우선이었기에, 브라이언의 질문에만 집중하고 은혁의 추궁에는 허둥거렸다.

“바쁘신가 보군요.”

은혁이 비아냥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나한테는 변명하랴, 브라이언한테는 [텔레파시]로 보고하랴, 참 힘드시겠어요?”

“뭐, 뭐요?!”

“뭐, 나도 시간 없으니 바로 계획대로.”

은혁은 [그림자 지배]와 [그림자 방출]을 발동했다.

화악!

좁은 창고에 그림자가 넘실거렸다.

“[그림자 지배] + [돌 쪼개기] 융합!”

은혁은 퓨전 스킬을 발동했다.

“[그림자 무덤]!!”

[그림자 감옥]이 한 명만 가둘 수 있다면, [그림자 무덤]은 바닥의 돌을 쪼개고, 그 속의 그림자에 여럿을 다수 가두는 광역 스킬이었다.

쩌저적!!

그림자와 돌바닥이 갑자기 갈라지더니.

“흐아악?!”

“아악! 엄마!”

한곳에 모여 있던 크리미크와 그 부하들이 바닥으로 쑥 꺼졌다.

쿠쿠쿵…….

그리고 잠시 뒤, 가벼운 진동과 함께 돌이 원상복구 되고 그림자가 거두어졌다.

“뭐, 뭐야, 갑자기!”

염훈이 경악했다.

“일종의 생매장 스킬이지.”

엄청난 사기 스킬처럼 보이지만, 단점은 있었다.

의지력이나 저항력이 강한 적은 스스로 파고 나올 수도 있고, 특히 화염 스킬이나 염동력 관련 스킬을 지니고 있다면 파훼할 수도 있다.

“아니, 내 말은! 왜 갑자기 공격한 거야? 같은 편 아니야?”

“응, 아니야.”

은혁이 설명하려는 순간.

찌지직……!

보자기 찢는 소리가 나더니, 크리미크가 [그림자 무덤]을 일부 찢고 머리를 내밀었다.

초능력자답게 [염력]으로 은혁의 스킬을 중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와, 근성 있네.”

“크윽, 겨우 이 정도로 나를 가둘 수는……!”

“기절시키면 되지.”

뻐억!!

은혁은 지체 없이 헤비 체인 소드의 옆면으로 크리미크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꾸엑!”

털썩!

크리미크는 다시 구멍에 빠졌다.

“자,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거냐면…….”

은혁은 염훈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크리미크가 다시 튀어나오려 했다.

그때마다 은혁은 설명을 중단하고 때렸다.

“이놈들 정체는 말이지 사실…….”

뻐억!

“놈들이 우리에게 접근한 건…….”

뻐억!

“우리의 앞으로의 계획은…….”

뻐억!

“아, 설명을 못 하겠네. 왜 자꾸 튀어나와?”

은혁은 두더지 잡기 하듯 크리미크를 연신 때렸다.

퍽퍽퍽퍽……!

크리미크는 결국 기절했다.

그리고 [돌 합치기]를 발동하자, 말끔하게 구멍이 닫혔다.

[그림자 무덤]에 갇힌 자들은 스킬 지속 시간이 끝날 때까지 외부에 소리도 치지 못하고 가만히 갇혀 있기만 해야 했다.

“자, 그럼.”

은혁은 벽을 헤비 체인 소드로 그어서 예비 선을 긋더니.

“[돌 부수기].”

파카칵!

후두둑……!

벽을 무너뜨려서 빈 공간을 만들었다.

“[메탈 워커 소환].”

은혁은 메탈 워커에게 네모반듯한 돌을 주워서, 그 빈 공간 속에 숨어들게 했다.

“[돌 합치기].”

츠즈즈즈…….

그 다음에는 일부러 스킬을 약하게 써서 쉽게 부서지도록 했다.

메탈 워커들로 하여금 돌벽 너머에 숨어서 기습할 준비를 시킨 것이다.

“브라이언과 나머지 놈들이 여기 오면 너희는 돌진해서 공격해라.”

“삐비빗!”

“좋아, 그럼 우린 이동하자.”

은혁이 염훈에게 말했다.

“어, 어디로?”

“감옥 구역으로. 아, 가기 전에 교란을 좀 시켜야겠지.”

은혁은 [그림자 방출]로 그림자를 만들고, 거기에 [그림자 분신]을 썼다.

스스스슥…….

은혁을 닮은 그림자가 다수 생성되었다.

“[원기 부여].”

그리고 드루이드 스킬을 융합했다.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그림자 분신 2.0].”

* * *

현재.

브라이언은 은혁을 쫓았다.

문제는 은혁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제기랄, 분신 따위가!”

브라이언이 추격 중인 것은 다수의 [그림자 분신 2.0]이었다.

기존의 그림자 분신은 냉기의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하지만 [그림자 분신 2.0]은 드루이드 스킬의 힘으로 생기가 부여되어 보다 질기고 진짜 인간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캬아앗!”

빠지지지직!

그래도 뇌격 관련 스킬에 두 방 버티면 많이 버티는 것이었다.

‘놈들은 어디 갔지? 아니, 그보다 크리미크는 어디로 간 거야?’

브라이언은 은혁과 염훈이 사라진 것보다 그게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스킬을 쓴 거지?’

크리미크와 통신이 안 된다는 건, 크리미크를 어딘가에 숨겨두기만 한 게 아니라, 기절시키거나 마력까지 차단시켰다는 뜻이다.

‘쉽지 않겠군.’

브라이언은 악명이 높은 편이었고, 그래서 크리미크를 통해 은혁을 속여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악명 높은 자에게 적이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대외적으로는 크리미크가 브라이언에게 많은 피해를 입어 왔으므로.

그래서 크리미크로 은혁을 속여 넘기게 하려 했는데…….

‘젠장. 놈은 어떻게 눈치챈 거지?’

브라이언은 은혁의 눈치가 독심술사에 가까울 정도임을 새삼 깨달았다.

‘놈이 19층을 대결 장소로 고른 것도 다 놈의 계획이라고 봐야겠군.’

미로 같은 통로로 된 술래잡기 장소.

그것이 19층이었다.

‘신중하게 움직여야겠어.’

그렇게 생각한 브라이언은 히죽 웃었다.

‘……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거겠지.’

브라이언은 짧은 [명상]으로 마력과 신성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아무 벽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성전무투가 특수 스킬 [썬더 펀치].”

빠지지지지직!!

막대한 뇌력을 담은 주먹 공격.

단순하지만 블릿츠 데바를 섬기는 성전무투가만이 쓸 수 있는 공격이었다.

파바바바박……!!

벽에 버스 타이어 크기의 구멍이 생기고, 벽 너머 통로의 벽까지 마구잡이로 꿰뚫었다.

치지지지직……!

시멘트 타는 냄새와 쭉 뻗은 구멍이 생겨났다.

“미로 같은 곳에서 술래잡기를 하면 이길 것 같냐? 그렇다면 미로 같은 곳을 미로 같지 않은 곳으로 바꿔주지.”

부길드장급이 마음만 먹으면 지형지물 따위는 우습게 바꿀 수 있었다.

-성좌, 블릿츠 데바가 흥미를 보입니다!

-[신성한 오러] 버프가 제공됩니다!

-[뇌신의 가호] 버프가 제공됩니다!

계약 성좌의 격려와 버프가 브라이언의 몸을 감쌌다.

“하앗!”

빠지지지직!!

빠지지지직!!

주먹, 발길질, 무릎, 팔꿈치를 마구 휘두르며 통로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치직, 치지지직.

그 여파만으로도 천장의 전구가 깨져 나갔다.

“아악!”

“팔다리가 저려……!”

멀지 않은 곳에 세 명의 플레이어가 있었다.

브라이언이 뿜어내는 뇌력에 휩쓸려 팔다리 마비가 온 모양이었다.

“질문에 대답하면 죽이진 않겠다.”

“네, 넵.”

“강은혁이 어디 있는지 아나?”

“그, 그건 모르지만 아는 게 있습니다!”

“뭐지?”

플레이어 3인조는 대기실에서 들은 걸 모조리 설명했다.

주로 크리미크와 은혁이 한 편을 먹기로 한 내용이었다.

브라이언은 혀를 찼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인 데다가, 그건 위장술일 뿐이었으니까.

“그딴 건 영양가가 없어. 쓸모없는 것들아. 죽기 싫으면 정보를 내놔라.”

“제길, 어차피 죽을 바에는!”

3인조는 각오를 하고 무기를 들었다.

브라이언과의 격차가 너무 커서, 브라이언을 상대로 객기를 부리면 죽는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었다.

그때였다.

투투투툭!

쇠구슬 공격이 날아왔다.

“음?!”

브라이언이 정신을 집중하자, 그것만으로도 뇌전 방어막이 생겨서 사방에 전기를 튀기게 했다.

“으윽!”

숨어 있던 무언가가 전기에 닿아서 괴로워했다.

“누구냐!”

“쳇, 들켰구나!”

묘하게 당돌한 목소리였다.

메탈 서전트였다.

“졸졸 따라오고 있었나?”

“원래부터 있었다!”

은혁이 만든 [그림자 분신 2.0]으로 브라이언의 시선을 끌고, 메탈 서전트는 멀리 숨어서 브라이언의 시야를 피해 왔던 것이다.

“그것도 끝이다.”

브라이언이 죽이려 했지만 즉각 소환 해제 됐다.

“쳇.”

그림자만 보낸 게 아니라, 소환수도 시켜서 감시까지 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날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브라이언은 은혁과 염훈이 어딨는지 알 것 같았다.

“감옥 쪽인가.”

브라이언은 플레이어 3인조를 보더니.

퍼버벅!

죽일 가치도 없다는 듯이 상체에 주먹을 한 방씩 먹여서 감옥으로 전송시켰다.

그리고 이동했다.

* * *

“여기다, 염훈.”

은혁은 염훈을 데리고 감옥에 도착했다.

-감옥 지역에 도착하셨습니다!

-도망자 플레이어의 이동 속력과 공격 속도는 25% 감소합니다!

-도망자 플레이어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35% 감소합니다!

“윽,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네?”

“뭐, 그런 거지.”

“이런 건 미션 설명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어야지, 젠장.”

염훈은 투덜거렸지만 은혁은 알고 있었다.

감옥에 동료 도망자를 구출하러 온 플레이어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감옥 속에는 9명의 플레이어가 있었다.

“여어, 다들 오랜만입니다.”

은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크리미크의 부하인 6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실상 브라이언의 부하라는 사실이 들켰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방금 브라이언에게 맞고 들어온, 부하가 아닌 3인은 다급히 외쳤다.

“도망쳐요!”

“브라이언이라는 사람, 너무 강합니다! 우리가 다 덤벼도 못 이겨요!”

딴에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외친 모양이지만, 은혁 입장에서는 와닿지 않는 소리였다.

“염훈. 망은 내가 볼 테니 네가 구출해라.”

“어? 내가?”

염훈은 되물으며 감옥 문에 손을 얹었다.

-구출 시도 중…….

-구출까지 30초…….

-29초…….

-28초…….

“겁나 느리네! 은혁아, 이거 정상이냐?”

구출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자 염훈이 기막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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