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 브라이언과의 대결 (6)
상승 길드의 길드장은, 부길드장인 브라이언을 늘 경멸하듯 깔봤다.
아무리 브라이언이 남들보다 층계를 열심히 공략해도, 아무리 길드원 숫자를 늘려도, 심지어는 최초로 블릿츠 데바의 성전무투가로 승급했을 때도.
길드장은 늘 브라이언을 심드렁하게 여겼다.
경멸과 허무함의 중간쯤 되는, 있건 말건 별 상관없는 놈을 볼 때의 눈빛이었다.
‘브라이언. 넌 탑을 왜 오르냐?’
길드장은 때때로 브라이언에게 물었다.
브라이언은 그때마다 대답했다.
‘영광을 위해 오릅니다. 최강자가 되기 위해 오릅니다. 상승 길드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오릅니다. 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오릅니다. 오르지 않으면 다른 길드에게 짓밟히므로 오릅니다. 위대한 성좌와 동격이 되고자 오릅니다…….’
그야말로 온갖 답을 다 해봤다.
길드장은 그때마다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동의의 끄덕임이 아니라,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어린애에게 듣고 있다는 표시를 하기 위한 끄덕임에 가까웠다.
브라이언은 그것을 욕설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심지어는 길드 대전이 발발한 이튿날에도 그러했다.
‘전쟁이 났다더군.’
‘그렇습니다, 길드장님. 싸워야 합니다.’
‘브라이언, 브라이언. 넌 도대체 100층탑에 왜 있냐? 왜 100층탑에 오르려고 하는 거냐?’
‘이 상황에서도 그걸 묻습니까? 역대 최초의 길드 대전입니다! 즉각 싸우러 나가야 합니다!’
‘내 질문에 답해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냥 답을 말해주십쇼! 제발 좀!’
그러자 길드장은 세상의 진리를 설파하는 사람처럼 답했다.
‘오르고 싶으니까. 오를 수 있으니까.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어.’
길드장은 진심으로 정답을 말했지만, 브라이언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딴 말장난을…….’
게다가 길드장의 답변은, 길드 대전이 막 개전한 급박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뭐, 그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조금은 싸워야겠지. 대책을 세우러 가볼까.’
브라이언은, 길드 대전 대책을 세우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길드장을 배신했다.
브라이언은 성좌, 블릿츠 데바에게 애원했다.
‘내 수명의 절반과 두 눈의 시력을 잃어도 좋습니다. 길드장을 내 앞에서 사라지게 해주시오!!’
성좌는 계약을 받아들였다.
길드장은 브라이언에게 마지막으로 경멸 어린 눈빛을 보인 뒤 섬광과 함께 소멸했고, 브라이언은 시력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러나 블릿츠 데바는 브라이언의 결단력을 칭송하며 자비를 보였고, 그것이 브라이언이 쓰고 있는 선글라스였다.
선글라스와 성좌의 힘이 연결된 동안이라면, 브라이언의 시력은 번개를 보고 가닥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오히려 좋아졌다.
그 뒤는 은혁이 말한 그대로였다.
브라이언은 길드장이 사라지고 술렁거리는 상승 길드를 빠르게 장악하고 직접 총괄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때때로 자신이 추방하다시피 한 길드장의 경멸 어린 눈빛을, 선글라스 너머로 보곤 했다.
그때마다 그건 환상일 뿐이라 했지만.
‘지금은 진짜다.’
은혁의 눈빛은 상승 길드 길드장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는 상승하고자 하는 자신을 떠받들어 줄 사람을 필요로 했을 뿐이야. 네가 진정으로 상승 길드의 이념을 추구했다면, 너는 이유 불문하고, 타인의 경멸이나 인정에 신경 쓰지 않고 탑을 오르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넌 그렇지 않아.”
“큭……!”
“반박할 수 있으면 해보시지?”
뿌드득.
브라이언은 이를 갈았다.
“내가 길드장을 배신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 모든 걸 부정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타협적인 말투네. 그런 말투는 혼자서 자기 합리화할 때 하고 내 앞에서는 하지 마.”
은혁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래도 네 기준에서는 이 상황이 행운이지 않냐? 네 치부를 아는 놈은 나뿐이야. 즉, 네가 날 죽이면 네 불명예가 밖으로 새어나갈 일은 없다. 참 기쁘지?”
은혁의 모욕이 절정을 찍었다.
부끄러운 진실이 유출되기 싫으면 더 열심히 자신을 죽여보라고 도발하는 것이었다.
“이 개새끼가아아!!”
콰콰쾅!!
빠지지지지지직……!!
브라이언이 [뇌신 강림] 스킬을 썼다.
길드 대전 때, 아니면 역대급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만 발동했던 스킬.
“그럼 나도 비장의 무기를 써볼까.”
은혁은 헤비 체인 소드를 높이 들었다.
“세븐 칼리버 제3형태 변신! 드릴 랜스!!”
번쩍!
은혁은 3미터 길이의, 가늘고 긴 회색의 드릴 랜스를 쥐었다.
중세 마상 시합에 나선 기사의 랜스와 산업용 드릴을 합친 것 같은 형태로, 헤비 체인 소드와 비슷하게 손잡이 부분에 동력 장치와 스위치, 트리거가 달려 있었다.
“으음.”
브라이언은 순간 흠칫했다.
100층탑에서 잔뼈가 굵은 브라이언이지만 은혁이 쥔 것 같은 무기는 처음 봤다.
하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
“멍청한 놈. 번개 공격을 쓰는 내 앞에서 커다란 피뢰침이나 다름없는 걸 들고 싸운다고?”
빠지직!
[라이트닝 볼트]가 드릴 랜스로 날아갔지만.
치지지직……!
은혁은 감전되지 않았다.
금속과 세라믹의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드릴 랜스는 의외로 번개 공격에 대해 절연 효과가 높았다.
즉, 피뢰침 역할을 하면서도 절연체 역할을 해서, 쥐고 있는 은혁은 손이 조금 따끔하고 저린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싸운대?”
“어?”
“그동안 시비를 걸었던 건, 널 멀리 유인하기 위함이었다.”
은혁은 브라이언이 더 열 받도록 일일이 설명한 다음 [도약] 스킬을 약하게 써서 폴짝 뛰었다.
그리고 드릴의 끝이 바닥을 향하게 하고 시동을 걸었다.
“[돌 부수기] + 드릴 랜스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택티컬 디깅].”
푸콰콰콰콰……!!
은혁은 갑자기 땅을 좁고 깊게 파고들더니 숨었다.
지하 40미터 지점까지 도망치는 데 2초 정도 걸렸다.
“뭐……?”
브라이언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어이가 없었다.
은혁처럼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온 적도 드물었지만, 그 직후 냅다 도망치는 놈은 더 드물었다.
“이 개새끼가!!”
빠지지지직!!!
구멍을 향해 마구 번개를 쏟아부었다.
“뭐 하냐? 난 이쪽이다.”
하지만 은혁은 어느새 복도 끝에 있었다.
“네가 아무리 번개를 뿜어서 그림자를 줄여서 내 [그림자 도약]을 방해해도, 땅속 수십 미터 지점에는 캄캄한 그림자가 반드시 있으니까. 거기서 [그림자 도약]을 쓰면 되지.”
브라이언은 이를 악물었다.
[뇌신 강림] 상태였기에 금방 쫓아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은혁은 벌써 도망칠 준비를 마쳤다.
“[광풍돌진권] + 드릴 랜스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드릴 러시].”
투콰앙!!
은혁은 콘크리트 벽을 티슈 찢듯이 꿰뚫으며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도망치는 거냐!!!”
빠지지직!
브라이언은 [뇌신 강림] 상태였으므로 [뇌신보]가 상시 발동된 상태였다.
콰콰쾅!!
은혁이 벽을 뚫고 도망칠 때마다, 브라이언도 당연하다는 듯이 벽을 뚫고 쫓았다.
은혁은 도망치다가 중간 중간 쉴 때마다 도발했다.
“거, 무리하지 마시지? 날 쫓아오는 게 의외로 쉽지 않을 텐데?”
“허세 부리지 마라! 속도는 내가 더 빠르다!!”
“그게 아니라, 나야 포션만 빨면 되지만, 너는 성좌의 힘을 끌어다 쓰는 거잖아? 성좌가 지루하다고 하면 네 [뇌신 강림]은 끝이지?”
-성좌, 블릿츠 데바가 쓴웃음을 짓습니다!
은혁은 정곡을 찔렀다.
[뇌신 강림]을 발동 중인 브라이언도 힘들지만, 성좌도 피곤할 수밖에 없다.
-성좌, 블릿츠 데바가 1분간 격렬한 격려를 보내옵니다!
-[번개의 정령 소환] 버프가 주어졌습니다!
-[헤이스트] 버프가 주어졌습니다!
브라이언의 주위에 번개의 정령들이 소환되고, [헤이스트]까지 걸렸다.
“죽여라!!”
브라이언이 외치며 달려들었다.
“또 튀지, 뭐.”
은혁은 정말로 열심히 도망쳤다.
콰콰쾅!!
빠지지직!!
드릴로 도망치는 자와 번개로 쫓는 자의 대결 양상이 되었다.
술래잡기가 이어질 때마다 복도가 박살 나고 스테이지는 부서져 갔다.
19층 술래잡기용 미로는 구멍 뚫린 치즈보다 처참한 몰골로 변해갔다.
그렇게 3분가량 더 지났을 무렵.
-도망자 플레이어 한 명이 30회 연속 구출 실패를 달성했습니다!
-그 도망자 플레이어는 술래잡기의 구원자가 됩니다!
“뭐?”
브라이언이 어이없어 한 순간.
-구원자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술래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규칙이 주어집니다!
-만약 술래 플레이어가 제한 시간 이내에 구원자 플레이어를 죽이지 못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추가 페널티를 얻게 됩니다!
-추가 페널티 : 술래 플레이어는 19층의 NPC로 1년간 복무해야 한다.
“이게 뭐야!”
브라이언이 당혹해하는 동안, 은혁은 생각했다.
‘잘했다, 염훈.’
* * *
1분 전.
쿠쿠쿵……!!
브라이언과 은혁이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감옥 앞의 염훈은 속이 탔다.
“더 빨리, 더 빨리!”
염훈은 그렇게 외쳤지만 시간은 일정하게 흘렀다.
-구출까지 30초…….
-29초…….
-28초…….
감옥 속 페어리 길드원들은 화를 냈다.
“당신 아까부터 뭐 하는 거야!!”
염훈은 무시하고 구출 시도를 계속했다.
은혁이 브라이언을 유인하고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구출 성공할 수 있었다.
-3초…….
-2초…….
-1초…….
하지만 계속 완료되기 직전 손을 뗐다.
-구출 실패!
그러자 페어리 길드원들은 또 화를 냈다.
“우릴 구할 거면 그냥 구하든가!”
“일부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진짜 뭐 하자는 겁니까!!”
사실 가장 속이 타는 건 염훈 자신이었다.
하지만.
턱.
구출 실패 한 염훈은 다시 감옥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구출을 시작했다.
-구출까지 30초…….
-29초…….
-28초…….
‘속이 타지만, 꼭 30초를 거의 다 들여서 구출 실패해야 해.’
꼭 시간을 들여서 구출 실패해야 한다고 은혁에게 들었기에, 염훈은 최대한 30초에 가깝게 시간을 들여 구출 실패 판정을 받았다.
쿠쿵……!
지지직……!
멀리서 복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혁과 브라이언이 대놓고 복도를 마구 부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저기요. 뭘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동료를 구하러 가야죠?”
“일부러 시간 끌다니. 혹시 강은혁이라는 사람을 배신하려고?”
“어? 그럼 이 사람도 우리 편이라고?”
“이봐요. 대답 좀 해보시죠?”
페어리 길드원들은 정말 궁금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뿌드득.
염훈은 이를 갈며 남은 시간에 집중했다.
-5초…….
-4초…….
-3초…….
“보나 마나 이번에도 1초 되면 딱 손을 떼겠지, 뭐.”
“그냥 무시하자.”
페어리 길드원들이 경멸 어린 소리를 한 순간.
-2초…….
-1초…….
염훈은 이번에도 손을 뗐다.
-구출 실패!
이번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연속 30회 구출 실패 달성!
-포기하지 않고 구출을 시도한 최초의 플레이어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구원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염훈은 은혁이 가르쳐 준 대로, 30회 연속 구출 실패를 함으로써 칭호를 얻었다.
그 순간.
-이 감옥을 설계한 성좌, 판 옵티콘에게 이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성좌, 판 옵티콘은 19층 최초로 위대한 구원자 칭호를 얻은 플레이어 염훈을 보고 감동하였습니다!
-성좌, 판 옵티콘은 거듭된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망자 플레이어를 도우려 한 염훈을 위해, 미리 특별한 보상을 내정해 두었습니다!
“어?”
“뭐, 뭔 일이 일어나는 거야?”
플레이어들이 당황하는 순간.
-[물리 저항] 버프를 획득하셨습니다!
-[원소 저항] 버프를 획득하셨습니다!
-[도주 숙련] 버프를 획득하셨습니다!
성좌가 직접 내려주는 자잘한 버프가 염훈에게 내려앉았다.
핵심은 이다음 보너스였다.
-구원자 플레이어는 메인 미션을 클리어한 것으로 판정되며, 감옥 지역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구원자 플레이어는 남은 제한 시간 동안 19층에 존재하는 게이트를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가 생깁니다!
-구원자 플레이어와 함께 하는 도망자 플레이어의 경우, 함께 게이트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구원자 플레이어가 탄생한 사실이 모든 플레이어에게 알려졌습니다!
게이트의 자유로운 사용권.
즉, 염훈은 미션을 무시하고 냅다 5층이건 다른 층이건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게이트를 통해 다른 층으로 도망치고 숨기만 해도 승리는 확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