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113화 (113/434)

113화 : 랭커들과의 대결 (1)

은혁과 올마스크의 대화 내용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자는 소수였다.

그동안 은혁이 7대 길드의 부길드장, 길드장들을 만나며 은연중에 언급했던 포부가, 올마스크와의 대화를 통해 5층 전체에 생중계된 것이다.

‘강은혁은 7대 길드의 길드장들을 모두 꺾고, 통합길드장이 되는 게 목표다.’

랭커, 중소 길드의 길드장, 기타 뜻있는 자들은 그 진의를 깨닫고 전율했다.

하위 랭커들이 자주 쓰는, 5층의 익명 네트워크 게시판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

-오늘 구원 길드 무술 시합 중계 봤음?

-참가자도 별로 없고 해서 ㅈ도 아닌 시합일 줄 알았는데, 폭탄 발언이 줄줄이 나오더만.

-강은혁 이 인간이 그냥 성장이 빠른 놈이 아니었네.

-근데 대놓고 7대 길드장을 꺾는다고 선언해도 되는 거?

-그만큼 자신이 있다, 준비는 다 끝났다 그런 뜻 아닐까요?

은혁의 명성은 그 어느 때보다 치솟았다.

단순히 루키가 큰 업적을 이뤘을 때와는 달랐다.

그 증거로, 기자들이 예전처럼 은혁에게 따라붙지 않았다.

어중간하게 엉겼다간 자기들이 다칠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지금의 은혁을 7대 길드의 부길드장과 길드장 중간급의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분을 일부러 찾아온 겁니다.”

은혁은 예전에 9층에서 인연이 닿았던, 올리버의 부관 2인조를 찾았다.

그 두 사람은 은혁이 레나와 결전을 벌이는 걸 멀리서 몰래 촬영한 자들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은혁을 쫓아오지 못했다.

“저어,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참고로 저희 올리버 님께서는 강은혁 님과 싸웠던 일을 지금도 후회하고 계십니다만.”

올리버의 부관 2인조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말했고, 은혁은 그 용건으로 온 게 아니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자들이 슬쩍슬쩍 저랑 염훈을 관찰했는데, 싹 사라졌더군요. 그래서 여러분을 부른 겁니다.”

“아, 기자 회견을 원하십니까?”

“그 정도는 아니고, 7대 길드에 도전한 자로서 간단한 성명을 발표하고 싶은데요.”

올리버의 부관 둘은 얼른 카메라와 마이크를 세팅했다.

은혁은 짧게 말했다.

“제 목표는 7대 길드를 모두 꺾는 겁니다. 그러므로 당분간은 나보다 약한 이들을 상대할 시간은 없습니다. 그러니 나보다 랭킹 낮은 플레이어들은, 괜히 날 쓰러뜨리겠다고 찾아오지 마시길. 여러분의 깊은 이해 바랍니다. 이상.”

* * *

쿵쿵!

누군가가 은혁의 테번 객실 문을 두드렸다.

“야, 은혁아. 아직도 자냐? 일어나.”

“후아아암.”

은혁은 입을 쩝쩝 다시며 일어났다.

침대 발치에는 트로피가 있었다.

데굴데굴…….

은혁은 굴러가는 트로피를 붙잡았다.

-무술 시합 우승 트로피 :

구원 길드가 주관한 무술 시합 우승자인 강은혁에게 제공된 트로피.

이 트로피의 소유자는 구원 길드 수련관의 모든 시설을 완전히 무료로, 무제한적으로 이용 가능하다.

또한, ‘무혈의 우승자’로서의 구원 길드장과의 면담 특전으로, 4인 이하의 파티를 결성하여 구원 길드장 올마스크에게 언제든지 [도전]할 권한이 있다.

은혁은 트로피를 인벤토리창에 넣은 뒤, 염훈과 함께 1층에 내려가 식사를 하려 했다.

1층에서 식사를 하던 이들은 계단에서 내려오는 두 사람을 보고 기겁했다.

“헉?!”

“강은혁이다……!”

우르르르…….

거센 바람에 모래가 물결치듯, 사람들은 의자와 테이블째 옆으로 이동했다.

‘이런, 사람들이 불편해하네.’

은혁이 7대 길드에 싸움을 건 이래로, 사람들은 은혁 주변에 있는 걸 두려워했다.

하지만 은혁과 염훈은 무척 태연했는데…….

‘당장은 의외로 안전하니까.’

7대 길드의 길드장급은 5층 한복판에서 함부로 활동하지 못하고, 길드의 감독관이나 그 이하 레벨은 은혁과 염훈의 상대가 안 된다.

결국, 은혁에게 솔직히 위험이 될 만한 건 7대 길드의 부길드장급이다.

‘그 7명 중에 당장 내게 위협이 될 만한 자들은 의외로 없지.’

레나, 브라이언, 워잭은 이미 은혁이 이겼다.

트윈스 원은 감옥에 있다.

페넬레시아는 감염 회복 단계이고, 은혁이 평화의 미궁을 클리어했으니 약속대로 은혁을 도울 수밖에 없다.

남은 건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 시리우스와 자유시장 길드의 테일러뿐이다.

‘이 둘은 서로 경쟁 상태지.’

워잭이 쓰러져서 일시적인 치안 공백이 찾아왔을 때, 행복 길드 쪽에서 자유시장 길드 쪽에 가벼운 도발성 사업 진출을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양측은 서로 견제하느라 손발이 묶인 상태.

‘즉, 내가 7대 길드를 꺾는다고 호언장담해도, 의외로 나는 안전하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드르륵!

살기등등한 자들 10명이 테번으로 거칠게 들어왔다.

“나는 랭킹 179위! 재생하는 성기사 한형준이오!”

“저는 랭킹 180위! 레이저를 쏘는 마법사 앤디 로크라고 합니다!”

“본인은 랭킹 193위! 흑곰을 지배하는 소환술사 마가레스!”

“제 이름은 퍼플! 현재 랭킹 189위! 겉과 속을 뒤집는 마법사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200위권 바깥의 랭커이나, 주사위를 굴리는 혼돈술사 다이스맨……!”

자기소개가 줄줄이 이어졌다.

테번 1층에서 식사하던 이들은 식기를 들고 일어나, 벽 쪽으로 물러나서 구경했다.

‘대부분 랭킹 190위~170위 수준들이군.’

광장의 게시판에는 랭킹 100위 이내만 표기되지만, 게시판 관리자에게 정보료를 제공하면 200위권이나 그 바깥까지의 랭킹도 검색이 가능했다.

은혁을 찾아온 이들은 중소 규모의 길드장들, 랭커들이었다.

은혁의 회귀 전 기억에 남은 이들도 있었고, 아닌 이들도 있었다.

‘일부는 2차 길드 대전 때 죽고, 대부분은 99층 가기 전에 죽지.’

이들 중 누가 먼저 죽고 나중에 죽는지에 대한 기억은 완전하지 못했다.

‘내가 기대한 인간은 몇 명 안 왔네.’

은혁이 어제 일부러 도발적인 성명을 발표한 것은, 영입……까진 아니더라도 일단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 인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나타난 이들 10명 중 딱 절반만 은혁이 바라는 이들이었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성명 발표 한 번으로 절반의 성공이니까.’

은혁은 약간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봤고, 이들은 모두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전이 정당하다고 믿고 있는 듯했으나, 염훈의 눈에는 이상해 보였다.

“아니, 그렇게 도전하고 싶으면 어제 구원 길드 무술 시합에서 싸움을 걸지, 왜 이제 와 뒷북이람?”

염훈이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 그런 공식 시합에 참가하면 우리의 직업과 고유 스킬이 다 공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음? 그럴듯한 변명 같긴 한데, 좀 이상한데?”

“뭐가 말인가!”

“당신들, 여기 테번 들어올 때는 각자 자기 랭킹이며 직업이며 특기를 다 소개했잖아? 자기 입으로 그것들이 비밀이라면서 자기소개는 왜 하면서 들어온 거야?”

“큿……!”

그들은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은혁이 염훈 대신 나서며 비웃기 시작했다.

“진짜 이유는 이거지? 무술 시합에서는 다굴을 칠 수 없으니까. 맞지?”

그랬다.

여기 모인 이들도 랭커들답게 결코 약한 이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은혁과 일대일로 싸울 실력은 없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참고 있었는데, 내가 어제 좀 도발적인 성명을 발표하니까 참을 수 없게 된 거지? 그래서 여럿이 힘을 합쳐서라도 나한테 한 방 먹이고 싶어진 거지? 그렇다고 나를 갑자기 기습하면 욕을 먹을 것 같고, 그래서 밝은 아침에 찾아와 자기 소개하면서 동시에 대결을 신청하는 거지? 그럼 다굴 치는 듯한 이미지가 좀 가려지니까. 내 말 맞지?”

은혁은 마치 그들의 심리를 해부하듯 줄줄이 설명했다.

그들은 표정을 잔뜩 구겼다.

“그, 그뿐만이 아니다 우린 단순히 자존심이나 명예를 위해 네게 대결을 신청하는 게 아니다!”

“호오, 나름의 대의명분이 있다?”

“그렇다!!”

“안 들어.”

“엥?”

“분명히 말해 두는데, 너희는 지금 대결을 신청하러 온 거지? 근데 그 대결을 내가 거부하면 끝이지? 5층에서는 쌍방 합의에 의한 대결이 아닌 경우, 멋대로 싸움을 거는 건 불법이니까.”

“그, 그러니까 대결을 신청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겠다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안 듣겠다고 답했잖냐. 보나 마나 딱 너네 수준에 맞는 너절한 대의명분이 있겠지.”

은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졸린 표정을 지었다.

“근데 너희 수준에 맞춰 일일이 맞서 상대를 해주기엔 내가 너무 바쁘다. 26층에 올라갈 예정이거든.”

은혁은 염훈과 함께, 오늘 중으로 26층~29층 통합층을 클리어할 예정이었다.

“훗. 그런 식으로 자리를 피하시겠다?”

“음? 누구냐. 앞으로 나와.”

스윽.

자기소개를 하지 않은 유일한 자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존 마스든이다. 필중의 궁술사지.”

자기소개를 들은 은혁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이놈은 확실히 기억나네.’

마스든은 [필중의 사격] 스킬을 자랑하는 자였다.

그의 직업은 은혁이 ‘모든 직업의 가능성’을 얻은 뒤로, 궁술사 직업 중에서 가장 갖고 싶어 한 것이기도 했다.

‘정작 스킬값 못 하고, 2차 길드 대전 도중 자기 부하 손에 죽는 놈이었지?’

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번뜩였고, 마스든은 맹수 앞에 몰린 쥐처럼 잠시 주춤거렸다.

그래서 은혁은 얼른 살기를 거두고 빙긋 웃었다.

“반갑군, 마스든. 나는 강은혁이다.”

은혁이 악수를 청했지만 마스든은 무시하고 용건부터 내질렀다.

“분명히 해두지, 강은혁. 네가 지금 우릴 피하면, 우리는 널 방해할 것이다.”

“와, 진짜 나쁜 놈들이네. 도대체 왜?”

“그러니까 그 이유를! 우리 대의명분을 아까 설명하려 했는데 네가 안 듣는다고 했잖아!! 거기에 이유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지금이라도 설명할……!”

“그게 얼마나 대단한 대의명분이기에 우르르 몰려와서 날 방해하겠다~ 하고 떠드는 건데?”

“야!! 말 좀 끊지 말고 그냥 우리 대의명분이 뭔지 좀 들어주면 어디 덧나냐!!”

“대의명분이고 뭐고, 결국 날 방해하겠다는 주장 아닌가. 미리 말해두는데, 너희 같은 애들은 너희가 처음이 아니다. 상승 길드의 부길드장 브라이언도 너네랑 똑같았어. 비 오는 저녁에 혼자 왔는가, 햇살 밝은 아침에 우르르 몰려들었는가의 차이일 뿐.”

“읏……!”

마스든의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 중에 브라이언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나마 브라이언 정도 되니까 은혁에게 패배하고, 머리카락 색이 하얗게 변한 채 방랑을 떠나는 걸로 끝난 것이다.

“그러니 대의명분이니 뭐니 하는 너절한 소리는 집어치우지. 정정당당하게 일대일 대결을 신청할 거면, 신청해라. 그럼 특별히 상대해주지.”

“일대일 대결……은 할 수 없다.”

“왜?”

“……네가, 우리들 개개인보다 훨씬 강하니까. 일대일로 싸우면 승산이 절대 없으니까.”

마스든은 솔직하게 답했다.

결국, 은혁의 처음 지적이 맞았다.

마스든이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이유, 일부러 밝은 아침에 모인 이유.

그 모든 이유는 사실 은혁에게 일대일 대결을 신청할 정도로 이들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금 그 말은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다.”

“어?”

“솔직한 게 마음에 들었다고. 그러니 이쪽에서 역으로 대결을 제안하지.”

은혁은 가볍게 양팔을 펼쳤다.

“흡!”

콰콰콱!!

은혁은 테이블 주위를 헤비 체인 소드로 그어서 동그란 대결 장소를 만들었다.

테번 주인이 뭐라 한마디 하려고 하자, 염훈이 우선 자기 금화로 변상했다.

은혁은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마스든만 노려봤다.

“이 원 안에서, 나와 네가 일대일로 싸우자.”

은혁은 마스든이 거절하지 못하게 빠르게 말했다.

“나와 너, 둘 중 하나가 죽거나 항복하거나 기절하면 상대방의 승리. 제한 시간은 5분으로, 5분이 지나면 여기 있는 관중 여러분이 판정을 내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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