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 오크 군주 처치
‘염훈 녀석. 잘하고 있네.’
은혁은 [그림자 지배]를 응용한 그림자 도청으로 대충 다 듣고 있었다.
연설을 마친 염훈에게는 딱 한마디 했다.
“잘했고, 얼른 가자.”
“어디로?”
“지휘해야지.”
본래 계획은 저들을 전면에 보내고, 그 틈에 우회해서 오크 군주들을 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염훈의 선동(?) 효과가 너무 우수해서, 함께 돌격하여 최대 피해를 입힌 뒤, 오크 군주들을 불러내는 식으로 작전을 조금 수정했다.
“그나저나 염훈.”
“어?”
“[신성한 지휘] 말고 [신성한 선동]으로 스킬명 바꿔라. 크크크.”
“놀리지 마! 진심이 담긴 연설이었다고!”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최전방으로 나섰다.
그리고 터스크에게 지휘권을 이양했다.
“전군 돌격!!”
“와아아아아아!!!”
공격 개시선 앞 정렬이고 뭐고 냅다 돌격했다.
염훈의 선동이 너무 효과가 너무 좋은 탓이다.
황색 오크 부족이 장악하고 있는 캠프로 돌입한 순간, 은혁에게 미션창이 떴다.
<23층 메인 미션 : 오크 군주 처치.>
-목표 : 오크 군주를 하나 이상 처치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레벨 1 상승. 나머지 오크 군주의 위치.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3년.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미 한참 전에 봤을 미션창.
“가즈아아아!!!”
플레이어들과 함께 은혁도 같이 외쳤다.
“크와아! 기상!”
“인간 놈들이 온다!!”
늦잠을 자던 오크들이 뒤늦게 기겁했다.
지금까지는 오크가 쪽수가 많다 보니 공격 시점을 오크가 정해 왔다.
하지만 악에 받친 플레이어들이, ‘오늘 이 지긋지긋한 통합 층을 끝낸다!’ 하는 각오로 달려드니 대처를 못 했다.
푸확!
콰콰콱!
촤아악!
오크들은 제대로 비명도 못 지르고 학살당했다.
‘어? 생각보다 엄청 잘 싸우네?’
전투력에 있어서 깐깐한 은혁이 선뜻 인정할 정도였다.
회귀 전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싸우는 걸 보면, 염훈의 연설이 정말 효과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때였다.
콰쾅!!
거대한 철퇴가 바닥을 후려쳤다.
“어떤 놈들이냐!!!”
한 손에 황색 깃발, 한 손에 거대 철퇴를 든 오크 군주가 나타났다.
‘황색 오크 군주. 직접 나타났군.’
은혁이 나설 차례였다.
“너 죽이러 온 사람들이다.”
“뭐, 뭐라고?!”
“우리 손에 죽거나, 그전에 그냥 자살하거나. 선택해라.”
“크와아아아악!!!”
황색 오크 군주는 하려던 욕 대신 전투 함성을 내질렀다.
-황색 오크 부족의 공격 속도가 5분간 25% 증가합니다!
-황색 오크 부족의 공격력이 3분간 50% 증가합니다!
오크 군주가 다 그렇지만, 황색 오크 군주의 경우에는 부하들의 공격력을 극대화시키는 버프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차원의 낚싯대. 저격 모드.”
철컹!
은혁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세븐 칼리버가 대형 낚싯대로 변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낚싯대에 황색 오크 군주는 조금 놀라 멈칫했다.
하지만 은혁이 손을 까딱거리며 도발하자 철퇴를 높이 들었다.
“캬악!”
부우웅!
거대한 철퇴가 은혁의 머리를 향해 날아간 순간.
“[광풍돌진권]! 측면으로!”
투쾅!!
은혁은 돌진 공격기를 써서 자기 몸을 즉각 이동시켰다.
그리고 이동하는 기세와 함께 차원의 낚싯대를 가볍게 휘둘렀다.
푸확!
낚싯대의 갈고리가 황색 오크 군주의 팔뚝에 꽂혔다.
“큭, 이 멍청한 놈!!”
황색 오크 군주는 은혁을 비웃었다.
황색 오크 군주의 근력은 은혁보다 강했으며, 부하들이 사방을 호위하고 있기에, 조금 끌려가더라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와라! [플레인 슬라이드]!”
화악!
차원의 낚싯대에 담긴 힘이, 황색 오크 군주의 주변 차원을 일부 왜곡시켰다.
“허어억?!”
공간에 굴곡이 생기더니, 마찰력이 사라진 것처럼 황색 오크 군주가 은혁에게 딸려왔다.
자체 공격력은 약하지만 차원 왜곡장을 생성하는 차원의 낚싯대는 사용법이 무궁무진했다.
“마, 막아라!”
오크 부하들이 황색 오크 군주를 붙잡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차원의 낚싯대에 저항하려면 근력보다는 의지력이 높아야 했기 때문이다.
“[봉황각].”
뻐억!!
끌려 온 황색 오크 군주의 턱에 냅다 띄우기 스킬을 날렸다.
거구의 오크 군주가 허공에 붕 뜬 순간.
“세븐 칼리버 제2형태 변신!”
철컹!
은혁은 쉬지 않고 청염백광태도를 바닥에 꽂았다.
기이이이이잉……!
바닥에 꽂힌 검이 열기를 응축시키며 울었다.
‘그걸 쓴다!’
공중에 뜬 적, 또는 거구의 괴수에게 특히 효과적인 스킬.
“[초열역류일참]!!”
콰콱!!
검이 뽑히며 하늘을 향해 휘둘려졌다.
촤악!!!
공중에 떴다가 떨어지는 황색 오크 군주가 세로로 쪼개지고.
화르르륵!!!
화염의 궤적이 그 단면을 훑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후두두둑…….
쿠쿵!
불에 타서 굳은 피와 살점 파편 일부가 먼저 떨어지고, 두 동강 난 사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황색 오크 군주를 처치하셨습니다!
-23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다른 오크 군주들의 위치가 플레이어의 눈앞에 표시됩니다!
-남은 오크 군주 : 흑색, 백색, 회색.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48.
오크 군주 하나만 처치해도 메인 미션은 클리어 판정이 뜬다.
-황색 오크 부족이 전의를 상실합니다!
오크들은 자신들의 버프가 소멸하는 걸 알아채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쫓아라!”
“그동안 당했던 동료의 원수를 갚아라!!”
다른 플레이어들은 칼, 창, 화살, 마법을 날리며 황색 오크들을 쳐 죽였다.
“자자, 적당히 하시고! 터스크 님?”
“아, 넷!”
“부하들이 너무 피에 취하지 않게 통솔 부탁합니다. 그리고 저랑 염훈은 다음으로 가겠습니다.”
“네? 다음이요?”
“황색 오크 죽였으니, 흑색, 백색, 회색 오크도 마저 죽여야죠.”
은혁의 눈에는 흑색, 백색, 회색의 맵 마커가 HUD처럼 보였다.
“황색 오크 패잔병들은 다른 오크 병력이 있는 곳으로 갈 테니 잘 추격해 주십시오. 저와 염훈은 우회해서 군주 놈들 머리만 따겠습니다.”
“가,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오크들은 오크 군주만 죽으면 알아서 다 도망칩니다. 그동안은 버텨주셔야 하지만, 그리 길게 버티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그럼 다녀오죠! 가자, 염훈!!”
염훈은 즉시 [신성한 날개]를 발동했다.
“어디로 갈까?”
“흑색 오크가 있는 중앙으로!”
* * *
흑색 오크 부족은 칼을 갈고 있었다.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은혁에게 깃발을 뺏긴 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 정말로 밤새 칼을 갈았다.
“크르르르……!”
오크의 근력과 머릿수와 복수심이 합쳐지면 그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었지만…….
“캬아악!”
“도망쳐라, 도망쳐!”
어디선가 오크 패잔병들이 흑색 오크 부족의 본거지로 달려왔다.
“캬악, 조용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란이냐!!”
오크 지휘관들이 채찍을 휘둘러도 패잔병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신들의 오크 군주가 반으로 썰려 죽는 모습을 본 탓에 공황에 빠진 것이다.
“조용히 하라.”
흑색 오크 군주가 직접 한마디 하자, 즉시 조용해졌다.
카리스마 넘치는 검은색 갑옷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흑색 오크 군주의 머리통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정도였다.
“놈들이 이리로 온다면, 오히려 좋은 기회 아닌가.”
흑색 오크 군주의 목소리는 갑옷과 투구 속에서 웅웅거리는 탓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게 더 카리스마 넘치게 들렸다.
“모두 길을 터라. 놈이 일직선으로 내게 올 수 있도록.”
말을 마친 순간, 저 멀리서 흙먼지가 보였다.
저고도 비행 중인 염훈과 그 뒤에 올라탄 은혁이 오는 것이었다.
“[도약]!”
타앗!
은혁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려서 흑색 오크 군주 앞에 착지했다.
서로 무기를 휘두르면 닿을 듯한 가까운 거리.
“부하들한테 퇴각 명령 해.”
은혁이 말했다.
“뭐라고 했나.”
“미리미리 퇴각시키라고. 네가 나한테 죽으면 너희 애들 다 공황 상태 빠지잖아? 그전에 미리 퇴각 명령 내려두면 공황 없이 질서정연하게 퇴각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은 명백히 흑색 오크에 대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흑색 오크 군주는 도리어 침착해졌다.
“퇴각은 없다. 왜냐하면 네 시체를 잘게 썰어 요리하기에는 내 손이 너무 크니까. 부하들의 손이 필요하거든. 안 그런가, 오크 동포들이여?”
흑색 오크 군주가 육중한 건틀릿을 장착한 주먹을 들어 보이자 오크들이 열광했다.
“캬악! 역시 흑색 오크 군주!!”
“믿습니다!! 쿠오오오!!!”
열광 속에서 흑색 오크 군주는 주먹을 더 높이 들어 올렸다.
-흑색 오크 및 황색 오크가 함께 열광합니다!
-흑색 오크 군주의 공격력이 25% 상승합니다!
-흑색 오크 군주의 방어력이 25% 상승합니다!
-흑색 오크 군주의 속력이 15% 상승합니다!
안 그래도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은 흑색 오크 군주에게 버프가 가해졌다.
하지만 그게 흑색 오크 군주의 패착이었다.
버프를 얻은 대신 선공권을 잃고 방심했다.
“[광풍돌진권] + 드릴 랜스.”
돌진하는 무투가 스킬과 세븐 칼리버 제3형태를 융합시켰다.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드릴 러시].”
키융!!!
빠카칵!!!
굵고 짧은 파공음이 들리더니, 흑색 오크 군주의 흉갑이 박살 났다.
일반 흑색 오크의 갑주보다 두 배 이상 두꺼운 흉갑이 뚫리더니 폭풍 같은 풍압에 마저 박살 난 것이다.
여기까지 0.5초도 안 걸렸다.
“컥?!”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흑색 오크 군주.
하지만 갑옷만 부서지고 비틀거렸을 뿐, 깊은 부상은 입지 않았다.
은혁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지체 없이 드릴 랜스를 비틀며 변신시켰다.
“세븐 칼리버 제2형태! 청염백광태도!!”
철컹!
갑옷을 파고든 드릴 랜스가 그대로 변신하며 더 깊이 파고들었다.
푸욱!
“승화!!!”
번쩍!!
화르륵!!!
푸른 화염과 백색 섬광을 내뿜었다.
흑색 오크 군주의 심장이 파괴되고, 빛과 화염의 칼날은 등짝을 뚫고 나왔다.
“컥……!!”
흑색 오크 군주는 갑옷과 부하에 대한 신뢰가 순간의 방심이 되어 죽었다.
-흑색 오크 군주를 처치하셨습니다!
-다른 오크 군주들의 위치가 플레이어의 눈앞에 표시됩니다!
-남은 오크 군주 : 백색, 회색.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49.
“안 도망치냐?”
은혁이 묻자 오크들은 굳어 버렸다.
흑색 오크 군주에게서 버프를 받은 직후 군주가 죽어 버리니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도 못 하는 것 같았다.
“으…… 아……!”
“캬캭, 어, 어디로 도망쳐야 하냐!”
“일단 가까운 백색 오크 군주가 있는 쪽으로 가야……!”
오크들이 우왕좌왕하는 순간.
-백색 오크 군주가 처치되었습니다!
멀리 있는 염훈이 백색 오크 군주를 막 처치했다.
-파티원의 성과를 공유합니다!
-다른 오크 군주들의 위치가 플레이어의 눈앞에 표시됩니다!
-남은 오크 군주 : 회색.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50.
“캬아악!”
오크들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냥 다 죽일까? 귀찮은데.’
은혁은 말단 오크들은 가급적 죽이지 않고 오크 군주만 노려서 죽일 계획이었다.
군주 잃은 오크들을 처치해 봤자 무기 내구도만 깎아 먹을 뿐, 얻는 경험치도 그저 그러니까.
“어이, 은혁!”
마침 [신성한 날개]를 발동한 염훈이 다가왔다.
“염훈, 어서 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