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 농장주 피에로 처치
“허…….”
구경하던 염훈은 말을 잃었고, 몸을 일으킨 더트 웜들도 조금 당황한 듯 몸을 일으킨 채 대기했다.
“크륵……!”
농장주 피에로는 중간 보스급 맷집으로 버텼지만 눈도 뜨지 못했다.
‘반격해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콰악!
갈고리 같은 게 농장주 피에로의 발목에 꽂혔다.
“날아라!”
은혁은 왼손에 쥔 차원의 낚싯대 끝에 걸린 농장주 피에로를 높이 날려 보냈다.
부우우웅……!
10미터가량 높이 솟구친 농장주 피에로는 허우적거렸다.
그동안 은혁은 오른손으로 [메탈 스파이크 소환] 스킬을 바닥에 깔아뒀다.
“흐읍!!”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를 확 끌어당겼다.
높이 솟구쳤던 농장주 피에로는 메탈 스파이크 함정 위로 빠르게 추락했다.
퍼벅!!
온몸에 메탈 스파이크가 깊숙이 꽂힌 채 농장주 피에로는 무력화되었다.
“컥, 커억……!”
농장주 피에로는 꿈틀거렸고, 은혁은 그에게 말했다.
“별로 듣고 싶은 소린 아니겠지만, 이대로 널 1분쯤 방치하면 넌 죽는다.”
“으윽…….”
“하지만.”
은혁은 성직자 스킬 [하급 치유]로 농장주 피에로를 아주 살짝 치료해줬다.
어차피 은혁의 성직자 숙련도는 낮은 편이라 효과도 그저 그랬다.
“내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죽지 못하게 해주마.”
“……!!”
“선택해라.”
농장주 피에로는 쇠꼬챙이에 꿰뚫린 채 빠르게 고민했다.
물론, 은혁은 농장주 피에로의 고민을 꿰뚫어 봤다.
“배신하게 되는 게 두려운 거지?”
농장주 피에로의 입장은 복잡했다.
몬스터로서는 피에로 마스터의 부하이면서, 동시에 플레이어로서는 행복 길드 부길드장 시리우스의 부하이기도 하다.
여기서 은혁의 말을 들으면, 양쪽 모두를 배신하는 게 되므로, 농장주 피에로는 몸이 꿰뚫린 채로도 고민을 해야 했다.
“아예 우리가 널 영입한다면?”
“뭣……!”
“여기 있는 염훈은 불패불굴 길드의 길드장이다. 널 우리 길드로 영입할 수 있지. 물론, 그러려면 행복 길드에서 탈퇴해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나! 행복 길드는 7대 길드 중에서 가장 탈퇴가 어려운 길드라고!”
농장주 피에로와 같은 행복 길드의 고위직 길드원의 경우, 배신에 대한 금제가 강하게 걸려 있었다.
농장주 피에로가 길드 탈퇴를 진지하게 마음먹기만 해도 무조건 배신자로 간주된다.
배신자에게는 그동안 행복 길드원으로서 누렸던 행복 크기와 동일한 불행이 매우 짧고 강렬하게 찾아온다.
그걸 맨정신으로 견딘 자는 없고, 절반은 죽고, 나머지 절반은 광란자가 되어 버린다.
“그것도 어떻게든 치료해 줄 수 있다면? 어쩔래?”
“…….”
“평생 여기서 피에로 노릇 할래? 아니면 우리 길드에 들어와서 100층 공략할래?”
“헛소리! 그게 가능할 리가……!”
“왜 불가능한데?”
“그건……!”
“힘과 정보가 부족하고 층별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으며 경쟁자도 많은 데다가 그밖에도 다양한 문제가 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그, 그렇다!”
“다 극복 가능하다면?”
“그러니까 그게 헛소리라는……!”
“지금까지 나와 염훈은 부하를 따로 두지 않았어. 하지만 얼마 전부터 부하를 확 늘리는 중이지. 왜일까?”
은혁이 먼저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아무리 재능이 있는 녀석들이라도, 완전 기초부터, 그것도 여럿을 키우는 건 나라도 불가능하거든. 하지만 20층대 후반쯤 되면 뭐, 100층탑의 4분의 1은 돌파한 자들이니 검증된 녀석들이지. 그런 녀석들을 모은 다음!”
은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탯 잠재력을 강화시킨다! 다양한 직업과 기본기를 갖춘 녀석들의, 스탯의 부족한 부분만 높여서 상향 평준화를 이룩하면? 그것만 해도 엄청난 메리트가 있지.”
은혁은 자기 말에 스스로 끄덕였다.
이미 농장주 피에로는 안중에도 없고 불패불굴 길드를 강화시킬 계획을 중간점검하고 있었다.
“그다음 경쟁자 문제와 정보의 부재 문제? 그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7대 길드를 꺾는 계획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착착 진행 중이고, 그들도 통합시킬 것이니 경쟁자 문제는 내가 59층에 갈 무렵이면 얼추 정리될 거라 생각해.”
7대 길드 관련자인 농장주 피에로는 기가 막혔지만 은혁은 거침없었다.
“그리고 정보 문제야 뭐, 말할 수는 없지만 내 나름의 정보 획득 방식이 있지.”
가장 어려운 정보 습득 문제는, 은혁이 애초에 회귀자이므로 더 논할 것도 없다.
“이상이다.”
은혁은 설명을 마치고 농장주 피에로의 얼굴 화장을 강제로 마저 지웠다.
“으으윽.”
농장주 피에로는 다시 인간이 되었다.
“너, 인간일 때 이름은?”
“…….”
“입 다물고 있으면 될 것 같냐? 네 이름, 프리머지?”
“어, 어떻게 알았지?”
“다 알고 온 거다. 종자나 내놔.”
“아직 네놈 부하가 되기로 결정하진 않았다.”
“도와주지. [강탈].”
퍼벅!
[소매치기]가 몰래 훔치는 거라면, [강탈] 스킬은 대놓고 때리면서 훔치는 스킬이었다.
“크악!”
여전히 꼬챙이에 꿰뚫린 프리머는 해피 라이스의 종자를 모조리 뺏겼다.
“염훈.”
“[정화].”
염훈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화]시켰다.
슈우우우……!
인위적인 행복감을 유도하고 중독시키는 독성 물질이 싹 사라졌다.
이제 해피 라이스는 중독성 물질 없는 양질의 쌀이 될 테였다.
“아아……!”
그 순간, 프리머에게 ‘배신’ 판정이 내려졌다.
-경고! 행복 길드에 대한 배신이 확인되었습니다!
-40초 뒤, 배신에 대한 처벌이 가해집니다!
-지옥 같은 불행에 앞선 40초간 자신의 죄를 반성하시길!
행복 길드가 프리머의 몸속에 심어 둔 배신자 처벌 프로토콜이 발동했다.
“아악! 안 돼! 내가 배신한 거 아닌데!”
프리머는 절규했다.
곧 자기에게 닥칠 배신에 대한 반작용이 두려웠다.
농장주 피에로 특유의 여유만만한 표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은혁은 환하게 웃었다.
“지금 염훈에게 충성 맹세하면 구해주마. 어쩔래?”
프리머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염훈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
하지만.
“거절한다.”
염훈이 말했다.
“어?!”
은혁과 프리머 모두 놀랐다.
염훈은 부루퉁한 표정이었다.
“이놈, 착한 놈이 아니잖아. 그동안 마약 원료 농사하고, 원액 먹여서 중독시키고 사람 죽인 놈이잖아? 이런 놈을 왜 부하로 삼아야 하는데?”
염훈은 지극히 정상적인 윤리적 잣대를 들이댔다.
은혁은 프리머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너 이제 큰일 났다. 염훈이 너 구해주기 싫다네? 쯧쯧.”
은혁은 정말 불쌍한 놈 보듯 혀를 끌끌 찼다.
염훈은 더욱 냉혹한 눈으로 프리머를 내려다보며 비판을 이어갔다.
“지금 네 모습도 그래. 아까는 현실이니 비현실이니 좋을 대로 떠들더니, 정작 자기가 괴로운 처지에 처하니까 비명이나 지르고. 뭐야, 그게. 너 같은 놈은 절대로 부하로 삼지 않는다.”
염훈은 은혁에 비하면 천사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좋고 싫음은 분명했다.
특히 개선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악인에 대해서는 냉혹했다.
“제, 제발!”
그 순간.
뿌드드득!
엄청난 고통이 프리머의 몸에 찾아왔다.
“끄아악!!”
“흡!”
촤악!
은혁은 헤비 체인 소드를 후려쳐서 단숨에 프리머의 목을 쳤다.
털썩!
프리머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뭐, 불필요하게 고통받을 필요는 없겠지.”
은혁이 말하자 염훈도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우우……!”
더트 웜들은 자기들의 주인이 죽자, 서서히 화를 내려 했지만.
“읏차.”
은혁이 프리머의 시체에서 농장주의 채찍을 줍는 게 더 빨랐다.
-농장주의 채찍 :
4성급 아이템.
28층 해피 팜의 대규모 농지를 관리하는 농장주 피에로의 권능이 담긴 아이템.
자체 공격력은 거의 없으나, 이 채찍의 소유주에게 28층 해피 팜에서 농작물을 경작할 권리가 귀속된다.
더불어 경비용 허수아비와 더트 웜의 지휘권 또한 귀속된다.
“자, 땅 밑으로 가서 쉬어라.”
은혁이 농장주의 채찍을 휘두르자, 더트 웜들은 깊은 땅 밑으로 사라졌다.
은혁이 따로 부르지 않는다면, 땅속 깊은 곳을 파고들어 잠들어 있을 터였다.
-축하드립니다! 28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29층으로 이동할 권리를 획득하셨습니다!
“좋았어. 농장도 획득!”
은혁은 그렇게 말하더니, 프리머의 머리통을 소중히 챙겼다.
“아니, 그건 왜 챙겨?”
“나중에 쓸모가 있거든.”
“어?”
“후후. 일단 썩지 않게 보관해야 하는데…….”
은혁은 부하들이 오길 기다렸다.
잠시 뒤, 놀이기구를 클리어한 이들이 하나둘 달려오는 게 보였다.
“허, 엄청 빠르네? 27층보다 더 빨라.”
염훈이 감탄했고, 은혁은 하품했다.
“그야 성장했고, 조를 그렇게 편성했으니까.”
가령, 초음속 롤러코스터에 보낸 A조 같은 경우, 맨 앞자리에 돌진하는 도적을 앉혀서 풍압을 중화시키게 하고, 바람을 지배하는 마법사를 그 바로 뒤에 앉혀서 역풍을 생성시키고, 그 뒤에 성기사 둘을 앉혀 뒤에서 바로 버프를 주게 하고…… 하는 식으로 유기적으로 서로를 돕도록 미리 조를 편성해뒀다.
“직업이 사령술사인 사람은 앞으로.”
그러자 사령술사가 4명 나왔다.
“영혼과 대화하는 사령술사입니다.”
“해골을 지배하는 사령술사입니다.”
“저주를 부여하는 사령술사입니다.”
“부패를 관리하는 사령술사입니다.”
4인의 사령술사 모두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이었다.
은혁은 프리머의 시체를 가리켰다.
“다들, 뭘 해야 하는지 알겠지?”
“아뇨…….”
“뭘 해야 하냐면.”
은혁은 4인의 사령술사들에게 속닥속닥 지시를 내렸다.
“으으.”
사령술사들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가 사령술사라지만 그런 짓을 꼭 해야 해?’ 하는 표정들이었다.
“부탁한다. 사령술사의 유틸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해라.”
은혁은 그들의 어깨를 한 번씩 툭툭 쳐준 뒤 다른 일로 넘어갔다.
“나머지 인원들은 나한테 조이 포인트 다 넘기고, 여기서 잠시 휴식. 각 조별로 인원을 차출하여 주변을 경계할 것.”
29층은 위험한 섬이었기에, 그리고 진입을 위한 조이 포인트가 많이 필요했기에, 은혁은 최소 인원만 갈 생각이었다.
“거기 너.”
“저, 저요?”
머리카락을 보라색으로 염색한 소녀가 있었다.
1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막상 머리를 과감한 보라색으로 염색한 걸 묘하게 후회하는 듯도 보였다.
“그래. 너 이름은 뭐였더라?”
지난번 테번에서 한 번 듣긴 했는데 조금 가물가물했다.
“퍼플요…….”
“내가 틀린 거라면 미안하지만, 왠지 자기 이름에 맞춰 머리카락 염색해놓고 막상 후회하는 타입으로 보이는데.”
“그, 그걸 어떻게!”
“표정에 딱 나오니까. 그보다 네 직업이 뭐였지?”
“B+급 직업, 겉과 속을 뒤집는 마법사입니다.”
“아, 기억났다. 랭킹 189위였지?”
퍼플은 간단한 기본 마법사 스킬에 더불어, [리얼 인버전]이라는 고유 스킬을 추가로 지니고 있었다.
[리얼 인버전]은 물질의 겉과 속을 뒤집는 스킬인데, 악수할 때 그 스킬을 쓰면 상대방의 손 안쪽 근육과 뼈가 밖으로 뒤집혀 나오고, 피부가 안으로 들어가는 그로테스크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밖에도 갑옷을 고의로 뒤집어서 부수거나 하는 등 쓸모가 많은 스킬이다.
“저어, 감명 받았습니다!”
“어?”
“아, 아니, 인사가 늦었지만, 페스티벌을 그렇게 극복하는 걸 보고 감명 받았다고요!”
“고맙군. 넌 우리랑 같이 간다.”
“아, 어디로요?”
은혁은 대답 대신 염훈을 돌아봤다.
“염훈? 지금 바로 29층으로 가자.”
은혁과 염훈, 퍼플은 29층 문지기 앞으로 갔다.
퍼플은 가는 내내 불안해했다.
“저기, 저기요? 강은혁 플레이어, 아니, 부길드장님?”
“왜?”
“저, 사실 제 스킬은 암살이나 일대일 싸움에 더 특화된 스킬이거든요.”
“알아.”
“저어, 29층에 몬스터가 많으면 저는 한두 놈 처리하고 죽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알아. 그러니까 나랑 염훈이 널 보호해 줄 거다. 걱정 마.”
“저어, 그럼 아예 절 안 데리고 가는 편이 두 분 입장에서는 편하지 않나요?”
“뭐야, 겁먹었냐?”
“네!”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넌 염훈에게 충성을 맹세했지. 염훈이 가자고 하면 가야 한다.”
“우우…….”
퍼플은 울상을 지었고, 염훈은 은혁을 돌아봤다.
“은혁아. 많이 무서워하는데, 그냥 두고 우리끼리만 가지?”
“안 됨.”
“왜 안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