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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00화 (100/434)

100화 : 작전 주도권 다툼

아이템 수령 메시지는 따로 뜨지 않았다.

클리어 당사자가 염훈이니, 검은 부족 깃발은 염훈이 수령했을 터.

“자, 그럼 만나기로 한 지점으로 가볼까.”

21층과 22층의 경계가 되는, 언덕 남서쪽 작은 숲.

그곳에서 보기로 했다.

한데, 염훈이 [신성한 날개]를 쓰고 은혁에게 다가왔다.

‘왜지?’

[신성한 날개]는 밤에 쓰면 너무 눈에 띈다.

그래서 은혁은 긴급 사태가 아니면 그걸 써서 합류하지 말고 걸어서 만나자고 해뒀다.

‘혼자 오는 게 아니네?’

염훈은 혼자가 아니라 한 플레이어를 데리고 날아왔다.

은혁은 그 플레이어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자.”

은혁이 손짓했다.

그러자 염훈이 데리고 온 플레이어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희 1번 캠프로 가시죠.”

* * *

오페아 길드.

오리엔탈 길드, 페이퍼 길드, 아이언 길드의 연합 길드다.

앞 글자만 합쳐서 오페아 길드로 불렸다.

염훈이 데리고 온 플레이어는 그 오페아 길드의 연합 길드장이었다.

연합 길드의 본부는 1번 캠프였고, 플레이어들이 100명도 넘었다.

“와씨, 진짜 강은혁이네.”

“얼마 전에 브라이언을 처발랐다지?”

“근데 우리 캠프에는 왜 온 걸까요?”

“아무리 강은혁과 염훈이라도 여기서는 우리들의 도움이 필요한 거겠지.”

“하긴. 오크 새끼들이 워낙 많아서.”

플레이어들은 수군거렸고, 그들을 인솔하는 오페아 길드의 길드장은 왠지 미안해했다.

“우리 길드원들이 예의가 없어서 미안합니다. 워낙 피로가 쌓여서 신경이 좀 곤두선 탓에…….”

“괜찮습니다.”

“어서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길드장은 미안해하며 은혁과 염훈을 자신의 천막 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의자를 권하고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오페아 길드의 길드장 터스크입니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태국 출신 플레이어였다.

B+급 직업인 ‘체력을 회복시키는 궁술사’였다.

은혁이 그의 직업과 출신지까지 아는 이유는…….

‘회귀 전 은인이니까.’

은혁과 염훈이 본격적으로 동료가 되어 도전한 21층은 매우 어려웠다.

오크 부대에 포위되어 퇴로를 뚫으려는 순간, 터스크가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나 은혁과 염훈에게 도움을 준 적 있었다.

물론, 터스크는 은혁과 염훈을 부하로 영입하기 위해 도왔던 거고, 은혁과 염훈이 거절하자 그 이상의 도움을 주진 않았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도움을 받은 것 자체는 사실이고, 은혁은 한 번 정도는 은혜를 갚아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분이 싸우는 소리는 멀리서도 들리더군요. 21번 캠프였죠?”

터스크가 설명했다.

“한데 제 부하들이 정찰한 바로는, 21번 캠프에서 싸우는 모습이 워낙 흉흉한지라, 어설프게 접근하면 휘말려 당할 것 같다고 보고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직접 정찰대를 이끌고 언덕으로 갔습니다.”

“어부지리를 노린 거군요?”

은혁이 장난기 담은 질문으로 찔러 들어갔다.

“솔직히, 맞습니다.”

이미 터스크에게는 20층, 21층 메인 미션을 다 클리어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길드에 가입하고 파티를 맺은 부하들의 21층 메인 미션 클리어를 돕기 위해, 다시 한번 깃발을 뺏으러 간 것이다.

“그곳에서 저희보다 먼저 검은 언덕의 깃발을 뺏은 염훈 님을 발견했습니다. 서로 놀랐죠. 하하!”

잠시 경계한 두 사람은 곧 대화로 입장을 확인하고, 은혁을 향해 비행해서 간 것이다.

‘그렇게 된 거였군.’

“이렇게 두 분을 모신 이유는 잘 아시겠지요? 여러분은 저희를 모르겠지만, 저희는 여러분을 압니다.”

터스크는 은혁과 염훈을 보물단지 보듯 하며 눈을 반짝였다.

‘달콤씁쓸하구만.’

회귀 전 터스크는, 은혁과 염훈을 무시하진 않았지만, 영입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수준으로 취급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저희 길드에 참가해 달라 부탁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두 분의 21층~24층 공략의 뒤를 따라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죠.”

“물론 싫으시겠지만…… 에?”

“그러셔도 됩니다. 파티 맺고, 같이 클리어하시죠.”

“그래도 됩니까?!”

“단,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자 되레 염훈이 중얼거렸다.

“으으, 또 무슨 조건을 걸려고.”

“…….”

같은 편인 염훈조차도 은혁이 조건 운운하면 왠지 불안해졌다.

“그, 조건은 무엇인지요?”

“24층까지 완전히 공략이 완료될 때까지, 제 지시를 따라달라는 겁니다.”

“음…….”

터스크는 잠시 고민했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터스크 밑의 부하들의 일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결심을 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은혁의 지시를 무조건 따른다는 건 위험하지만,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24층 너머로 가지 못하고 정체될 수 있었다.

“좋습니다. 스탯창 열고 [맹세]라도 할까요?”

“하하! 그럴 것까지는 없습니다. 저도 터스크 님을 믿습니다.”

은혁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터스크에게 말했다.

“이런 곳에서 오랫동안 버티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겁니다. 큰 용기와 끈기, 부하에 대한 관리력과 상호 간의 신뢰를 모두 필요로 하는 일이지요. 그러니 터스크 님과 그 발언에 대한 신뢰도는 그만큼 높습니다.”

은혁의 목소리에는 친밀함과 경의가 6 대 4로 섞여 있었고, 터스크의 경계심과 불안감을 싹 녹였다.

사실, 좀 감격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까지 절 높이 평가해 주실 줄은…….”

“하하! 같은 편이 되어 듬직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 해맑게 웃었다.

‘아이고, 저 사람 또 부려먹히겠네.’

염훈은 반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 * *

이른 아침.

길드장 터스크의 천막에 두 사람이 더 들어왔다.

페이퍼 길드와 아이언 길드의 길드장이었던 이들로, 지금은 부길드장들이었다.

“오, 두 분. 마침 잘 오셨습니다.”

터스크가 말했지만, 천막에 들어온 두 사람은 터스크를 무시했다.

그리고 터스크와 작전 구상 중이던 은혁과 염훈에게 성큼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페이퍼 길드의 길드장 존 페이퍼입니다. 페이퍼라고 불러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아이언 길드의 길드장 아이언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의 공식적인 신분은 오페아 길드의 부길드장이었지만, 독립된 길드 시절의 직위를 따라, 스스로를 길드장이라 밝혔다.

터스크가 두 사람을 소개시켜 주려 했지만, 아이언의 말이 더 빨랐다.

“듣자 하니 강은혁 님과 염훈 님이 우리, 터스크 길드장님과 파티를 맺으셨다고요.”

“맞습니다.”

“우리 동의도 없이?”

페이퍼와 아이언은 호의적인 표정이 아니었다.

공식적으로는 터스크가 오페아 길드의 길드장이지만, 두 사람은 자존심을 세우며 여전히 자신들을 동일한 권리를 지닌 길드장으로 여겼다.

“이 두 분의 실력은 7대 길드의 부길드장급입니다. 영입하는 게 당연한 일이죠.”

터스크도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설명했다.

하지만 페이퍼와 아이언은 고개를 저었다.

“레나와 브라이언을 쓰러뜨렸다는 소문은 저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합 목적은 우리들끼리 주체적으로 미션을 깨기 위함 아닙니까? 외부 인사를 영입할 때 왜 우리 허락을 안 구한 겁니까?”

페이퍼와 아이언도 은혁과 염훈의 실력은 인정했다.

하지만 자기들 동의 없이 터스크가 멋대로 결정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다.

‘뭐, 그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은혁은 이해를 하면서도, 시간을 낭비하는 걸 싫어했다.

터스크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설득했다.

“제가 급하게 영입한 점은 인정합니다. 사과드리죠.”

“사과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입니다.”

페이퍼와 아이언은 깐깐하게 굴었다.

내심, ‘우리의 발언권과 주권을 높일 기회다’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 태도가 너무 빤해서 터스크도 어처구니없어했다.

“그렇다고 이 두 분을 방출하자고 할 생각은 아니겠죠?”

“…….”

페이퍼와 아이언은 시선을 은혁과 염훈 쪽으로 돌렸다.

마치, ‘당신들이 부탁하면 봐줄 수도 있고’ 하는 듯했다.

염훈도 그 의도가 빤히 보이는지, 화를 내는 대신 허허 웃었다.

“지금 웃은 겁니까?”

“지금 이 상황이 우습게 보입니까? 이건 두 분의 영입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실, 영입은 터스크 측에서 먼저 했다.

그리고 터스크가 연합 길드의 길드장이라면, 사실 이야기는 끝이다.

터스크가 착하게 누그러진 태도로 나오니까 아이언과 페이퍼가 유난히 까다롭게 구는 것일 뿐.

“영입의 문제라. 그럼 실력을 입증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싸움을 즐기는 은혁은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언과 페이퍼가 흠칫했다.

그들도 은혁의 성품과 실력에 대해서는 들은 게 있었다.

“어떻습니까? 간단한 대련이라도?”

“아니, 대련이라니.”

“저와 염훈, 그리고 아이언 님과 페이퍼 님이 각각 일대일로 붙는 거죠. 우리가 10초 안에 못 이기면 그쪽 승리인 걸로 하죠. 그리고 우리가 당신들 밑으로 들어가는 걸로.”

“뭐, 뭐라고요?”

“단, 우리가 10초 이내에 당신을 이기면 당신들은 21층~ 24층을 다 깰 때까지 우리 밑에 들어오는 겁니다.”

“…….”

그렇게 그들은 공식적인 [계약 대결] 규칙을 정했다.

-은혁은 아이언과, 염훈은 페이퍼와 각각 일대일로 싸운다.

-은혁과 염훈은 10초 이내에 이겨야 하며, 둘 중 한 명만 지거나 무승부가 되어도, 전체가 패배한 것으로 간주한다.

-무기의 사용은 금한다.

양쪽 모두가 동의했다.

“문제는, 대련 도중에 상대가 죽는 경우인데, 이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은혁이 묻자, 아이언과 페이퍼는 불쾌해했다.

겨우 10초짜리 대련인데 죽음을 거론한다는 건, 은혁 측이 자신들을 깔본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죽으면 당연히 패배지 뭘 묻습니까?”

“하하! 괜찮으시겠어요?”

“……대결 장소는?”

아이언이 차갑게 되물었다.

은혁은 여유롭게 답했다.

“아무 데나 상관없습니다. 바로 여기서 싸워도 좋습니다.”

“흠, 여긴 좀 좁은데.”

아이언이 돌바닥을 툭툭 차며 잠시 고민했다.

천막은 길드장이 쓰기엔 컸지만, 대련용치고는 작았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유리하지.’

아이언은 고민을 빠르게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강은혁 님? 그럼 우리 둘은 여기서 싸우고, 페이퍼와 염훈 님은 밖에서 싸우는 걸로 합시다.”

“좋습니다. 한데, 이 천막 주인이신 터스크 님 의견도 한번 들어봐야겠군요.”

은혁이 터스크를 보자, 터스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다들 싸우고 싶으신 것 같군요. 이제 와서 제가 뭘 거부하겠습니까? 두 분이 싸우시다 제 천막이 엉망으로 망가져도 좋으니, 10초의 제한 시간만은 모두 지켜주시길.”

그렇게 합의가 완전히 끝났다.

-[계약 대결]이 발동되었습니다!

-1분 뒤 대결이 시작됩니다!

은혁은 나가는 염훈에게 한마디 했다.

“대결이 시작되면 망설이지 말고 [무적 돌진]을 써라.”

“음.”

염훈과 페이퍼가 밖으로 나갔다.

아이언은 히죽 웃으며 은혁을 노려봤다.

“아무리 그래도 10초 안에 이긴다는 건 좀 오만한 일 아닐까요?”

“21층에만 머무르셔서 그런지 랭커 무서운 걸 잊어버리신 모양입니다.”

두 사람은 적당히 신경전을 벌였다.

-대결 시작까지 5초…….

-4초…….

-3초…….

-2초…….

-1초…….

-대결 시작!

“[전신연철갑]!”

아이언이 스킬을 발동했다.

아이언은 B+급 직업 ‘무쇠 육체의 무투가’로 시작한 플레이어다.

현재 2차 각성하여 A-급이며, 피부는 물론, 근육, 골격, 근막, 내장, 두뇌 등, 겉과 속을 모두 무쇠처럼 단단히 하는 스킬 [전신연철갑]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충격파로 내장을 부수거나, 뇌를 흔들리게 하는 식의 수법에도 꽤 강했다.

‘이겼다.’

아이언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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