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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97화 (97/434)

97화 : 범인이 밝혀지다

“으으, 잠시만.”

염훈은 [정화] 스킬로 내면의 떨림을 사라지게 했고, 은혁은 의료 카트에서 큰 주사기를 찾아 행복 포션을 넣었다.

“준비됐지?”

“오, 오케이!”

“좋았어. 셋, 둘, 하나……!”

푸욱!

의료 자격과 가장 거리가 먼 은혁이, 냅다 치료를 시작했다.

1초…… 2초…… 3초.

그리고 4초 뒤 부작용이 발생했다.

“커컥!!”

워잭이 발작하듯 몸을 뒤틀었다.

워잭의 갑옷에 들러붙은 피눈물이 괴로운 듯이 꿈틀거리다가 그대로 소멸했다.

“지금이다!”

“[2초 무적]!!”

* * *

“대충 그렇게 된 겁니다.”

은혁은 깨어난 워잭에게, 청염백광단검으로 멜론을 자르며 설명을 마쳤다.

“으음, 그랬군.”

워잭은 납득하더니, 침대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내 생명의 은인이군.”

쿠쿵!

워잭은 은혁과 염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엇?!”

멜론을 수박처럼 먹던 염훈은 놀라서 일어났다.

“아니, 이렇게까지 하실 건 없는데!”

“아니, 해야 한다.”

워잭은 무릎을 꿇은 채 두 주먹을 바닥에 대고 더욱 허리를 숙였다.

“내 몸은 나 혼자만의 것임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 쓰러지고 나서 깨달았다.”

워잭은 피눈물의 성모가 남긴 피눈물 속에서, 무력했던 과거의 기억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100층탑에 들어오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정의와 질서를 추구하는 성격이었고, 그 성격 때문에 손해를 자주 봤다.

정의 길드의 길드장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으로 우뚝 설 수 있었고, 워잭은 맹세했다.

‘절대로 내 사리사욕을 위해 행동하지 않겠다. 길드연합국의 모든 플레이어를 위해 행동하겠다!’

그동안 그 맹세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피눈물의 악몽을 극복하면서 그 맹세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이번 일이 좋은 약이 되었군.’

은혁은 워잭을 보며 히죽 웃고 싶은 걸 참느라 애썼다.

만약 피눈물 속에 더 오래 방치되었다면 워잭의 성격이 이상하게 변했겠지만, 은혁이 빠르게 해결한 덕분에 오히려 워잭의 다짐이 강해졌다.

“내 다짐을 지킬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두 사람! 진심으로 감사한다!”

‘좋아, 좋아. 은혜를 갚으라 마라 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군. 역시 워잭은 말이 통한다니까.’

은혁은 히죽 웃는 걸 감추지도 않았다.

“흑흑. 이거거든. 이게 사람 살리는 맛이거든. 흐흐흑…….”

염훈은 염훈대로 감동받아서 묘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크흠.”

한쪽 구석에 서 있던 엘리슨이 헛기침을 했다.

“일단 워잭 님의 건재함을 알릴까요? 그래서 치안을 회복…….”

“아니, 안 됩니다.”

은혁이 얼른 말했다.

“워잭 님을 암살하려 한 놈의 배후를 찾아 박살 내기 전까지는, 워잭 님은 병원에 누워 계신 걸로 해야 합니다.”

워잭이 깨어난 것은 현재 극비였다.

“하지만 범인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전 압니다. 아니, 알 수 있습니다.”

“네? 어떻게요?!”

“그 엑토플라즘과 대면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워잭 님을 깨울 때랑 비슷하게.”

엘리슨은 은혁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한 상태라서, 은혁의 부탁을 즉시 들어줬다.

* * *

수사본부의 지하실.

“흐어어어…….”

아주 작은 크기의 엑토플라즘이, 진실의 도끼의 사슬에 연결되어 신음했다.

이성이 붕괴된 것이 분명했다.

그 엑토플라즘 옆에는 그 엑토플라즘의 본체가 있었다.

“은혁아. 정말 이 방법이 될까?”

“물론!”

은혁의 부탁으로, 이곳에는 은혁과 염훈만 있었다.

특수 수사본부의 책임자인 엘리슨은 문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림자 결속].”

스르륵.

놀랍게도 엑토플라즘에도 그림자는 있었다.

은혁은 엑토플라즘의 그림자와 본체의 그림자를 강제로 연결시켰다.

“염훈. 네 차례다.”

“[신성한 인도].”

파앗!

방황하는 혼령이나 지박령 따위에게 가야 할 곳을 인도하는 스킬의 빛이 방출됐다.

“크우우우.”

며칠간 쉬지 않고 고통받은 엑토플라즘은, 그림자가 연결된 본체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아아아.”

본체가 신음했다.

엑토플라즘이 본체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자 은혁과 염훈 모두에게 업적 달성 메시지가 떴다.

-5층 최초로 영혼과 육체를 강제로 접합시키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영혼의 성좌, 소울리스가 감탄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성좌, 소울리스의 호의를 획득하셨습니다!

‘음, 우리가 최초였나?’

회귀 전 은혁은 영혼이나 엑토플라즘과는 거리가 멀었고, 필수 지식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업적은 예상치 못한 보너스였다.

“와, 소울리스가 뭔지는 모르지만, 왠지 좋은 성좌일 것 같네. 하하.”

염훈은 흐뭇해했고, 은혁은 냉철하게 생각했다.

‘내가 심연에 떨어질 때 쓸모가 있을지도.’

-도적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도적 숙련도 : 21%+.

도적 숙련도도 아주 조금 올랐다.

염훈 또한 성기사 숙련도가 일부 올랐다.

“좋아. 이제 엑토플라즘이 본체 속에 들어갔으니, [소매치기] 스킬을 쓸 수 있겠지.”

은혁은 지체 없이 [소매치기] 스킬을 썼다.

파앗!

“찾았다.”

계약서를 발견했다.

“빨리 읽어봐, 빨리!”

염훈이 재촉했다.

“추리 소설 같은 거 보면 막 암호로 적혀 있더만!”

“알았으니 보채지 좀 마.”

그리고 읽는 시늉을 했다.

‘사실 나는 계약서를 안 읽어도 답을 다 아는데.’

추리 소설에 비유하자면, 은혁은 추리 소설을 읽는 대신 스포일러 포함된 자세한 리뷰를 이미 읽고 온 사람과 같다.

“으음! 오옷, 이건!”

은혁은 갑자기 경악하는 척했다.

약간은 염훈을 위한 팬서비스(?) 차원의 애드리브였다.

“오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뭔데? 뭐라고 적혀 있는데?”

염훈이 발을 동동 구를 지경이 될 때까지 뜸을 들인 은혁은 진상을 밝혔다.

“한 고위급 인사가 이 엑토플라즘 능력자에게 워잭 암살을 명령했어. 그리고 워잭 암살이 5분 이내에 이뤄지지 않는 경우, 자신이 ‘손’을 쓰겠다고 적혀 있네.”

“그럼 그 고위급 인사의 이름도 적혀 있어?”

“응.”

“누군데?!”

은혁은 범인의 이름을 밝혔다.

“트윈스야.”

처음 듣는 이름이라 염훈은 좀 김이 샌다는 표정이었다.

“……트윈스가 누군데?”

“구원 길드의 부길드장.”

* * *

구원 길드 본부.

수사권을 지닌 경비대가, 워잭과 엘리슨의 인솔 하에 우르르 출두했다.

그 일행의 맨 뒤편에는 은혁, 염훈도 있었다.

“구원 길드면 꽤 착한 쪽 아니었어?”

염훈은 분개했지만 은혁은 심드렁했다.

“7대 길드 중에 완전히 착한 길드는 없어.”

“구원자를 기다리는 길드라며? 근데 왜 그 모양이래?”

“직접 가서 대화할 기회가 있을 거야. 일단은 조용히 뒤따르자고.”

워잭과 엘리슨은 트윈스의 방에 들어간 상태였다.

10분 정도 조용히 대화를 나누더니.

벌컥!

“강은혁 님? 들어와 주십시오!”

엘리슨이 찾았다.

“염훈이랑 같이 가도 되죠?”

“좋으실 대로.”

은혁과 염훈은 트윈스의 방으로 들어갔다.

트윈스는 책상에 엉덩이를 살짝 걸친 자세로 서 있었다.

보라색 긴 팔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어서 오세요, 두 분. 제가 구원 길드의 부길드장 트윈스 원입니다.”

정중한 인사를 한 그녀는 우아하게 한쪽 손을 내밀었다.

염훈은 그 손짓이 손등의 입맞춤을 기대하는 귀부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리고 이쪽이 공동 부길드장 트윈스 투입니다. 투야, 인사해.”

트윈스 원이 내민 손등에는 사람 얼굴이 있었다.

작은 손등에 얼굴이 달려 있어서 그런지 눈코입이 한곳에 모여 있었고, 눈은 크게 뜨지도 못했으며 말할 때마다 입에 코가 눌려서 불편해 보였다.

쎄엑, 쎄엑…….

말 한 번 하면 숨쉬기도 가쁜지 호흡이 거칠었다.

“인사하래도? 투야.”

“아, 안녕하째여…….”

발성 기관도 좁아서인지 짹짹거리는 목소리였다.

“우린 쌍둥이랍니다.”

트윈스 원이 빙긋 웃더니 덧붙였다.

“참고로 이번 사태의 일은 제 여동생의 짓이지요. 그치? 투야?”

트윈스 원이 트윈스 투를 향해 물었다.

트윈스 투는 우물쭈물했다.

“바로 대답 안 하네?”

트윈스 원은 옆에 놓인, 찻잔 속에 손을 손등부터 넣었다.

“어푸풉, 꾸루룹!”

“그만해!”

염훈이 나서서 말리려 했지만.

“참아.”

트윈스 원은 부길드장이었다.

섣불리 손을 댈 수는 없었다.

“그쯤 하시오.”

워잭이 주의를 줬다.

“어머? 제가 제 손을 찻잔 속에 넣는 게 위법의 소지가 있나요?”

“당신 손등에 달린 부길드장은 플레이어로 인정받은 별개의 객체요. 당신 몸과 연결되어 있다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거요.”

“후훗. 그랬죠. 우리 투도 플레이어였죠. 투야, 미안해.”

트윈스 원이 손을 빼냈다.

“후에엑, 쿠에엑.”

트윈스 투는 연신 괴로워했고, 트윈스 원은 물기를 닦아줬다.

“저를 부른 이유나 말하시죠.”

은혁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 그랬죠. 제가 당신을 부른 건 당신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 당사자라죠?”

트윈스 원은 은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좀 더 친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요.”

트윈스 원이 친근한 듯 말하려 했지만, 은혁은 페이스에 끌려 들어가기 싫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일단 워잭 님과의 일부터 마무리 지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후훗. 자수하라고 권하시는 건가요?”

“자수?”

“네. 범인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거 말이에요.”

“그게 성립이 됩니까?”

“어머? 안 되나요?”

“자수라는 건 수사 기관에 스스로 가야 하는 경우에만 성립될 텐데요. 지금은 정의 길드와 경비대가 함께 당신의 죄에 대한 증거를 들고 온 상태이니, 자수가 성립되긴 어렵지 않나요?”

“흐음. 법적인 자수의 성립은 되지 않나 보군요.”

“그리고 자수는 직접 해야 하는 겁니다. 당신은 당신 손등에 붙은 동생이 저지른 짓이라 했죠.”

“맞아요.”

“우린 아직 당신 동생이 자백하는 걸 듣지 못했는데요.”

“어머, 여태 안 했나요?”

“당신이 찻잔에 넣고 괴롭힌 탓이죠.”

“그렇군요. 투야. 자수하렴.”

트윈스 원이 부추겼다.

하지만 손등에 붙은 트윈스 투는 우물쭈물하며 남들 눈치만 봤다.

“후훗. 부끄러운가 봐요.”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다.

워잭은 다시 한번 증거를 내밀었다.

“동생에게 떠넘기는 짓거리는 그쯤 하시오! 이 편지에 적힌 내용과 서명은 모두 당신의 것이 아니오?!”

편지에는 ‘트윈스’라는 서명이 분명히 적혀 있었다.

“제 동생 서명이네요.”

트윈스는 트윈스 원의 서명이 될 수도 있고, 트윈스 투의 서명이 될 수도 있다.

“제가 왼손으로 한 서명이긴 하지만, 제 왼손의 주인은 제 동생이지요. 저는 제 동생의 지시대로 서명했을 뿐이랍니다.”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요?!”

워잭이 소리를 질렀다.

한발 물러서 있던 염훈도 어이가 없어서 목소리를 냈다.

“이봐요! 거, 너무하시네!”

“어머? 그쪽은 누구시죠?”

“나는 강은혁의 동료인 성기사 염훈입니다!”

“반갑네요. 뭐가 너무하다는 것인지?”

“당신이 손등에 달린 여동생을 괴롭히는 걸 우리가 다 봤구만! 뭐가 당신 여동생이 시켜서 억지로 편지를 썼다는 겁니까?”

“믿기 어려우신가 보군요.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일이랍니다.”

“허!”

“하지만 염려 마세요. 재판에서는 모든 혐의를 인정할 것이고, 감옥에는 저도 같이 들어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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