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 워잭 암살 미수 사건 (1)
“아니, 뭐. 그냥 궁금하기도 하고, 네 운이나, 날카로운 직감에 뭔 이유가 있나 해서.”
염훈이 우물쭈물하자 은혁은 피식 웃었다.
“딱히 그런 건 없어. 여기요! 갈릭 치킨 추가요!”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과거 이야기를 했다.
허기가 져서 그런지 치킨과 맥주가 배 속에 끝도 없이 들어갔고, 염훈은 특히 많이 먹고 마셨다.
염훈은 은혁의 과거를 낱낱이 알아내겠다는 소기의 목적은 까맣게 잊고, 자신의 대학 시절 영웅담을 떠들었다.
“……그래서 그 새끼들이 신입생 OT 날 뒤풀이 때, 날 엿 먹이려고 작정한 거였지. 하지만 내가 누구냐? 응?”
“염훈.”
“맞아! 내가 바로 염훈이지!”
염훈은 기세 좋게 자기 가슴을 텅텅 쳤다.
“그래서 난 정중히 말했지. 선배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막 그 인간들이……!”
염훈은 몸짓을 섞어 가며 자기 영웅담을 말했다.
그렇게 밤 11시 정도 되었을 때.
멀리 떨어진 정의 길드 본부에서는 사건이 발생한다.
* * *
정의 길드 본부의 부길드장 집무실.
밤이 깊었건만 불은 켜져 있었다.
“……이상으로 보고를 마칩니다.”
워잭의 비서 엘리슨은, 19층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첩보 보고를 마쳤다.
“강은혁의 앞으로의 행보는 내일이 와야 더 잘 알 수 있겠지.”
“그렇습니다, 부길드장님. 일부 기자들은 사복 차림으로 광장에 노숙 중이라더군요.”
“음?”
“강은혁이 관심받기 싫다며, 새벽에 21층으로 도전하러 갈 수도 있으니까요.”
“허허, 그랬지. 강은혁은 그런 자였지.”
관심은 있는 대로 끌고 있는 주제에, 정작 기자들이 달라붙는 건 싫어한다.
그런 탓에 일부 기자들은 더 약이 올라서 노숙까지 하는 중이었다.
“이건 정말 예상과 다른 전개군.”
워잭은, 제아무리 강은혁이라 해도 브라이언은 이길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워잭조차도 브라이언을 상대로 겨우 무승부를 유지하는 정도.
그나마도 브라이언이 정말 워잭을 죽이려고 작정하면 전신에 금속 갑주를 두르고 있는 워잭이 약간 불리했다.
‘어떻게 이긴 거지? 브라이언은 사실상 약점이 없는 놈인데.’
오만한 성격이라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빠르고 강한 공격, 성좌 보너스, 회복 능력, 일대일에 특화된 무투가 스킬 등.
일대일로 붙으면 오히려 브라이언이 반드시 이겨야 했다.
하지만 은혁은 보란 듯이 브라이언을 꺾었다.
“몇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실제로 브라이언을 쓰러뜨린 건 강은혁이지만, 그의 동료를 무시해선 안 될 겁니다.”
“아아, 알고 있어. 염훈이라는 성기사 말이지.”
보고서에도 적혀 있었다.
“그자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
“사실, 정의 길드에 가장 어울리는 이는 그 염훈이라는 플레이어라는 생각도 듭니다.”
“후후. 자네 말이 맞아.”
그때였다.
휘오오오…….
창가에서 바람이 흘러 들어오더니, 전등이 꺼졌다.
바람 때문에 전기로 작동하는 전등이 꺼지는 건 말이 안 된다.
“정전일까요?”
비서가 말한 순간.
푸확!!
반투명한 무언가가 비서의 목을 벴다.
“뭣!”
워잭은 즉시 무기를 뽑아 들었다.
“누구냐!”
“크큭. 머리가 좋진 않군.”
무언가는 반투명한 청록색 액토플라즘이었다.
허공에서 연신 꿈틀거렸는데, 일부가 경화되어서 칼날처럼 변해 있었다.
워잭은 태연했다.
‘사령술사인가? 아니면 혼돈술사?’
어느 쪽인지는 불분명했다.
엑토플라즘은 꾸물텅거리며 비웃었다.
“과연 워잭. 침착하군. 암살자를 앞에 둔 것치고는 말이야.”
“너야말로 암살자치곤 무능하군. 쓸데없이 말이 많으니 말이야.”
그 순간.
쉬익!
엑토플라즘이 워잭의 갑옷 틈새를 노렸다.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 있는 엑토플라즘 특유의 변칙적인 공격이었지만.
콰쾅!!
“커컥?!”
엑토플라즘은 튕겨 나갔다.
“[소닉 실드].”
가만히 선 채로 음속의 충격파만 사방에 방출하는 스킬.
형체가 있는 적이건 엑토플라즘처럼 흐물거리는 존재건 예외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생포하겠다.”
워잭은 그렇게 말하며 엑토플라즘을 향해 도망쳐도 된다는 듯이 거리를 두고 섰다.
워잭은 ‘초음속의 신을 섬기는 챔피언’이었다.
워잭은 B+급 직업인 ‘초음속의 신을 섬기는 전사’로 시작했다.
직업이 전사이면서도 고유 수식어가 신과 관련된, 보기 드문 하이브리드형 성전사 타입이다.
정의를 따라 활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명성이 높아졌고, 성좌, 오버 소닉의 허락과 권유를 받아 챔피언으로 승급했다.
전사로 시작해서 오버 소닉의 신성력을 지닌 챔피언으로 승급한 유일한 케이스였다.
워잭이 마음만 먹으면 [뇌신 강림] 상태의 브라이언과 달리기 시합을 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또한, ‘황금과 시간을 교환하는 연금술사’인 테일러의 [감속] 스킬의 흐름에도 순수 속력으로 정면 대항하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
엑토플라즘은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기회를 엿봤다.
도망쳐야 할지, 아니면 임무를 완수해야 할지 고민 중인 기색이 역력했다.
“느려.”
파쾅!!
음속의 벽이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엑토플라즘이 봉인됐다.
“퓨전 스킬 [초음속 봉인].”
“커컥!”
고위 성직자만 쓰는 [봉인] 스킬을, 초고속으로 시전하여 생포했다.
“아직도 내가 느릴 것 같나? 나는 갑옷을 입고 있어도 7대 길드의 부길드장 중에서는 3위 안에 든다.”
워잭은 생포한 엑토플라즘에게 설명한 뒤, 인벤토리창에서 묵직한 도끼를 꺼냈다.
“이건 ‘진실의 도끼’다.”
“!!”
“소문으로는 들어봤겠지? 네가 들은 소문은 다 사실이다. [진실 재판].”
파앗!
도끼 손잡이에서 쇠사슬 형태의 섬광이 나오더니 엑토플라즘에게 꽂혔다.
스윽.
워잭이 진실의 도끼를 손에서 놓자, 도끼는 허공에 둥실둥실 떠올랐다.
아무리 엑토플라즘이 몸을 뒤틀어도 진실의 도끼와 연결되어 있었다.
“말해라. 네 본체는?”
“내 본체 위치 말인가? 그야 네 엉덩이 밑에 있……!”
파콰콱!!
엑토플라즘이 반으로 갈라졌다.
“크아아아악!!”
어지간해서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엑토플라즘이 비명을 내질렀다.
“보통 플레이어라면 고통 없이 죽었겠지. 하지만 넌 엑토플라즘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
엑토플라즘 상태이기에, 역으로 진실의 도끼로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4분의 1, 8분의 1, 16분의 1 사이즈가 되어도 계속 절단된다.”
“……!”
워잭도 엑토플라즘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엑토플라즘이 비서를 죽이는 건 목격했다.
진실의 도끼는 현행범인 신원미상의 엑토플라즘과 연결되어,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절반으로 썰어댈 터였다.
“대답해라.”
“…….”
“진실의 도끼에 대해 잘 모르나 보군.”
푸콱!!
“끄아아아!!”
“법정에서는 묵비권이 인정되지만, 진실의 도끼는 대답을 고의로 하지 않는 경우에도 발동된다. 너는 현행범인 게 명백하므로 아무런 제약 없이 연속 발동도 가능하다.”
워잭은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지만 엑토플라즘은 고통 때문에 꿈틀거릴 뿐이었다.
그 순간, 창밖이 갑자기 밝아졌다.
단, 붉은색으로.
“뭐지?”
“큭, 크크큭……!”
엑토플라즘은 웃었다.
“내 주인께서 소환한 피눈물이 이곳을 채울 것이다……!”
“설마!”
워잭은 창문 밖을 확인했다.
하늘에는 늙은 여인의 머리통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머리통의 머리카락은 체리 색깔이었고, 길게 늘어져 있었다.
머리통의 크기는 거대한 물탱크 크기였으며, 목 아랫부분 단면은 거칠게 찢어져 있었다.
눈은 감고 있었는데, 눈꺼풀 너머로, 붉은빛이 배어 나왔다.
캄캄한 밤이었기에 그 붉은빛은 꽤 밝았다.
늦은 밤 귀가하던 행인들은 경악했다.
“저, 저거 뭐야!”
“아, 아아아아……!”
경악하는 자, 정신 오염을 일으키는 자들이 속출했다.
-지고의 위상, 피눈물의 성모가 강림했습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5층에 지고의 위상이 강림한 거지?!”
정말로 강력한 존재는 차원을 넘어 길드연합국을 침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능히 막아내는 것이 7대 길드의 길드장과 부길드장의 힘.
“설마 이건!”
“크크크! 눈치챘나 보군.”
엑토플라즘이 약 올렸다.
“내 목적은 널 유인하고 여기 묶어 두는 것! 이제 죽어라!!”
엑토플라즘이 외치는 것과 동시에 피눈물의 성모가 눈을 떴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
꿀렁……!
피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피눈물 하나하나의 굵기가 수박보다 컸다.
주르륵.
콸콸콸콸콸……!!
피눈물의 성모가 흘려보내는 피눈물을 정의 길드 본부가 뒤집어쓰려는 순간.
“[광휘의 장벽]!”
“[신성한 오러]!”
“[뇌전의 방벽]!”
“[석벽 소환]!!”
아직 퇴근하지 않았던 정의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각자 지닌 스킬로 방어벽을 즉시 펼쳤다.
처덕처덕……!
피눈물은 방어벽에 닿는 순간 끈적하게 들러붙더니, 서서히 녹이기 시작했다.
“이런!”
“건물 내부로 피해!”
몇몇은 그렇게 외쳤지만.
꾸물텅…….
피눈물은 건물 외벽에 닿는 순간 구멍을 냈다.
“맙소사!”
“제길! 부길드장님은 어디 계신가!”
투콰콰쾅!!!
길드 건물 꼭대기 층이 폭발하더니, 거대한 초음속 충격파의 우산이 생성됐다.
“오옷!”
“최대 위력의 [소닉 실드]구나!”
“역시 부길드장님!”
워잭은 자기 자신이 초음속으로 움직일 뿐만 아니라, 초음속의 파동 그 자체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다.
“내가 유인하는 동안 대피시켜!!”
피눈물의 성모는 정면으로 버티는 워잭을 향해 울부짖었고, 상대적으로 다른 곳은 피해가 줄었다.
물론, 피눈물은 바닥으로 흘렀고, 닿기만 해도 살이 터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으악!”
“엄마야!”
정의 길드원들은 당황해하는 플레이어들을 인솔했다.
“다들 비켜! 피해!”
“지하실로 숨지 말고 차라리 높은 곳으로 가!!”
“다들 물러나십쇼! 부상자가 보이면 데리고 이동하십쇼!!”
정의 길드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덕분에, 인구밀집도가 높은 정의 길드 근처에서의 사상자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크크크. 더는 못 버틸 거다.”
엑토플라즘이 워잭을 보며 조롱했다.
으드득.
워잭은 이를 갈았지만 그로서도 버티는 게 한계였다.
‘제길! 내 특기는 회피와 육중한 반격인데.’
초음속의 능력을 방어용으로만 쓰려니 워잭으로서도 속이 탔다.
하지만 지켜야 할 민간인 NPC들과 플레이어들이 있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키히히! 그냥 포기하지 그래? 좌표 지정이 끝난 시점에서 넌 끝이야. 그리고 말이지.”
엑토플라즘은 보란 듯이 붉은 피눈물을 가리켰다.
“나는 엑토플라즘 상태라서 피눈물에는 상처를 안 입지. 너는 정의 길드랑 통째로 피눈물에 빠져 죽는 거고.”
“거, 더럽게 말 많군.”
워잭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지만.
‘오래 못 버틴다.’
즉시 결단을 내렸다.
“아무나 받아라!!”
부웅!!
엑토플라즘을 속박한 진실의 도끼를 냅다 멀리 있는 부하에게 던졌다.
“어엇!”
“부길드장님?!”
워잭은 부하들에게 [초음속 메시지] 스킬을 썼다.
“……!!”
남들 귀에는 정상적으로 들리지 않는 잡음이, 1군급 길드원들에게만 들렸다.
워잭이 정의 길드 1군에게 군사 정보나 명령을 내릴 때만 쓰는 스킬.
그것을 일반 언어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그걸 이용해서 배후를 찾아라!!! 반드시 이 일에는 배후가 있다!!! 본부에 대한 테러 사건을 수사하되, 나를 암살한 배후의 존재를 비밀리에 찾아라!!!’
그 직후.
쩌적!
[소닉 실드]의 한쪽 구석이 깨지더니.
콰장창!!!
피눈물이 정의 길드 본부와 워잭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