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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22화 (122/434)

122화 : 와일드 마운틴

은혁에게 나름의 작전이 있었지만, 회귀 지식과 관련된 거라 구체적으로 말하긴 애매했다.

그래서 은혁은 염훈에게 이렇게 말했다.

“막상 퍼플을 두고 갔는데 나중에 쓸모가 있으면 어쩌게?”

“29층에서 과연 저 녀석이 쓸모 있을까.”

염훈은 팸플릿을 한 번 더 뒤적였다.

팸플릿에 묘사된 와일드 마운틴에는 몬스터가 많고, 거대한 드래곤이 숨어 있는, 자연 그대로의 원형을 유지하는 테마의 놀이공원이라 적혀 있었다.

‘겉과 속을 뒤집는 마법사가 쓸모가 많을 것 같진 않은데.’

염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은혁은 29층의 문지기에게 다가갔다.

29층 문지기는, 요즘은 보기 힘든 카드사 영업사원처럼 생겼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놀이공원을 즐기고 계신가요?”

“예, 뭐. 몇 가지 문의 사항이 있는데요.”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고객님.”

“피에로 서커스는 언제 개장합니까?”

은혁이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서커스 천막을 가리켜 보였다.

피에로 마스터가 사는 곳으로, 사실상 보스방이다.

“아, 그에 관해서는 피에로 마스터께서 한 가지 메시지를 남겨두셨습니다.”

“흠. 뭐라고 보냈던가요?”

“피에로 서커스를 제외한 모든 놀이 기구를 클리어하면 자신이 직접 초대장을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흠.”

히든 미션 관련 놀이 기구를 제외하면, 29층을 뺀 다른 층의 놀이 기구는 사실상 다 클리어했다.

결국, 29층 메인 미션까지 싹 다 클리어하고 오라는 소리다.

“그럼 29층으로 가는 길 좀 열어주시죠.”

“보유 중이신 조이 포인트 확인 중입니…….”

“세 사람 분량으로 600 포인트 낼 테니까 원하는 지점으로 전송 요청합니다.”

입장료 조이 포인트에, 추가로 포인트를 내면 전송 위치를 설정 가능했다.

“알겠습니다. 어느 지…….”

“서쪽 지점. 트롤 숲 입구.”

은혁은 29층 문지기의 말을 탁탁 끊고 결론만 말했다.

문지기는 마음이 상했는지, 세 사람을 바로 전송시켰다.

* * *

-29층 : 와일드 마운틴.

<29층 메인 미션 : 와일드 마운틴에서 탈출하기>

-목표 : 와일드 마운틴에서 30분 이내에 탈출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레벨 1 증가.

-실패 시 페널티 : 죽음.

-제한 시간 : 30분.

해피 팜에서 멀리 떨어진 섬.

섬 전체가 커다란 산과 같았다.

각종 몬스터가 살았고, 특히 서쪽에는 야생 트롤들이 사는 숲이 있었다.

염훈은 도착하자마자 경계 자세를 취했고, 퍼플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음.”

“으으……! 몬스터가 너무 많아요.”

겉보기에는 울창한 녹색 숲속이지만, 죽음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은혁은 미션창을 반복해서 읽었다.

“제한 시간 30분이라.”

회귀 전에 왔을 때 받았던 29층 메인 미션과 내용이 달라졌다.

그만큼 피에로 마스터가 은혁 일행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소수 정예로 오길 잘했어.’

여럿이 왔다가는 오히려 사상자가 늘어날 뻔했다.

“은혁아. 우리 이미 포위된 거 같은데?”

염훈이 말했다.

“음.”

은혁은 동의했다.

스테이지마다 몬스터 비율과 리젠 시간이 다 다른 편인데, 와일드 마운틴은 특히 빨랐다.

스륵.

스륵.

스륵.

하필 이 서쪽 숲에서 몬스터가 리젠되고 있었다.

그 순간.

화르르륵!

불길이 어디선가 치솟았다.

‘역시 있었군.’

불길을 일으키며 싸우는 쪽은 플레이어 2인조였다.

몬스터가 리젠 중이라는 건, 저 2인조가 이미 몬스터를 한바탕 학살했다는 뜻이다.

‘감회가 새롭네.’

사실 저 둘을 반드시 구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가만히 둬도 살아남을 테니까.

그럼에도 은혁은 저 둘을 같은 편으로, 길드원으로 삼고 싶었다.

‘트롤을 사냥하는 2인조.’

검을 복사하는 전사 정철.

화염을 지배하는 마법사 화륜.

은혁은 회귀 전 이곳에서, 이 두 중년 사내들로부터 트롤 사냥을 배웠다.

회귀 전에 왔을 때는 미션 제한 시간이 매우 길었으므로.

다양한 사냥 기법을 두 사람에게 배웠었는데, 특히 은혁의 기억에 남는 것은…….

‘화염을 검에 부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히든 이펙트.’

그것을 이 둘에게 배웠기 때문에, 은혁은 이번 생의 1층 튜토리얼의 트롤들을 손쉽게 처치할 수 있었다.

이제, 은혁은 그들을 돕고 부하로 삼으려 한다.

“가서 보자.”

숲 한복판에서 트롤 사냥 2인조가 벌이는 사냥은 말 그대로 화끈했다.

정철이 먼저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고유 스킬 [검 복사]를 썼다.

“[검 복사]!!”

촤자자자작……!

높이 든 검 끝에 나무가 가지를 뻗듯이 24자루의 검이 생성됐다.

그 직후 화륜도 스킬을 썼다.

“[화염 방사]!!”

화르르륵!!

은혁의 것과 별 차이가 없는 화염 줄기가, 24자루의 칼날에 휘감겼다.

-히든 이펙트 발동!

-히든 이펙트 발동!

……

……

-히든 이펙트 발동!

-히든 이펙트 발동!

칼날 하나하나마다 히든 이펙트가 연속으로 걸렸다.

실력과 신뢰를 공유하는 이들 2인조만이 가능한 묘기였다.

“차하앗!!”

정철이 거대한 나뭇가지처럼 뻗은 화염의 검을 휘둘렀다.

화아아아악!!

그리고 트롤과 숲을 통째로 태우고 썰었다.

“이크.”

염훈과 은혁은 얼른 엎드려서 그 여파를 피했다.

“음?! 거기 누구냐!!”

정철과 화륜이 다가왔다.

“아, 저희는 불패불굴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입니다. 저는 부길드장 강은혁. 이쪽은 길드원인 퍼플, 그리고 길드장인 염훈.”

은혁이 얼른 소개를 했다.

정철과 화륜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노려봤다.

“일부러 와일드 마운틴까지 오다니. 수상하군.”

“여긴 통합층이라, 굳이 29층까지 오지 않아도 조이 포인트만 모아서 클리어하고 올라갈 수 있는 거 아닌가? 굳이 이 깊은 곳까지 왔다고?”

두 사람이 추궁하자, 은혁은 자기 미션창을 보여줬다.

정철과 화륜의 눈이 커졌다.

“뭔 미션 난이도가 이렇게 높아? 갑자기 바뀐 건가?”

“허참. 이런 경우도 다 있군.”

미션창을 보자 두 사람은 의심을 거뒀다.

“우리의 29층 메인 미션은 제한 시간이 무제한일세. 반면에 당신들 미션 제한 시간 30분이라 무척 힘들겠군.”

“그래서 제안할 게 있습니다.”

“뭐지?”

“저희 둘이 여러분을 도울 테니, 여러분도 저희를 도와주시겠습니까?”

“허. 우리 미션이 뭐인지 알긴 아나?”

사실, 은혁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가르쳐 주시죠.”

“드래곤 처치라네.”

정철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 산의 중심에는 드래곤이 살고 있다네. 그걸 처치하는 게 우리 29층 메인 미션이었지.”

“난이도가 너무 높아 보이는데요? 겨우 둘이서 드래곤 처치라니.”

염훈이 지적하자 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우린 인원수도 많았고, 꽤 강했거든…….”

정철과 화륜이 함께 이끌고 온 공격대 인원수는 54명이었다.

특히 정철과 화륜이 강했기에 승승장구했지만, 그게 문제였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자네들 미션을 보고 확신했네. 여기 주인인 피에로 마스터는 완전 개자식이야. 필요하다면 미션 난이도를 제멋대로 확 올리는 놈이지!”

“맞습니다.”

은혁이 맞장구쳐줬다.

그러자 정철이 말했다.

“결국, 동료들은 모두 전멸했다네. 우리 둘만 살아남아서 버티고 있지.”

그리고 화륜이 우울하게 덧붙였다.

“우리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사실, 당신 둘은 엄청 오래 버티는데.’

회귀 전 본래 역사에서, 은혁이 이 층에 도착하는 건 사실 한참 뒤다.

그때도 두 사람은 살아 있었고, 지금보다 더 강했다.

“그렇기에 우리 다섯은 서로 더 힘을 합쳐야 한다고 봅니다.”

“흠. 일단 자네들은 믿을 만한 사내들 같군. 한데 자네들 제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걱정 마십쇼. 저와 염훈, 퍼플이 두 분의 미션, 즉 드래곤 처치를 먼저 진행할 겁니다. 그 이후에 두 분이 저희를 도와주시면 됩니다.”

“뭐라고?!”

정철과 화륜이 경악했다.

“아니, 지금 자네들한테 남은 시간은 25분 정도야. 그 안에 드래곤을 죽이겠다고?”

“드래곤을 처치하기 위한 작전은 이미 세워 뒀습니다. 대신에…….”

“대신에?”

“대신에 여러분은 우리 부하가 되어줘야겠습니다.”

“흠.”

정철과 화륜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쪽이 우릴 먼저 돕고, 그다음 우리가 그쪽을 돕는 것 자체는 불만이 없지만…….”

“갑자기 부하가 되라니 좀…….”

머뭇거리는 게 당연하다.

만난 지 5분 만에, 서로 돕는 대신 부하가 되라 마라 하면 당연히 납득하기 어렵다.

“그럼 작은 내기를 하면 어떨까요?”

“무슨?”

“우리 중 누가 제일 먼저 와일드 마운틴 꼭대기에 오르는가. 만약 우리 측이 먼저 정상에 도달하면 여러분이 저희 부하가 되고, 여러분 측이 먼저 정상으로 도착하면 우리가 여러분의 부하가 되죠.”

“자, 잠깐. 이야기가 너무 산으로 가는 거 같은데.”

정철과 화륜은 일단 좀 천천히 이야기를 진행하자는 듯이 손짓을 해 보였지만.

턱!

은혁은 갑자기 퍼플을 등에 업었다.

“저는 핸디캡 삼아 퍼플을 업은 채로 오르겠습니다.”

은혁이 밀어붙이니, 섬에 갇혀 있던 정철과 화륜도 도리가 없었다.

갑자기 산꼭대기까지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를 갖고 내기가 펼쳐졌다.

* * *

와일드 마운틴은 그 누구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는 산이었다.

몬스터가 많고, 산세가 험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비행 관련 스킬을 지닌 플레이어들이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수많은 몬스터들의 표적이 되었을 뿐.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콰콰쾅!!!

두 플레이어가 미친 듯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염훈은 비행 스킬을 써가며 외쳤다.

“오늘은 내가 이긴다!!”

“무슨 소리!!”

은혁은 은혁대로 돌진하는 무투가 스킬을 마구 써댔다.

“히익!”

은혁의 뒤에 매달린 퍼플이 죽는 소리를 냈다.

“차하앗! 차원의 낚싯대!”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 끝을 도약시켜서, 산의 정상에 꽂았다.

콱!

“흐읍!”

그리고 그 상태로 당기면서 돌진하여 빠르게 날아들었다.

“퀴이익!!”

트롤들이 은혁을 잡으려 했지만.

“꺼져!!”

콰콰쾅!!

화르르르르르!!

[블레이징 러시]를 냅다 갈겨서 트롤들을 튕겨 냈다.

트롤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산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우왓!”

“어, 엄청나군!”

정철과 화륜은 10미터쯤 뒤에서, 굴러떨어지는 트롤 사체들을 피하며 점점 더 늦어졌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칼을 길게 뻗은 계단처럼 만들어 편법으로 산을 오르는 중이었지만 은혁이나 염훈의 과감함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 틈에 은혁이 1위로 산 정상에 도착했다.

-축하드립니다! 최초로 와일드 마운틴의 정상에 도착하는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야생 등산가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 [쾌속 등반]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렇게, 은혁은 정철과 화륜으로 하여금, 염훈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만들었다.

“허참. 어이가 없군.”

“하지만 내기는 내기였지. 불패불굴 길드와 그 길드장에게 충성을 맹세하겠소.”

두 사람은 승복했다.

은혁은 히죽 웃었다.

‘전투원이 점점 늘어나는구나.’

스테이지에 갇혀 있느라 저평가된 이들을 불패불굴 길드에 하나씩 영입하니 무척 만족스러웠다.

만족스러워하는 은혁을 본 정철과 화륜이 오히려 조급했다.

“이보시오. 그렇게 여유 부리면서 기뻐할 때가 아니오. 당신네들은 미션 제한 시간이 얼마 없잖소!”

“이제 시간은 20분 정도밖에 안 남았소!”

정철과 화륜이 소리쳤다.

산에서 산 내부에 있는 드래곤을 찾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드래곤을 처치하고 탈출까지 해야 하니, 20분은 너무 촉박했다.

“괜찮습니다. 산꼭대기에 왔으니, 다음은 쉽습니다.”

“무슨……?”

“자, 그럼.”

은혁은 드릴 랜스를 꺼내더니.

콰두두두두두!

[택티컬 디깅] 스킬로 바닥에 구멍을 1미터쯤 뚫었다.

“자, 퍼플. 이제 너와 내가 할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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