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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96화 (96/434)

96화 : 워잭 암살 미수 사건 (3)

“신기하네. 며칠 자고 일어났더니 치안 수준이 확 나빠지다니.”

회귀 전 역사를 다 기억하는 은혁이었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행복 길드원들은 그런 은혁을 향해 목소리를 깔았다.

“뭐라고 씨불이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살 겁니까, 말 겁니까.”

“가격까지 들어놓고 안 사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죠?”

자기들이 멋대로 와서 설명한 주제에 되레 덤터기를 씌웠다.

“다 사죠.”

은혁이 쿨하게 말했다.

“다요?”

“네, 다요.”

“우와, 통 크시네. 지금 12병이 있는데, 어디 보자. 12 곱하기 60을 하면…….”

“너무 적네요.”

“엥?”

“행복 포션 원료 재배지를 통째로 사죠. 조금씩은 안 삽니다.”

“……지금 우릴 놀리는 겁니까?”

청년들, 행복 길드원들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껄렁거리는 청년들처럼 굴고 있지만, 행복 길드에서 구르던 자들 특유의 잔혹함은 갖추고 있었다.

“안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많이 사겠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은혁이 태연하게 되묻자 행복 길드원들이 으르렁거렸다.

“그게 얼만 줄 알고 허세를 부려?”

“게다가 행복 포션 원료 재배지 위치는 우리들도 모르는데 뭔 개소리야?”

“머리도 오래 자서 떡진 새끼처럼 생긴 주제에.”

“야.”

은혁은 마지막 놈을 노려봤다.

살기가 확 풍겨서, 한마디씩 하던 노란 조끼들이 주춤했다.

“나, 나요?”

“그래, 이 새끼야. 내 머리가 뭐 어쨌다고?”

은혁은 3일가량 자느라 떡진 머리를 억지로 펴며 노려봤다.

“아, 아니, 그게 내 말은 그, 너무 오래 주무신 것 같다는 뜻으로…….”

“너 이 새끼. 변명하지 마라. 염훈, 너도 이 새끼가 한 말 들었지?”

“물론 들었지. 선 넘는 소리였어.”

염훈도 마지막 놈을 노려봤다.

“너, 마지막 새끼만은 용서 못 한다.”

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행복 길드원들은 주춤했다.

“겁나 기분 불행하네. 내놔.”

“네?”

“샘플로 한 병 내놓으라고 이 새끼야!!”

그렇게 한 병 뺏었다.

나머지 놈들은 그동안 은혁에게 기습할 틈을 노렸지만, 염훈이 지키고 섰으며.

스스슥…….

은혁이 [그림자 지배] 능력으로 그림자를 일렁이게 하는 것만으로도 전투 의지를 꺾었다.

기세에 눌린 행복 길드원들은 도망쳤다.

“크읏! 두고 봅시다!”

“행복 길드는 당신에게 복수할 날을 꿈꾸며 행복해할 것이니!”

“그래도 머리 떡졌다고 놀린 것만은 사과하겠소!!”

도망치면서도 행복 길드스러운 대사를 치고 갔다.

“은혁아. 그건 또 뭐에 쓰려고 뺏은 거야?”

“워잭 깨우려고.”

은혁은 행복 포션을 인벤토리창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떡진 머리가 새삼 신경 쓰이는지, 식은 커피를 손에 조금 부어서 머리 모양을 매만졌다.

“흠흠, 어떠냐?”

“왁스 바른 바리스타 같군.”

염훈은 엄지를 세워줬다.

* * *

정의 길드 테러 사건 특수 수사 본부.

그곳에서는 워잭 암살을 시도한 엑토플라즘에 대한 신문이 이어졌다.

20번 절단된 엑토플라즘은 무척 작아졌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엑토플라즘은 입을 열지 않았지만, 정의 길드는 답을 알아냈다.

“구원 길드 숙소라고 했나요?”

엘리슨이 물었고, 수사 본부의 부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원 길드는 개방된 수련장을 운영한다.

그 부속 숙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엑토플라즘의 본체를 찾아냈다.

“엘리슨 본부장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비명으로 추적하니 빠르더군요.”

엄청난 추리력으로 찾아낸 건 아니고, 비명을 듣고 찾아낸 것이다.

진실의 도끼로 엑토플라즘을 자를 때마다, 엑토플라즘의 비명이 점점 더 커졌고, 엑토플라즘과 연동된 본체도 비명을 질렀다.

엑토플라즘과 본체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기에, 정의 길드 소속 마법사들이 비명으로 추적한 것이다.

“예. 이 엑토플라즘의 본체의 이름은 베르사유라고 하는 사령술사였습니다.”

“구원 길드 소속인가요?”

“아니오. 구원 길드 숙소에서 머물긴 했지만 어느 길드에도 가입된 기록은 없었습니다. 또한 베르사유가 빌린 숙소를 뒤져봤지만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다.”

“…….”

베르사유는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워잭을 암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워잭이 쓰러지기 직전 남긴 메시지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태워 버렸거나 인벤토리창에 숨겼거나.’

엘리슨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실력이 좋은 도적이라면 타인의 인벤토리 속 아이템을 훔칠 수 있다.

하지만 열 받게도, 이번 암살범은 엑토플라즘 상태였기에 인벤토리창은 조사할 수가 없었다.

사령술사가 [엑토플라즘] 스킬을 쓰면, 엑토플라즘이 주권을 쥐고 본체는 빈껍데기가 된다.

엑토플라즘이 본체로 다시 복귀하기 전에는 누구도 인벤토리창 속 물건을 훔칠 수 없게 된 것이다.

“저, 본부장님?”

부하가 보고하러 왔다.

“방문객이 급한 일이라면서 찾아왔습니다.”

“바쁘다고 하세요.”

“저는 더 바쁩니다.”

부하의 그림자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림자 지배]의 응용으로, 보고하러 온 부하의 그림자를 통해 목소리만 전송하는 중이었다.

부하가 기겁하고 엘리슨은 어이없어했다.

“당신은?”

“강은혁입니다. 워잭 님을 깨울 방법과 암살범의 인벤토리를 뒤지는 법을 알고 있어서 왔습니다.”

“……!”

“필요 없으시면 관두고요.”

“들어오세요. 아니, 제가 그쪽으로 나가죠.”

엘리슨은 은혁과 염훈이 있는 바깥으로 나갔다.

“1분 드리죠. 설명해 보세요.”

은혁은 엘리슨의 까칠한 반응에 화내지 않았다.

어차피 보상은 워잭이 할 것이므로.

“워잭 님은 현재 피눈물에 중독된 상태이므로 치료가 안 통합니다. 그러니 뒤집어쓴 피눈물부터 중화시켜야죠.”

“그건 평화 병원 의사들도 아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방법이죠.”

지고의 위상, ‘피눈물의 성모’는 정체불명의 존재이기에, 그 피눈물의 정체와 그 해독법도 불명이었다.

“얼마 전 연구 길드의 길드장이 피눈물 샘플을 챙겨갔어요. 그 분석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해독 방법을 모른다더군요. 평화 병원도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엘리슨이 말했고, 은혁은 속으로 웃었다.

‘알아. 그래서 연구 길드가 나서기 전에 내가 미리 나선 거지.’

은혁은 회귀 전, 연구 길드가 해독해 낸 지식을 스틸해서 독점 선공개(?)하기로 했다.

“전 피눈물의 정체를 압니다.”

“어, 어떻게요?”

‘그야 회귀자니까.’

피눈물의 성모는 목 없는 성모의 머리통 부분이다.

신기하게도 피눈물의 성모와 목 없는 성모는 하나의 성좌였으면서 서로를 증오해서 분리한 존재다.

몸통 부분은 끊임없이 피눈물의 성모를 피해 다니고, 피눈물의 성모는 몸통을 잃은 것을 후회하며 눈물 흘린다.

그 피눈물에 닿게 되면 과거의 추억, 특히 슬픈 추억을 떠올리며 영원히 괴로워하게 된다.

즉, 워잭은 가만히 기절한 것 같지만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가 아니다.

한없이 슬픈 추억을 계속 떠올리며 미쳐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해독법은 연구 길드조차도 한참 뒤에 알아낸다.

‘그렇게 워잭이 치료받고 제2차 길드 대전 무렵에 깨어나면,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잔혹하게 변하지.’

은혁은 그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해했다.

정의와 길드연합국을 가장 열심히 지키던 존재는, 슬픈 추억을 끊임없이 되새긴 탓에 광기와 잔혹함 가득한 존재로 깨어나게 된다.

‘그걸 지금 내가 막으려는 거고. 그러니까 회귀 전 연구 길드의 지식을 스틸하는 건 매우 도의적인 일임.’

은혁의 표정을 본 염훈은 씨익 웃었다.

“녀석. 또 ‘아, 난 너무 착해’ 하는 표정 짓고 있네.”

“이런, 들켰나.”

염훈과 은혁은 하하하 웃었다.

“거, 처웃지 말고 대답이나 해요!”

엘리슨이 결국 화를 냈다.

그러자 은혁은 얼른 급정색했다.

“거, 아까부터 너무 예의가 없으신 거 아닙니까? 우린 워잭 님을 도우러 온 건데요.”

“아…….”

엘리슨은 인정했다.

“미안해요. 너무 속이 타서.”

“괜찮습니다. 워잭 님이 입원한 방으로 날 안내해준다면 제가 직접 그분을 깨우죠.”

일반인이라면 은혁의 요구에 즉시 응하겠지만, 엘리슨은 미안해하던 표정을 다시 싹 지웠다.

“당신을 뭘 믿고요?”

“하아, 일일이 설득하긴 시간이 없습니다. 극단적인 제안이지만 이렇게 하죠. 만약 워잭 님이 죽거나, 오늘 중으로 깨어나지 못하면 날 죽이십쇼.”

“다른 길드였다면 그런 식의 목숨을 걸겠다는 소리에 혹했겠죠. 하지만 우린 정의 길드입니다.”

엘리슨은 쉽게 설득에 넘어가지 않고 단호히 거절했다.

‘음, 워잭이 교육을 잘 시켰군.’

은혁은 그렇게 생각하고 결심했다.

“시야가 좁군요.”

“무슨 뜻이죠?”

“한번 바깥을 둘러보시죠.”

은혁이 실제로 길거리를 가리켜 보였다.

“워잭이 쓰러지고 정의 길드 본부가 파괴된 지 겨우 2, 3일 지났어요. 그것뿐인데도 치안이 뒤숭숭합니다.”

“……강력 범죄 신고는 크게 늘지 않았어요. 그리고 치안 유지는 길드연합국 경비대의 역할입니다.”

“신고가 크게 늘지 않은 건, 아직 2, 3일밖에 안 지났기 때문입니다. 즉, 행복 길드도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행복 포션 팔면서 간을 보는 중이죠. 이렇게 2, 3주 지난 뒤에도 과연 여유 부릴 수 있을까요? 그때가 되면 늦을 텐데요.”

“그건…….”

“그건 일단 지나 봐야 안다고 말하시려는 거라면, 착각입니다. 정의 길드가 굳건한 상태에서 경비대가 치안 유지하는 것과 지금 같은 상황이 같습니까? 상황이 다른데 일단 좀 더 지켜보시겠다?”

“…….”

“내 제안이 정의로운 거래 방식이 아니라고 해서 뿌리친다면, 더욱 큰 정의를 놓치는 겁니다.”

“그건……!”

“네네, 뭐라고 말할지 압니다. ‘그건 그런 식으로 간단히 양자택일할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할 거죠?”

엘리슨은 기가 막혔다.

은혁은, 마치 엘리슨 자신이 뭐라고 말할지 대충 예상한 상태에서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성격 분석이라도 했나?’

엘리슨이 어이없어했고, 은혁은 히죽 웃었다.

“내 말이 틀립니까?”

“맞아요.”

“하지만 저는 이런 문제야말로 간단히 양자택일해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악화될 게 뻔한 상황이라면, 그리고 내부적으로 워잭 님을 구할 방도가 없는 상태라면, 자기 목숨을 걸겠다고 나오는 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옵션 중 하나죠.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저도 랭커고, 랭커로서 함부로 거짓말을 하진 않습니다.”

실제로, 은혁이 브라이언을 쓰러뜨린 뒤로, 랭킹이 확 올랐다.

랭킹 시스템이 정확히 일대일 교환 방식은 아니라, 브라이언의 38위를 뺏지는 못했지만.

‘현재 50위쯤 되려나?’

90위 언저리에서 50위 언저리로 뛰어올랐으니 엄청난 상승이었다.

은혁이 랭커로서의 지위를 걸고 설득하자, 엘리슨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는 수 없지요.”

엘리슨은 한참 만에 고뇌를 마쳤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 *

평화 병원.

길드연합국 국립 중앙 병원만큼이나 훌륭한 병원이었다.

평화 병원 지하 8층 격리 병동의 1인실에는 워잭이 힘겹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으으으……!”

워잭의 거대한 몸에 묻은 피눈물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갑옷의 틈새로 피눈물이 흘러 들어갔는데, 갑옷을 벗기고 세척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섣불리 손을 대면 피눈물은 다른 희생자 곁으로 흘러가려 했기 때문이다.

워잭이 병원실에 누워 있는 것도, 방호복을 입은 플레이어들과 염동력의 사용이 가능한 초능력자의 도움으로 겨우 옮긴 것이다.

“자, 나머지 분들은 다 나가주세요.”

은혁은 염훈만 남겨두고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엘리슨은 문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은혁아. 근데 너 정말 치료법 알아?”

“물론이지.”

은혁은 행복 포션을 꺼냈다.

“어? 그건……!”

“행복 포션이지.”

“와, 그게 치료제였어?”

“이 경우에는 그렇지.”

“그러고 보니 행복 포션의 효능이 구체적으로 뭐야?”

“일반적으로? 마시면 행복해지지만, 혈관에 주사하면 죽어.”

위장을 통해 흡수할 때는 서서히 흡수되면서 약효가 조금씩 손실된다.

하지만 혈관으로 흡수할 때는 그런 게 없이 바로 뇌혈관으로 들어간다.

“몇 방울만 먹어도 행복감을 느끼는 포션인데, 그걸 통째로 정맥 주사 하면? 뇌가 그대로 가버리는 거지.”

“야!”

“왜 소리쳐?”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뭔 소리?”

“그, 뇌가 가버린다느니 하는 소리 하지 마.”

염훈은 의외로 이런 부분에서는 엄격했다.

“허참, 알았다.”

“하여간 그걸 워잭에게 먹일 거야?”

“아니, 혈관에 주사할 거야.”

“어? 그럼 가버, 아니, 죽잖아?”

“쉿, 목소리 낮춰. 바깥에서 엘리슨이 다 듣겠다.”

이미 듣고 있었다.

‘강은혁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엘리슨은 회귀자가 아니었기에, 은혁이 하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 병실에 뛰어 들어가 말려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은혁은 염훈에게 이어서 설명했다.

“피눈물의 성모가 흘린 피눈물은, 닿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괴로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지. 이건 독극물과는 달라서, 불행한 추억을 확 뒤집는 충격 요법으로 극복이 가능해.”

은혁의 말에 염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러니까 불행한 추억을 계속 떠올리고 있는 사람에게 행복 포션을 주사함으로써 미칠 듯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불행을 중화시켜서 깨어나게 하는 거구나?”

“그렇지.”

“과격하지만 꽤 괜찮게 들리네.”

문밖에서 엿듣던 엘리슨 또한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을 품었다.

“문제는 행복 포션 주사의 위력이 너무 강해서 죽는다는 건데, 여기서 염훈, 네 노력이 필요해.”

은혁은 [그림자 결속]으로 염훈과 워잭의 그림자를 연결시켰다.

“아, 이건.”

“맞아. [2초 무적]의 힘을 빌리는 거지.”

행복 포션의 정맥 주사 부작용을 [2초 무적]의 힘으로 견디게 하는 것이다.

[2초 무적]의 효과는 짧지만, 물리 공격이건 상태 이상이건 대놓고 무시하고 씹는 스킬이라 효과가 좋았다.

“준비됐어? 타이밍 어긋나면 워잭은 치료된 직후 부작용으로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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