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88화 (88/434)

88화 : 낚시

지금껏 이런 경우는 없었기에, 브라이언은 당혹해했다.

‘내가 당황했다고? 준신급 지고의 위상과 일대일로 붙은 적도 있는 내가?!’

상승 길드의 부길드장이라는 직함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고, 브라이언은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강적들을 상대해 왔다.

하지만 완전히 블릿츠 데바와 떨어지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야아아아아……!”

고리블린이 나타났다.

고블린치고는 매우 거대한 2.5미터가량의 덩치.

하지만 허리가 구부정했기에 그리 커 보이진 않았다.

“두 놈이 아니라 한 놈……?”

고리블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브라이언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고블린 학살로 악명을 쌓은 건 은혁인데, 정작 놈은 자살하고 자기가 다 뒤집어쓰게 생겼으니.

“잠깐, 나는 강은혁과는 아무 상관 없……!”

“캬아아아!!”

콰콰쾅!!

고리블린의 지팡이가 바닥을 내리찍었다.

“큭!”

브라이언은 [뇌신 강림]을 쓰려 했지만 잘 발동되지 않았다.

‘평소 전력의 30% 정도인가.’

[뇌신 강림]만 제대로 쓸 수 있다면 중급 성좌의 본체와 싸워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 억지로 [뇌신 강림]을 써도 효율은 낮고 체력 소모만 더 클 터였다.

‘제길! 뇌창을 빌려 쓰는 게 아니었는데!’

만약 뇌창 1회 대여권을 은혁에게 쏘지 않았다면, 지금쯤 고리블린에게 카운터 한 방 제대로 먹였을 것이다.

은혁이 메탈 워커를 이용한 얕은 함정수로 브라이언을 도발하고, 요리조리 미로에서 도망친 이유는 브라이언으로 하여금 뇌창을 쓰게 하기 위함이었다.

‘성직자 스킬은 무리다. 무투가 스킬을 억지로 끌어 써야겠군.’

문제는, 브라이언이 무투가로 시작해서 성전무투가로 승급한 게 아니라, 성직자로 시작해서 성전무투가로 승급했다는 것이다.

즉, 브라이언이 순수 무투가 스킬로만 싸우는 건 오른손잡이 복서가 왼손만 써서 싸우는 것과 같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매우 힘든 일이었다.

“캬아!”

“[봉황각]!”

고리블린의 콧잔등에 발차기가 작렬했다.

빠악!

“키이이!”

고리블린에게도 타격이 있었지만 얕았다.

“[금강권]! [무영각]!”

뻐억!!

파바박!!

무투가 공용 스킬은 대부분 고리블린에게 적중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오히려 불길해졌다.

‘큭! 데미지가 확 줄었어! 게다가 놈의 회복이 빨라!’

“크흐흐흐!”

처음에는 당황했던 고리블린은 자기 몸의 피를 핥으며 웃더니.

휙!

손가락 셋을 펼쳤다.

“읏?!”

“3일.”

고리블린이 손가락 세 개를 까딱였다.

“3일 동안 고문해도 죽거나 미치지 않으며언, 풀어줄게에.”

“개소리 집어치워!!”

브라이언은 [뇌풍연격]을 날렸다.

퍼버버버버벅……!!

뇌신의 힘과 무투가의 연타 공격이 조화된, 매우 강력한 연속기로, 다 맞으면 준신급 존재라도 비틀거릴 수밖에 없다.

고리블린은 실제로 대부분 몸통으로 맞았지만.

“약해애……!”

타악!

지팡이 끝으로 가볍게 브라이언의 턱 끝을 쳐서 스킬을 끊었다.

“윽?!”

“껍데기뿌운…….”

블릿츠 데바와 연결된 상태에서의 [뇌풍연격]은 그야말로 번개 폭풍을 연상시키는 연타 공격이지만, 지금 쓰는 [뇌풍연격]은 일반 무투가의 연속 주먹질에 가까웠다.

‘약해! 내가 확실히 약해졌어.’

브라이언은 재빨리 물러났다.

‘강은혁 이 새끼! 나보다 내 약점을 더 잘 알다니!’

소름이 쫙 끼쳤다.

‘뇌신과 연결된 성전무투가인 나는 평소에는 약점이 별로 없지. 그러나! 뇌신과의 연결이 약해지는 다른 성좌의 차원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

접근전, 뇌격, 회복, 방어, 초고속 이동 등등.

브라이언이 지니고 있던 무수한 장점은 뇌신의 힘을 원활히 빌릴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성립한다.

은혁은 브라이언의 그 약점을 알기에 그를 이곳으로 초대한 것이다.

“아하하! 어딜 도망가아! 여긴 다 내 집이야아!”

고리블린은 히히 웃으며 브라이언을 쫓았다.

“블릿츠 데바여!”

브라이언은 피 끓는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외쳤다.

“제 수명의 10년을 바치겠나이다! 평소 위력의 [뇌신 강림]을 발동시켜 주소서!”

-성좌, 블릿츠 데바는 고민합니다.

10년은 대가치고는 너무 짧았다.

그래서 블릿츠 데바는 브라이언의 부탁을 즉시 들어주지 않았다.

그 순간.

파앗!

맨홀 뚜껑 크기의 푸르스름한 웜홀이 생겨났다.

‘블릿츠 데바?’

아니었다.

투쾅!

웜홀을 통해, 작은 무언가가 차원을 뚫고 날아왔다.

“어?”

“뭐지이?”

그 무언가는 낚싯바늘 형상의, 손가락 두 개 크기의 갈고리였다.

쉬이이이익!

낚싯바늘은 폐기물의 호수로 향했다.

풍덩!

그리고 폐기물의 호수에서 은혁의 사체로 날아가더니.

푸욱!

은혁의 몸에 낚싯바늘이 꽂혔다.

“으윽.”

사체여야 했을 은혁이 힘겹게 눈을 떴다.

“…….”

은혁은 한 손으로 브라이언에게 중지를 펼쳐 보였다.

슈우욱!

은혁의 몸에 꽂힌 낚싯바늘은 빠르게 상승하더니, 다시 웜홀을 통해 사라졌다.

파앗!

그리고 전부 사라졌다.

“죽은 척했던 건가아?”

고리블린이 실실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은 모르지마안, 네놈만 원한을 뒤집어쓴 것 같구운.”

“……!!”

브라이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진짜로 자살한 게 아니었나?’

사실, 브라이언은 은혁이 자살할 때 일종의 그림자 분신이 아닌가 의심했었다.

하지만 [그림자 분신 2.0]을 다수 죽여 본 브라이언은, 청염백광단검으로 죽은 은혁의 사체가 진짜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자살한 게 아니었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브라이언을 속여 넘긴 셈이다.

뿌드득!

브라이언은 각오했다.

‘절대 용서 못 한다.’

브라이언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는 어느새 은혁을 쓰러뜨리는 것 말고는 생각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이는 은혁의 적이었던 서영후, 박병철, 심지어는 레나 또한 빠졌던 심리적 함정이다.

강은혁에 대한 미움이 극단으로 치솟아서 그것 말고는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

바꿔 말하자면, 은혁은 어그로 끄는 재주가 100층탑에서 최상급이라 할 수 있다.

“블릿츠 데바여! 내 수명의 15년과 내 전 재산의 절반을 제물로 바치겠나이다!!”

번쩍!

브라이언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뇌신 강림]을 발동했다.

* * *

털썩!

은혁은 19층 게이트 앞에 떨어졌다.

‘어떻게 된 거지?’

은혁은 목에는 청염백광단검이 박혀 있었고, 가슴에는 낚싯바늘이 박힌 채였다.

‘브라이언을 유도해서…… 싸우다가 자살하는 척 성공……했나.’

약 기운에 몽롱했다.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나왔다.

-구원자 플레이어 염훈이, 도망자 플레이어 강은혁을 구출했습니다!

-술래 플레이어 브라이언이 남은 제한 시간 이내에 19층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 술래 플레이어는 기존 페널티와 특수 페널티를 모두 받게 됩니다!

“은혁아! 괜찮냐?!”

염훈은 은혁이 빌려준 무기, 세븐 칼리버의 제4형태를 쥐고 있었다.

“세븐 칼리버 제4형태…… 차원의 낚싯대……!”

‘세븐 칼리버 제4형태 차원의 낚싯대. 그걸 저격 모드로 변경했군.’

은혁은 몽롱한 머리로 떠올렸다.

“맞아! 네가 나한테 빌려준 거! 정신이 들어?!”

“차원의 낚싯대는 일반 모드와 저격 모드가 존재하며…….”

“어휴, 아직 정신 못 차렸네! 기다려! 곧 회복시켜 줄게!”

염훈은 치유 스킬을 써서, 우선 목의 상처를 치유했다.

“으으……!”

은혁은 기억을 떠올렸다.

‘죽은 척하기 알약.’

은혁이 8층에서 얻은 약이었다.

연구 길드가 비밀리에 연구한 것으로, 연구 길드의 길드장 빌에게 반납했다.

‘전부 다 반납한 건 아니지만.’

고블린의 차원에서, 은혁은 브라이언을 도발하며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었다.

그러면서 입가를 가리면서 웃음을 참는 시늉을 했는데, 그때 몰래 알약을 삼켰다.

‘그리고 단검으로 목을 찌르고 호수로 몸을 던졌지.’

죽은 척하기 알약이 대단한 이유는, 그런 짓을 해도 실제로 완전히 죽지 않고,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상태로, 반 가사 상태로 만든다는 점이다.

‘너무 무리했나.’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그림자 분신 2.0] 정도로는 브라이언이나 고리블린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죽음 직전까지 가야 고리블린을 속이고, 브라이언에게 절망감을 줄 수 있었다.

“으으, 이제 좀 머리가 돌아가네.”

은혁은 몸을 일으키며 몸에 박힌 갈고리 형태의 낚싯바늘을 떼어냈다.

휘릭!

그러자 낚싯바늘은 차원의 낚싯대로 되돌아갔다.

“자살하는 척에 성공하자, 너는 내가 남긴 쪽지대로 날 차원의 낚싯대로 건져 올렸군.”

세븐 칼리버 제4형태인 차원의 낚싯대는 두 가지 모드가 있다.

일반 모드와 저격 모드.

저격 모드는 낚싯줄 ‘없이’ 갈고리를 날리는 원거리 무기였다.

장벽이나 갑옷, 심지어는 차원의 벽까지 날려 보내는 게 가능했으며, 강은혁 자신을 표적으로 하는 경우, 다른 차원의 벽 너머까지 날리는 것도 가능했다.

차원의 낚싯대에는 은혁이 주인으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별도의 추적 스킬 없이도 은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은혁은 브라이언과 함께 고리블린의 차원으로 떨어진 뒤, 염훈을 시켜 은혁 자신만 건져 올리게 한 것이다.

“읏차.”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부터 회수했다.

“일반 모드로 변환.”

철컹!

시즈 모드를 연상시키듯, 안정적인 저격 플랫폼 형태의 차원의 낚싯대가 일반 낚싯대 형상으로 변했다.

“휴, 일단 한시름 놓았다.”

은혁은 그렇게 말하고 염훈과 다시 파티를 맺었다.

그리고 게이트 주위 지형을 살펴봤다.

“좋은 지형이군.”

복도는 길었고, 좌우의 벽은 좁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게이트가 있었다.

“네 작전대로 다 된 거지? 그럼 이긴 건가?”

“아직.”

은혁은 포션을 하나 따서 마셨다.

은혁은 브라이언을 깔봤지만, 그렇다고 브라이언의 집념까지 깔보는 건 위험했다.

“아득바득 부길드장 자리에 오를 정도로 독한 놈이고, 자기 길드장 뒤통수를 치고 버틸 정도로 집념이 강한 놈이야. 아마 반드시 살아 돌아오겠지.”

“그럼 안 되는 거 아냐? 보통 그런 지옥 같은 데서 살아 돌아오면 막 파워업 하지 않나?”

“맞아. 살아 돌아오기만 해도 숙련도가 팍팍 오르겠지.”

“야! 그럼 결과적으로 적의 성장을 도운 게 되는 거잖아?”

“장기적으론 그렇지. 하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놈은 피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올 거다. 절대적으로 체력과 신성력이 많이 깎인 채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

은혁은 검을 고쳐 쥐었다.

“오늘 놈을 살려 보내면 네 말대로 파워업해서 나를 치겠지만, 놈이 돌아온 직후 끝장내면 그럴 일이 없겠지.”

그 순간.

파지지직……!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놈이 오는군.”

-술래 플레이어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털썩!

머리가 하얗게 센 브라이언이 나타나며 쓰러졌다.

부웅!

은혁은 가차 없이 헤비 체인 소드로 [강타]를 날렸다.

콰쾅!!

브라이언은 엎드린 채로 옆으로 굴러서 겨우 피했다.

“크윽……!”

브라이언은 부들거리며 일어났다.

“야, 놔둬도 곧 죽을 거 같은데?”

뒤로 물러난 염훈이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브라이언은 무리하게 수명을 바쳐 쓴 [뇌신 강림]의 힘으로 고리블린과 맞서 싸우고도 겨우 무승부였다.

브라이언은 추가로 수명을 5년 바쳐서 탈출했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한 건 수명 거래의 여파와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방치한다고 정말 죽진 않겠지만, 그 정도로 브라이언은 약해진 상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