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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05화 (105/434)

105화 : 음악가와 시인의 도시

“아……?!”

오크 대사제는 아직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강신]이 비정상적으로 종료된 탓이기도 하고, 오키니움 본체의 주먹이 나타났다 사라지기까지 한 탓이다.

“당신이 섬기는 오키니움께서는 제게 이것을 주셨습니다.”

은혁이 오른 주먹을 들어 보였다.

“아, 그것은?!”

“오키니움의 건틀릿이오.”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얻은 것이오?! 말하시오! 당장!!”

오크 대사제가 침을 튀기며 외쳤지만, 은혁은 경멸의 눈으로 내려다봤다.

“일대일 회담이니, 최초라느니 실컷 떠드신 주제에 기절이나 하시고, 막상 깨어나서는 오키니움 님의 선물을 어떻게 받았느냐고 추궁하는 겁니까? 별로 좋은 회담 상대는 아니군요?”

“윽……!”

오크 대사제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오크 대사제가 기절한 이유는 은혁이 냅다 끼어든 탓이다.

하지만 오크 대사제 입장에서는 은혁 탓을 할 수 없는 게, 자기 자랑을 위해 스스로 [강신]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용병으로 참전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오키니움 님과 일단락지었습니다.”

“저어, 어떻게 일단락을 하셨는지…….”

오크 대사제의 목소리가 공손해졌다.

은혁은 코웃음쳤다.

“그보다 사과 먼저 하셔야지?”

“사, 사과 말이오?”

“아까 당신은 나한테, 담이 작다느니 사람 잘못 봤다느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작자라느니…… 그런 식으로 날 한참 매도하지 않았소?”

“그, 그…… 매도라니, 기억이 안 나오만…….”

“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다시 들려줄까? ‘내가 그대를 잘못 봤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작자 같으니. 이토록 담이 작은 자를 어찌 오키니움 님을 위한 용병으로 쓸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으면서! 그게 기억이 안 난다는 식으로 얼버무린단 말인가!! 그딴 소리를 감히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엉?!”

은혁은 자기가 당한 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기억할 줄 아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회귀 전 지식을 사소한 요소 하나하나까지 싹 다 기억하는 것도, 그런 재능의 연장선이었다.

“으으윽……!”

오크 대사제는 쩔쩔맸다.

은혁은 회귀 전, 오크 대사제에게 농락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더 밀어붙였다.

“사과하든가 죽든가 결정하쇼.”

결국, 오크 대사제는, 21층~24층 구간에서만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을 모두 토해내야 했다.

원래는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캠프 루팅을 해야 하는 것을, 말빨로 싹 다 후려낸 것이다.

“거, 안주머니에 숨겨 둔 마지막 부적도 내놓으시오.”

“아아, 이것만은 아니 되오!”

“웃기시네. 내놔. 퓨전 스킬 [강탈].”

뻐억!

가장 귀한 부적까지 싹 다 털었다.

-21층~24층 구간의 스테이지 난이도 변경!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기에, 난이도 조정이 있을 예정입니다!

-더 이상 오크 군주와 오크 대사제 처치는 미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은혁이 너무 쉽게 오크 군주들과 대사제를 농락한 탓인지, 스테이지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재조정이 있을 예정이었다.

더 쉬워질 수도, 더 어려워질 수도, 아예 오크와 무관한 스테이지로 변할 수도 있었다.

‘뭐, 이제 나랑은 상관없지.’

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는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오크 대사제에게 한마디 해줬다.

“앞으로는 상대방한테 담이 작다느니 한심하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지 말도록.”

“네…….”

싹 다 털린 오크 대사제는 무척 예의 바른 성격으로 바뀌었다.

* * *

“와아아아아!!!”

“강! 은! 혁!! 강! 은! 혁!!”

오페아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동굴에서 나오는 은혁을 보며 환호했다.

순식간에 21층~24층 구간을 완전히 클리어한 것에 대한 감탄이었다.

은혁은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은혁아, 괜찮냐?”

염훈만이 조금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아까 동굴에서 엄청 큰 충격파가 나오던데.”

“아, 그거?”

오키니움이 날린, 사과의 마음이 담긴 주먹을 막을 때의 충격파일 것이다.

“완만하게 잘 해결됐어. 이제 25층으로 바로 가자.”

은혁은 염훈에게 말한 뒤, 오페아 길드의 터스크를 바라봤다.

터스크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고생해 왔던 21층~24층 통합 층이 이토록 빠르게 해결되자, 기쁨과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뒤섞여, 뭐라 말하기 힘든 눈물이 줄줄 흐른 것이다.

“무리한 요청에 잘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 터스크 길드장님.”

“아닙……니다……!”

“25층으로 함께 올라가서 식사라도 하실까요.”

“아니오……! 아니오!”

터스크는 뭔가 크게 느낀 모양이었다.

“저는 남겠습니다! 이곳을 제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

사실, 터스크와 오페아 길드에게 21~24층 클리어 역량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은혁과 염훈이 통합 층을 빠르게 클리어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오페아 길드가 지닌 역량을 십분 끌어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터스크가 이끌던 오페아 길드가 지지부진했던 것은 오크의 머릿수에 눌려, 이쪽도 머릿수 확충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100층탑의 스테이지는 정공법뿐만 아니라, 의외의 공략법이 반드시 존재하는 곳이다.

터스크는 은혁을 보며 그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때문에 그는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부하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눈물까지 흐르고 만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은혁은 터스크의 심정을 잘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터스크는 눈물을 닦고 부하들을 가리켰다.

“저 대신, 25층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부하들만이라도 데리고 가주십시오…….”

그러자 아이언과 페이퍼, 그밖에 다른 부하들이 모두 거절했다.

“아니오! 우리도 남겠소!”

“우리 힘으로도 클리어할 수 있을 겁니다!”

“스테이지 변환 때까지 5층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재도전합시다!!”

“옳소!! 옳소!!”

오페아 길드원들은 이번 일로 크게 느낀 바가 있는지, 다들 터스크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파티를 맺고 미션을 클리어했으니 언제든 25층으로 갈 수 있었지만, 은혁과 염훈의 도움이 컸다.

이번에는 외부인 도움 없이, 터스크를 따라 자신들이 지혜와 노력을 다해서 클리어해 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크으, 역시 기본이 된 사람들이야.”

염훈 또한 훈훈한 광경을 본 사람처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지막 선물을 약간 넘겨드리고, 저희는 물러나죠.”

은혁은 오크 대사제에게서 삥뜯은 사소한 부적과 장신구 따위를 선물했다.

“21층~24층 스테이지가 어떻게 개변될지는 모르지만, 오크를 상대로 하는 싸움이라면 이 부적들이 도움이 될 겁니다.”

“아……!”

터스크는 할 말을 잊었다.

마지막 애프터서비스까지 해주는 은혁이 너무 고마웠다.

은혁에게 갈굼 당했던 기억은 싹 잊은 것인지 이제는 그를 위대한 스승을 보듯 했다.

‘뭐, 가장 귀중한 부적은 딱 한 장뿐이라서.’

가장 귀중한 ‘팬텀 오크 소환 부적’은 은혁의 주머니 깊은 곳에 들어 있었다.

다차원 생명체인 팬텀 오크를 수백 마리 소환하는 엄청난 부적이다.

한 마리가 아니라, 한 번에 수백 마리를 소환하는 것이기에, 차원 왜곡 현상이 일어나 주변 시공이 일시적으로 뒤틀릴 정도다.

단점은 딱 1회 소환 가능하다는 점이지만, 1회용 부적치고는 엄청난 물건이다.

오크 대사제가 마지막까지 넘기지 않으려 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은혁의 전사 스킬 [강타]와 도적 스킬 [소매치기]를 융합한 퓨전 스킬 [강탈]에는 속수무책으로 뺏겼다.

‘나머지 부적은 21층~24층 구간에서만 좋은 부적이라, 다 나눠주고 가는 게 낫겠지.’

실제로 은혁이 터스크에게 퍼준 부적의 양은 두꺼운 사전 몇 권 분량이었다.

“감사합니다! 강은혁 플레이어! 이 은혜를, 이 고마움을 어찌 갚아야 할지……!!”

곁에서 그 소릴 듣던 염훈은 말리고 싶었다.

‘이봐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은혁이 녀석은 다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본전에 이자까지 싹 다 털어갑니다! 함부로 은혁이 앞에서 은혜 운운하는 소리 하면 안 됩니다!!’

염훈이 표정으로 경고하려 하자, 은혁이 눈치채고 염훈 앞을 쓰윽 어깨로 막았다.

“정 그렇게 고마우시다면, 훗날 제가 사악한 적들과 싸워야 할 때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강은혁 님의 적은 저의 적! 더군다나 그 적이 악한 존재라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정말입니까?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군요! 이 가혹한 100층탑에서 터스크 님과 그 길드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니!”

은혁이 기뻐하자 터스크는 더 기쁘게 해주려는 듯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무슨 말씀을! 저희 오페아 길드 일동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터스크가 묻자, 아이언, 페이퍼, 그밖에 모든 길드원들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물론이오!”

“당연한 말씀!”

“반드시 돕겠다고 맹세합니다!!”

그걸 본 은혁은 겉으로는 활짝 웃었지만 속으로는 사악하게 웃었고, 그 사악한 웃음소리를 들은 이는 염훈 뿐이었다.

‘크크크! 예비 길드원 확보 완료.’

은혁은 머지않아 길드를 설립할 생각이었다.

단, 이들을 지금 바로 정식 길드원으로 삼아 버리면, 키우고 데리고 올라가기가 귀찮다.

‘이 인간들은 여기서 좀 더 실전 경험을 쌓으라고 하고…… 더! 실력자들을 더 모아야 해! 집단 전투 때 쓸 길드원들이 더 필요해!’

‘아아, 은혁이 저 녀석! 아직도 만족 못 한 모양이네!’

환호성 속에서, 은혁과 염훈은 먼저 25층으로 올라갔다.

* * *

-25층 : 음악가와 시인의 도시.

19세기 초반 유럽의 한 소도시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도시.

그게 25층 스테이지였다.

분수대 옆에는 참새가 앉아 있었고, 그 앞에서는 시인이 장엄한 서사시를 읊고 있었다.

100층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NPC가 있는가 하면, 100층탑의 가혹함을 거칠게 표현하는 래퍼 플레이어도 있었다.

방송국 카메라가 촬영 중인 곳도 있는가 하면, 개인 방송용 카메라를 들고 촬영 중인 자도 있었다.

도로에는 20세기 초중반의 것으로 보이는 클래식 자동차들이 느린 속도로 오갔고, 도로의 좌우에는 건물들이 있었다.

큰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거대한 스튜디오, 장엄한 공연장에는 거의 예외 없이 평화 길드 마크가 붙어 있었다.

“흠, 음악의 도시 컨셉인가 본데?”

그 순간.

<25층 메인 미션 : 노래하라!>

-목표 : 보너스 미션.

원하는 형식의 음악을 하거나 시를 읊으면 무조건 미션 클리어. 본 미션을 거부한다고 선언해도 클리어. 침묵 또는 거부의 목소리 또한 노래이거나 시일 수 있으므로.

-성공 시 보너스 : 없음. 단, 다수의 청취자가 높은 평가를 보내는 경우 그에 비례하여 경험치가 상승한다.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없음.

“엄청 편한 미션이네.”

25층 곳곳에 크고 작은 무대가 있었다.

“그럼 내가 먼저.”

은혁은 근처 노천 카페의 작은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는 노래를 거부하겠다.”

은혁이 마이크에 대고 선언했다.

-축하드립니다! 25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우우~!”

“그냥 하나 부르시지!”

카페 사람들은 장난 삼아 야유했고, 은혁은 피식 웃으며 바로 내려왔다.

“어? 그냥 그렇게 넘겨?”

“난 노래 못 하거든.”

은혁이 말하자 염훈은 용기를 냈다.

“그럼 내가 네 몫까지 부르지!”

염훈이 무대 위로 올랐다.

“‘마지막 사랑’을 부르겠습니다!”

스테이지가 자동으로 배경 음악을 깔아줬다.

록 발라드, 또는 파워 발라드 장르의 노래를 염훈은 꽤 잘 불렀고, 많은 호응을 얻었다.

짝짝짝!

“캬, 꽤 잘 부르네.”

“저 사람이 성기사 염훈이지?”

“뭔가 목소리에 호소력이 있는 듯.”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되게 구성지게 부른다고 해야 하나?”

박수 소리 사이사이로 관객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축하드립니다! 음악 점수 89점을 달성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25층 메인 미션을, 평균보다 매우 높은 점수로 클리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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