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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08화 (108/434)

108화 : 평화 길드장 피스메이커 (2)

“대놓고 바이러스라는 힌트를 줘도, 대부분 답을 맞추지 못한다네. 왜 그런지 아나?”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하니까.”

“맞아.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탓인지, 대놓고 힌트를 줘도 답으로 연결을 못 해. 저 멍청한 놈처럼 말이야.”

피스메이커는 끈적한 점액처럼 변한 수운을 보며 한심해했다.

“그래도 자기 부하를 죽여 놓고 너무한 거 아닙니까?”

“경고 메시지는 봤을 텐데?”

실제로 은혁이 땅을 팔 때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있긴 했다.

“뭐, 그렇긴 하지만.”

“자아,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자네는 왜 목숨을 걸고 여기 들어왔나?”

“아, 별 건 아니고요. 7대 길드를 통합하려고 하는데 협조가 필요합니다.”

은혁은 한때 워잭에게 말했던 구상을 적당히 말해줬다.

다 들은 피스메이커는 미간을 찌푸렸다.

“성공 가능성은 둘째치고, 7대 길드를 발판 아니, 점프대? 삼는다는 게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군.”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평화 길드장께서도 납득하실 만한 방식으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해보게.”

“대통합을 통한 싸움의 종말. 이것만 해도 엄청난 평화가 창출됩니다. 그것만으로도 내분이 사라지므로 높은 곳만 보면서 올라갈 수 있고요.”

“평화라.”

피스메이커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내가 학살을 하지도 않았지.”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일세. 자네는 무력이든 모략이든 써서 7대 길드를 통합시키면 내분이 사라지고 평화가 올 거라고 말하는 것 같군.”

“그렇습니다.”

“그 생각을 내가 안 했을 것 같나? 지금도 안 하는 것 같나?”

피스메이커가 수갑을 찬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관리국 마크가 찍힌 수갑이었다.

“내가 길드 대전을 일으킨 이유가 바로 자네가 말한 이유였어. 하지만 실패했지. 각자의 이상을 지닌 나머지 여섯 길드장은 강했거든.”

물론, 여섯 길드장이 하나로 뭉쳐서 피스메이커를 상대로 싸우진 않았다.

여섯 길드장들은 각자 자기들의 이상을 위해 분열했다.

“당신이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드 대전의 결과는 ‘무조건 평화 협정’이었으니까요.”

“내가 고작 그런 정치적 협정을 위해 학살을 저지른 거라 생각하나? 난 실패했다네. 그리고 진실을 깨달았지.”

“어떤 진실요?”

“진정한 평화를 불러오려면, 다 죽어야 한다는 것을.”

피스메이커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사람은 각자 생각이 있고, 그걸 실현할 행동력이 있지. 더군다나 100층탑은 바깥 세계와 달리 플레이어가 신처럼 강해지는 게 가능한 세계야.”

길드장 정도만 되어도, 바이러스를 이용한 대량 살상이나, 핵 공격 주문 같은 게 가능해진다.

“이 100층탑이라는 무간지옥을 끝내고 영원한 평화를 가져다줄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 모두의 절멸이다. 그게 내 결론이었다.”

“그 괴논리에 지금도 동의합니까?”

“솔직히, 고민 중이라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이 또다시 학살을 저지르는 걸 막기 위해 25층에 이 장소를 만들었지. 그리고 관리국에 요청해서 스스로 수갑을 찼다.”

길드연합국은 학살자인 피스메이커를 처벌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피스메이커는 자기 자신을 위한 가택 연금 장소인 미궁을 25층에 스스로 만들었다.

그리고 체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바이러스를 미궁 내부에 살포했다.

체내 시간을 조작하는 바이러스는 까다로워서, 미궁 내부에 있는 동안만 작용했으며, 피스메이커 자신조차도 느리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변덕을 부리지 못하게 관리국에 요청하여 수갑을 찼다.

수갑의 효력은, 피스메이커로 하여금 평화의 미궁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하는 것과 스킬의 위력과 정밀함은 물론 스탯까지도 50% 감소시키는 것이다.

피스메이커는 이곳에서 고민하며,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가끔 관리국에서 수갑을 재충전하러 올 뿐.

외로울 때면 주간 예술 대회가 열리는 소리를, 특수 제작한 스피커로 들었다.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예술의 향연과 경쟁을 스피커로 들으며, 피스메이커는 자신의 결론이 단순한 광기인지, 확고한 논리에 의한 결론인지 고뇌했다.

“그런 나에게, 잘난 듯이 7대 길드의 대통합을 나불대는 청년이 찾아와 버렸군. 솔직히 화가 조금 나려고 하는데.”

은혁의 체온이 올라갔다.

피스메이커가 속마음으로 [바이러스 지배]만 살짝 건드려도 바이러스 발열로 은혁은 죽는다.

“화가 나셔도 좀 더 들으시죠.”

“해보게.”

“저와 당신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어떤 면에서?”

“당신은 비겁한 기습 및 학살을 저질러 놓고 그것을 무력에 의한 통일 시도였다 여기고 있습니다. 반면에 제가 추구하는 건 정면 승부입니다. 저는 당신과 달리 부길드장급에게 단 한 번도 기습을 건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들 쪽이 먼저 저를 적대시해왔습니다.”

은혁이 말한 건 전부 사실이다.

레나와 브라이언의 경우가 그러했으므로.

“흠.”

“또한, 저는 길드연합국 법률의 범위 안에서, 대화를 통해 지지자를 이미 확보했습니다.”

은혁의 이 말 또한 사실이다.

워잭과 트윈스 자매의 경우가 그러했으므로.

“제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온 것도, 무허가 침입이 아닌, 페넬레시아와의 정면 대결의 일환입니다. 이는 평화 길드의 부길드장 페넬레시아에게 직접 물어보시길.”

페넬레시아가 펄쩍 뛸 소리긴 하지만, 일단 대충 맞는 소리였다.

“여기까지만 봐도 저와 당신의 차이점은 명백합니다. ‘무력에 의한 통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은 동일하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은혁은 피스메이커와 자신을 손으로 가리켜 보였다.

“길드장으로서 학살을 저지른 당신의 수단과 방법은 과격하고 실효성도 약했습니다. 수많은 적을 양산했을 뿐입니다. 반면에 저는 효율적이고 객관적으로 부길드장들의 공격에 맞섰으며, 그걸 무력으로 극복하면서 세를 키우는 중인 겁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실패를 저에게 투영하면서 화를 내는 건 길드장이 할 짓이 아님은 물론, 시정잡배 근성에 불과합니다.”

“흐음. 아주 대놓고 말하는군. 하지만 추가로 묻고 싶은 게 생기는데.”

“물어보시죠.”

“입장 차이와 방식 차이는 인정하네. 하지만 자네 말대로라면, 자네는 각 길드장들을 무력으로 꺾는다는 건데.”

“맞습니다.”

“지금의 자네로서는 나머지 길드장들은커녕, 수갑을 찬 나 한 사람조차 무력으로 꺾을 수 없을 텐데.”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은혁의 체온은 상승 중이었다.

이미 40도에 가까워서, 두통과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은혁은 태연히 말했다.

“할 수 있다면?”

“자네 성격을 보건대, 할 수 있다면 진작 했겠지. 안 그런가?”

피스메이커는 히죽 웃었다.

즐길 만큼 즐긴 자의 표정이었다.

“자네 덕분에 내 고뇌는 한층 더 깊어질 것 같군. 대화한 보람이 있어. 하지만 그것도 이제 슬슬 그만두지. 마지막 무대가 곧 시작되려 하니까.”

피스메이커가 스피커를 보며 말했다.

사실상 바깥과 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그것에서는 열광하는 관중들의 환호성 소리가, 그리고 사회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네! 오늘 무대의 열기는 정말 뜨겁군요! 다음 순서는!”

슬슬 염훈이 나올 차례였다.

“이제 그럼 슬슬 죽어주게나. 자네는 고열과 탈수로 죽을 걸세. 나는 평화 속에서 음악을 감상하며…….”

콰쾅!

은혁은 냅다 [파이어 볼] 스킬을 쏴서 스피커를 박살 냈다.

화염보다는 폭발력을 중시하여 깔끔하게 부서졌다.

“그렇게 평화롭게 은거하며 고뇌하고 싶으시면 음악도 듣지 마시죠. 당신이 죽인 자들의 귀신이 곡하는 소리나 듣는 게, 사령술사 출신인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피스메이커로서는, 죽음을 앞두고도 마지막까지 도발하는 은혁이 정말 재밌게 느껴졌다.

“그렇게 관심을 끌면 고통스럽게 죽을 뿐이네만.”

“해보시죠.”

“좋은 대화였네. 바이러스여. 강은혁의 모든 통각 신경을 활성화하라.”

명령이 전달되는 것보다 1초 빠르게, 은혁의 손이 부적을 찢었다.

‘팬텀 오크의 군세 소환.’

파앗!

다차원 중첩 상태의 팬텀 오크 수백 마리가 은혁의 몸을 감싸듯이 생성됐다.

차원 왜곡 현상이 발생하고, 은혁과 피스메이커 사이의 공간이 뒤틀려서 타겟팅이 어긋났다.

“흠?”

피스메이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타인의 체내에 넣은 바이러스를 조작하려면 타겟팅이 필수였는데, 은혁이 모종의 꼼수를 써서, 타겟팅에 필요한 공간 자체를 뒤튼 게 독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뿐인데.’

다시 타겟팅하면 그만이다.

은혁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림자 결속]! 연속 발동!!”

은혁은 팬텀 오크의 그림자와 자신의 그림자를 융합시킴으로써, 팬텀 오크의 다차원 중첩 상태의 속성을 자신에게 옮겨왔다.

오크의 신 오키니움의 ‘사과’를 온몸으로 받아낸 은혁이었기에, 오키니움의 호의와 신성력 일부가 은혁의 몸에 남아 있었다.

시간차나 거부 반응이 전혀 없는 쾌속 발동!

파바바바바박!!

바느질의 달인이 싸구려 옷감 여러 개를 순식간에 누더기로 기워내듯, 은혁은 자신의 그림자를 수십 마리의 팬텀 오크의 그림자와 연결했다.

“으음……!!”

피스메이커는 탄복했다.

은혁은 팬텀 오크의 속성과 속력을 자신에게 옮겨냈다.

피스메이커 또한 탄복만 하고 가만히 손을 놀리는 대신, 살상 스킬을 날렸다.

“[바이러스 웨이브].”

꿀렁!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살인 바이러스가 수억, 수십억 모이면 끈적한 슬라임처럼 보인다.

피스메이커는 바이러스의 파도를, 수십 마리의 슬라임을 쏟아내듯이 뿜어냈다.

촤아아악!!!

다차원 생명체인 팬텀 오크조차도 피스메이커의 살인 바이러스 파도를 극복하진 못했다.

“쿠오오오!!”

팬텀 오크 수백 마리가 전멸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15초.

하지만 은혁의 모습은 없었다.

‘어디지?’

“여깁니다.”

피스메이커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자에서?’

피스메이커조차도 자기 뒤편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공격은 예측 못 했기에 맞을 수밖에 없었다.

푸욱!

헤비 체인 소드의 칼날이 피스메이커의 어깨를 친 순간.

촤아악!!

피스메이커의 상처가 스스로 넓게 벌어졌다.

그리고 젤 형태의 바이러스가 상처에서 고압 분사되었다.

치이이익……!!

악랄하기 짝이 없는 반격이었다.

누구든 피스메이커의 피부에 물리 공격을 가하면, 피 대신 바이러스가 고압 분사되도록 한 [바이러스 스킨] 스킬.

“음?!”

하지만 [바이러스 스킨]에 당한 것은 [그림자 분신]으로 만든 은혁의 분신이었다.

“진짜는 이쪽입니다.”

소파 그늘에서 은혁이 나타났다.

팬텀 오크들이 죽는 동안 도적 공용 스킬인 [은신]으로 몸을 숨긴 채로, [그림자 분신]만 피스메이커의 뒤편으로 보낸 것.

은혁의 고유 무기인 헤비 체인 소드를 함께 보낸 [그림자 분신]이었기에 피스메이커도 순간 속아 넘어갔다.

파앗!

진짜 은혁이 청염백광단검을 승화시키며, 찔러 들어왔다.

‘이건 맞을 수밖에 없겠군.’

아무래도 수갑을 차고 있는 상태였기에 전력은 전성기의 50% 이하다.

빛을 뿜어대는 단검이 시야를 가리고, 고열은 [바이러스 스킨]을 녹이며 치명상을 한 방은 먹일 것이다.

‘각도를 보니 심장 같군.’

어차피 피스메이커는 체내 바이러스를 융합시켜서 내장 기관을 만들 수 있다.

그래도 심장이 갑자기 파괴되는 건 피스메이커 입장에서도 치명상이다.

피스메이커는 담담히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반격을 준비했지만.

파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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