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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89화 (89/434)

89화 : 압승 (1)

“아, 이건 좀 내 나쁜 버릇인데.”

은혁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지금 패배를 인정하면 그냥 살려줄 수도 있다.”

“뭐?”

“내 목적은 7대 길드를 통합하고 지배하는 거라서, 여기서 널 죽이면 귀찮은 일이 더 생길 것 같거든? 그냥 네가 항복하고 패배 인정만 하면 부길드장 직위는 그냥 네가 유지해도 된다. 난 길드장 도전권 생기니 좋고, 전반적으로 완만히 끝나니까 서로 좋지 않나?”

“웃기지 마라……!”

브라이언이 마지막 투지를 불태웠다.

“너는 위험한 놈이다.”

“너보다 위험하겠냐.”

“아아, 나보다 위험하지.”

브라이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7대 길드의 부길드장 중 한 명으로서, 처음으로 책임감이 느껴지는군. 네놈을 살려뒀다간 앞으로 100층탑이 어떻게 망가질지 걱정이다.”

브라이언은 주먹에 뇌전을 모았다.

‘[초뇌신권]인가.’

[뇌신 강림]의 힘을 모두 일권에 담아 날리는 기술.

브라이언이 맨정신이라면 절대 쓰지 않을 기술이다.

‘피하면 그만이니까.’

순간 화력이 절정에 다다른 한 방 기술.

그게 [초뇌신권]이다.

에너지를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고, 상대가 피할 수도 있으므로 오히려 고수들끼리의 싸움에서는 [초뇌신권] 같은 걸 잘 안 쓴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은혁을 위험으로 인정했고, 막판 뒤집기를 하려면 [초뇌신권]뿐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피하면 그만이지.’

은혁이 마음만 먹으면 드릴 랜스와 [돌 부수기] 스킬로 땅을 파서 피할 수 있었다.

[초뇌신권]은 강하지만 일단은 직선 공격이므로.

하지만.

“와라. 받아내 주지.”

은혁은 피하지 않고 받아낼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브라이언의 투지를 박살 낼 수 있을 테니까.

“염훈. 너는 옆으로 비켜서 있어.”

스윽.

은혁은 염훈에게 말한 뒤, 세븐 칼리버를 자신의 인벤토리창에 넣었다.

마치 브라이언의 필살의 공격을 받아내려면 맨손이 오히려 낫다는 듯했다.

그걸 본 브라이언은 더욱 망설였다.

‘뭔가가 있다. 놈은 무슨 수를 쓸 거다.’

하지만 어떤 수를 쓸 것인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빨리 와라.”

은혁이 손짓했다.

“그냥 주먹을 날리면 되는데 뭘 망설이지? 막판 한 방 대결이니까 질질 끌지 말고 날려봐.”

‘거짓말이다.’

브라이언은 확신했다.

뭔지는 몰라도 은혁에게는 뭔가가 있다.

‘피할 생각인가?’

하지만 좌우에는 복도가 있어서 피할 공간이 많지 않다.

은혁 수준이면 벽 부수기는 우습지만, 그래도 브라이언이 더 빠르다.

은혁은 스킬로 옆의 벽을 부수고, 몸을 날리는 두 동작이 필요하지만, 브라이언은 [초뇌신권]을 전방으로 날리기만 하면 되므로.

‘아니면 그림자를 이용한 회피인가? 그것도 쉽지 않을 텐데?’

[초뇌신권] 발동 순간에 일어나는 막대한 섬광은 [그림자 도약]의 범위를 좁힌다.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초뇌신권] 같은 필살의 일격을 상대로 [그림자 도약]을 쓰는 건 도박수였다.

‘그럼 뭐지? 튕겨내거나 드릴로 피하는 거?’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은혁은 이미 인벤토리창에 무기를 넣었기 때문이다.

은혁은 완전한 맨손 상태.

“하아, 이렇게 겁이 많은 놈이었냐?”

은혁이 김샌다는 태도로 똑바로 섰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서 주면 될까? 옛다. 자.”

은혁은 양팔을 벌리고 완전히 무방비하게 섰다.

방어도 회피도 절대로 불가능한 자세.

브라이언은 망설이지 않았다.

‘죽인다!!’

성전무투가로서의 전투력, 부길드장으로서의 자존심, 강은혁에 대한 증오를 모두 담아 주먹을 날렸다.

‘[초뇌신권]!!!’

번쩍!!!

19층이 존재한 이래로 한 번도 없었던 엄청난 섬광.

끓어오르는 샛노란 전류가 은혁을 향해 쏘아졌다.

적중했다.

뒤이어 폭음이 울려 퍼질…….

“어?”

의외로 폭음이 없었다.

벼락 뒤에 천둥이 치듯, 막대한 충격파가 퍼져 나가야 정상인데 그게 없었다.

“그게 바로 [2초 무적]의 힘이지.”

은혁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2초 무적]의 사기성이 또다시 드러났다.

브라이언이 가한 공격의 위력은 둘째치고, 일단은 술래의 일격이므로 명중되었으니 은혁이 감옥으로 강제 전송되어야 맞다.

하지만 [2초 무적]의 힘은 브라이언의 일격이 지닌 위력을 싹 다 무시했고, 최소한의 ‘터치’로도 인정하지 않았기에 감옥 전송도 이뤄지지 않았다.

“뭐……?”

파지지직…….

잔여 전류가 천장과 바닥을 태웠지만 그 정도로 쓰러질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2초가 지나니까 잔여 전류 때문에 좀 따끔하군.”

은혁은 염훈의 스킬인 [2초 무적]을 빌려 썼다.

“아니, 어떻게?”

염훈도 놀라서 물었다.

“[그림자 결속]의 연계기. [그림자 빌리기]다!”

은혁이 19층에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염훈과 다시 파티를 맺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림자 결속]을 했다.

적대적인 존재와 [그림자 결속]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건 어렵지만, 염훈의 경우 이해도가 높은 동료였기에 [그림자 결속]의 지속 범위와 시간이 높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림자 빌리기]를 썼다.

[그림자 빌리기]는 [그림자 결속] 상태의 플레이어의 스킬 하나를 빌리는 연계 스킬로, 사실 별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쓸 수도 있다.

그렇게 은혁은 염훈의 고유 스킬 [2초 무적]을 언제든 빌릴 수 있게 세팅해 뒀고, 공격하도록 유도했다.

“네 [초뇌신권]의 최대 강점은 짧은 시간 동안 막대한 데미지를 준다는 것. 최대 단점은 에너지를 모으는 시간에 비해 스킬 지속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

[2초 무적]은 지속 시간이 짧은 스킬이지만, 브라이언의 [초뇌신권]은 지속 시간이 더 짧다.

“그다음은 쉽지. [2초 무적]은 즉각 발동 스킬이니까, 네가 공격해오도록 유도하면 끝.”

은혁이 양팔을 벌리고 여유를 부린 건, 브라이언의 공격 타이밍을 더 확실히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털썩!

브라이언이 쓰러졌다.

패배감이 팔다리를 무겁게 했다.

이 와중에도 은혁의 도적 숙련도는 올랐다.

-도적 숙련도가 5% 증가했습니다!

-현재 도적 숙련도 : 20%+.

-도적 스킬 [소매치기]를 획득하셨습니다!

‘크으! 드디어!’

도적이라면 십중팔구 초반에 얻는 [소매치기] 스킬을 이제야 얻었다.

100층탑의 스킬 획득 확률 시스템이 제멋대로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은혁은 도적 스킬을 워낙 전투적으로 썼기에 기본 중의 기본인 [소매치기]를 이제야 얻은 것이다.

“한 가지만 묻자.”

“뭔데?”

“왜 그 기술을…… 진작 쓰지 않았지?”

[2초 무적]을 빌려 쓸 수 있다면 진작 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대신 도망치고, 7층 히든 차원까지 들락거리는 등 브라이언의 체력을 낭비시켰다.

“그 이유? 간단해. [그림자 빌리기]로 [2초 무적]을 빌리면 염훈은 상대적으로 무방비가 된다. 어그로를 잔뜩 끌어서 네 최후의 필살기가 반드시 내게만 날아오도록 해야 했지.”

만약 은혁이 [2초 무적]을 빌려 쓴 동안 브라이언이 번개를 사방으로 뿜었다면, 금속 갑옷을 입은 염훈이 상대적으로 위험해진다.

“그래서 집요하게 어그로를 끌고…… 내 체력을 낭비시킨 건가.”

은혁은 도발하다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유인하고, 자살한 척하다가 공격을 유도했다.

묘하게 지리멸렬해 보이는 은혁의 행위는 이 상황을 위함이었다.

“크윽.”

브라이언은 다시 일어나려 했다.

“뭘 일어나? 그냥 엎드려 있어.”

은혁은 그렇게 말하고 브라이언의 얼굴을 걷어찼다.

뻐억!

빠칵!

브라이언의 선글라스도 파괴됐다.

일반적인 선글라스와 달리 성좌의 힘으로 제작된 것이므로 보호되는 선글라스다.

하지만 그게 일반 선글라스처럼 발길질 한 방에 부서졌다는 건, 성좌의 가호가 이미 브라이언의 몸에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성좌도 널 거의 손절한 것 같군.”

브라이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정보, 운명치 수입보다 지출이 더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이다……!”

브라이언은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마지막 투지를 불태웠다.

‘근성은 제법이군.’

은혁은 그렇게 생각하고, 존중해주기로 했다.

“신성력은 없어도, 무투가 스킬은 쓸 수 있지? 와라.”

타앗!

브라이언은 그렇게 했다.

이미 은혁을 이기긴 어렵다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상승 길드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부웅! 부웅!

은혁은 다 피했다.

번개 같던 공격 속도는 온데간데없었다.

“브라이언. 너는 성직자로 시작해서 승급하여 성전무투가가 된 놈이지. 신성력을 잃은 지금의 너는 그냥 무투가보다 느려.”

친절하게 말해 준 은혁은, 브라이언에게 주먹으로 한 방 먹였다.

뻐억!

“크악!”

“음. 그래도 완전히 빠지진 않았군.”

블릿츠 데바는 브라이언에게 신성력을 거의 부여해주고 있지 않았지만, 연결이 조금 남아 있었다.

지금도 브라이언에게 최소한의 방어력을 부여하고 조언을 행할 수 있다.

‘그럼 곤란하지.’

은혁은 브라이언의 몸과 블릿츠 데바와의 단말이, 잠시라도 좋으니 완전히 끊어지도록 해야 했다.

“방법은 하나뿐.”

은혁이 방법 운운하면 대개는 폭력적이거나 파괴적인 수단뿐이다.

“일단 좀 더 맞자.”

은혁은 인벤토리창에서 세븐 칼리버를 꺼냈다.

철컹!

그리고 제3형태 드릴 랜스로 전환함과 동시에 브라이언의 무릎을 찍었다.

키유우우우웅!

콰콰콰콱……!!

그대로 회전시켜서 다리 한쪽을 통째로 갈아 버렸다.

“크아아악!!”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까지의 찰나의 순간.

“[섬영권]! [봉황각]! [무아연환격]!!”

뻐억!

쾌속의 주먹으로 일단 한 방 먹이고.

빠악!

올려차는 스킬로 공중에 띄우고.

투두두두두두두……!!

연속기가 브라이언의 상반신을 한없이 두들겼다.

-무투가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무투가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무투가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무투가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무투가 숙련도 : 16%+.

브라이언의 뼈가 부서지고 몸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성좌, 블릿츠 데바가 그만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럼 꺼지든가.”

-성좌, 블릿츠 데바는 고민합니다!

은혁은 히죽 웃었다.

‘성좌가 쩨쩨하게 시간을 끄는군.’

계약한 성전무투가와의 단말을 완전히 끊는 것은 운명치를 많이 소모하므로 마지막까지 미루려는 것이다.

‘더 패야겠네.’

은혁은 그림자와 금속 가시를 융합했다.

“퓨전 스킬 [가시 지옥]!!”

콰콰콰콰콱……!!

허물어지고 쓰러지려는 브라이언의 몸을 그림자와 금속의 가시가 꿰뚫었다.

반강제로 몸에 철심을 박아서 몸 상태를 유지시키는 행위와 유사했다.

“부길드장이니까 견디겠지? 세븐 칼리버 제4형태 차원의 낚싯대!”

철컹!

무기가 변환했다.

“차원의 낚싯대 저격 모드 변환!”

철컥!

시즈 모드를 연상시키듯, 보조 다리가 바닥에 거치되었다.

휘익!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를 휘둘러, 브라이언의 몸을 꿰었다.

“하앗!”

그리고 좌우로 휘둘렀다.

콰쾅!

콰르르르르……!

낚싯바늘 형태의 갈고리에 꿰인 브라이언은 몸으로 미로를 부수기 시작했다.

콰드득!

몸이 못 견디고 찢겨나가는 바람에 튕겨 나갔다.

은혁은 브라이언이 튕겨 나갈 것을 예측하고 바로 돌진했다.

“[광풍돌진권]!!”

[광풍돌진권]은 주먹에 집중시키는 형태와 몸통 전체로 날리는 방식이 있는데, 이번에는 몸통으로 날렸다.

콰콰쾅!!

몸이 찢긴 채 튕겨 나가는 브라이언에게 추가로 왼 주먹을 날렸다.

“[블레이징 러시].”

맞아서 튕겨 나가는 브라이언의 몸통에 블레이징 러시의 힘이 담긴 왼 주먹이 꽂혔다.

콰콰콰쾅!!!

화르르르르르륵!!!

죽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

“마그노루아아악! 끄어아케해주어어어!!”

브라이언이 튕겨 나가며 절규했다.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였지만, ‘마지막으로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시고, 잠시 제 곁을 떠나주소서!’라고 블릿츠 데바에게 요청한 내용이었다.

콰콰쾅!!

이미 박살 난 벽에 처박히며 브라이언이 멈췄다.

멀리서 보니 겨우 꿈틀거리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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