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염훈의 선동
아이언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대결 제한 시간 10초인 데다가 무기 사용이 금지이니, 아무리 은혁이 강해도 10초 안에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다.
“풉. 무슨 거북이도 아니고.”
은혁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아이언은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자세를 낮추고 방어를 단단히 했다.
‘지금 내 방어력은 우리 길드 최강! 아무리 강은혁이라 해도 10초 안에 날 부수는 건 불가능!!’
하지만 은혁은 가능했다.
“[그림자 지배] + [돌 부수기]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그림자 무덤]!!”
콰드득!!
아이언의 발밑의 바닥이 부서졌다.
돌 뿐만 아니라 그림자가 함께 무너지며 그림자 구덩이 속에 빠졌다.
“어엇?!”
19층에서 크리미크와 그 부하들을 통째로 떨어뜨린 그 [그림자 무덤]이었다.
그때는 단순히 그들을 생포하는 용도로 썼었지만.
“[네이팜 스트라이크].”
화르르륵!
콰콰콰쾅!!
몸에 붙으면 쉽사리 꺼지지 않는 화염 줄기가 아이언 위에서 쏟아졌다.
“큭……!”
[전신연철갑] 상태였음에도 피해가 들어왔다.
‘괴롭지만 버틸 만하다!’
화르르르르……!!
은혁은 왼손으로 발동 중인 [네이팜 스트라이크]를 해제하지 않은 채, 오른손으로는 추가 스킬을 준비했다.
“퓨전 스킬 [라바 블래스트]!!”
화르륵!!
끈적한 용암이 위에서 아래로 발사됐다.
“크악?!”
[전신연철갑] 상태인 아이언이 비명을 질렀다.
화염이야 그렇다 쳐도, 끈적한 용암이 몸 전체를 휘감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컥?!’
아이언은 비명은커녕 숨도 쉴 수 없었다.
위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네이팜 스트라이크]는, [라바 블래스트]의 용암을 얼굴에 넓게 펴 발랐다.
은혁은 이글거리는 열기 속에서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용암을 코와 입에 집중해서 바른다!’
네이팜 불꽃을 타오르는 붓 삼고, 용암을 뜨거운 접착제 삼아 아이언의 눈코입을 틀어막는 것이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화염 특유의 팽창은 눈코입, 식도, 기도를 닥치는 대로 태우고 팽창시켰다.
‘끄륵……!’
이쯤 되면 방어력이 높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언은 선 채로 용암과 화염에 숨이 막혀 기절했다.
딱 1초 남긴 상태였다.
-승자는 강은혁 님!
“후우.”
은혁은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위에서 아래로 스킬을 쏟아내기만 하는 것이었는데도 열기 때문에 어질어질했다.
‘엄청 아슬아슬했네.’
아예 아이언을 죽여 버리거나 가두는 거라면 쉬운데, 딱 죽지 않게 기절만 시키려니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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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륵, 끄어…….”
아이언은 기절했다 깼다 하면서 신음했다.
“아차차, 꺼내 드리죠.”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로 아이언을 꺼낸 뒤 힐링 포션을 여러 병 꺼내서 부어줬다.
치이익…….
대장간에서 뜨겁게 달궈진 쇠 담금질 하는 소리가 아이언의 몸에서 들렸다.
“결과에는 승복하시겠죠?
“으으…… 승복합니다…….”
아이언은 다시 정신 줄을 놓았다.
* * *
염훈 또한 가뿐히 페이퍼를 쓰러뜨렸다.
페이퍼의 직업은 C+급 직업인 ‘종이를 지배하는 혼돈술사’였다.
혼돈술사란 전체 플레이어 중 0.01% 정도만 얻는 직업으로, 혼돈을 유발하는 능력을 갖춘 희귀 직업이었다.
페이퍼는 부적 제작용 종이에 [혼돈 부여] 스킬의 힘을 담아 뿌림으로써 불규칙한 현상을 축적하여 승리하는 타입이었다.
‘10초는 버틴다!’
페이퍼는 그렇게 자신했지만 염훈은 상대 직업이 뭐건 상관하지 않았다.
다자카우스의 파이크를 들고, 퓨전 스킬 [무적 돌진]으로 날아갔다.
투쾅!!!
시합 시작과 동시에 냅다 들이받는 기습 공격이 본체인 페이퍼를 쓰러뜨렸고, 페이퍼는 즉시 항복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두 사람은 여기 계신 터스크 길드장님과 동일한 권한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의 있으신 분?”
오페아 길드의 아침 식사 시간, 은혁이 선언하자 다들 인정했다.
“이제부터 저 두 사람이 우리를 이끄는 건가?”
“반대 의견은 없음.”
“저도요.”
오페아 길드원들도 내심, 기존의 터스크, 아이언, 페이퍼 3인만으로는 무리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하나 전해드리죠. 오늘, 우리는 21층부터 24층까지 다 공략할 겁니다.”
은혁의 말에 다들 솔깃해했다.
“말도 안 돼. 하루 만에 전부 다?”
“우리들 대부분이 22층까지는 뚫었지만, 23층 이후는……!”
“어, 어떻게 공략한다는 걸까요?”
모두가 궁금해하는 가운데, 은혁은 씨익 웃었다.
“오크의 머릿수가 많기는 하지만, 다 죽여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핵심은 오크 군주와 오크 대사제입니다.”
21층이 오크 전투 대장 처치.
22층이 깃발 획득.
23층이 오크 군주 처치.
24층이 오크 대사제 처치.
대충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것이 21층~24층 통합층이다.
“여러분은, 오크의 머릿수가 많으니까 이쪽도 머릿수를 많이 모은다…… 라는 전략으로 싸워왔을 겁니다. 그래서는 기껏해야 버티기만 가능합니다. 이번 스테이지의 오크의 충원 속도가, 플레이어들이 올라오는 속도보다 빠르도록 설정되었으니까.”
“아……!”
은혁의 설명을 들은 플레이어들도 감을 잡은 듯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연합하면 연합할수록 오크 숫자도 늘어났어.”
“돌이켜 보면, 통합 층을 빨리 깨고 치고 나간 플레이어들도 그랬어. 과감하게 소수 정예로 오크 대장, 군주만 치고 올라갔지.”
“머릿수를 늘린다는 전략 자체가 오류였나.”
탄식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은혁은 선언했다.
“머릿수만 더 늘리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대낮에 우리는 정면으로 돌진할 겁니다.”
“어디로 말입니까?”
“산개하여, 흑, 백, 회, 황색 오크 부족의 본거지를 향해 전부 돌격합니다.”
“그, 그런!”
너무 위태로운 작전이었다.
기습을 하려면 밤에, 그것도 한 곳을 집중해서 노리는 게 상식이다.
대낮에 산개하여 사방으로 돌진한다는 계획은 너무나 위험했다.
“산개하여 공격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놈들이 포위망을 구성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 첫째, 시간을 끌기 위함이 둘째입니다.”
“포위망 구성을 못하게 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시간을 끌어요? 왜죠?”
“그사이, 저와 염훈이 나서서, 여러분이 죽기 전에 오크 군주를 전부 처치할 겁니다.”
“뭐야, 그게!”
“음? 뭐가 불만입니까? 우린 다 같이 파티를 맺었으니, 저랑 염훈이 처치해도 여러분도 미션 클리어입니다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플레이어들은, 은혁의 작전은 작전 같지도 않은 작전이며, 위험성은 높고 실현성은 낮다고 지적하려 했다.
웅성웅성웅성……!!
“아아, 시끄러!!”
참다못한 은혁이 인성질을 발동했다.
플레이어들의 아우성이 일시 정지된 순간.
“터스크 님! 어떻게 된 겁니까!”
은혁은 창끝을 터스크에게 돌렸다.
연단 위, 약간 뒤편에 있던 터스크는 움찔했다.
“에? 네?”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터스크 님과 동맹을 맺을 때, 터스크 님의 관리력과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고, 터스크 님도 그 부분은 인정하셨잖습니까!”
“아, 그, 그랬었죠.”
“근데 이게 어찌 된 겁니까! 이게 리더십입니까?!”
사실 리더십이 흔들거린 이유는, 은혁 자신이 위험한 작전을 대뜸 말해서 흔든 탓이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술렁임의 책임은 전부 터스크에게 떠넘겼다.
“아니, 저, 그게.”
터스크는 갑작스러운 은혁의 돌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도움을 청하듯 연단의 뒤편과 측면을 봤지만, 아이언과 페이퍼는 패배한 뒤라 발언권이 없었다.
‘에고, 결국 이렇게 되네.’
염훈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을 열면 자신에게 불똥이 튈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건 연단 아래의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은혁이 일방적으로 터스크를 꾸짖는 모습을 보자, 자기들 모르게 은혁과 터스크 사이에 어떤 약속이 있다고 믿었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작전 수행을 위해서 터스크 님의 절대적인 리더십 확립이 필요합니다. 처음에 제가 터스크 님에 대해 믿었던 부분도 그 부분이고요. 그러니 30분 이내에 작전 준비 마치고 앞으로 캠프 입구에 집합해 주십시오. 이상입니다.”
그리고 연단 아래로 내려가면서 염훈에게, 사실상 모두가 듣게 말했다.
“염훈. 이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으니 네가 잘 도와줘라.”
그리고 은혁은 휴식용 천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
모두의 시선이 염훈에게 꽂혔다.
‘으악, 강은혁 이놈아! 나만 두고 가면 어쩌냐!’
염훈도 사실 어떻게 답해야 좋을지 알지 못했다.
사전에 조율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여러분. 뭘 그리 두려워하십니까?”
[신성한 오러] 스킬을 발동한 채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은 결코 약자가 아닙니다. 오크들의 군세에 맞서 이곳을 지켜낸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물론, 모든 플레이어의 긍지와 후발 플레이어의 기회를 보호한 정의롭고 강한 사람들입니다.”
은혁에 의해 혼란과 불안이 야기된 상태이므로, 염훈은 그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해주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정답이었다.
“여러분은 강합니다. 몇 번이고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이 층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들입니다.”
노골적인 칭찬 세례였지만 2차 각성한 성기사의 연설인 데다가 염훈의 얼굴과 목소리가 매력적인 편이라 효과는 좋았다.
“여러분은 전례가 없는 작전 때문에 조금 당황하셨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용기에 축복을! 여러분의 승리에 영광을!!”
염훈은 [광역 축복] 스킬을 냅다 썼다.
그동안 자잘하게만 올랐던 숙련도가 갑자기 팍 올랐다.
-성기사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성기사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
……
-성기사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성기사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성기사 숙련도 : 54%+.
-성기사 스킬 [신성한 지휘]를 획득하셨습니다!
‘헉?!’
그동안 자잘하게 오른 걸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지만 사실 꽤 오른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쓴 [광역 축복]의 힘이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어휴, 모르겠다!’
염훈은 [신성한 지휘] 스킬을 쓰며, 다자카우스의 파이크를 들었다.
“제가 여러분을 인도하겠습니다! 여러분! 저와 함께하실 겁니까!”
“예!!”
“지옥 끝까지라도?!”
“옛!!!”
“좋습니다! 그 각오라면 오크 따위는 숫자가 문제가 될 게 아닙니다! 그 각오로 오크를 쓸어버립시다! 여러분이 오크를 학살하는 게 빠른지! 저 오만한 강은혁이 오크 군주를 죽이는 게 빠른지! 시험해 볼까요?!”
“좋습니다!!”
“어, 음, 그럼 갑시다!!”
“와아아아아!!!”
오크의 전투 함성 뺨치는 외침과 함께, 23층, 24층 메인 미션 공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