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 검은 부족 오크 학살
21층.
늦은 밤.
초원, 사막, 언덕의 복합 지형으로 이뤄진 스테이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지만 별빛은 잘 보이지 않았다.
오크 군세가 낮에 싸우면, 아니, 이동하기만 해도 먼지가 부옇게 치솟아서, 아무리 맑은 날이어도 미세먼지로 별빛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번 지점 캠프의 플레이어들은 지친 몰골로 모닥불에 모여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초원 늑대 고기로 만든 스튜로, 감자, 양파, 향신료, 소스, 간편 육수를 통째로 붓고 끓이는 요리였다.
요리가 완성되자, 플레이어들은 식기에 스튜를 담고, 딱딱한 빵을 곁들여 식사했다.
“그래도 오늘은 잘 버텼어.”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버티긴 했지만…….”
플레이어들은 캠프의 모닥불이 꺼질 기세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21층은 21층~24층 통합 층이 시작되는 곳이었고, 시작 지점 주변에는 캠프가 있었다.
이번 통합 층은 21층과 24층 사이의 눈에 띄는 구별 지점이 없는, 평면으로 넓은 스테이지였기에, 차근차근 공략해 올라가는 개념으로 온 플레이어들은 크게 다쳤다.
다쳐가며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시작 지점 주변의 캠프 확보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점이다.
다른 플레이어가 오는 장소이기도 하고, 여차할 때 5층으로 도망칠 도주용 게이트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만약 시작점을 뺏기면, 오크 주술사들이 시작 지점에 함정을 잔뜩 깔아서 플레이어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죽을 수도 있다.
시작 지점은 21층 곳곳에 24개가 있었지만, 무려 13개를 뺏겨서 11개만 남아 있었다.
“남은 캠프 11개까지 다 뺏기면 어쩌지?”
“시발, 중원 길드 놈들. 길드를 포기할 거면 캠프를 인수인계하고 포기했어야지.”
거대 길드였던 중원 길드가 모든 걸 포기하고 떠난 순간, 여러 캠프가 텅 비어 버렸고, 오크들이 모조리 짓밟았다.
“역시 7대 길드에 도움을 청해야 하나?”
자력으로 21층~24층을 클리어한 자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어지간한 강자가 아니라면, 7대 길드 중 한 곳에 공략대 참가 도움을 요청해서 24층 구간을 뚫는 게 기본이었다.
상승 길드는 그 방식으로 크게 부흥했었지만, 강은혁에게 브라이언이 밟힌 이후로, 대규모 공략대를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쿠오오오오……!!
멀리서 무언가가 울부짖었다.
“뭐지?!”
“21번 캠프 쪽에서 나는 소리인데?”
“미친, 거긴 흑색 부족 점령지인데.”
흑색 부족이 중원 길드의 방어선을 뚫고 쟁취한 장소였다.
그 충격으로 중원 길드는 방어 시설을 모두 방치한 채 도망쳤고, 21번 캠프는 고스란히 오크들의 군사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야습인가?”
“아니. 탐지 마법에 걸린 건 없어.”
“그보다 무슨 비명 같았는데?”
“말도 안 돼. 갑자기 21번 캠프 한복판에서 비명이 왜…….”
화르르…….
갑자기 21번 캠프가 불길 때문에 환하게 변했다.
끄아아아……!
쿠에에엑……!
오크들의 비명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 * *
“퓨전 스킬 [가시 지옥].”
[메탈 스파이크 소환] 스킬과 [섀도 임펠링] 스킬을 융합한, 금속과 그림자의 가시 지옥이 사방에 펼쳐졌다.
“쿠에엑!”
“캬아아악!”
중갑옷을 입은 오크라고 해도, 자기들 그림자 밑에서부터 위로 솟아오르는 그림자, 가시 복합 함정에는 피해를 입었다.
“[네이팜 스프레이]!!”
화르르륵!!
콰콰콰쾅!!!
검은 부족 오크들은, 산 채로 장작이 되어 환하게 타올랐다.
“캬아악! 바보 같은 놈들! 경계를 어떻게 선 것이냐!”
21번 캠프를 장악한 부대장급 오크가 나타났다.
‘에이, 오크 전투 대장은 아니네.’
은혁은 실망했다.
왜냐하면 21층의 미션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21층 메인 미션 : 오크 전투 대장 처치.>
-목표 : 오크 전투 대장을 처치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오크 군주의 위치가 담긴 힌트 획득.
-실패 시 페널티 : 오크들이 극도로 경계하게 됨.
-제한 시간 : 3일.
“야, 너네 지휘관은 어디 있냐?”
“캬악! 쳐라!!”
오크들이 우르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림자 도약].”
파앗!
은혁은 한참 떨어진 곳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왔다.
‘밤이라 그런가 편하네.’
어두운 곳에서는 그림자가 넘쳐나므로 유인해서 피하기가 쉬웠다.
“[플레임 샷].”
타앙! 타앙!
손가락에 화염탄을 모아 쏘는 스킬로, 오크 경계병들을 죽였다.
-마법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마법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마법사 숙련도 : 21%+.
원샷원킬이라 그런지, 하급 오크를 죽였음에도 숙련도가 올랐다.
“캬악! 저기다!!”
우르르르……!
오크들은 은혁을 찾아 달려들었다.
눈치 빠른 오크들이 횃불과 군용 야광석을 잔뜩 들고 와서 그림자를 지우려 했지만.
“[돌 부수기].”
파앗!
쩌저적!
바닥의 돌이 갈라지고, 오크들의 발밑에 작은 구덩이가 몇 개 생겼다.
“으악?!”
“캬아악!”
어린애가 대충 만든 허방다리 같은 함정이었지만, 밤중에 횃불 들고 달리던 오크들에게는 그것만 해도 치명적이었다.
-드루이드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드루이드 숙련도 : 32%.
‘허참. 실제로 깔려 죽은 놈도 있나 보네.’
검은 부족 오크들의 육중하고 무거운 갑옷이 이 경우에는 도리어 독이 되었다.
“흡!”
은혁은 재빨리 현장을 이탈해서 오크 궁수를 처치했다.
그럼 또 오크들이 더 많이 횃불을 모아서 달려들었다.
그리고 또 도주.
이 짓을 한 5회쯤 반복했다.
‘너무 쉬워서 그런가 숙련도도 안 오르네.’
같은 방식을 너무 대놓고 반복해서인지, 마법사 숙련도와 드루이드 숙련도는 더 오르지도 않았다.
“캬악! 놈이 정문으로 간다! 이대로 쫓아내자!!”
부대장급 오크가 외쳤다.
“이 멍청한 놈!!”
촤악!
오크 전투 대장이 부대장급 오크를 칼로 쳐서 죽였다.
“놈은 거의 포위됐다! 이대로 놈을 죽여야 한다!”
“캬악, 전투 대장이시여! 놈은 신출귀몰합니다! 특히 그림자를 이용할 줄 압니다!”
21층쯤 되자 무식한 오크들도 눈치는 빠른 편이었다.
“안다! 놈이 우리 동포들을 끊어먹듯 죽이고 있다는 걸!”
오크 전투 대장도 은혁이 보통이 아님은 잘 알고 있었다.
“허나! 마지막에는 물량이 많은 우리가 이긴다!! 집요하게 추적하여 아예 지금 죽여야 한다! 나를 따르라!!”
“와아아아아아!!!”
-오크 전투 대장의 지휘력으로, 오크 군세의 전투력이 향상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경고를 보내왔다.
자고 있던 오크, 경계 나가 있던 오크까지 모두 와서, 21번 캠프의 오크 전체가 은혁만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아주 똑똑하진 않네.’
은혁은 일부러 대량 살상을 하는 대신 깔짝깔짝 유인하는 식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래야 염훈이 일하기 편하지.’
이곳, 21번 캠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꽤 높은 ‘검은 언덕’이 있다.
그곳은 22층으로 판정되는데, 그곳의 ‘깃발’을 획득하는 것이 22층 메인 미션이다.
은혁이 21층에 해당하는 이곳에서 시선을 끌고 클리어하는 순간, 염훈은 텅 빈 22층 언덕을 시간차 클리어…… 하는 것이 두 사람의 계획이었다.
‘이제 한꺼번에 처리해야지.’
오크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은혁은 오크들을 한 방에 큰 기술로 전멸시키기 위해 유도하는 중이었다.
‘음, 캠프 정문으로 유도하면 딱 좋겠네.’
은혁은 캠프 정문을 지키는 오크 둘을 처치하고, 나머지 120여 마리의 오크들이 몰려오길 기다렸다.
“[명상].”
빠르게 정신을 집중한 은혁은, 돌을 지배하는 드루이드로서의 스킬과 화염을 지배하는 마법사로서의 스킬을 동시에 썼다.
“[돌 부수기]. [원기 부여].”
파앗! 파앗!
은혁이 부순 바닥의 돌에, 은혁의 의지가 담긴 원기가 부여되었다.
일반적인 [원기 부여]는 생명체에게만 통하는 스킬이지만, 은혁은 돌을 지배하는 드루이드의 고유 특성으로 돌 자체에 원기를 부여했다.
“그다음 [화염 지배]로 녹인다.”
치이이익……!
원기를 머금은 암석이 잔여 가스를 내뿜고, 고열에 녹은 돌로서의 용암으로 변했다.
“크웃?”
“머, 멈춰라! 멈춰!”
정문 쪽으로 달려오던 오크들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멈춰 섰다.
이글거리는 열기와 화산 가스 냄새는 기세등등한 오크들마저도 흠칫하게 했다.
반면에 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잘 안 되네.’
은혁은 퓨전 스킬로 [마그마 스트림] 같은 광역 스킬을 쓰고 싶었지만, 아직 그 정도의 실력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사실, 돌과 화염을 지배하는 능력만으로 용암을 구현해낸 것만 해도 엄청난 업적이었다.
-드루이드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드루이드 숙련도 : 34%.
-마법사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마법사 숙련도 : 23%+.
‘일단 쏘자!’
“[라바 블래스트]!!”
투화악!!
압축된 용암이 쏘아져 나갔다.
발사된 용암의 크기는 소형차 크기였다.
순수 플라즈마와 달리 용융된 대지는 끈적하고 묵직했으며, 발사 속도 자체는 느린 편이었다.
하지만.
추화아아악……!!
맨 전위의 오크들은 열기에 타죽었고, 중위의 오크들은 갑주째 익어 죽었다.
비명도 못 지르고 수십 마리가 죽고, 오직 후위의 오크들만이 살아남아 도망쳤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2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47.
-드루이드 숙련도가 4% 증가했습니다!
-현재 드루이드 숙련도 : 38%.
-마법사 숙련도가 4% 증가했습니다!
-현재 마법사 숙련도 : 27%+.
다수의 오크를 한 번에 학살한 덕에 레벨과 숙련도가 올랐다.
“에이, 역시 용암의 양이 부족하네. 전멸은 무리구만.”
정작 은혁은 아쉬워했다.
회귀 전 아크 메이지와 아크 드루이드가 함께 쏜 [마그마 스트림]의 위력을 봤던 탓에 눈이 한없이 높아져 있었다.
계곡 하나를 통째로 마그마로 채우고도 남는 위력이 은혁의 목표였다.
‘그래도 나는 둘이서 합체기로 쏘는 게 아니라 혼자 쓸 수 있지. 그런 부분에서는 내가 더 낫다.’
그 사실에 만족한 순간.
-축하드립니다! 21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오크 군주의 위치가 담긴 힌트 쪽지를 획득하셨습니다!
“흠.”
은혁은 그 자리에서 이동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염훈이 녀석한테 신호가 갔을 텐데.’
21번 캠프의 오크를 학살하고 화염 스킬로 불을 환하게 피울 테니, 그걸 신호로 삼으라고 말해뒀다.
무엇보다 파티를 맺은 상태이므로 21층 클리어 메시지가 염훈에게도 갔을 터.
22층 메인 미션은 다음과 같다.
<22층 메인 미션 : 깃발 획득>
-목표 : 흑색, 백색, 회색, 황색 오크 부족이 있다.
어떤 부족이건 상관없이, 부족 깃발을 하나 획득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획득한 깃발에 따라 다름.
-실패 시 페널티 : 모든 오크 부족이 현상금을 건다.
-제한 시간 : 3일.
21층 메인 미션을 깨고 22층에 가면, 오크들이 경계한다.
그래서 은혁이 21층 메인 미션을 깨는 동안, 염훈을 미리 보내서 시간차로 바로 22층 메인 미션을 깨도록 해뒀다.
‘좀 늦는데? 내가 가봐야 하나?’
은혁이 생각한 순간.
-축하드립니다! 22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